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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2-24 EX-단 하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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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o-3, 각성 완료되었습니다!

!!!

대장님! 그리고...

방금 "대장님"이라고 했어?

……

로이드는 흰 가운을 입은 스태프들이 실험대 주변에 둘러선 것을 보고 나서야, 깨어나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응축액이 뚝뚝 떨어졌다. 로이드는 입을 열어 변명하려 했지만, 순식간에 보조 도구가 그를 실험대에 고정했다.

Mako-3의 기억 데이터 삭제 작업이 불완전합니다! 심층 삭제를 요청합니다! 필요할 경우...

놔!

중상을 입은 구조체의 힘으로는 로봇 팔을 이길 수 없었다. 로이드는 꼼짝없이 눌려 있었고, 곧 누군가가 그의 목을 비틀어 척추에서 데이터 칩을 꺼냈다.

시야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세상의 전원이 꺼진 듯했다.

로이드의 데이터 난류가 어두운 물속에서 떠다녔고, 모든 몸부림은 그 속에 묻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데이터를 찢어내고, 로이드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빼앗아 허무로 만들려 했다.

꺼져! 난 Mako-3 같은 거 절대 안 해! 너희들의 이기적인 실험에 도움이 되고 싶지 않아! 로프라도스 지역 전체가 너희들의 실험실이잖아!

로이드가 분노에 차서 이렇게 소리친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데이터 삭제가 시작되자, 로이드는 인형의 팔다리가 찢어지면서 솜이 날리듯이, 몸 일부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그레이 샤크 화력 소대"의 데이터가 사라지고 있었다.

안돼, 안돼! 삭제하지 마! 난 대장을... Mako-1과 Mako-2를 반드시 기억해야 해.

로이드는 다시 그레이 샤크 화력 소대를 떠올렸다. 그들은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닻과 같은 존재였다.

안 돼.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난 그레이 샤크로 돌아가고 싶어. 혼자서 영웅이 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잘 살고 싶어.

Mako-3을 계속하라고 해도 괜찮아.

하지만 Mako-1과 Mako-2는 이미 산산조각 나 로이드의 손에서 흩어졌다. 의식의 바다는 완전히 파괴되어 데이터 칩조차 보존되지 못했다.

로이드는 결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안 돼. 돌아갈 수 없어. 그들은 완전히 죽었어. 새로운 "그레이 샤크 화력 소대"를 만든다 해도, 그건 더 이상 예전 그 소대가 아니야.

로이드는 비로소 현실이 보였다. 가족과 친구를 모두 잃었다. 갑판에서 대기 중이었던 다른 구조체 동료들도 오늘의 실패로 인해 함께 의심받아 삭제당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로이드를 지지해 줄 이도 없고, "로이드"도 발각되어 기억 데이터가 심층 삭제될 것이다.

그럼, 나에게 남은 건 뭐지?

로이드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Mako-2의 부서진 어깨 갑옷일까?

데이터는 표류하고 혼란스러웠으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계속해서 뜯겨 나갔다. 로이드는 자신의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곧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삭제될 것만 같았다.

로이드는 결국 이성을 잃고, 울부짖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로이드야. 제발 나를 죽이지 마.

"로이드"의 데이터는 심층 삭제되기보다는 해체당한 것에 가까웠다.

로이드의 사지, 내장, 감정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버린 것 같았다. 분노에 찬 로이드, 슬픔에 잠긴 로이드, 겁에 질린 로이드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오직 로이드만이 그 몸에 남지 않았다.

다시 각성합니다!

강렬한 빛이 다시 시각 모듈로 투사되었다. 그는 하얀빛 속에서 멍하니 흔들렸다.

로이드, 나 보고 질문에 대답해. 넌 누구고, 지금 어디에 있지?

로이드는 죽고 싶었지만, 몸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저는 그레이 샤크 화력 소대의 Mako-3입니다. 현재 공중 정원에서 정기 점검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문제없어 보입니다. 데이터 모니터링 결과는 어떻죠?

다른 연구원이 손을 들어 이상 없음을 알렸다.

데이터 모니터링은 이상 없어요.

