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4 이상을 가둔 감옥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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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4-7 탈출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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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붉은 경고등이 공간을 가득 채웠고, 단조롭고 날카로운 경보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보안 로봇들의 조준기에서 나오는 수많은 레이저가 베로니카와 세라를 향했다.

베로니카와 세라가 조금이라도 저항하려는 기색을 보인다면, 강력한 화력을 지닌 보안 로봇들이 즉각 사방에서 화력을 퍼부을 태세였다.

세라는 눈앞의 광경에 놀라 얼굴이 새하얘졌지만, 최대한 침착하려 했다.

세라는 소용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베로니카를 지키려는 듯, 그녀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대치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모든 것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감시관"의 금속 마찰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잠시 후, 거대한 몸체를 가진 기계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고, 그가 만들어낸 그림자는 베로니카와 세라를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엔지니어 세라, 연기는 여기까지면 됐다. 잘했다.

감시관의 말에 세라와 베로니카는 동시에 얼어붙었다. 그 순간, 보안 로봇이 달려들어 둘이 반응할 새도 없이 그들을 떼어놓았다.

기계체 베로니카, 도주를 시도하고 실행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규정에 따라 처벌을 진행한다.

엔지니어 세라와 로코는 정비 과정에서 이 위험을 빠르게 발견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입증했다. 규정에 따라 보상을 진행하겠다.

그게 무슨...

동공이 급격히 수축한 세라가 감시관이 하는 말을 되새기고 있는데, 차가운 포효가 모두의 귀를 울리며 터져 나왔다.

세... 라!!

아냐! 잠깐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세라는 보안 로봇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곧바로 다른 이가 앞을 막아섰다.

어디선가 나타난 로코가 세라의 머리를 단단히 눌렀다. 그러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죽기 싫으면 움직이지 마!

그렇게 말한 로코는 고개를 들어, 감시관을 향해 비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이 친구가 아직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봅니다.

한 손으로 세라의 입을 막은 로코는 다른 손으로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세라가 전에 봤던 그 "저장 부품"을 꺼내 "감시관"에게 내밀었다.

"감시관"의 연결을 통해 "저장 부품"에 담겨 있던 홀로그램 투영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펼쳐졌다. 거기에는 이전에 세라와 베로니카가 함께 있던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세라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로코와 나눴던 대화에서 느꼈던 모든 이상함이 그제야 퍼즐처럼 맞춰지는 것 같았다.

...

다... 알고 있었어요? 전부 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기회를 봐서, 이렇게 한 거예요?

세라의 눈을 마주치지 못해 고개를 돌린 로코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하지만 내 아내와 아이는 아직 밖에 있다고.

그게 아저씨가 절...

"그게 아저씨가 절 배신한 이유인가요?"라는 질문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로코가 다시 세라의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했음에도, 세라는 로코의 눈에서 이런 복잡한 감정이 담긴 모습을 맹세코 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는 결연함, 매서움과 걷잡을 수 없는 죄책감까지 담겨 있었다.

너까지 끌어들이지는 않았잖아!

사기꾼!

그때, 또 다른 분노에 찬 목소리가 세라를 슬픔에서 끌어냈다.

세라가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집어삼킬 듯 이글거리는 베로니카의 눈과 마주치게 됐다.

역시... 너희들은 한패였구나.

나, 난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정말 아니라고...

착한 척하면서 기계체에게 친구라 하고

항상 불쌍한 척하면서 어디도 갈 수 없고 억압받고 있다고 말했지.

자신도 인간이지만, 이곳에서는 기계체와 마찬가지로 "죄수"라면서 말이야.

하, 웃기지도 않는군!

그게 다 오늘을 위해 기다리며 꾸민 일이겠지?

너희 같은 인간에게 있어 기계체는 그저 너희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잖아.

널 처음 봤을 때, 목을 졸라서 죽였어야 했는데.

...

베로니카의 폭발하는 분노에 세라는 눈물과 침묵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한때 둘 사이에 존재했던 "우정"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죽어버려!

베로니카의 손에 들린 기병창이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다가올 결말을 직시하며 눈을 감은 세라는 모든 것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무거운 물체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눈을 뜬 세라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베로니카의 얼굴을 보았다.

베로니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목에 채워진 구속 장치에서 강한 전류가 흘러나오자, 극심한 고통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베로니카의 등 뒤에는 거대한 "감시관"이 서 있었다.

탈주 기계체 베로니카, 처벌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베로니카

이... 인간의... 졸개!

그만해!

세라는 주저하지 않고 베로니카에게 달려들었다. 총구 앞의 위험도 잊은 채 온몸으로 그녀를 지키려 한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기계체가 기병창으로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것조차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 위기 속에서 친구를 꽉 안아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보안 로봇이 쏜 총알 한 발이 세라의 종아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세라는 순식간에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세라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베로니카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 닿고 싶었고, 이 모든 위험에서 그녀를 구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감시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흔들림이 없었다.

