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4 이상을 가둔 감옥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ER14-8 비상의 대가

>

<i>끝없는 어둠의 윤회 속에서</i>

<i>베로니카의 의식은 칠흑 같은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i>

<i>그녀는 마치 끝없는 어둠의 복도를 걷는 것 같았고, 앞에 있는 문을 열 때마다</i>

<i>이전과 똑같은 복도만이 나타났다.</i>

<i>어둠, 이곳에는 오직 끝없는 어둠만이 존재했다.</i>

???

베로니카...

일어나. 베로니카...

앞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라

이리 와. 베로니카...

베로니카는 앞으로 나아가 문을 열었다.

눈앞은 온통 창백한 빛으로 가득했고, 그 빛은 난장판이 된 실험실을 비추고 있었다. 강렬한 빛에 베로니카의 시각 모듈이 적응하는 데 몇 초나 걸렸다.

시각 모듈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베로니카는 그 창백한 빛 속에서 유독 눈부신 붉은색이 보였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과 부서진 금속 잔해 사이로 피투성이가 된 세라가 있었다. 세라는 자신의 몸으로 실험실 출입문이 차단되지 않도록 버티고 있었다.

옆의 부서진 출입문 패널은 끈적한 핏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세라가 어떤 의지로 봉쇄된 출입문을 파괴할 수 있었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

실험 시스템

구역 내 이상 상태가 감지되었습니다. 실험 대상이 제어 상태에서 벗어났습니다.

실험 시스템

지원 유닛은 꼭대기 층 D구역으로 집결하십시오.

파동 하나 없는 전자음이 실험 구역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러면서 차가운 흰빛이 순식간에 경고를 알리는 붉은빛으로 바뀌며, 주변 모든 것을 눈부신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수많은 전자동 지원 기동 유닛들이 단말기 시스템의 명령에 즉각 반응하며, 실험실의 유일한 통로를 빠르게 차단했다.

지원 유닛

위반 대상을 제거한다.

화력 지원을 한다.

빽빽한 탄도와 불길이 순식간에 이 좁은 공간을 집어삼켰다.

윽!

세라의 몸에서 피가 꽃처럼 번져나갔고, 점점 더 많은 피가 발밑으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세라는 남은 힘을 모아, 실험실 출입문이 차단되지 않도록 계속 버티고 있었다.

베로니카를 향해 고개를 돌린 세라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기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힘겹게나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에 물든 그 미소는 평소와 다름없이 천진난만했다.

밖으로 나가서... 왼쪽으로 가... 그리고... F구역 복도를... 지나면...

거기 출입문은... 내가... 다... 손 써놨어.

절대... 델... 델로리스를... 믿으면... 안 돼.

베로니카... 나 지금.. 꼴이... 너무... 우습지?

...

나 대신...

탕.

지원 유닛이 발사한 또 한 발의 탄약이 세라의 가슴을 관통했다.

인간 소녀의 몸은 너무도 연약했다. 총알은 세라의 몸을 관통하고도 속도를 잃지 않은 채 벽에 깊은 탄흔을 남겼다.

뜨거운 탄약은 세라의 힘과 의지를 모두 태워버렸고, 한계에 다다른 몸은 결국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

세라의 힘없는 몸이 바닥에 닿기 전, 세라는 자신을 붙잡아주는 어떤 힘을 느꼈다.

마치 처음으로 날개를 펼치고 자유로운 하늘로 천천히 날아오르는 어린 새처럼 자신의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늘은 맑고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세라는 포근한 구름에 감싸여 있는 듯 모든 고통과 두려움이 몸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모든 감각이 사라지자, 세라에게 남은 건 뼛속까지 시린 차가움뿐이었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이 하늘은 왜 이토록 차가운 걸까?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세라는 더 이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추워...

세라의 몸이 베로니카의 품에 힘없이 안겨 있었다.

한때 생기 가득하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곁에 있는 베로니카도 보지 못한 채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라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고, 의미 없는 끊어진 단어들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너무... 추워.

!

베로니카는 사라져가는 생명을 붙잡으려는 듯, 몸을 숙여 세라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 순간, 베로니카는 처음으로 인간의 몸이 얼마나 연약한지 실감했다. 마치 쉽게 찢어질 수 있는 종이 같았다.

예전에 자신의 기체를 정비해 주던 세라의 손길에서 전해졌던 온기와 달리, 지금 세라의 몸은 점점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품에 안은 인간의 심장 박동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것은 기계체의 동력 코어와는 전혀 다른 리듬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리듬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꽉 잡아!

하지만 베로니카의 품에 안긴 세라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지쳐 버린 듯, 조용히 눈만 감고 있었다.

...

기계체는 한 팔로 친구의 몸을 꼭 끌어안은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부터는 나한테 맡겨.

난... 널 데리고 갈 거야!

끊임없이 탄약을 퍼붓는 지원 유닛들 앞에,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기계체가 서 있었다.

키 큰 기계체는 한 손으로는 인간 소녀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기병창을 들고 정면을 겨누고 있었다.

내 앞을 막는 자들을, 모두 죽이겠다!

지원 유닛들이 일제히 사격을 퍼부으며 기계체를 막아섰다. 하지만 빗발치는 탄환 속에서도 베로니카는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기병창을 휘두르는 베로니카는 기체에 새겨지는 깊은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그녀를 움직이는 것은 오직 꺼지지 않는 전의의 불꽃이었다.

하지만 탄약이 만들어 낸 불의 비는 점점 빽빽해지며 베로니카의 시야를 뒤덮어 갔다.

너희 따위가, 감히... 윽!

격렬한 통증이 다시 베로니카의 의식 모듈 구석구석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낯설지만, 익숙한 차가운 어둠의 장막이 그녀의 눈앞에서 서서히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