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2 성화의 귀결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ER12-21 새벽

>

베라는 흩어지는 연기를 보면서, 전신의 동력 엔진이 과열 직전의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러다 플랫폼 중앙에 무릎을 꿇었다.

쿨럭...

더 멀리 가야 해. 그렇지 않으면 더 나쁜 일이 발생할 거야.

베라는 무기로 기체를 지탱하며 더 멀리 가려 했다. 하지만 온몸에서 나오는 붉은 빛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기체의 구멍에서 순환액이 흘러나오면서 모든 회로가 광화 모드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베라는 자신이 더 심각한 "제어 불가"를 겪기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광경이 조금씩 흐려지고, 손은 금속 바닥을 파고들면서 섬뜩한 검은 자국을 남겼다.

안 돼. 절대...

여기서 대충 끝내지 않겠어.

해가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떠올랐다. 하지만 베라의 무릎은 휘청거렸고 다리의 엔진은 완전히 녹아버렸다.

완전히 무릎을 꿇은 순간, 베라는 그 빌어먹을 놈들의 말이 맞았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역시 그녀는 "제어 불가"를 가장 혐오했다.

그때, 의식의 바다에서 갑작스러운 고통이 밀려왔다. 어떤 성가신 사람의 표식이 연결을 계속 시도하는 것 같았다.

베라는 본능적으로 그 표식의 주인에게서 멀어지려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결... 중단... 나는...

분노의 잔불이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이다.

나는... 지금... 위험해.

재연결 중입니다. 재연결 중입니다. 계속해서 재연결 중입니다.

……

베라의 시야가 완전히 어두워졌다.

의식이 흐려지기 전, 베라는 익숙하면서도 다급한 발소리와 비틀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허리가 꽉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밧줄을 잡고 기어 오는 것 같았다.

……

????

베라, 힘드니?

!

거대한 대전으로 돌아왔을 때, 그웬니스는 베라의 팔을 받치며 그녀의 금속 몸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결국 너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구나. 네가 이 기술에 관해 물었을 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어.

넌 정말 뭘 하든 목적이 너무 뚜렷해서 걱정하게 만드는 꼬마 아가씨야.

그웬니스를 보자마자 베라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 피곤하지 않아. 이제 구조체가 됐으니, 불구덩이를 백 번 지나가도 팔에 흉터 하나 남지 않을 거야.

베라는 오랜만에 만난 그웬니스를 붙잡고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난 자발적으로 거의 첫 번째로 개조를 받았는데, 처음 모델은 그웬니스와 비슷한 보조형이었어.

그래서 모든 멍청이를 내가 다 제쳤어. 쿠로노 그룹에도 들어갔다가 나왔고... 지금은 공중 정원에서 구조체 소대를 지휘하고 있는데, 대원들이 다 내 말대로 움직여.

이제는 너와 교관님을 걱정시키지 않을 거야.

베라는 오랜 친구의 반응을 살피는 듯, 조금씩 천천히 말했다.

그웬니스는 베라의 팔을 내려놓더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랬구나. 올바른 방향은 찾았어? 너 스스로가 태우는 걸 자처한 거니?

네가 하는 일은 평생 하고 싶은 일이니?

응. 확실해.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넌 항상 그랬어. 완벽한 헌신자지만, 마음 한구석엔 항상 조금의 불만이 있었지.

하지만 천 번, 만 번 다시 해서 내가 원하는 결말을 위해서라면 너는 기꺼이 영웅주의에 "휩쓸릴" 거야.

내가 원하는 결말에 도달할 수 있을까?

도달할 수 있을 거야.

눈앞의 "해피 엔딩"을 떠올린 베라는 잠시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 눈빛이 다시 식었다.

해피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과정에서 잘못된 선택을 너무 많이 했어. 그래서 많은 걸 잃었어.

괜찮다는 말로 쉽게 넘길 수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네 인생은 "영웅주의"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고, 그 과정은 결코 죄가 아니야.

네가 만난 모든 이들이 이 문제 속에서 계속 선택을 해왔고, 그들은 네게 수많은 답을 줬어. 한 번 생각해 봐.

생각해 볼게.

뜨거운 의식의 바닷속에서 눈을 감은 베라는 파도가 자신을 지나가는 이들 곁으로 데려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웬니스, 어릴 때 짜증 나는 그 친척들을 제외하면, 첫 번째로 떠오른 건 바로 너였어.

넌 진정한 영웅이었어. 자신을 희생해 문을 막고 나 대신 침식체들과 맞서 줬잖아. 네가 없었다면 난 그날 죽었을 거야.

