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2 성화의 귀결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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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2-20 좋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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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전투를 앞둔 베라는 자신이 이 기체를 처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변경했을 때를 떠올렸다.

주의 사항을 579개나 말했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거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요. 가슴에 있는 그 장치, 일단 "안전핀"이라고 부를게요. 가능하면 뽑지 않는 게 좋아요.

뽑으면 어떻게 되는데?

"안전핀"은 이 기체의 마지막 제한 장치예요. 평소에도 제어하기 힘든 힘이 한순간에 전부 "확" 터져 나올 거예요!

절대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실 거예요. 심지어 최상도 기체가 과열되거나 의식의 바다가 끓어올라 죽게 될 거예요.

그거보다 더 나쁜 경우도 있어?

"하운드",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은 [제어 불가] 상태예요. 그 상태가 되면 침식체보다도 더 위험한 존재가 되어, 적과 아군 모두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게 될 거예요.

그 후, 과열되어 죽기 직전에 쿠로노가 당신을 구출할 거예요. 하지만 깨어났을 때,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파괴했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될 거예요.

그렇게 과장할 것까지는 없잖아.

베라는 손을 휘저으며 걸어갔다.

난 동료도, 가족도, 친구도 없어. 그러니까 그냥 유랑민이 적은 곳에 배치해 줘.

베라, 잠깐만요!

쿠로노 스태프가 베라를 쫓아 나왔다.

지난번 특수 행동 13조 임무의 진실을 우리도 알고 있어요. 윗선의 목적은 반역자 제거와 동시에 당신을 시험하는 것이었다고요.

"어이"랑 말 못 하는 소녀의 일을 다 알고 있었구나.

막을 수가 없었어요.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전 당신이 그 임무에서 도망치길 바랐어요. 그런데 결국 또 혼자 돌아오셨네요.

이번 테스트에서도 살아남으시고... 이제 당신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표준이 되었어요. 당신마저 떠나버리면, 우리는 나아갈 방향을 잃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로 "안전핀"을 뽑지 마세요. 이 기체의 테스트 기간만 무사히 통과하면, 다시 괴려 기체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

아니. 너희와 함께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이제 알았어.

나한텐 적밖에 없으니까.

그날 베라는 테스트를 통과한 유일한 구조체였다. 그런 그녀가 쿠로노의 요새를 떠나 특수 테스트 재료를 인근 기지로 운반하는 간단한 임무를 맡았다.

그날 날씨는 좋지 않았다. 하늘은 흐리고 누런빛을 띠어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아, 이 기체의 이름을 지어줘야겠네. 계속 번호로 부를 순 없으니까.

"괴려" 다음은 뭐가 좋으려나... "비요"가 괜찮으려나?

베라는 테스트 재료를 받은 뒤 보육 구역 건물 옥상에 자리 잡았다. 구조체의 시각 모듈을 통해 그녀는 근처에서 실전 시뮬레이션 훈련 중인 젊은이들을 발견했다.

나 때랑 비슷하네? 하지만 우리는 졸업하고 전 세계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에 휘말렸고, 얘네는 졸업하면 침식체만 상대하게 되겠네.

하, 모든 인간을 위해 싸운다니, 좀 고상해졌네.

베라는 빨강 팀과 파랑 팀의 대결을 충분히 보고 난 후, 짐을 챙겨 복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위기가 시작됐다. 갑자기 보육 구역에서 경보음이 울리더니 파오스 학생들마저 즉각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베라는 멍한 표정의 한 학생이 엄폐물에서 튀어나와 침식체를 처치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학생은 곧장 보육 구역 근처로 달려가, 본능적으로 행인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죽고 싶은 건가?

베라는 그 학생의 위험한 행동을 지켜볼 수만 없어 즉시 아래로 내려갔다. 침식체 몇 개체를 처리하여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는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조심해!!"

쓰이익!

…………

베라는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려 침식체에 맞서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침식체가 그 학생의 연약한 몸을 흉하게 찢었다. 그 참혹한 상태를 본 누구라도 즉사했겠다고 판단할 정도였다.

미쳤어? 멍청이야!!

베라는 상처투성이가 된 학생을 안아 들었다.

찬바람과 침식체의 비명이 뒤섞인 혼란 속에서 베라는 과거의 자신을 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과거의 베라도 마찬가지였다. 사관학교 동기들과 함께 "짐승"이 되느니 차라리 맞서 싸우기를 선택했다.

헤인스의 행동이 의심스러워지자 대담하게 접근해 정보를 얻었다.

구조체 개조의 위험성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발적으로 서명했다.

그때 베라의 생각은 단순했다. 부당함에는 항의했고, 억압엔 맞섰으며, 위험이 닥치면 가장 먼저 나섰다. 영웅처럼 용기만 낸다면 끝없는 보상이 따라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 무엇이었을까?

베라는 품 안의 학생과 피 흐르는 상처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반복되는 "영웅의 비극"을 목격했다.

…………

베라는 결심했다.

이 결심 덕분에 베라는 잠시나마 적만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됐다.

처음엔 베라도 관망했다. 사람들은 항상 교훈을 알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실망하게 한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온몸이 붕대로 감긴 학생에게 사과를 깎아주었다.

"미래의 대 지휘관"은 옆구리 상처에 귀중한 테스트 재료를 지닌 채, 지상의 잔혹한 현실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베라의 뒤를 따랐다.

둘은 지상에서 도망치는 여정을 함께했고, 그 프롤로그 같은 이야기는 베라가 밧줄을 끊으며 끝이 났다.

