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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2-16 칼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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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동기화 진행도: 95%

인간과 하니프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동안, 베라의 데이터 동기화도 미친 듯이 가속되고 있었다.

퍼니싱의 진액과 피가 베라의 몸에 튀더니, 물 한 방울처럼 모여 눈가에서 입가로 천천히 흘러내렸다.

신구 기체 간의 데이터 동기화가 곧 완료될 것이다. "베라"의 모든 기억을 읽어 들인 후, 그녀가 영원히 떨쳐버릴 수 없는 이야기가 다시 한번 마지막 장에 도달했다.

그 장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둘의 마지막 도주가 시작되었다."

운이 그들을 외면했다. 한동안 정상적으로 운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수송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장이 났다.

베라는 점검한 후, "인정할게. 내가 운전하는 운송 장비는 두 시간을 못 버텨."라는 결론을 내렸다.

차 앞에서 잠시 침묵하고 있던 인간은 현실을 받아들였고, 둘은 예정보다 일찍 도보 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이 심리적으로 이 이유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도, 육체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작은 눈꽃들이 지휘관의 몸에 내려앉아 옷을 차갑고 딱딱한 껍데기로 만들어버렸다. 인간은 머리가 멍해졌고, 상처는 다 감염이 되어 체온이 급격히 치솟았다.

눈 좀 붙이고 쉬어.

인간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는 것을 본 베라는 먼저 손을 뻗어 인간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둘렀다.

의식 연결은 잘 유지되고 있어. 잘... 잘하고 있어.

베라는 어색한 "칭찬"도 시도해 보았다.

괜찮아. 내가... 널... 끌고... 가면 돼.

며칠간의 도주로 극도로 지쳐 있던 인간은 승낙을 받자마자 서둘러 눈을 감았다.

베라가 인간이 바닥으로 쓰러지기 전에 밧줄을 잡아당기자, 허리가 꽉 조였다.

이어서 끌려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인간은 어둠과 고통에 꽉 붙들려 있어서 발버둥 칠 힘조차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등에 태우고 두어 걸음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흔들리며 나아가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그 사이 총성과 칼날이 금속을 긁는 소리, 그리고 침식체들의 비명이 들렸다.

작은 눈꽃이 계속 내리면서 머리카락과 얼굴의 붕대를 젖게 만들어 숨쉬기가 힘들었다.

인간은 너무 괴로워서 그 이름을 부르려 했다.

인간은 잠시 바닥에 내려졌고, 입과 코의 붕대가 더 크게 벌어졌다가 다시 연약한 아기를 품에 안기듯이 안아 올려졌다.

곧이어 인간은 구조체의 흉강에서 들리는 동력 코어의 고속 회전음을 듣게 됐다.

심장 소리를 듣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인간은 고열 때문에 아예 혼수 상태로 빠져들게 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폐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숨소리와 함께 인간이 다시 깨어났다.

사방은 죽음처럼 어두웠고, 온몸, 특히 복부의 통증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셌다.

그리고 귓가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불이 어디 있지?

눈이 조금씩 어둠에 적응하자, 인간은 무언가에 기대어 있었고, 손바닥에는 붉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한 줌을 쥐고 있음을 알았다.

베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베라

불이... 어디 있지?

어디로 갔지? 조금 전까지...

베라가 무언가를 찾으면서 혼잣말하고 있었다.

베라

아, 깼구나.

흐릿한 붉은 형체의 베라가 움직이면서 손을 뻗어 인간의 뺨을 쓰다듬었다.

베라

나야. 나 여기 있어.

인간은 천천히 쑤시는 팔을 들어 앞의 붉은 색을 가리켰다. 하지만 베라가 그 손을 잡아 강제로 내렸다.

베라

너한테 안 물어봤어. 열 때문에 환각이 보이는 거야.

불은 여기 있어. 내가 찾았어.

찰칵.

후.

베라는 원시적인 라이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찰칵 소리와 함께 약하고 흔들리는 불꽃이 일었다.

베라

불은 여기 있어.

라이터 하나를 찾았는데, 장작이 다 젖어 있어서 불이 붙을지 모르겠네.

라이터의 불꽃이 장작과 마른풀 위에서 타올랐지만,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다.

베라

쳇. 안 될 것 같더라니.

붉은 형체가 살짝 짜증을 내며 쓸모없는 라이터를 던져버렸다.

베라는 멍하니 있는 인간을 잠시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깊이 한숨을 쉬고는 팔을 뻗어 인간을 완전히 품에 안았다.

베라

어쩔 수 없이 구조체의 "체온"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여기서 체온이 더 떨어지면 넌 정말 죽을 거야.

그리고,

베라는 인간의 얼굴에서 빗물에 젖은 붕대를 살짝 들쳐 틈을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차가운 공기가 마침내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베라

조금 전부터 무의식적으로 붕대를 잡아당기면서, 아주 불편해 보이던데. 확인해 봤는데... 이제 붕대를 풀어도 될 것 같아.

베라의 목소리에서는 피로가 역력했고, 말투를 날카롭게 만들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이 길고 긴 도주는 인간뿐만 아니라 그녀도 지치게 했다.

베라

속으로 그렇게 놀랄 필요 없어. 널 해치려 했다면 진작에 했을 거야. 게다가 난 보조형 구조체로 오랫동안 일해왔어.

