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 격투사 정비 구역
에버렛 격투장
에버렛 격투장 하층 격투사 정비 구역
세라는 공구함을 들고 기계 격투사의 정비 구역 출입문 앞에 섰다. 그녀의 뒤로는 "망치"라 불리는 꼬마 로봇이 조용히 서 있었다.
120분 안에 7대의 기계체 정비와 모듈 업그레이드를 마쳐야 해.
후... 망치, 오늘 작업은 만만치 않겠는데?
(표시등이 빠르게 깜빡였다.)
단말기를 꺼내 정보표를 불러온 세라는 빠르게 화면을 넘기며 확인했다.
어디 보자. 정기 점검 대상인 범용형 3대는 "아크", "윈치", "스틸 체인"이고, 업그레이드 개조할 개량형은 2대...
어떤 정비도 이 세라님에게는 문제 없지! 가자, 망치. 오늘도 멋지게 해내자!
아... 아... 아저씨! 들리세요? 저 이제 작업 시작해요. 아저씨도 힘내세요!
그래? 난 벌써 첫 번째 거 시작했다. 올 때 뛰어왔어야지.
신경 쓰지 마세요!
씩씩대며 통신을 끊은 세라는 다시 시간표를 확인한 뒤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신분 카드를 꺼내 출입문 센서에 갖다 댔다.
신분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사번 30476, 세라, 초급 엔지니어. 하층 기계 A 구역 출입이 허가되었습니다.
출입문에서 인증 완료를 알리는 기계의 전자 음성이 울렸다. 그러자 묵직한 금속 문이 양옆으로 미끄러지듯 열리면서, 녹슨 것 같은 둔탁한 소리를 냈다.
기계 격투사들을 보자, 세라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한 환한 미소가 번졌다.
용감한 기계 격투사 용사들아, 좋·은 아·침·이·야! 오늘도 세라 엔지니어가 너희 기체를 책임지고 정비해 줄게!
명령 확인했습니다. 대기하겠습니다.
정비를 기다리는 기계체들이 무미건조한 소리로 대답하자, 세라는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 이런 상호작용만 가능하다니... 이번 모델은 좀 구형인가 보네.)
잠시 기운이 빠졌던 세라는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단말기에 표시된 지침에 따라 첫 번째 기계 격투사의 방으로 향했다.
엔지니어 권한이 확인되었습니다. 본 기체는 정비 대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어디 보자. 구동 장치가 좀 닳았고... 동력 코어의 에너지 전환율이 40%밖에 안 되네.
흠, 하지만 제일 심각한 건 시각 식별 모듈이야. 모듈 전체를 업그레이드해서 교체해야 할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받은 작업 권한은 "정기 점검"뿐인 데다 시간도 부족하니... 아, 참 난처하네.
음... 우선 기동 인식 부품을 강화해 줄게, 그러면 격투장에서의 승률을 조금은 올릴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개조 방안을 확인했습니다.
사실... 내가 너희를 위해 크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그래도 격투장에서 최선을 다해 승리를 거둬보자!
이번 대화의 감정 분석이 불가능합니다.
몰라도 돼. 그럼, 네 에너지 코어를 먼저 분리할게!
좋았어. 망치, 공구함에서 7번 렌치 좀 가져와 줘.
세라는 정비 작업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오직 복잡한 기계 부품과 배선만이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세라는 기체 정비를 능숙하게 마무리한 뒤, 곧바로 다음 기체로 달려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망치"라 불리는 꼬마 로봇은 든든한 어시스턴트처럼 세라 곁에서 모든 지시에 빠르게 반응했다.
인간과 로봇 어시스턴트의 호흡은 완벽했다. 세라가 말 한마디나 손짓 하나만 해도 "망치"는 바로 알아듣고 정확하게 움직여 도움을 주었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발랄한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진지한 전문 엔지니어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세라는 집중한 나머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시간은 그렇게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후... 피곤하다.
작업표 좀 보자. 아직 한 대 더 남은 것 같은데... 앗, 뭐야! 10분밖에 안 남았잖아?
작업에 열중하던 세라는 단말기를 다급히 확인하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동시에 머리 위에 설치된 감시기 시스템에서도 경고 멘트가 나왔다.
세라, 초급 엔지니어, 이번 정비 작업 진행에서 위험이 감지되었습니다. 남은 시간 10분, 남은 작업 CTX-V 기능 강화형, 코드네임 "베로니카", 수량은 1대입니다.
지정 시간 내에 작업을 완료하십시오. 초과 시, 오늘 근무 시간은 전부 무효 처리됩니다.