그래. 맞아.

교관님도 평소엔 엄격해 보이셨지만, 사실 항상 나를 "건드리면 안 되는" 녀석들에게서 벗어나게 도와주셨어. 정말 감사해.

아쉽게도 퍼니싱이 터진 후로는 들리는 소식이 없네.

교관 성격상,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야. "숨은 영웅"이란 칭호는 그분에게 더 어울려.

그다음은... "평범한 얼굴"이야. 쿠로노에 들어가기 전, 그때가 내가 겪은 가장 참혹한 전투였어. 나는 심지어 공격형인 "평범한 얼굴"에게 내 팔을 떼어줬지.

"평범한 얼굴"의 선택은 뭐였어?

"평범한 얼굴"은 날 대신해 기습해 온 침식체들을 처리해 준 뒤 죽었어.

나와 비슷하네.

그 후 난 쿠로노에 들어갔어. 말 못 하는 소녀와 "어이" 빼고는 쿠로노의 대부분과는 잘 지내지 못했지.

말 못 하는 소녀는 너무 어렸어. 제물로 바쳐진 양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분쟁의 희생양이었어.

"어이"는...

"어이"는 겁쟁이였어. 항상 도망치려 했고, 죽음조차 볼품없었어. 하지만 그녀가 "열쇠"를 빼앗아 복수했어. 그녀가 아니었으면 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베라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난 "어이"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정말 대단했어. 그래서 "겁쟁이 영웅"이라고 부르기로 했지.

그웬니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넌 아직도 별명 짓는 걸 좋아하는구나.

또 누가 있어? 그때 도망칠 때 만난 이들도 포함해서. 예를 들어, 왕 할머니는?

"장수 영웅"이야. 그 할머니와 늙은 셰퍼드는 아직도 브리이타를 귀찮게 하고 있어. 오래 사는 건 역시 좋은 건가 봐.

하하하.

둘은 웃었다. 황금시대 끝자락에 있던 어느 평범한 오후처럼, 따뜻하지 않은 햇볕 속에서 덤덤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라이어는? 라이어는 백로 소대에 들어갔잖아.

걔가 무슨 영웅이야? 그냥 "자칭 대영웅"이겠지. 완전 골칫거리야. 다행히 바네사 밑에서 일하게 됐지만 말이야.

바네사나 시몬 같은 애들은 내가 말했었잖아. 다 공중 정원의 도련님, 아가씨들이라 잘난 척이 심해서 짜증 나.

아직도 그 평가는 그대로야?

……

베라는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걔네 말이 맞았다는 걸 인정해. 그들의 실제 행동으로 내 "편견"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거든.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 파오스를 졸업한 지휘관들은 모두 진정한 영웅이야.

불순한 의도를 가진 하니프조차 단순히 영웅의 그림자만은 아니었어. 그가 살아남았다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았을 거야.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어. 난 그들의 쿠키도 먹었고, 목표도 빼앗았으니, 대신 횃불을 계속 밝힐 거야. 그 멍청한 물고기 빼고. 걔는 짜증 나서 예외야.

그웬니스는 턱을 괴고 베라의 평가를 진지하게 듣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을 던졌다.

또 다른 이들도 있잖아. 예를 들어 두 명의 "로이드"와 수많은 "헤인스"들은?

그들은 이 명제에 어떤 답을 내놓았지?

…………

베라는 또 한 번 짧은 침묵에 빠졌다.

어떤 로이드든, 난 유감스럽다고 생각해.

로이드들은 타락하지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도 않았어. 아니. 그냥 선택한 적이 없었어. 영웅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죽었을 뿐인데, 그 누구도 영웅답게 죽지 못했지.

로이드들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게,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어.

그리고 헤인스는... 하하... 그냥 자만에 빠진 늙은이였어. 젊은 학생들보다도 못해.

헤인스는 앞서 말한 그 누구와도 비교할 가치가 없어. 그리고 다음 "자신"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가장 마땅한 결말을 맞이했어.

대전에 있는 베라는 손을 저으며 헤인스를 피와 눈물이 섞인 영웅주의 토론에서 제외했다. 그녀는 늘 그런 존재에게 관심을 두는 걸 귀찮아했다.

이제 다 지나간 일이야.

맞아. 지나간 일이야.

다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인 그웬니스는 베라를 살짝 일으켰다.

꿈같이 따뜻했던 대화가 갑자기 끝이 났다.

여기까지 하자.

?

미안해. 그때 너만 남겨두고, 우리 모두 먼저 떠나서.

우리가 너에게 마지막 고통을 짊어지게 했어.

