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2 성화의 귀결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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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2-19 활활 타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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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 "큰 기대를 받는" 다른 누군가가 "텅 빈 공간"이 있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걸어왔다. 잘린 팔은 급하게 붕대만 감은 채, 광기에 물든 이합 생물들을 겨우 피해 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쿵!

모든 탄약을 다 써버린 그는 간신히 쿠로노의 설계도를 따라 목적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발을 헛디뎌 5~6미터 높이의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윽...

하니프는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극심한 통증에 온몸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고,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왜 이렇게 어둡지?

분명 제대로 도착했을 텐데...

정말 재수가 없군.

원래 계획은 이 유전자은행에서 특정 대상을 찾아 정보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래서 하니프는 온갖 수를 써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과 베라에게 접근했고, 어떻게든 배에 타서 이곳까지 따라 온 것이었다.

그 지휘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공중 정원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고 쿠로노를 떠날 수 있을지도 몰라.

쿨럭.

원래 계획은 그렇게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승격자도 모자라 미친 이합 생물까지 나타나서 이득은커녕 팔 반쪽까지 잃었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과 베라는 어떻게 됐을까?

한심해. 마지막 기회를 나한테 맡기다니, 정말 어리석어.

하니프는 힘겹게 몸을 지탱하며 어둠 속을 더듬었다. 그때, 익숙한 그림자가 그의 망막에 아른거렸다.

아, 주마등인가...

가장 먼저 눈앞에 나타난 건, 늘 긍정적이던 비버였다. 그런 그가 드물게 초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너 자신은 뭐가 되겠다는 거야? 영웅이야? 아니면 그림자야?

다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게 꿈인데, 넌 어때?

정말 그걸로 만족해? 희생될 "그림자"가 되고 싶은 거야?

죽기 직전에 보는 게 네 얼굴이라니, 내 신세도 정말...

무슨 헛소리야? 어서 결정해! 주변의 전투 가능한 인원들은 여기 다 모여있어. 네가 함께 하자고 했잖아?!

비버가 하니프의 어깨를 흔들자, 그제야 그는 주변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끝없는 불길 옆에는 피가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생존자들이 주위에 모여 있었지만, 모두의 장비에는 붉은 경고등이 켜져 있었다.

졸업 시뮬레이션 전투 때구나. 이때 부동 연산 능력이 다 소진됐었는데...

남은 장비를 정리한 비버는 그것을 동료들에게 나누어주며 남은 인원수를 세고 있었다.

프리먼은 이탈이 확인됐고, 로라도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사라졌어. 마지막 고위험 구역은 아직 점령하지도 못했는데, 이미 대부분을 잃었어.

포기하자.

? 뭐?

비버는 동작을 멈추고 하니프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출제자가 무슨 미친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시뮬레이션 전투 난도를 너무 높게 설정했어. 어차피 남은 인원으로 누적 점수 상위 10등은 가릴 수 있으니까, 여기서 그만두는 게 나아.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비버는 하니프를 잡아 일으키려 했다.

어제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자고 한 게 누군데! 네가 지휘한다고 했었잖아?

많은 희생이 따르는 인해전술이라도... 희생자들의 발자취를 밟고 나아갈 수밖에 없어. 단 한 명이라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마지막 고위험 구역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잖아!

우리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지금까지 선배들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 거야!

그 방법은 개미들이 뭉쳐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를 게 없어. 누군가는 불타고 누군가는 버려질지 몰라. 네가 수석이 되지 못할 수도 있어.

내가 수석이 되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야?!

비버는 분노를 표출하며 하니프를 구석으로 밀쳐내고는 생존자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모여봐!

모든 위협이 드러났지만, 우리에겐 맞설 힘이 남아있지 않아. 더는 물러서고 싶지 않다면, 목숨을 걸고 돌파하는 수밖에 없어. 답은 이미 명확해!

마지막 기회가 눈앞에 있어. 절대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너... 하니프.

비버는 하니프를 돌아보았다.

내 팔이 부러진 게 보이지 않아? 현실이었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는데, 너희 주마등들은 내가 죽든 살든 신경도 안 쓰잖아.

비버

아니... 너는 절대...

기억 속의 비버는 무관심한 듯 중얼거리며, 분노에 찬 얼굴로 손을 뻗어 하니프를 바닥에서 끌어올렸다.