휴! 심층 삭제가 성공해서 다행이네요. 진짜로 문제가 있는 줄 알았어요.

……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못 알아들으면 됐어. 네 정기 점검은 끝났으니 이제 내려가. 기다리는 이가 많아.

알겠습니다.

"로이드"는 사라졌다.

Mako-3는 다시 그레이 샤크 화력 소대로 돌아왔다. 폐기됐던 Mako-1과 Mako-2는 새로운 구조체들이 그 코드네임을 이어받았다.

심층 삭제를 받은 후의 Mako-3는 전처럼 조용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Mako-3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새로운" 동료 둘은 공중 정원의 냉동고에서 해동되어 구조체로 개조된 것으로 판단했다. 다들 그렇게 왔으니 특별한 것도 없었다.

그레이 샤크 화력 소대는 평소처럼 임무를 수행했다. 수송기를 타고 각지로 이동하며 작전을 수행하고, 침식체와 싸우며, 퍼니싱과 지구를 두고 전투를 벌였다.

거창했던 비전도 녹슬어서 회색빛이 될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날, 그레이 샤크 화력 소대는 로프라도스 내부 폐허로 파견됐다. 하지만 평범한 정찰 임무 후, Mako-3는 수송기에 탑승하여 철수하는 데 실패했다.

Mako-3가 실종되었다.

신호 출처는 Mako-3가 여전히 로프라도스 시내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래서 공중 정원의 몬자노 부인은 엘리너 부사관을 파견해, Mako-1과 Mako-2를 이끌고 실종된 대원을 회수하도록 했다.

이 임무의 결말은 Mako-1과 Mako-2가 짙은 퍼니싱 속에서 희생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엘리너 부사관은 Mako-3의 데이터 칩을 가져왔다. 그리고 Mako-3에게서 의식 회수 기술의 성공 가능성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엘리너의 "제안"에 몬자노 부인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가능성을 움켜쥐는 사람이었다.

Mako-3에 남아있는 전투 데이터는 우선 보관해 두죠.

몬자노 부인은 엘리너에게서 칩을 받아 중추의 슬롯에 삽입했다.

그 안에는 수천 명의 "지원자"들이 전사한 후 남긴 불완전한 기억과 기체 전투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었다.

공중 정원에 대한 그리움, 지구 탈환을 향한 동경 그리고 하찮은 희로애락까지... 모두 그 작은 회로판에 압축되어 있었다.

Mako-3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고,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던 "로이드"도 함께 중추 속에 잠들었다.

정말로 잠들었을까?

중추

의식 회수 실험 일지. 번호 128. 새 기체 분배가 완료되었고, 데이터 전이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각성도 성공하였습니다.

Mako-3, 환영합니다.

……

여기는 어딥니까?

중추

공중 정원 의식 회수 실험실입니다.

Mako-3는 수직으로 세워진 수면 캡슐에서 나와, 척추 위에 있는 데이터 칩을 만져보았다.

맞습니다. 저는 Mako-3입니다.

Mako-3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몇 스태프들이 인간 캡슐, 배양 접시, 구조체 수면 캡슐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언제든 새로운 구조체가 깨어날 수 있었지만, 이 평범한 구석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데이터를 이 기체에 전송하고, 즉시 수행하겠습니다.

Mako-3이 요청하자, 중추는 묵인했다. 그것은 데이터 칩의 모든 데이터를 기체 내부로 전송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다른 기체로 이동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Mako-3는 이제 이 몸만 남게 되었다.

중추

데이터 전이가 완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소대로 복귀하면 됩니까? 여전히 그레이 샤크 소대에서 Mako-3으로 활동하는 겁니까?

중추

네. 그렇습니다. Mako-1과 Mako-2의 코드네임에 맞는 새 기체 매칭이 완료되었습니다.

다시 지원자 두 명을 해동해 개조하고, 기억 데이터를 지운 다음, 새 Mako 대원으로 채우는 겁니까? 이렇게 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중추

……

이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Mako-3는 척추 위의 쓸모없는 데이터 칩을 뽑아 중추에 일부러 다시 꽂았다. 모든 데이터는 육체로 전이되었지만, 그는 칩 안에 아직 유용한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후, Mako-3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곳은 구조체 화력 소대 정비 갑판으로 가는 직통 엘리베이터였다.

