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층 경기 구역
에버렛 격투장
에버렛 격투장, 상층 경기 구역
깊은 밤, 또 하나의 격투 경기가 끝나고 관객들이 줄지어 격투장을 빠져나갔다.
치열했던 격투에 여전히 흥분한 관객들은 들뜬 표정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머리 위를 선회하는 새처럼 생긴 무인기를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새처럼 생긴 무인기의 카메라는 관객이 아닌 통로와 인간 관객들을 안내하는 로봇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온갖 화려한 광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수십 미터 아래 격투장의 아래층 구역에서는 세라가 긴장한 채 컨트롤러를 꽉 쥐고 새처럼 생긴 무인기를 조종하고 있었다.
반정찰 칩이 효과가 있길... 제발, 이번엔 꼭 무사히...
세라는 컨트롤러 위 작은 화면을 주시했다. 하지만 화면에는 여전히 눈꽃 같은 노이즈만 가득할 뿐,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라는 컨트롤러에 달린 다이얼을 신중히 조정했다. 그러자 노이즈가 사라지고, 흐릿했던 화면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와! 드디어 화면이 보여! 내가 이번엔 될 거라고 했잖아! 망치, 드디어 실험이 성공했어!
(표시등을 깜빡이며 세라 발밑을 빙글빙글 돌았다.)
세라의 조작에 따라 새처럼 생긴 무인기가 공중을 선회하다 멈춰 섰다. 이어서 다양한 구역을 담은 영상이 실시간으로 컨트롤러 위 작은 화면에 전송되었다.
어디 보자. 격투장 구역에서 나가는 출구는 총 3개인데, 전부 신분 식별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카메라도 5대나 있어서 감시기 사각지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해. 게다가 안내 로봇 몇 대가 이 구역에 배치되어 있어.
바깥쪽은 촬영이 안 되지만, 내 생각엔... 저 긴 복도를 지나면 바로 출구일 거야. 그리고 밖에는 감시기 카메라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아.
세라는 화면에 뜬 정보를 보며 중얼거렸다. 개인 단말기가 로코 아저씨의 호출로 울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연결했다.
여보세요? 아저씨, 대체 뭐 하시는...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할 질문 아니냐?! 지금 어디야?! 감시 시스템에서 네 작업 지연 경고가 벌써 세 번이나 떴다고!!!
우왓! 귀 터지는 줄 알았잖아요.
어... 제가 지금 뭐 좀 측정 중이라서요. 아무튼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작업 얘기는 이따 다시 해요. 끊을게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내 작업용 무인기, 네가 뜯어갔지?!
이 못 말리는 녀석아,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어... 그거는... 여, 여보세요? 아저씨, 뭐라고요? 아, 잘 안 들려요.
여보세요? 여기 신호가 좋지 않은 것 같...
세라는 대충 몇 마디 하다가, 단말기를 두드려 "신호 방해"가 생긴 것처럼 꾸몄다. 그러고는 바로 통신을 끊어 버렸다.
됐어. 이어서 하자!
세라는 공구함에서 정교해 보이는 칩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손짓으로 "망치"를 불러, 그 칩을 몸에 달아 주었다.
됐어. 잘만 되면 출구 쪽 신분 식별 장치의 신호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 거야.
망치, 조금 전에 봤던 그 출구로 나가서 대문까지 갔다가, 그대로 돌아오면 돼. 다른 짓은 절대 하지 말고, 소리도 내지 마. 알겠지?
(표시등이 느리고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야, 이 위장 코팅은... 뭐, 이 정도면 괜찮아. 얼핏 보면 강아지처럼 보일 거야!
어쨌든 겉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 교란 칩이지. 이걸 달았으니, 저 안내 로봇들이 널 인식하지 못할 거야.
세라는 "애완견" 코팅으로 위장한 "망치"를 바라보았다. 코팅이 엉성하긴 했지만, 제한된 조건 안에서 해낼 수 있는 최선이었다.
신분 식별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칩과 위장 코팅, 이것이 세라가 줄곧 비밀리에 준비해 온 "비밀 계획"이었다.