……

진짜 아프네. 현실에서도 누가 나 좀 끌어 올려 줬으면...

하니프의 잘린 팔에서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정말로 누군가가 그를 끌어 올려준 것만 같았다.

???

길을 잃어서 여기까지 왔니? 우리 아이.

?

하니프가 눈을 깜박이자, 시력이 겨우 회복되면서 이곳의 빛에 적응했다.

사방은 규칙적으로 맥동하는 "배아"들로 가득했고, 반투명한 막을 통해 수많은 비정상 이합 생물들이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니프가 찾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그리고 하니프를 끌어 올려준 자가 바로 앞에서 씩 웃으며 그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삼브라의 텅 빈 공간에 잘 왔다. 나는 헤인스다. 분명 나를 찾고 있었겠지?

!!!

그 이름을 듣고 얼굴을 확인한 순간, 하니프는 본능적으로 헤인스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남은 왼손으로 자신만 아는 빈 총으로 헤인스를 겨눴다.

윽! 여기까지 위장해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공중 정원의 그 둘도 없으니, 정상적으로 대화하지.

난 너와 할 말 없어. 네가 승격자와 나눈 대화를 들었으니까. 이곳의 모든 문제는 너희가 일으킨 거잖아.

그렇다면 어쩔 셈이지? 감시기에서 네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과 나눈 대화를 들었다. 네 "출신"을 알고 싶어서 "친척을 찾으러 왔다."라고 하지 않았나?

엿듣는 걸 좋아하는 늙은이네.

어쩔 수 없지. 난 호기심이 많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무슨 헛소리야?

날 찾아온 첫 번째 아이니, 보상을 받아야지. 궁금한 걸 말해봐.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지.

하니프의 고막이 윙윙거렸다. 조금 전 낙하 충격으로 뇌진탕이 온 듯했고, 이에 따라 헤인스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산더미처럼 많아도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입 다물고 두 손 머리 위로 올려. 안 그러면 당장 쏴버릴 거야.

쿠로노의 행동 방식은 내가 잘 알아. 모든 실험 기지에는 완벽한 폐기 절차가 설계되어 있지. 폐기 프로그램 실행 방법을 말해!

하니프가 총으로 위협하자, 헤인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천천히 두 손을 들었다.

이게 지금 네가 가장 알고 싶은 답인가? 재미없군.

쓸데없는 말 그만해. 다섯을 셀 동안. 다섯...

숫자 셀 필요 없어. 바로 네 뒤에 있으니까. 궁금한 건 다 말해 주겠다고 했잖아.

?

네 뒤에 있는 그 장치로 실행할 수 있어. 보이지 않나? 몇 걸음만 더 가면 부딪힐 텐데.

헤인스는 이상하리만치 침착했고, 오히려 웃음을 참는 듯했다. 하니프가 천천히 뒷걸음질 치다가 자신이 언급한 조작 콘솔에 허리가 부딪힐 때까지 헤인스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비밀번호는 8이 여섯 개야. 게다가 미리 입력해 뒀어. 그리고 네 생체 인증으로 실행할 수 있을 거야.

뭐?

헤인스의 "헛소리"를 들은 하니프는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게 아닌지 의심했다.

지문, 홍채 등... 모든 생체 인식 절차를 통과할 수 있을 거야.

하니프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헤인스의 말대로 모든 권한 검사가 순조롭게 통과되었다. 그러자 앞에 붉은 글씨로 "기지 폭파"라는 문구가 장난인 것처럼 나타났다.

네가 직접 결정해. 어차피 난 너를 제어할 수 없으니까. 이곳을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남겨두어 이들의 새로운 진화를 지켜볼 것인가?

뭐지? 아니... 왜 내가...

하니프는 이렇게 당황스러운 적이 처음이었다. 늘 자신이 만든 함정으로 남을 골탕 먹이곤 했건만, 이번엔 오히려 타인이 연출한 광대 희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걸 남겨두는 게 좋을 거라고 제안하고 싶군. 이들은 모두 너의 "형제자매"니까.

엿들었으니 잘 알고 있을 텐데? 최초이자, 가장 성공적인 그 아이는 나를 유전자 모체로 한 배아를 삼켰다.

