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4 이상을 가둔 감옥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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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4-10 최후의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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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는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었다. 이제 그녀의 앞엔 어떤 장애물도 없었고, 등 뒤의 펼쳐진 "날개"는 그녀의 걸음을 따라 그림자를 드리웠다.

얼마 전까지 격투장 사방에 흩어져서 베로니카에게 화력을 퍼부었던 지원 유닛들은 이제 모두 기이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삐...

^#$%*&...

모든 지원 유닛이 혼란에 빠져 아무런 이유 없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복도에는 부서진 지원 유닛들의 부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순환액이 모든 걸 뒤덮고 있었다.

그때, 베로니카의 접근을 감지한 듯한 한 지원 유닛이 방향을 돌려 시각 모듈을 그녀에게 고정했다.

잔잔한 푸른 빛을 띠던 시각 모듈이 지금은 광기에 사로잡힌 듯 붉은빛을 빠르게 깜빡이고 있었다.

지원 유닛

삐...

뭔가 이상한 것에... 감염된 건가?

베로니카는 기병창을 높이 들어 이상하게 변한 지원 유닛의 에너지 코어를 꿰뚫었다. 그러자 광기에 찬 붉은빛이 점차 사그라들었고, 날카롭게 울리던 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베로니카, 너지? 네 발소리는 딱 알겠더라.

기병창이 허공을 가르며 방 안의 화려한 병풍을 산산조각 내버렸고, 그 뒤에 숨어 있던 "잔혹극의 배후"인 델로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날개를 펼치며, 결말을 선고하는 사신처럼 강림했다.

하지만 델로리스는 코앞까지 다가온 위기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벨벳과 레이스에 둘러싸여, 푹신한 침대에 반쯤 기댄 델로리스의 얼굴은 유리처럼 창백했다.

그녀는 베로니카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손님"에 불과하다는 태도를 보이며, 시선조차 주지 않았고

오로지 눈앞에 있는 수많은 스크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거기엔 지옥과도 같은 아래층의 격투장이 비치고 있었다.

격투장에서는 이미 승부가 갈려 있었다. 패자의 기체는 찢기고 짓이겨져, 더 이상 원래의 기계 격투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승리한 쪽의 시각 모듈에는 지원 유닛들과 똑같은 광기 어린 붉은빛이 번뜩였다.

하지만 그 기계는 경기에서의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엄청난 동력을 이용해 몸을 날려 관객석으로 뛰어올랐다.

인간 관객들은 "승자"를 맞이하는 환호 대신, 절망의 비명과 살려달라는 아우성만을 터뜨렸다.

관객들

살려줘!

관객들

기, 기계들이... 미쳤어! 으악!!!

"승리"한 기계 격투사는 인간들의 어떤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고, 그저 손에 든 무기를 휘두르며, 투기장에서 했던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할 뿐이었다.

목표 고정... 공격...

공격... %*&#$&#...

무기가 인간의 몸을 계속 찔러대자, 선명한 붉은빛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러나 기계체의 시각 모듈은 그 붉은빛을 보면서도, 더 이상 인간의 피와 기계체의 순환액을 구분할 수 없었다.

퇴장 통로에서 항상 절차대로 관객을 인도하던 안내 로봇들마저도 인간 관객을 학살하는 무기로 변해 있었다.

연약한 육체들이 차가운 기계 팔에 꿰뚫리며 하나둘씩 쓰러졌고, 시신이 출구마다 산처럼 쌓여 갔다.

점점 더 많은 기계체들이 "살육전"에 합류하게 되면서, 생존자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어딘가에 숨어 외부와 연락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 손에 쥔 단말기에는 눈꽃 같은 하얀 노이즈만 가득할 뿐이었다.

격투장 안에 있는 그 누구도 이 혼란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인간들은 광기에 휩싸인 기계체에 의해 몸이 꿰뚫릴 때조차, "퍼니싱"이라 불리는 존재가 모든 것의 종말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또 다른 잔혹한 시대가 조용히 막을 올리고 있었다.

관객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관객들

살려줘! 제발 누가 좀 구해줘!

관객들

난 죽고 싶지 않아!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던 인간들의 소리는 이내 잦아들었고, 떠들썩하던 격투장은 적막만이 감돌게 됐다.

현장에서 움직이고 있는 건 각기 다른 형태의 기계체들뿐이었으며, 그들의 시각 모듈에서는 똑같은 광기 어린 붉은빛이 번뜩였다.

하지만,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한 인간 소녀는 두려움이나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흥분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내가 점찍어 둔 그릇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 버리잖아.

창백하던 델로리스의 얼굴이 기묘하게 붉어지면서, 눈에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빛이 피어올랐다.

델로리스는 격투장을 가득 메운 화약 연기와 흩뿌려진 피에도 상관하지 않고,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베로니카를 몇 번이고 훑어보았다. 델로리스에게 있어 베로니카는 끔찍한 전쟁 기계가 아니었다.

베로니카, 넌 정말 완벽한 "예술품"이야.

"또한 내 의식을 담기에 가장 적합한 새로운 몸이기도 해."

델로리스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갈망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게 네 유언인가? 더는 네 헛소리를 들어줄 여유가 없어.

넌 오늘 죽게 될 테니까.

베로니카가 접근하는 걸 보면서도, 델로리스는 여전히 피하지 않았고, 두려운 눈빛은커녕 당황한 기색조차 비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맡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권총이 놓여 있었지만, 그걸로 강력한 기계체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델로리스는 그 권총을 사용할 마음조차 없는 듯했다.

웃기네.

거대한 수족관에서 새어 나오는 차가운 빛 속에서, 베로니카는 델로리스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됐다.

화려한 천 아래에 수많은 파이프가 뒤엉켜 있었는데, 그 거친 파이프들은 델로리스의 피부를 뚫고 나와, 그녀를 정교하게 꾸며진 "우리" 속에 철저히 "가두고 있었다."

그 순간, 베로니카는 조금 전 델로리스가 말했던 "새로운 몸"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흩어져 있던 사소한 단서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더니, 이 모든 일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든 사건의 배후엔 독거미처럼 도사리고 있는 델로리스가 있었다.

망가진 몸을 이끌며 살아가는 델로리스는 줄곧 대담하고 광기 어린 계획을 품고 있었고,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의식을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되는 기계체에 옮기는 것이었다.

이제 "기생자"인 델로리스는 마침내 오래도록 갈망해 온 "숙주"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칠 수도, 눈앞에 있는 기계체에게 저항의 손길조차 뻗을 수 없는 상태였다.

어머, 진실을 알아버린 용사님이 이제 배후를 향해 마지막 공격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델로리스는 자신의 처지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오히려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

델로리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베로니카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그건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어서, 감지 시스템이 경고 신호를 필사적으로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기가 걷히자,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감시관"이라 불리는 거대한 기계체였다. 그 기계체는 델로리스 곁에 멈춰 서더니, 공손히 몸을 낮추었다.

집사, 이제 "청소"를 시작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