(표시등이 연속적으로 깜빡였다.)
서둘러, 망치야! 어서 마지막 남은 한 대를 수리하러 가자. 이제 9분 52초밖에 남지 않았어!
세라는 어두운 복도를 따라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공구함 속 각종 부품이 달리는 동안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망치"도 세라의 발걸음을 쫓아 힘겹게 따라붙었다. 급한 커브를 돌 때마다 로봇은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세라가 비틀거리며 마지막 기계 격투사가 있는 방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가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곧장 붉은 눈을 가진 기계체와 마주했다.
늘씬한 그림자가 웃음기라곤 하나 없는 얼굴과 냉랭한 눈빛으로 인간 소녀를 응시했다. 하지만 세라는 베로니카의 싸늘한 표정에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환하게 웃어 보였다.
와, 네가 그 "베로니카"구나.
진짜 인간이랑 많이 닮았네! 무척 멋지고 전투력이 높은 언니 같아!
난 세라라고 해. 여기서 일하는 엔지니어야! 우리 친구 할래?
앗, 미안, 미안. 내가 너무 당돌했나?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돼! 너 같은 유형의 기계체는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그랬어.
세라의 눈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베로니카에게 손을 내밀며 인간의 예절 방식으로 인사했다.
바로 다음 순간, 침묵하던 기계체도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손은 따뜻한 인사를 나누는 대신, 세라의 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윽!
얼음처럼 차가운 기계손이 세라의 목을 움켜쥐면서, 기도를 강하게 압박했다. 세라는 숨이 막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세라는 방금 자신의 어떤 행동이 이 기계체의 "분노"를 촉발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반항하려 든다면 저 기계체의 손이 자신의 목을 쉽게 비틀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엔지니어"라고?
세라는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그러면서 이 미세한 움직임으로 베로니카가 자신이 "끄덕였다"라는 것을 알아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 순간, 베로니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목줄을 분노에 차서 바닥에 내던졌다. 그것은 그날 부숴버렸던 이름 없는 기계체의 목줄이었다.
내 목에 있는 이 망할 목줄을 당장 떼어내.
세라의 목을 조르고 있던 베로니카의 손이 살짝 느슨해졌다. 순간 숨통이 트인 세라는 연이어 기침했다.
세라는 베로니카가 자신에게 설명할 시간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쿨럭쿨럭...
그... 그건 떼어낼 수 없는 거야.
그 목줄은 단말기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어서, 억지로 떼려고 하면 곧바로 경보가 울려.
그렇게 되면, "감시관"이 널... 기계체를 "처형"하는 곳으로 끌고 갈 거야.
하지만 기계체는 그녀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싸늘한 눈빛으로 세라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말없이 경고하듯 조금 전보다 더 세게 세라의 목을 움켜쥐었다.
세라는 필사적으로 베로니카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세라의 주머니 속 개인 단말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단조로운 신호음이 방안에 울려 퍼졌지만, 세라는 받을 수 없었다.
계속 울리던 단말기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면서, 우연히 통신이 연결됐고, 짜증 섞인 인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세라, 들리니? 거기 있는 "쇳덩어리"들은 다 고쳤어?
여긴 죄다 고철 덩어리들이라 귀찮아 죽겠어. 이 정도면 폐기하는 게 낫지, 뭘 또 고치고 그래.
왜 대답이 없어? 도움이 필요한 거야?
이 녀석, 됐다. 또 혼자 죽어라 일하고 있구나. 나도 아직 두 구역이나 남아서 금방은 못 갈 것 같다. 일단 끊을게.
단말기 통신이 뚝 하고 끊겼다.
...
그래. 너희에게는 기계체란 게 "고철 덩어리"일 뿐이겠지.
패배한 기계체는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밟아 버리잖아.
...
세라는 혼신의 힘을 쓰며 어떻게든 숨 쉬어보려고 몸부림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설명할 필요 없어.
넌 그냥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뿐이야.
그녀는 세라의 목을 점점 더 세게 조르면서 세라의 마지막 남은 숨마저 무자비하게 앗아가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다른 기계 격투사들은 제자리에 서서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처리 모듈에는 인간의 "도움 요청"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램된 것이 없었다.
감시기 시스템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직원들의 업무 효율만 감시할 뿐, 직원들의 안전이 위협받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산소 부족으로 세라의 의식이 점점 흐려질 때, 그녀의 뒤편에서 갑작스럽게 로봇의 작동음이 들려왔다. 그건 "망치"가 내는 소리였다.