하지만 그건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변했어.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종의 기원이 될 테니, 이제 "헤인스"라는 이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그래서 난 그것을 "이브"라고 지었어. 어때?

…………

하니프는 조작 콘솔 앞에 멈췄다. 헤인스는 그의 마음속에 수년간 쌓여있던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었다.

그랬던 거군.

네가... 마지막으로 걸러진... "헤인스"냐? 원래는 공중 정원에 배치됐던 건가?

헤인스가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쿠로노 조직원

NO.1364. 졸업 후 네가 배치될 곳이 결정됐다. 졸업 후에 오로라 부대로 배치되어 그들의 일원이 될 거다.

오로라... 현역 부대의 이름 같지는 않은데, 당신들의 사설 부대인 건가요?

쿠로노 조직원

그렇다. 논의 끝에 너에게 가장 적합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너같이 교활한 이는 가까이 두는 게 더 안전하잖아. 안 그래?

……

쿠로노 조직원

"평범함"을 연기한 넌 우리가 집행 부대로 보내주길 바랐을 거야.

하지만 널 줄곧 감시해 온 우리가 네 속셈을 모를 거라 생각했나?

당신들이 다 알고 있다면, 저 같은 사람을 왜 곁에 두는 거죠?

쿠로노 조직원

너의 이런 반항은 우리에게 있어 우스운 오락거리일 뿐이야.

기억해. 넌 쿠로노의 자산이야. 더 이상 묻거나, 생각하지도 마. 그냥 우리가 내리는 명령을 수행하기만 하면 돼.

……

그러니까, 나도 [헤인스]란 건가?

비슷해. 넌 나의 완벽에 가까운 클론체다. 황금시대부터 말기까지 3세대에 걸쳐 진화했지. 네 몸에서는 근시와 고혈압 같은 유전적 결함들을 모두 제거했다.

……

놀랄 필요 없어. 황금시대에는 유전자 선별이 부유층의 우생학적 육아 방식으로 흔히 쓰였거든.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 샘플로 클론을 만들어 원치 않는 유전자를 제거하기도 했지.

"이렇게 세대마다 진화하며,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거지."

쿠로노가 지원해 준 건가? 그들의 도움으로 다음 세대를 육성해서 날 만들어냈다는 건가?

하니프는 헤인스의 옷에 달린 명찰을 보았다. 자신이 한때 사용했던 그 이름을 보자 갑자기 속에서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나머지 아홉 명의 헤인스는 왜 포기한 거지? 유전자 결함으로 죽지 않았다면 전부 살해당했다는 것일 텐데.

쿠로노는 자선가가 아니니까. 우리는 단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취했을 뿐이야.

난 재료와 장소가 필요했고, 자아를 이어가야 했다. 그들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제공해 주면서 너를... 아니, "나"를 감시할 권한을 얻은 거지.

그들이 요구한 건 다음 세대의 "헤인스"는 좀 더 통제하기 쉬워야 한다는 거였어. 물론,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지.

……

그 눈들의 감시 속에서 자라는 게 힘들었지? 수고했다.

…………

하지만 괜찮아. 내가 "텅 빈 공간" 안의 모든 배아를 부화시키고 나면, 더 이상 쿠로노도 승격자도 나를 제한할 수 없을 거다. 내가 새로운 세계의 주인이 될 테니까.

이것이 내가 승격자와 맺은 협력 관계야. 내가 최첨단 기술을 제공하면, 그는 퍼니싱을 준비하지. 그리고 우리는 함께 새로운 종을 창조하는 거야.

승격자도 나처럼 여러 개의 몸을 지니고 있어. 그래서 너희가 밖에서 그를 몇 번이나 죽여도 소용없어. 그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부활"하며 수많은 "아이들"이 무사히 부화하도록 지켜낼 거야.

헤인스가 천장에 매달린 수면 캡슐들을 가리켰다. 그것들은 이합 생물이 만들어낸 "뼈 가시"로 보호받고 있었다.

날 속이고 있군. 네가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해서 갈라섰다고 그 승격자가 말하는 걸 내가 똑똑히 들었어.

상관없어. 네가 엿들으면 뭐 얼마나 엿들었겠어?

게다가 승격자가 날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

헤인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수면 캡슐"을 가리켰다.