탈주 대상의 저항 행위가 심화되었다. 처벌 프로그램을 강화한다.

"감시관"의 거대한 기계손이 베로니카의 목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것의 권한 아래서 더 강력한 교란 전류가 그녀의 몸속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갔다.

!

끈질기게 저항하던 베로니카의 의지는 결국 강력한 외부의 힘에 눌려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렇게 그녀의 기체는 힘없이 팔을 늘어뜨린 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베로니카!!

세라가 아무리 불러봐도 바닥에 쓰러진 기계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머리 위 감시기 장치를 통해 인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비수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소녀의 것이었다.

조금 전에 둘이 나눈 이야기를 전부 들었어, 아주 흥미로운 연극이었어.

너희 둘은 재단의 "우수 직원"이니, 상을 줘야겠지.

하지만 그들을 같이 두는 건 의미가 없어. 그러니 집사, 따로따로 데려오도록 해.

이 꼬마 아가씨는 나한테 데려오고, 저 아저씨는 네가 맡아.

네. 주인님.

"감시관"은 낡은 자루를 밀어내듯, 안색이 창백한 로코를 보안 로봇들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여러 개의 총구가 로코를 겨누었다.

...

이후 "감시관"이 총구를 세라에게 겨누며 앞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주인님"을 만나러 가자.

꼭대기 층 "주인님"의 방

에버렛 격투장

에버렛 격투장, 꼭대기 층 "주인님"의 방

세라는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주변이 너무 어두워서 그런지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곳이 특별하다는 것을 바로 감지할 수 있었다.

발밑은 차갑고 딱딱한 금속 바닥이 아니라, 부드럽고 포근한 카펫이 깔려 있었고, 공기 중에는 격투장에서 흔히 느껴지던 오일 냄새 대신,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은은한 향기가 감돌았다.

방안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벽을 가득 메운 거대한 수족관이었는데, 그 안에서 희미한 빛이 어둠 속으로 번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그런 것들을 볼 여유가 없었다. 이른바 "주인님"이라는 존재가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라는 생전 처음으로 깊은 공포와 고독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주인님"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베로니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세라의 머릿속에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다. 격투장 한가운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베로니카를 향해 유압 프레스가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을 내며 다가와 그녀를 산산조각 내는 모습이었다.

세라는 그 광경을 머릿속에서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 방에서 뛰쳐나가 베로니카 곁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어떤 결말이 기다린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등 뒤에는 "감시관"이 총구를 계속 겨누고 있어서 도망칠 길은 없었다.

주인님, 데려왔습니다.

"감시관"이 세라를 앞으로 떠밀자, 그녀의 모습이 방 반대편에 있는 "인간 주인님"의 시야에 완전히 들어왔다.

"감시관"은 공손히 몸을 굽혀 인사한 뒤, 조용히 문밖으로 물러나 대기했다.

세라는 종아리에 난 상처 때문에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그녀는 극심한 통증을 견디며, 간신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버티고 있었다.

"주인님"이라 불리는 이는 거대한 침대에 느긋하게 기댄 채 어둠 속에 잠겨있었고, 일어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세라는 어떤 기기에서 나는 듯한 희미하고 규칙적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는 방향에서는 알 수 없는 장치의 표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그 정도 상처로 죽진 않아.

자기소개할 필요는 없어. 네가 세라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이름 참 예쁘네.

난 이곳의 주인——델로리스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같은 여자로서 분명 말이 잘 통할 거야.

...

"델로리스"라는 소녀가 그제야 커다란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수족관에서 새어 나온 희미한 빛이 마침내 델로리스의 얼굴을 비췄다. 까만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청초하고 아름다웠지만, 피부는 병적으로 창백했다.

델로리스의 옷자락 아래로는 기묘하고 가느다란 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으며, 그 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색깔의 액체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이 관들은 모두 표시등이 깜박이고 있는 이상한 장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관의 다른 쪽 끝을 확인한 세라는 놀란 나머지 입을 가렸다. 관들이 소녀의 여린 피부 곳곳을 꿰뚫어, 그녀를 침대 위에 완전히 "속박"하고 있었다.

손님한테 이런 꼴을 보이다니, 실례하게 됐군.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말했잖아? 우수 직원인 너에게 "보상"을 줄 거라고.

...

왜 그런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를 믿는 거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계체와 말 몇 마디 나눴다고, 무조건 네 편이 되어줄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조금 전에 그런 일을 당하고도 베로니카를 감싸려 하다니, 어리석네.

서로의 어려움과 생각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우리 인간들뿐이야. 안 그래?

난 네가 뭘 원하는지 알아.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는 거"잖아.

델로리스는 세라의 목에 걸린 날개 모양 펜던트를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유"... 그건 나도 원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의 목표는 같아.