그 후 베라의 이야기는 새로운 챕터로 넘어갔고, 그 챕터의 이름은 "케르베로스"였다.

베라가 이끄는 구조체 소대는 묘한 익숙함과 안정감을 주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21호와 녹티스는 늘 그녀를 따랐다.

새로운 장에서 "자아"의 범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확장되었고, 베라의 임무도 "혼자 살아남는 것"에서 "모두 함께 살아남는 것"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새로운 장의 페이지는 빠르게 넘어가 아틀란티스에 도착했다.

그 "일방적인 재회"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된 학생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베라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라는 "윤회"가 시작되었음을, 지휘관이 영웅주의에 휘말린 또 다른 인형이 되어가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 그녀의 축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지휘관이 베라의 축복을 "낭비"한 것 같았다.

그래서 베라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언젠가 네가 의회와 쿠로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이 너를 상대로 벌인 모든 일들의 실제 의도를 이해하게 될 거야.

쿠로노는 "승격자와 내통"했다는 구실로 널 가두려 하며, 의회는 인간의 운명을 내세워 널 희생시키려 하고 있어.

그들이 원하는 건 네가 가진 가치일 뿐이야.

하나는 노골적이고, 다른 하나는 그럴듯한 대의로 포장했을 뿐이지.

내가 이해 안 되는 건 바로 이거야. "이면"을 알았는데, 왜 아직도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거지?

왜 그들을 선택한 거야?

지휘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들을 선택한 게 아니야. 인간을 선택한 거야."

베라는 배를 잡고 웃었고, 지휘관이 아직도 그때랑 똑같이 유치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난 네가 불을 꺼뜨리는 타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베라

……

이처럼, 지휘관은 늘 베라의 모순과 불만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다.

지휘관은 베라와 자신이 완전히 같은 타입이라는 걸 똑똑히 알고 있었다.

베라는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지난 인생을 되돌아본 후, 그녀도 결국 동일한 결론을 내놓았다.

베라와 지휘관은 늘 비슷한 발걸음으로 걸어왔고, "밧줄"도 서로의 허리를 묶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운명으로 얽힌 쌍둥이가 틀림없었다.

둘 다 타고난 용기를 가졌고, 자기 피와 살을 내어 "횃불"을 밝히며 어둠을 비추려 했다. 다만 베라는 그 희생에 불만을 품었고, 지휘관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베라

그래. 나도 내 피와 살을 계속 바쳐왔어. 다만 멍청이들에게 먹히는 게 싫었을 뿐이야.

만약 내가 불태워져 뼈만 남을 때까지 이용당해야 한다면, "올바른 이"의 손에서 태워지고 싶어.

베라는 마지막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베라

그럼, 난 "올바른 이"를 찾은 걸까?

베라의 시선 아래, 지휘관은 큰 걸음으로 나아갔고, 어떤 장애물에도 멈추지 않았다.

베라

그랬구나. 넌 순진한 바보가 아니었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거지?

하하.

베라는 자아의 대전을 막고 있던 바위를 깨뜨렸다는 듯, 깨달음의 미소를 지었다.

베라

그럼, 난 뭘 망설이고 있는 거지? 예전의 나 같지가 않네.

거대한 발키리가 손을 뻗어, 손끝의 불씨를 지휘관에게 전했다.

베라

불은 여기 있어. 사실 알고 있었지? 잘 받아.

아니나 다를까, 앞으로 나아가던 인간은 그 불씨를 잘 받아냈다.

베라

잘했어.

베라는 무척 흐뭇했다. 이제 칭찬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베라

우리 중 단 한 명이라도 끝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눈부신 승리야.

네가 그렇게 굳건한 뒷모습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오랫동안 나아간 것에 대한 보상이야.

자아의 대전을 떠나기 전, 베라는 마지막 부탁을 했다.

베라

그때처럼 나를 마음껏 이용하고, 마음껏 태워서, 이 작은 불씨들을 들불처럼 크게 키워 줘.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베라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불만"마저 사라졌다는 것이다.

베라

자, 내 몸에서 마지막 살점을 가져가!

유전자은행의 "텅 빈 공간" 안에서 발키리 같은 붉은 머리 구조체가 무기를 잡았다.

적들이 위쪽의 "배양실"에서 깨어나며, 우울한 만류의 말을 전했다.

에피알테스

넌 잘못된 선택을 했다.

날카로워야 한다.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이 온순하고 무기력한 옛 세상에 작은 틈이라도 낼 수 있다.

하지만 네 선택은 모두를 좋은 밤 속에 익사시킬 것이다.

더는 옛 세상 인간들의 칼이 되지 마라. 네가 제어 불가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계속 이용당한다면, 반작용을 겪게 될 것이다.

아니. 난 너와 달라.

그리고 칼은 누구의 손에 있는지가 가장 중요해.

난 내 칼을 들고 있는 지휘관을 믿는다. 지휘관이 옛 세상을 선택한다면, 난 그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다듬기만 하면 된다.

에피알테스

……

그렇다면, 와라.

승격자가 응전하자, 베라도 지휘관과의 의식 연결을 끊었다.

수년 전 그 폐허에서처럼, 베라는 밧줄을 끊고 무기를 휘두르며 싫어하는 옛 세상을 위해 날카로운 칼춤을 췄다.

오늘도 베라는 온 힘을 다해 싸울 것이다.

[player name]...

난 너를 위해 두 번 칼을 뽑았어.

첫 번째는 사람들이 날 네 앞에 세웠을 때야.

베라가 무기를 휘두르자,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베라

이번에는 내가 너의 검이 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