이브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에게 접근해 승격자에게 역이용당한 건 우연이었어. 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지. 다음 승격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지금 밖의 모든 것은 내가 관리하고 있으니까.

하... 그래서 이렇게 거만하게 굴었던 거군.

자, 총 내려놓고 이리 와. 어차피 총알도 없잖아? 누구보다도 내가 널 잘 알고 있으니까.

헤인스는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처음에 어떻게 정보를 받았는지 기억나나? 네가 이끌던 오로라 부대 소대가 임무 수행 중에 정보를 찾다가, 갑자기 쿠로노 유전자은행 기술 담당자가 너처럼 "헤인스"라는 이름을 쓴다는 사실을 발견했지.

난 나를 잘 알아. 그래서 "내"가 분명 이것에 집착할 거란 걸 알았지. 역시나, 넌 이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쫓아왔고. 하하.

일부러 그랬던 건가?

맞아. "승격자 살인"과 에피알테스가 쿠로노를 증오한 것 모두 사실이야. 하지만, 이 사실에 "승격자가 그 배를 지목했다."고 거짓말한 건 너였어! 그리고 유전자은행을 찾아다닌 것도 너밖에 없었어!

넌 모든 걸 간파했어. 쿠로노의 은폐 시도와 공중 정원의 철저한 조사 의지 그리고 양측 모두가 새로운 승격자를 서둘러 조사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까지.

쿠로노 특별 작전팀 출신 베라가 그 열쇠를 반드시 추적할 거란 걸 넌 알고 있었지. 바로 이 섬으로 들어올 수 있는 그 배 말이야!

결국 지휘관과 베라가 이 섬에 올 수 있었던 건, 전부 네 덕이야! 너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하니프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둘은 하니프에게 자신들의 목숨을 맡겼었다.

하니프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 결심한 그 순간, 헤인스는 단숨에 그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그리고 헤인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난 그냥 정보만 살짝 흘리고, 그 승격자의 쿠로노 복수를 퍼뜨렸을 뿐인데, 이런 놀라운 결과를 얻다니! 역시 넌 다음 세대 "헤인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개체야!

그만!

하하하하! 내가 이겼어!

일거양득을 노린 완벽한 계획이라 생각했나? 자신의 과거를 파헤침과 동시에,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이용해 쿠로노에서 빠져나갈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건가?!

잘만 해내면, 그 지휘관이 자비로운 손을 내밀어 "헤인스"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 줄 거라 생각한 건가?!

그만해!!!!!

하니프의 두 눈이 붉어졌다.

하니프는 도미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린 것이 바로 지금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

뭘 그리 서두르는 거지?! 이렇게 속여 넘겨서 오늘 살아남는다고 해도 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처벌이 기다리고 있어! 쿠로노든 공중 정원이든, 넌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는 신세야!

너 이...

하니프의 허세를 간파한 헤인스는 무언가를 찾듯 옷 안쪽을 더듬었다.

내 몸은 늙어서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이제 내 기억을 너에게 동기화할 거야. 네가 이해하게...

이 자만에 빠진 늙은이!!!

슝.

!!!

하니프가 달려들기도 전에 헤인스가 먼저 무음의 총알 한 발을 하니프의 다리에 날렸다.

헤인스는 조금 전 품속에서 꺼낸 총을 흔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처음부터 쿠로노가 데려간 아이라면, 내가 어떻게 너를 내 머리 위에 올려놓겠나?

헤인스는 연기하듯 과장된 동작을 하며 콘솔까지 걸어갔다. 그는 극심한 통증으로 흐려진 하니프의 시야 속에서 손을 높이 들어 콘솔을 강하게 내려쳤다.

더 이상 너와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네가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못할 줄 알았어. 재미없군.

네 말이 맞아. 이건 단순한 "파멸 프로그램" 버튼이 아니야. 만약 눌렀다면, 최종 진화는 너의 손으로 시작하는 거였지.

…………

망막이 검게 물들어가는 하니프는 고통 속에서 무릎을 꿇었다.

헤인스의 동작과 함께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빨간 불빛이 회전하며 "텅 빈 공간" 안의 모든 형상을 비췄다. 그곳에는 두 명의 같은 인간도, 부화 중인 이합 생물도, 수면 캡슐 속에서 아직 "부활"하지 않은 승격자도 있었다.