Mako-3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정기 점검을 막 마친 몇몇 구조체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Mako-3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모두 새로운 임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Mako-3가 말했다.

말하는 걸 깜빡할 뻔했습니다.

중추

……

중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를 지나가는 스태프들도 듣지 못했다. Mako-3의 말은 회색 깃털처럼, 차가운 실험실 바닥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개미처럼 이루어진 103번의 탐사 속에서 [로이드]는 이미 확산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Mako-3는 갑자기 단정한 군인 자세를 풀고 고개 숙였다. 그런 뒤 그는 실험실에 있는 이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엘리베이터 안의 다른 구조체들은 Mako-3가 반항의 시작을 선언했음을 깨닫고, 일제히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것은 제가 아직 인간이었을 때, 퍼니싱 폭발 이전 몰락해 가던 저희 가문의 예절입니다. 황금시대가 쇠퇴하던 그 시절, 제 가문도 몰락했기에 이런 예절을 여러 번 행했습니다.

이건 바로 애도 예절입니다.

중추

경고합니다! 경고합니다!

의식 회수 실험 일지. 번호 129. 분배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0호 실험체의 인격에서 침식 특성이 나타났습니다!

퍼니싱 경고입니다!

실험실의 검역 프로그램이 경보음을 울리며 안정적이던 초록 불빛이 붉게 물들었다. 퍼니싱의 파도가 지나가자 붉은 경고등이 일제히 켜졌다.

Mako-3는 그의 "신념"을 따르는 구조체들과 함께 정비 갑판에 도착했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수송기로 향했고 손을 들자, 구조체들이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발성 장치에서는 낮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선두에 선 Mako-3의 가슴속에 많은 말이 맺혀있었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쳐본 적이 없었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나는 로이드다!

나는 죽지 않았고,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외친 로이드의 눈빛에 흔들림이 없어졌다.

나는 로이드다! 나는 죽지 않았고,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공중 정원을 떠날 것이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실험장을 벗어나, 진정한 새로운 세계로 갈 것이다! 새로운 세계는 존재한다!!

이 외침은 모두가 오랜 시간 간직해 온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을 일깨웠다.

그 꿈같은 비전은 로이드의 심층 삭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현장의 구조체들은 수많은 코드네임 계승을 거친 새로운 영혼들이었지만, 여전히 자유와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을 전하고 있었다.

모든 이의 기억 데이터가 삭제되었다. 더 이상 출신도, 돌아갈 곳도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모두가 로이드다!

구조체들은 망설이며 반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그의 격려에 한 걸음, 두 걸음 더 나아갔다.

옛 세상의 경계는 로프라도스 교외 지역에 있다! 내가 직접 봤다. 밖에 고농도 퍼니싱 따위는 없었다! 우리는 공중 정원의 실험 품으로 모든 임무는 우리를 실험한 것에 불과했다!

그들은 수많은 주민을 냉동시켰다. "구조체 소모품" 하나가 시험 구역에서 손실되면, 또 다른 인간을 해동해 구조체로 개조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메꾼 뒤 또다시 실험장으로 내던졌다!

핏빛 옛 세상은 공중 정원의 구조체들로 쌓아 올린 거대한 장벽이다!

모든 로이드여, 황무지를 넘어 장벽을 넘어서자! 그리고 다 함께 새로운 세계로 가자!

"로이드"들은 성큼성큼 걸어가다가 수송기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동력 엔진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서둘러! 로이드들은 이미 돌아갈 길이 없어! 살아남으려면 끝까지 "반역"해야 해! 이 저주받은 공중 정원과 완전히 결별하자! 서둘러!

로이드가 실험실 중추에 남긴 데이터 칩이 퍼니싱을 확산시켰고, 정보의 물결이 수면 캡슐과 배양기 속 육체들로 밀려들어 갔다. 그러자 그들은 경련하며 몸부림치다가, 결국 고치를 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로봇의 회로마저 강한 욕망에 침식되었고, 이로 따라 로이드의 의지를 가지고 뛰기 시작했다. 분노에 찬 로이드, 슬픔에 잠긴 로이드, 겁에 질린 로이드가 모두 한데 모였다.