세라는 이 비밀을 철저히 숨겼으며, 로코 아저씨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세라는 로코 아저씨의 생각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밀이 새어 나갈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모든 일을 끝마치고 떠날 때 아저씨를 부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일이 잘못되더라도 로코 아저씨가 연루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망치"는 알 수 없는 여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세라가 새처럼 생긴 무인기로 지켜보는 가운데, "망치"는 조용히 움직였다. 관객들은 여전히 조금 전 끝난 경기의 여운에 잠겨 있었고, 벽을 따라 움직이는 이 "작은 기계"를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망치"는 신분 식별 장치에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몇몇 관객이 한꺼번에 장치를 지나가는 순간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 무사히 통과했다.
좋았어! 돌파 성공이야! 이제 다음은...
하지만 세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내 로봇 몇 대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것들은 순식간에 "망치"를 둘러싸고는 벽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표시등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아... 제, 제발 그러지 마! "망치"를 건드리지 마!
하지만 세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화면 속 "망치"는 곳곳에서 불꽃이 튀는 부품 더미가 되어 있었고, 바쁘게 이동하던 관객들은 이 광경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하층 직원 생활 구역
에버렛 격투장
에버렛 격투장, 하층 직원 생활 구역
"비밀 테스트 작전"이 실패한 지 몇 시간 후, 세라는 풀이 죽은 상태로 자신의 방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부품으로 흩어진 "망치"를 보며 그녀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세라는 로코 아저씨가 건넨 공구를 조용히 받아 들고는 흩어진 부품들을 하나씩 신중하게 맞춰보기 시작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나도 도와줄 방법이 없어! 오늘도 "감시관" 그 기계 광을 한참 설득해서, 겨우 네가 식별 시스템 감도를 테스트하는 실험 중이었다고 하고 넘어간 거야.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거니?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하, 됐다!
그리고 다음에 내 물건 가져갈 땐, 최소한 말은 하고 가져가거라!
로코 아저씨는 짜증 난 표정으로 새처럼 생긴 무인기를 들어 올렸다.
그건... 그때 아저씨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 그냥 쓴 거예요. 게다가 이건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거라서...
선물로 줄게, 오늘이 네 생일이지?
정말이요! 아저씨, 감사해요!
로코는 세라에게 새처럼 생긴 무인기를 건네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맞다. 어제는 "감시관"이 왜 네 근무 시간을 전부 차감한 거야? 몸에 난 상처들은 또 뭐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말해. 아저씨를 남처럼 대하지 말고.
아, 아무 일 없었어요.
세라는 로코 아저씨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새처럼 생긴 무인기만 만지작거렸다.
이 녀석아, 네가 거짓말할 때마다 아저씨가 모를 것 같니? 날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거 보면, 뭔가 숨기고 있는 거잖아!
말 안 해도 다 알아. 작업 시간 초과한 날 기록을 다 확인해 봤다. 네가 그... 뭐냐, 그 긴 꼬리 달린 기계체에게 시간을 다 뺏긴 거잖아.
"긴 꼬리 달린 기계체"가 아니라, 베로니카예요!
그리고 제 친구라고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
세라는 곧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의식했지만, 이제 와서 입을 다물기엔 늦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녀는 결국 풀이 죽은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한 번 터진 말문은 멈추기가 어려웠고, 그녀는 결국 마음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게 됐다.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베로니카를 보면 이상하게 친근함이 느껴져요.
베로니카가 강하고 멋진 언니 같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생겼거든요.
하지만 무엇보다... 베로니카에게서 음... 뭐랄까요? "반항하는 용기"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감시관"이 나타나면, 저나 다른 기계체들은 전부 복종하는데, 베로니카는 오히려 반항하잖아요. 그게 정말 놀랍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베로니카에게는... "저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전 워낙 소심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데, 그녀와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부끄러운 듯 다시 고개를 숙인 세라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
로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을 본 듯, 표현할 수 없는 눈빛으로 세라를 바라보았다.
열은 없는데... 설마 야근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이상해진 거니?
세라는 화가 난 듯, 이마를 대보려는 로코 아저씨의 손을 툭 쳐냈다. 그리고 새처럼 생긴 무인기를 정리한 뒤, 다시 고장 난 "망치"를 고치는 데 몰두했다.
아저씨는 항상 이런 식이에요. 됐어요. 이제 아저씨하고 말하지 않을 거예요.