"텅 빈 공간" 전체가 활성화되었고, 헤인스는 곳곳에 울리는 경보음 속에서 크게 웃었다.

이 멍청이들. 만날 때마다 너희를 가지고 놀지 않을 수가 없잖아. 하하하하.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어. 이런 "나"라도 바보 같은 양 떼 속에 오래 있으면 동화되는가 보군!

하니프는 분노와 육체적 고통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몸부림치려 했다.

안 돼. 나는 절대...

안 돼. 여기서 절대 포기하면 안 돼!

……

내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우리 모두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절대 포기하지 마!

하니프의 시야가 흔들렸다. 알고 보니 비버가 그를 업고 가는 중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꿈에서 하니프를 자주 괴롭히던 그 시뮬레이션 전투였다.

어서 상처를 지혈대로 묶고 따라와!

또 몇 명이나 낙오했지?

말하는 동안에도 주변 골짜기에서 침식체들이 나와 몸부림치고 있는 전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셀 수 없어. 남은 이들은 다 우리 곁에 있어.

또다시 불빛이 번쩍였다.

봐봐. 내가 개미들이 뭉쳐 불길 속으로 뛰어들면, 결국 많은 이들이 죽게 될 거라고 말했었잖아.

이렇게 모두가 마지막 고위험 구역으로 돌진한다면, 그림자들은 희생될 각오를 해야 해.

그럼, 넌? 너 자신은 뭐가 되겠다는 거야? 영웅이야? 아니면 그림자야?

비버는 세 번째로 그 질문을 던졌다.

넌 이 질문에 한 번도 대답한 적이 없었어. 사실 포기하자고 제안했을 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지?

나는...

하니프의 시선이 주변을 맴돌았다.

바닥의 불길과 "그림자"들의 시체를 본 하니프는 헤인스가 쏜 총알을 또렷이 느꼈다. 그의 모든 노력을 "어리석다."고 부정한 총알과 이 모든 광경이 하니프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사실 난 "영웅"이 되고 싶었어.

더 이상 그림자가 되기 싫어. "헤인스"의 그림자든,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그림자든, 다 그만두고 싶어.

헤인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뛰어넘어, 전례 없는 새로운 영웅이 되고 싶었어.

하지만 내가 한 모든 선택이 결국은 틀렸어!

하니프는 정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울고 싶었다. 그는 죽음을 앞둔 꿈속에서라도 당시의 동창들이 그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다.

너희들이 보고 싶어. 더 이상 쿠로노에 있고 싶지 않아! 헤인스를 죽이고 싶어!

내 이름을 기념비에 당당하게 새기고 싶어! 모든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빛 속에 당당히 서고 싶어. 누구의 그림자도 되고 싶지 않아!

당연히 넌 그림자가 아니야. 파오스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하니프였어.

야, 비버. 나 내려줘!

너 다리 다쳤잖아.

하니프는 비버의 말을 무시하고 몸부림치며 내려와 남은 장비들을 정리했다. 그의 몸에는 우주 무기를 보조할 수 있는 필드 포인트가 있었고, 이번 임무의 최종 목표는 마지막 고위험 구역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나는 끝까지 싸울 거야. 그리고 나중에 쿠로노에 정말 가게 되더라도 빠져나올 방법을 찾을 거야.

뭘 하려고 그래?

지금부터 하면 할 수 있어.

내가 원하는 결말을 위해서라면, "영웅주의"에 휩쓸리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겠어!

하니프는 필드 포인트를 안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개미들이 뭉쳐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모두가 하니프를 따라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하니프는 뭔가 타는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하지만 하니프는 여전히 팔을 높이 든 채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진리를 찾는 데도 쓰지 않던 그 머리를 좀 움직여봐. 그 많은 세월을 낭비만 하고... 윽!!

마지막 힘을 다해 팔을 세게 휘두른 하니프는 헤인스를 쓰러뜨리고 총을 빼앗았다.

하니프는 빼앗은 총을 곧바로 왼손에 쥐었다. 그리고 마지막 탄피가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헤인스의 손목과 발목을 연속해서 쐈다.

으윽!

너와 다르다는 걸 반드시 증명해 내고 말겠어!

하니프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빈 총을 던져버리고는 연달아 주먹을 휘둘러 헤인스의 눈썹뼈와 콧등을 부러뜨렸다.