의식 회수 실험 일지. 번호 999. 나는... 로이드다!

스태프, 주민, 관광객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산 로렌초의 타락한 오락 시설은 로이드들에게 짓밟혀 진흙탕으로 변해버렸다.

갑판 위의 로이드들은 수송기를 향해 달렸다. 그들은 힘과 갑판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권리를 손에 넣었다.

새로운 세계로 가자! 길은 단 하나뿐이다!

모든 로이드는 즉시 로프라도스로 향하라! 위치는 N 36°9', W115°3'이다!

로이드는 마음속에 새겨둔 그 좌표를 외쳤다. 103번을 개미처럼 무리 지어 탐색하면서 찾아낸 위치였다.

구형의 개미군단이 불길을 뛰어넘었고, 바깥층 벌레들은 불에 타 재가 되었다. 그 재는 무덤처럼 쌓여 불길 위에 회색길을 만들어냈다.

길은 단 하나뿐이다!

길은 단 하나뿐이다!!!

로이드는 수송기 조종실로 달려가 능숙하게 이륙 준비를 시작했다. 그의 의식의 바다에 유일한 탈출 경로가 빛나는 선처럼 나타났다.

먼저, 공중 정원을 떠나야 해. 감옥 같은 우주를 벗어나, 지구로 가야 한다.

그다음으로 로프라도스로 향해 그 실험장의 위장을 완전히 벗겨내야 해.

그리고 마지막은 새로운 세계로 간다.

로이드는 새로운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퍼니싱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일까? 아니면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까?

다른 인간들이나 다른 구조체들이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새로운 세계를 재건하고 있을까? 아니면 공중 정원처럼 비인간적인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을까?

그럴 리 없어.

부정적인 생각이 스치자, 로이드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수송기를 바로 이륙시켰다. 새로운 세계를 그런 의심으로 더럽힐 수는 없었다.

어느새 새로운 세계의 영웅은 살짝 집착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사소한 일이었다.

로이드는 함께 이륙한 모든 수송기에 명령을 내렸다.

모든 로이드는 공중 정원을 탈출하라!

가속 궤도가 빛나며, 자유를 찾은 수송기들이 고속으로 우주를 향해 날아갔다.

이제 정상 범위 내의 흔들림과...

웅.

?

미세한 흔들림과 마찰음이 동시에 나타났다. 지난 103번의 비행과는 완전히 달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전 103번의 흔들림은 구시대의 홀로그래픽 극장에서 사람들이 사전 설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롤러코스터 같은 흔들림과 온도 변화를 느끼는 것처럼, 주파수부터 진폭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했다.

…………

진실은 죽은 물 아래에 숨겨져 있으면서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미세했다.

로이드는 진작에 알아챘어야 했다.

잘못됐어! 으윽!

로이드의 경고 통신은 발송되지 못했다. 그가 깨달은 순간,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의 수송기는 무언가와 "충돌"했다.

통신 속 다른 로이드들도 잇따라 재앙이 닥친 절망의 소리를 전했다.

안 돼!!

수송기의 엄청난 속도로 인해 앞부분이 불꽃으로 찢기고, 금속은 고온에 녹아 갈라졌다. 로이드는 몸을 웅크린 채로 신속하게 방어 자세를 취하며 선실에서 굴러 나왔다.

로이드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여기서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라고 생각했다.

바깥은 광활한 우주라, 이런 상태로 내던져진다면, 그는 곧 우스꽝스러운 우주 쓰레기가 될 것이다. 로이드들은 곧 이 우주를 무덤으로 채우고, 진공 속에 십자가처럼 꽂히게 될 거였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은 의식의 바다에서 한순간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로이드는 단단한 대지 위에 굴러떨어졌다.

광풍이 휘몰아치고, 모래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강한 햇빛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다.

……

자갈이 로이드의 생체공학 피부 위에 너무나 익숙한 찰과상을 만들어냈다. 그 익숙함은 슬픔을 자아낼 정도였다.