에휴, 요즘 힘든 건 알겠는데... 제발 어른스럽게 행동하면 안 되겠니?
그 쇳덩어리들... 아니, 기계 격투사들이 아무리 전투력이 높고 인간과 소통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이 아니잖아. 네 "친구"가 될 수 없다고.
간단히 말하면, 지능형 운송 장비나 가사 로봇보다 조금 더 발전된 로봇일 뿐이야. 넌 맨날 그것들과 같이 있으면서, 이걸 왜 모르는 거야?
뜯어보면, 부품과 칩밖에 없는 것들이야. 고장 나면 고치고, 오래되면 바꾸면 그만이야. 어떻게 인간과 그게 같을 수 있어?
오늘은 잘해주다가도, 내일 모듈이 업그레이드되면 널 적으로 여길 수도 있어.
근데 넌 꼭 그것들을 "인간" 대하듯 하더라. 매번 정비해 주고 업그레이드해 주면서, "더 많은 기계체가 이겨서 자유를 얻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도 하고...
솔직히, 시스템에서 내려오는 정비 작업 같은 건 대충 해도 돼. 그러니까 제발 네 몸부터 좀 챙겨. 이 녀석아. 쿨럭쿨럭...
아저씨! 왜 자꾸 그러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것들은 제 친·구·라·고·요!
저는 어떤 재미없는 아저씨처럼, 할 일 없을 때 근무 시간을 담배나 술로 바꾸지 않아요. 그리고 여기서 남한테 잔소리하는...
이때, "망치"가 세라의 수리 덕분에 다시 기능을 회복했다. 꼬마 로봇의 표시등이 몇 번 깜빡이더니, 금방 평소와 같은 작동 모드로 전환되었다.
(로코의 다리를 툭 들이받았다.)
보세요~ 얘네는 아저씨가 말한 그런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니에요.
알았어, 알았다고, 망치야, 여기서 장난치지 말고, 얼른 가서 충전해~
(충전 거치대로 돌아가, 휴면 모드에 들어갔다.)
어휴, 그런 사소한 거에 신경 좀 쓰지 마라. 너 지금 밀린 근무 시간이 벌써... 쿨럭쿨럭!!
더는 말을 잇지 못한 로코 아저씨는 가슴을 움켜쥔 채 거친 기침을 쏟아냈다. 그리고 표정은 고통으로 점점 일그러져 갔다.
아, 아저씨... 조금만 버티세요. 제가 바로 약을 가져올게요!
세라는 서둘러 로코의 가방을 뒤져, 전에 여러 번 꺼내 주었던 약병을 찾았다. 하지만 손에 잡힌 건 텅 빈 약병뿐이었다.
세라가 약병을 확인하기 위해 꺼낼 때, 로코의 단말기까지 딸려 바닥에 떨어졌다. 화면에는 시스템 근무 시간이 차감되었다는 붉은 글씨가 선명히 떠 있었고, 그 숫자는 한눈에 봐도 평생 갚기 힘들 정도로 엄청났다.
아저씨, 어떻게 된 거예요?!
쿨럭쿨럭... 다 떨어졌어. 근무 시간으론... 쿨럭쿨럭... 더는 못 바꿔.
그냥... 물 한 잔만... 쿨럭쿨럭... 줄래?
물을 마신 후, 로코의 표정이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엔 전과 다르게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아저씨. 제 근무 시간을 진통제로 바꿔 올게요!
괜찮아. 이제 익숙해졌어. 괴로워 봤자 얼마 남지 않았어. 어차피 남은 시간도... 그렇게 많이 없으니...
하... 이렇게 생각하니... 공짜로 오래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난 이제 늙어서 상관없어. 하지만 넌 아직 젊으니까... 여기에 평생을 묶여 살면 안 돼.
그러니 아저씨가 한 말을 들어. 맨날 기계체 생각만 하지 말고, 또... 그 "감시관"한테 괜히 잡혀서 근무 시간 깎이지도 말고...
여기서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떠나거라...
그리고... 네 근무 시간을 괜히 나 같은 늙은이한테... 쓰지 마라.
...
둘은 이 슬프고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이야기를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방 안은 숨 막히는 정적에 휩싸였다.