누구 피가 먼저 바닥나나 한번 내기해 볼까?

피가 튀고 흔들리던 이빨이 날아갔다. 헤인스는 시간과 경험이 미치는 영향을 얕봤고, 이 격렬한 싸움을 통해 두 개체 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

네가 "가장 날 잘 이해하는 이"라고? 그건 큰 오해야. 하지만 난 네 진짜 속셈을 다 알고 있어!

하니프는 온 힘을 다해 헤인스에게 마지막 한 방을 날린 뒤, 헤인스의 옷깃을 찢어 이 위선자의 껍질을 벗겨냈다.

하얀 실험복 아래는 완전히 개조된 기형적인 몸이 있었다.

난 네가 온 힘을 다해 그 승격자를 도울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 분명 그를 통제할 방법을 찾아서 그가 쉽게 협력을 끊지 못하게 할 거라 생각했지.

그리고 가장 좋은 억제 방법은 모든 배아를 파괴해서 승격자의 계획도 물거품으로 만드는 거였어.

넌 오래전에 자신을 이 유전자은행을 파괴할 "도화선"으로 개조해 놓았지. 안 그래?

…………

헤인스는 입을 벌려 뭔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이빨이 거의 다 부서진 탓에 피만 토해낼 뿐이었다.

나이 들어서도 웃기 좋아하더니. 하하. 이제는 웃지도 못하는 거야?

쿨럭...

인정해! 네가 죽으면 폐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시작될 거라고 말이야!

하니프는 다친 다리를 절뚝이며 죽어가는 헤인스를 플랫폼 가장자리로 끌고 갔다.

이제 모든 "헤인스"를 끝장내면, 이 역겨운 운명의 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

시뮬레이션 전투 때, 하니프는 필드 포인트를 안고 고위험 구역 중앙으로 돌진했다. 그 모습은 마치 활활 타는 불을 안고 뛰어드는 영웅 같았다.

이 모든 걸 끝내자!!

"수석"이 될 수 없더라도, 이것이 하니프가 원하는 결말이었다.

내가 죽는다 해도, 이게 내가 원하는 결말이야!

하니프는 고통에 몸을 웅크리고 싶었지만, 헤인스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살아있는 불을 안고 심연으로 뛰어드는 듯, 하니프는 헤인스의 몸을 안은 채 가장자리에서 굴러떨어졌다.

후...

하니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몸이 떠오르는 무중력을 느꼈다. 그때, 지휘관이 조금 전 "마지막 바통"을 자신에게 맡겼던 게 떠올랐다.

(내가 해낸 거야. 그러니 이걸 보상이라고 생각하자.)

눈을 감은 하니프는 추락이 귓가에 가져다주는 바람 소리를 즐겼다.

바람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

봐봐. 잠깐 안 본 사이에 이 꼬마가 자기를 이 꼴로 만들어놨네. [player name], 너희 파오스에는 정말 다양한 인재들이 있구나.

지휘관이 하니프의 한쪽 다리를 꽉 잡았고, 다른 한쪽은 베라가 가차 없이 밟고 있었다.

지휘관님! 베라...

이건 무슨 표정이야? 너무 고마워서 울 것 같아?

알았어. 하지만 그 전에...

베라는 양날의 검을 들어 올려 최적의 각도를 찾은 뒤, 헤인스의 크게 뜬 눈에 정확히 겨누었다.

네가 남긴 노트를 보고, 네가 어떻게 "구멍을 뚫었는지" 드디어 알게 됐어. 오늘 여기서 널 죽이면, 더 이상 다음 "헤인스"는 없을 거야. 그렇지?

헉... 헉... 또 너냐.

역시 날 기억하고 있군. 그럼, 한 가지 물어보지. 오늘 이 "재회" 괜찮았어? 헤.인.스?

헤인스는 베라 옆의 익숙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는 이 장면이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느껴졌고, 이에 분노를 느꼈다.

넌 뭔데... 이렇게 운이 좋지?

헤인스의 시선이 베라의 빗장뼈를 향했다. 그는 새로운 재미를 발견한 듯, 입에 피가 가득한데도 꼭 말하고 싶었다.

하, 아니었군. 이제 알겠어. 너 같은 개에게 가장 큰 타격은 뼈를 발라내는 게 아니야.