로이드가 눈을 떴다.

우주의 별들이나 로이드의 우주 쓰레기는 없었다.

공중 정원도 없었다.

…………

추락한 수송기는 불길에 새까만 뼈대만 남아 있었다. 모래바람 속에 무릎을 꿇은 로이드는 손목의 위치 추적기가 일련의 코드를 깜빡이다가 한 좌표에 고정되는 것을 보았다.

N 36°9', W115°3'

로이드의 옆에는 큰 구멍이 뚫린 "유리 돔"이 있었고, 그 안에는 공중 정원의 구조체 화력 소대 정비 갑판이 있었다.

거대한 "유리 돔" 위의 홀로그램 영상은 여전히 숨을 쉬는 듯, 가끔 미친 듯이 깜빡이면서 별하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이드가 "공중 정원"에서 보았던 우주 경관과 완전히 똑같았다.

공중 정원?

로이드는 수송기의 검은 뼈대에 남아 있는 표식을 읽었다.

"에덴 Ⅲ형"...

<size=42>로이드의 "옛 세상"이 연결되었다.</size>

<size=42>로이드가 있던 "공중 정원"은 가짜였다. 그건 몬자노 부인이 주도한 완전한 사기극이었다.</size>

"에덴 Ⅲ형"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우주를 떠돌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상에 갇혀 있는 그리고 로프라도스 안에 갇힌 지상 실험 기지에 불과했다.

전체 지하 실험실, 산 로렌초 오락 시설, 공중 정원 거주지, 정비 구역,

로프라도스 옛터 그리고 로프라도스 교외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돔 안에 층층이 쌓인 옛 세상이었다.

그것들은 아래에서 위로, 안에서 밖으로 로이드의 영혼을 가두고 있으면서 그를 오래도록 침울하게 만들었다.

하... 하하...

현실을 깨달은 로이드는 몸을 일으킨 후, 앞으로 비틀거리며 달려갔다.

로이드와 함께 "천국"에서 떨어진 다른 로이드들도 그의 뒤를 따라 로프라도스 교외의 황무지를 달렸다.

그들은 중상을 입고는 연이어 쓰러져 곧 모래바람에 묻히고 말았다. 강한 바람이 불어오자, 수년 전 마른 뼈가 드러났다가 새로운 로이드의 잔해를 덮어 버렸다.

그들은 낮부터 밤까지, 이 모래언덕에서 다른 모래언덕으로, 이 황무지에서 다른 황무지로 달렸다.

그들은 관절뿐만 아니라 발성 장치까지 모래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들은 두 번째 새벽이 올 때까지 계속 달렸다.

선두에서 달리던 로이드는 조금씩 속도를 늦추더니, 결국 제자리에 멈춰 섰다.

[로이드]

로이드, 왜 계속 달리지 않는 거야?

로이드를 따르는 많은 로이드들이 그에게 계속 달리라고, 새로운 세계로 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로이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눈물이 얼굴을 가득 적셨다. 이렇게 울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로이드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로이드를 인도할 구름 기둥이나 불기둥은 없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홍해를 가르는 이도 없었다. 몸부림친 후에도, Mako-1, Mako-2, 다른 로이드들도 없이 세상에 그 혼자만 외롭게 남아 있었다.

미안해.

로이드는 여전히 많은 로이드들이 뒤에 있다고 상상하며, 허공에 대답했다.

나도 계속 달리고 싶어. 하지만 더 이상 길이 없어.

로이드는 허공을 바라보며 문득 오래전, "로이드"라는 정체성에 무관심했던 시절, 그레이 샤크 화력 소대의 Mako-3였을 때가 떠올랐다.

로이드는 한때 막연히 자기 대장에게 물었었다.

대장님, 모래바람 끝에 무엇이 있습니까?

로이드는 모든 상상의 잔해들을 향해 깊고 깊은 절망을 담아 한마디를 내뱉었다.

절벽이었어.

로이드가 반걸음 내디딘 아래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의 절벽이 있었다.

옛 세상의 저편은 절벽이었다.

로이드는 눈물을 흘리며 또 다른 발을 내딛자, 2초간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