하지만 이제 보니, 어쩌면 고통만은 아니었던 것 같네.

그웬니스는 베라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베라, 우리는 너에게 모든 것을 맡긴 걸 후회하지 않아. 그리고 너와 함께 마지막 끝 너머가 어떨지 보고 싶어.

네가 무엇을 선택하든, 지금 당장 해봐. 그 지휘관처럼 말이야. 뭘 선택하든 횃불을 들고 걸어가.

밖은 너희들의 시대야.

……

베라는 의식의 바다 위에 서서 천천히 그웬니스의 손을 놓았다.

그 모습은 마치 어떤 집념을 놓아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내가 쉽게 나를 부술까 봐 걱정되지 않아?

이젠 아니야. 네 칼집이 무수히 너를 감싸고 소중히 여기며, 너를 태우는 모든 걸 꺼버릴 거야.

네 날카로움은 어떤 비극 속에서도 절대 꺾이지 않을 거야.

확신에 찬 그웬니스는 인정의 표시를 했다.

사랑하는 발키리, 이제 일어나.

"사랑하는 발키리, 이제 일어나."

의식의 바다를 흐르던 급류가 잠시 멈췄다가 거세게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모든 생각들이 현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베라

…………

힘에 이성을 빼앗긴 구조체가 깨어났다.

가슴속 붉은빛은 베라의 폭주하는 힘이었고, 베라는 주먹을 높이 들어 그 모든 것을 찢어발기려 했다.

베라를 평생 따라다니던 "재앙", "제어 불가", "반작용" 같은 모든 저주가 동시에 발동된 것 같았다.

머리를 깊이 숙인 베라가 지휘관에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발목과 옆구리 상처에서 고통이 계속 퍼져 나오고 있는 지휘관은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긴 밤 동안 줄다리기 같은 전투는 이제야 새벽을 맞이했지만, 마지막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휘관은 연결, 연결 그리고 또 한 번 연결을 시도했다.

지휘관은 거듭되는 연결 속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끝없는 유랑이 이런 결과로 끝나선 안 돼.

지휘관은 마지막 연결을 시도했다. 부서진 과거를 이어 붙이려는 듯, 둘 사이의 끊어진 밧줄을 필사적으로 움켜쥐는 지휘관의 모습은 비탄에 가까웠다.

베라

……

베라의 송곳니가 마침내 지휘관의 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를 꽉 물자, 순환액과 피가 뒤섞여 흘러내렸다.

그때 연결에 성공했다.

베라

…………

베라는 눈앞의 처참한 지휘관을 보고 본능적으로 비웃으려 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베라

내게서 멀리 떨어지라고 했잖아.

내가 미안하다고 할 때까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지휘관은 익숙한 비아냥을 듣자, 큰 바위가 내려앉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베라

이런 상황이 됐는데도 그럴듯한 말만 하고 있네. 통제도 안 되는 구조체를 굳이 보존할 이유는 없잖아?

베라의 목소리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베라

진작 밧줄을 잘랐다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잖아.

지휘관은 손을 뻗어 베라의 입가를 어루만졌다. 베라의 입가에서 흐르는 피가 상처 입은 손을 타고 천천히 흘렀다.

하지만 지휘관은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베라의 얼굴을 감쌌다.

베라

여러 가지 의미의 희미한 불씨가 광야에서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어떤 비바람도 이를 끌 수 없었다.

"더 이상 적이 아니고, 더 이상 대립하지 않아."

"모든 편견과 오해를 내려놓고, 평범한 전우처럼 포옹하자."

그 말을 듣자마자 강렬한 감정이 폭발한 베라는 갑자기 지휘관의 손목을 꽉 쥐었다.

베라

너 기억해 냈구나. 전부 다 기억난 거야?

베라는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눈가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새벽빛이 상처투성이인 둘에게 쏟아졌다. 그 빛은 베라의 뺨에 흐른 눈물을 비추며 지휘관의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지휘관은 그웬니스보다 더 약한 힘으로 베라를 토닥였다.

베라

그건... 당연하지!

지휘관이 단말기를 가리키자, 케르베로스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아이콘들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베라

……

베라는 단말기를 응시하다가 지휘관을 바라봤다. 그러다 몇 초가 지나고 베라가 눈을 감자, 억지로 참으려던 눈물이 모두 흘러내렸다.

베라

좋아. 그럼... 오랜만에 솔직하게 한마디 할게.

베라는 지휘관의 손에 기대며 오래전 지휘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넌 다른 이를 한번 믿어보고, 의지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베라

네가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