(강렬한 폭음과 함께 베로니카를 향해 돌진했다.)
꼬마 로봇은 베로니카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끝까지 온 힘을 다해 들이받으며, "주인"을 놓아달라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여러 부품을 대충 이어 붙인 듯한 꼬마 로봇을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애초에 견고하지 않았던 그 기체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꼬마 로봇의 몸부림이 효과가 있었는지, 베로니카의 아귀힘이 순간 느슨해졌다.
겨우 숨을 고른 세라가 처음 내뱉은 말은 도움 요청이 아닌, 낮게 가라앉은 외침이었다.
망... 망치야! 그만둬. 위험해!
웃기는군. 이런 "무기"로 날 상대하겠다고?
베로니카는 갑자기 긴 꼬리를 세차게 휘두르며, 꼬마 로봇을 향해 내려치려고 했다.
안 돼!
세라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틀어 베로니카의 높이 치켜든 꼬리를 막아내려 팔을 흔들었다.
쿵... 윽...
충격음과 함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세라의 눈은 초점을 잃어갔고, 축 늘어진 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그... 러지 마. 내... 친구는... 건드리지... 마.
세라는 힘겹게 도발적인 경고를 내뱉었다. 그로 인해 더 큰 위험에 처하거나,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친구?
베로니카는 계속 자신에게 달려드는 꼬마 로봇을 냉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시선을 세라에게로 돌렸다.
조금 전까지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인간 소녀가 지금은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베로니카를 당당히 응시하고 있었다.
세라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피어난 용기는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빛났다.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베로니카는 코웃음 치며 조금 전까지의 살벌한 기세를 누그러뜨렸고,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빛으로 세라를 쳐다봤다.
쿨럭쿨럭...
세라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가냘픈 목에는 붉게 물든 자줏빛 멍 자국이 선명했고,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라는 자신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망치"에게 달려가 충돌로 인한 손상은 없는지 살폈다.
망치야, 어디 다친 데는 없지? 괜찮아. 겉에 칠이 조금 벗겨진 것뿐이야. 돌아가면 내가 다시 손봐줄게.
(표시등이 천천히 깜빡였다.)
내 앞에서 기계체한테 그런 표정을 지을 필요 없어.
너도 결국 저 관객석의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어, 기계를 그저 "도구"로 여길 뿐이잖아.
기계체들은 격투장에서 전력을 다해 싸우면서 끝까지 살아남으려 해. 그러다 다음 라운드로 가면 똑같은 과정을 또 반복하지.
엔지니어라... 넌 그저 경기가 끝날 때마다 우리를 고쳐서 다시 너희 인간들의 구경거리로 만들어주는 역할이잖아.
넌 우리가 격투장에서 산산조각 나는 걸 바라지. 그래야만 너희가 짜릿함을 느낄 테니까.
(속도를 높여 베로니카를 향해 다시 돌진하려 했다.)
됐어. 그만, 그만해. 망치야!
꼬마 로봇은 베로니카에 대해 여전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며 표시등을 미친 듯이 깜박거렸다. 하지만 세라는 그것을 계속 진정시키려 했다.
세라와 베로니카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자, 순간적으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곧, 감시기 시스템의 알림이 그 순간을 깨뜨렸다.
세라, 초급 엔지니어, 이번 정비 작업을 완료하지 못했습니다. 남은 작업 XXX 기능 강화형, 코드네임 "베로니카", 수량 1대입니다.
이번 시간 초과 행위는 <에버렛 그룹 직원 수칙> 제10조, 규정 시간 내 작업 완료 및 품질 기준을 준수한다는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이에 따라 오늘 근무 시간은 전부 차감되었습니다.
그리고 본 위반 행위는 보고되었습니다.
세라는 평소처럼 시스템에 따지지 않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삐죽일 뿐이었다.
알겠어. 그렇게 해.
더 깎아라. 더 깎아. 어차피 안 되면, 그냥 포기해 버릴 거니까, 흥!
(주인의 바짓가랑이에 몸을 비벼댔다.)
알았어. 알았어. 농담한 거야! 앞으로도 계속 포인트 모아서, 나중에 너한테 발성 모듈 달아줄게!
세라는 아무렇지 않게 "망치"한테서 부품을 떼어 낸 뒤, 작업복에 문질러 닦았다.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꼬마 로봇의 기체에 다시 끼워 넣었다.
베로니카는 세라의 작업복이 낡고 오일 얼룩으로 뒤덮여 원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발견했다.