이 방이 아무리 편안하고 화려하더라도, 이제는 지긋지긋해.

나가서 걷고 싶고, 뛰고 싶어. 그리고... 온갖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 뭐든 지금 이 상태보다는 나을 거야!

델로리스의 얼굴에 점점 광기가 드리워졌다.

그러니 내가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나도 널 자유롭게 해줄게.

내 "실험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내 몸을 "정비"해 줘.

세라는 델로리스를 바라보며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아무리 봐도 인간의 몸이었고, 기계의 의수나 의족 같은 부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뭐... 뭐라는 거야? 난 의사가 아니라고...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델로리스는 느긋하게 고개를 돌려 수족관을 바라보면서 그 안의 풍경을 감상했다.

하지만 커다란 수조 속에는 물고기 한 마리 없었고, 기괴한 모양의 소라게 몇 마리만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는 새로운 "집"을 찾고 있는 듯 집게발로 바닥에 흩어진 소라 껍데기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껍데기를 골라냈다.

소라게가 살던 껍데기에서 천천히 몸을 빼내자, 껍데기의 보호를 잃은 연약하고 뒤틀린 몸이 드러났다. 그 모습은 형언할 수 없이 기괴했다.

녀석은 천천히 몸을 돌려 새로운 껍데기 안으로 들어갔다. 새 "집"이 꽤 마음에 드는지, 이내 다시 집게발을 움직이며 먹이를 찾아 나섰다.

소라게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델로리스는 그제야 미소를 머금고 세라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인간의 몸은 너무나도 연약해. 그래서 사소한 상처나 질병에도 쉽게 망가지고,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지.

하지만 그와 달리 기계체는 강하고 아름다우며, 무엇이든 할 수 있어.

...

끔찍한 생각이 세라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 순간 그녀는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공포에 질린 세라의 표정을 본 델로리스는 곧바로 그녀의 생각을 눈치챘다.

참 똑똑하네. 그래, 내가 원하는 건 바로... 완전히 새로운 기체야.

난 베로니카의 몸을 갖고 싶어.

넌 미쳤어!!

델로리스는 세라의 격렬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던 듯, 담담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고집을 부리다니.

나와 흥정할 생각은 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너도 "그 녀석"처럼 될 테니까.

델로리스가 손짓하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의 금속 발소리가 울리며 점점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건 "감시관"의 거대한 기체가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범용 기계체처럼 보였고, 공격 모듈조차 장착되지 않은 듯했다.

느리지만 안정적인 걸음으로 다가온 기계체는 델로리스의 침대 옆에 멈춰 섰다.

주인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넌 누구지?

번호 18702, 코드네임 로코입니다.

아... 아저...

기계체의 발성 모듈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다소 왜곡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라는 그 익숙한 음색과 말투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 웅덩이 속에서 발버둥 치던 로코의 의식은 이제 이 차가운 기계체 안에 갇혀버렸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영원히 얻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가장 비참한 건, 정작 로코 본인은 이 모든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아저씨!!

하지만 눈앞에 있는 기계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주인" 델로리스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가봐.

네. 주인님.

로코의 의식이 담긴 기계체는 몸을 돌려, 느리지만 안정적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

어두운 방 안은 숨 막힐 듯 고요했다. 그러다 정적을 깨뜨린 것은 세라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뿐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세라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마지막 끈마저 끊어버렸다.

델로리스는 눈앞에 있는 소녀 엔지니어가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침묵 끝에 세라는 절망에 휩싸인 채 결심을 내렸다. 그녀는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놓인 은빛 편지 칼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칼날의 방향은 델로리스를 향하는 대신 세라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세라의 손이 마지막 각오를 다지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라는 죽음만이 속죄와 해방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목숨과 함께 끝내기로 결심했다.

세라는 결코 사악한 "정비 공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웃기네. 정말로 죽고 싶어 하는 인간이 있다니.

"죽음"은 끔찍한 거야.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

칼이 몸을 꿰뚫을 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어. 그리고 피가 천천히 마르면서 몸은 점점 차가워지지.

그렇게 죽고 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속에 묻혀, 벌레들이 네 예쁜 얼굴을 조금씩 갉아 먹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델로리스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차가운 눈빛은 독사와도 같았다.

네가 죽더라도 네 의식을 전부 추출해 아무 기계체에나 옮기면 그만이야.

반항심과 인격은 지워버리고, 나한테 필요한 기술만 남기면 돼.

그렇게 되면 넌 완전히 내 "도구"가 되어, 내 계획을 순순히 돕게 될 거야.

그러니까 이젠 그 칼을 내려놔.

차가운 손이 세라의 얼굴에서 천천히 떨어지더니, 절망에 힘이 풀린 세라의 손에서 편지 칼을 쉽게 빼앗아 갔다.

자, 더는 시간 낭비하지 말자. 베로니카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

그럼, 이제... 진정한 "연회"를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