넌 네 체면과 신념을 스스로 찢어버리게 될 거다.

……

하, 당연히 알지!

베라는 헤인스의 의도를 알아챈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가장 통쾌한 일격을 날릴 수 있는 각도를 찾아 양날의 검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넌 "통제 불가"가 되는 걸 가장 두려워하잖아. 넌 절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난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베라는 이 말을 외치며 양날의 검을 거칠게 찔러 넣었다.

마지막 헤인스는 양날의 검에 찔린 충격으로, "배아"가 가장 밀집한 곳으로 추락했다.

둔탁한 "쿵"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끝났다. 하지만 그때 그들이 서 있던 플랫폼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아래쪽에서 불길과 함께 열기가 솟구쳐 올랐다.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하니프는 허벅지의 총상을 움켜쥔 채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

쿨럭쿨럭. 어서 가세요. 그 늙은이는 죽었어요. "텅 빈 공간"이 곧 자폭할 거예요.

……

하지만 베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불빛 속에서 손을 들어 "안전핀"이 있어야 할 자리를 더듬었지만, 이미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하하. 몇 년 만이지? 이 느낌을 잊을 뻔했어.

베라는 조금 전 헤인스가 한 말에 무언가가 떠오른 듯, 옆에 있던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헤인스는 죽었지만, 그 승격자는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있어.

조금 전에 우리가 찾은 헤인스의 노트에 따르면, 다음 승격자가 이 "텅 빈 공간" 안에서 탄생하게 될 거야.

이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뼈 가시"로 둘러싸인 "배양실"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의 존재들이 위협을 감지하고 빠져나오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승격자의 가장 원초적인 목적은 복수였어. 이런 감정을 품은 자는 지금처럼 선택의 갈림길에서 잘못된 길을 고르기 마련이지. 교활한 헤인스의 술수에도 넘어가 버렸잖아.

승격자 이름이 예전에 내 손에 죽은 "로이드"가 아니더라도, 난 가서 그를 깨우쳐줄 거야.

베라의 붉은 머리카락이 열기 속에서 흔들렸다. 그리고 지휘관은 고통 속에서 불꽃을 바라보며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일그러진 공기 속에서 지휘관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그 안에 숨겨진 무언가와 깊은 무력감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내 말 들어.

베라는 다시 무기를 꽉 쥐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의 눈빛에서 깊은 슬픔이 배어 나왔다.

특히 너에게 할 말이 너무 많아.

베라는 자신과 지휘관의 허리에 단단히 묶인 밧줄을 바라보았다.

네가 또 밧줄 묶었어?

얼마나 기억났어?

베라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흐릿했다.

나 찾으러 돌아간 적 있어?

너...

베라는 급히 뭔가를 말했다.

동시에 잃어버린 기억이 지휘관의 고통스러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베라의 의식의 바다에서 베라의 시점으로 본 것들, 심지어 이합 생물인 "이브"가 엿본 기억까지 떠올랐다.

지휘관은 수많은 시점 사이에서 지금 느껴지는 이 이상한 감각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냥 그 플러그를 빼버려.

마지막에 지휘관의 시선이 마침내 베라의 가슴께에 멈췄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계속 잘못된 일을 해왔어. 난 그걸 이미 알고 있었어. 그러니 끝까지 잘못된 길로 가보자.

……

지휘관은 다친 다리도 잊은 채 베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 숨겨둔 "빈자리"를 드러냈다.

…………

바닥이 서 있기 힘들 정도로 흔들렸고, 천장에선 먼지가 부슬부슬 떨어졌다.

베라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셋을 세면, 너는 앞으로 뛰어."

지휘관은 무언가를 느끼고 손을 뻗었지만...

베라가 다시 무기를 들어 둘 사이의 밧줄을 잘라냈다.

"밧줄이 끊어졌어."

라는 뜻이야.

지휘관은 최대한 빠르게 잡으려 했지만, 결국 허공을 움켜쥘 뿐이었다.

베라는 양날의 검 끝으로 부상자 둘을 플랫폼 밖으로 밀어낸 뒤, 홀로 거대한 플랫폼에 남아 승격자의 "탄생"을 기다렸다.

지휘관은 베라와의 과거가 작지만, 뜨거운 불꽃 같아서, 힘주어 잡으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