격투장의 깔끔하고 세련된 차림의 관객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세라는 꼬마 로봇을 수리하는 데 완전히 몰입해 주변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
그때, 조금 전까지 바닥에 방치되어 있던 단말기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어? 내 단말기 어디 갔지?
세라가 고개를 돌렸을 때, 단말기가 얼굴 바로 앞에 있어 그대로 부딪힐 뻔했다.
베로니카가 울리는 단말기를 세라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세라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베로니카가 단말기로 머리를 때리려는 게 아니라, 건네주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
고, 고마워.
세라는 방금 다쳐 아직 피가 마르지도 않은 손을 뻗어 눈앞의 기계체에게서 단말기를 건네받았다.
스읍...
단말기 모서리에 상처가 스치자, 피가 다시 흘러내렸다. 세라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시며 황급히 손을 감싸 쥐었다.
...
인간 소녀와 기계체는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둘 사이의 공기는 잠시 어색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때, 세라가 손에 들고 있던 단말기가 진동하며 침묵을 깨뜨렸다. 세라는 서둘러 연결 버튼을 눌렀고, 단말기에서 로코 아저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야... 야?! 세라야,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왜 계속 답장이 없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감시관", 그놈이 왜 오는 거야? 벌써 네 쪽으로 가고 있어!
엥?! 그, 그럴 리가요!
세라는 단말기 통신이 끊기도 전에, 복도 반대편에서 울려 퍼지는 "감시관"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다급히 베로니카의 방에서 나온 세라는 복도에서 정자세로 서 있었다. "감시관" 앞에서 취해야 하는 이 자세는 이제 너무도 익숙한 규칙이 되어있었다.
"감시관"이 세라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계체는 고개를 한껏 들어도 그 얼굴을 다 확인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고,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엄청났다.
그 순간 세라는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감시관"이 자기 얼굴을 스캔하도록 가만히 있었다. 스캔하는 동안 미세한 표정까지 분석된다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잠시 후 시각 센서가 스캔을 끝내자, "감시관"의 발성 모듈에서 감정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라 엔지니어, 작업 시간을 초과한 이유를 보고하라.
죄송합니다. 제가 움직임이 느렸습니다. 다... 다음번에는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지금 네 대답은 평소와 다르다.
데이터 기록에 따르면, 지금까지 54번의 작업 시간 초과 행위가 있었다. 그중 28번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17번은 감시 시스템에 부적절한 반응을 보였다.
다시 묻겠다. 보고하지 않은 사항이 있나? 무언가 숨긴 사실이 발견되면, 이번 달 근무 시간이 전부 삭감된다.
정말 없어요... 진짜예요! 믿어주세요!
세라는 목소리에 최대한 진정성을 담았다. 그리고 의심받지 않기 위해 결백한 표정도 지어 보였다.
세라는 조금 전 베로니카에게 다친 손을 뒤로 감춘 채, 꼿꼿이 서 있었다.
"감시관"은 세라의 미세한 표정과 음성을 분석했다. 하지만 "거짓"을 암시하는 어떤 생리적 반응도 발견하지 못했다.
"감시관"은 마침내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검증"을 마친 뒤, 이 구역을 떠났다.
거대한 기계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세라는 안도하며 깊은숨을 내쉰 뒤, 곧바로 베로니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
너 봐주러 온 거 맞아.
에이,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 어차피 오늘 근무 시간이 다 차감돼서, 난 이제 상관없어.
기체 손상이 심각해. 지금 수리하지 않으면, 다음 경기에서 승률이 떨어질 거야.
세라는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려는 듯, 렌치를 흔들며 말했다.
...
그 더러운 손으로 내 기체에 손대지 마.
베로니카는 무심한 태도로 세라에게 더러운 천을 던진 뒤, 고개를 돌려 그녀를 외면했다.
방 안의 공기는 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
하지만 베로니카가 입을 열면서, 그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에 해.
아... 그래!
베로니카의 차가운 뒷모습만 보고 있었지만, 세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서 조금은 누그러진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뒤, 하루의 모든 작업을 끝낸 소녀 엔지니어는 콧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직원 휴식 구역으로 향했다.
(주인의 뒤를 따라가며, 표시등이 느리게 깜빡였다.)
괜찮다니까, 아직도 화난 거야?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주인을 따라가지 않았다.)
왜 또 삐졌어? 진짜 괜찮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었어.
오늘 그 "베로니카"라는 기계체는 정말 날 해치려던 게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만나면, 먼저 다가가서 친해져야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