이해가 안 가네요, 윗분들은 대체 왜 이렇게 우리를 대하는 걸까요?
아저씨 몸도 이렇게 안 좋으신데, 위에서는 이렇게까지 쥐어짜다니. 정말 너무하잖아요!
어릴 땐 어른들이 에버렛 재단의 이사장은 좋은 분이라고 했었어요. 재단도 잘 운영하시고 자선 활동도 많이 한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된 거죠?
네가 아직 모르는 게 많단다. 이 세계는... 원래 네 나이 또래가 이해하기엔 벅차거든.
몇 년 전에 재단 이사장이 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뉴스에서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구나.
이사장의 먼 친척일 수 있고 아니면 집사나 하인 같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 크고 작은 재단 내부를 봤을 때, 이런 더러운 일들은 너무 흔하지...
누가 됐든 좋은 놈은 아닐 거야. 그 기계 광이 이런 짓을 해도 내버려두는 걸 보면, 인간이든 기계든 모두 한통속일 거야.
우리가 "엔지니어"라는 이름을 달고, 겉으론 그 기계체들을 정비해 주고 있지만... 사실 우리도 별반 다를 게 없잖아.
하... 그때 큰돈을 벌었더라면, 지금쯤 나도 저 바깥에서 온 관객들처럼 관객석에 앉아 돈을 마구 걸고 있었겠지.
이렇게 "죄수"처럼 햇빛도 못 보고 하루하루 죽기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에휴! 이제야 네가 왜 저 기계체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라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이런 곳에서 누구라도 말동무가 필요했겠지.
네 그 친한 친구 이름이... 베로니카, 맞지? 시즌 데이터를 보니, 꽤 강한 선수 같더라.
너한테서 워낙 많이 들어서, 기회가 된다면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아저씨...
됐다. 이게 다 내 팔자인걸. 내가 자초한 일이니, 이제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지.
됐다. 됐어. 그만 얘기하자. 이런 구질구질한 얘기는 하면 할수록 운만 더 나빠져!
좋게 생각하자고. 언젠가 그 재단 이사장이 돈을 많이 벌고는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우리 빚을 싹 다 탕감해 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그때가 되면, 내 정비 실력 하나로도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기계 회사들이 모두 날 데려가려고 난리일 테니까 말이야.
2년도 안 돼서 차 사고 집도 사고, 가족들 다 데려와서 제대로 보답할 거야!
그리고 넌...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을 거고!
로코 아저씨는 일부러 밝은 척하며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고선 목소리도 한껏 높여 머리 위에 드리운 보이지 않는 먹구름을 걷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 과장된 행동에 영향을 받은 듯, 세라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토록 꿈꾸던 "자유"를 눈앞에서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자, 너도 어서 쉬러 가야지, 내일도 할 일이 많잖아.
로코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로코의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이 하나 떨어졌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세라는 얼른 몸을 숙여 그 물건을 주웠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뭐 떨어뜨리셨어요. 어? 이거 최신형 저장 부품 아니에요? 저도 한참 전에 신청했는데, 아직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어떻게...
로코는 다급히 세라의 손에서 부품을 빼앗았다. 그러자 스쳐 지나간 당황한 표정은 금세 사라졌다.
아, 이... 이거, "고위 직원"에게서 포인트로 교환한 거야.
나이가 드니까 기억력이 안 좋아져서, 그냥... 평소에 이것저것 메모해 두려고...
...
로코는 황급히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가 간 곳은 평소 자기 휴게실로 가던 길이 아닌 다른 방향이었다.
아저씨... 잠깐만요!
어, 아저씨! 어디 가세요? 휴게실은 반대쪽인데요!
아아... 맞다. 맞다. 이것 좀 봐, 나이를 먹으니까 요즘 정신이 하나도 없네. 하하... 그럼, 일찍 자고 푹 쉬어라.
로코 아저씨의 그림자가 복도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 그는 세라를 힐끗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세라가 전엔 본 적이 없었던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거기엔 안도감과 후련함, 무언가를 맡기는 듯한 마음과 아쉬움... 그리고 은근히 묻어나는 미안함까지 담겨 있었다.
그제야 세라는 항상 듬직하고 건장하게만 보였던 로코 아저씨의 몸이 어느새 야위고, 구부정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