자, 다 됐어.

마지막 붕대가 풀리자, 인간의 시야가 마침내 선명해졌다. 주위에는 엉망으로 무너진 콘크리트 덩어리들만 가득했다. 아마도 폐허 밑바닥인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 얼굴은 망가지지 않았어. 지금은 거울 구해줄 방법도 없긴 하지만.

이번엔 기억이 초기화되지 않은 건가?

인간이 베라의 이름을 직접 부르자, 그녀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놀란 듯했다.

네가 전에는 잠들었다 깰 때마다 기억이 지상에 처음 왔을 때로 돌아가서, 매번 새로... 기억을 "지어내야" 했거든.

베라는 갑자기 자기 행동을 "지어내는" 것으로 정의했다.

오늘 062번 보육 구역 전선에서 갑자기 자신을 쿠로노의 구조체라고 인정했을 때처럼.

이제 모든 걸 명확히 말할게. 최소한 가장 중요한 일은 밝혀둬야 해.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테니까.

좋아. 이게 내 본래 모습이야. 전에 그런 머리 색과 가면을 쓴 건 위장이었어. 너희를 속이기 위한 거였지.

내 의식의 바다와 연결됐으니까,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 너도 더는 "모른 척하느라" 애쓸 필요도 없고.

베라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네 머리는 아직 낫지 않았잖아. 이 골치 아픈 일들이 다 끝나고 네가 공중 정원으로 복귀하면, 아마 날 기억조차 못할 거야.

베라는 앉아 있는 인간을 일으켜 세우고 라이터를 다시 켰다.

라이터를 둘 사이에 가져다 대자, 흔들리는 불빛이 서로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제서야 둘은 진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내 소개를 하지. 난 쿠로노 특별 작전팀의 구조체, 코드네임 "하운드"야.

난 공중 정원의 구조체가 아니었고, 파오스 학교 학생과 접촉해서도 안 됐어. 하지만 네게는 내가 쿠로노에 가져가야 할 테스트 재료가 있었지.

베라는 인간의 몸에 여전히 단단히 묶여 있는 샘플 상자를 가리켰다.

그 테스트 재료가 진짜인지는 의심하지 마. 그 기능도 속인 게 아니야.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그렇게 미친 짓을 했을 때 벌써 배가 썩어 문드러졌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쿠로노의 "하운드"는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쿠로노의 특별 작전팀"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되찾은 듯했다.

하지만 넌 운이 좋았어. 원래 가려던 쿠로노 거점이 이번 재난으로 함락됐거든. 보고할 곳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널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지.

임시 의료소를 출발해서 가는 길에 공포에 빠진 난민들을 구하고, 파오스의 동급생을 우연히 만나 이 위기의 가장 중요한 샘플을 넘겨받았고, 이어달리기하듯 계속 달려 온 거야.

그건 나도 알아. 꼬마 지휘관.

잠시 멈칫한 베라의 표정이 순간 이상하게 변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 때는 "베라" 본인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건 내 본명이야.

끝까지 거짓말하지는 않았어. 그러니 기뻐해도 될 것 같은데? 하하.

별로 놀라지 않네?

인간은 베라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결국 이 시험하는 듯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아니. 이제 그럴 필요 없어.

내 나름의 판단이 있어. 주변에 있는 다른 쿠로노 기지들도 다 똑같이 피해를 보았고, 재료를 전달할 곳도 못 찾았어. 이 샘플은 정말 중요한 거라서 적절한 곳에 보내지 않으면 재난을 멈출 수 없어.

퍼니싱이 처음 발생했을 때, 나도 군인으로서 비슷한 샘플 수송 임무를 받은 적이 있어. 하, 생각해 보니 지금 네 상황이랑 꽤 비슷하네.

아쉽게도 난 몇 걸음 늦게 됐고, 결국 퍼니싱 발생 7일 후에야... 퍼니싱 관련 정보를 동기화할 수 있었지.

고개를 숙인 베라는 지난번... 퍼니싱 발생 초기에 자신이 참여했고,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어달리기"를 떠올렸다.

그래서 구조체 개조를 받게 됐어.

베라는 인간의 순간적인 충격을 무시한 채 자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내 운명은 수수께끼 같은 순환에 갇힌 것 같아. 몇 년마다 비슷한 비극을 다시 겪게 됐으니까 말이야. 하하.

……

그만. 난 네가 나를 그 어떤 고상한 말로 표현하는 걸 거절해. 다른 의례적인 말들은 우리가 살아남은 후로 미뤄줘.

지금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우선 직시해야 해. 어떤 구석으로 강제로 데려가는 건 둘째 치고, 우리가 여기를 벗어나는 것부터가 문제야.

이 말을 들은 인간은 다시 한번 주변을 살펴보았다.

일단은 무너진 지하실 밑이야. 그냥 눈 피하고 있다고 생각해. 짜증 나는 눈이 오는 날이잖아.

베라는 "그냥 눈 피하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밖에서 들려오는 침식체들의 비명이 인간의 귀에도 들릴 만큼 크게 울려 퍼졌다.

있어. 목적지가 바로 앞이야. 이 폐허만 지나면 성공이야.

과장을 보태지 않고, 죽을힘을 다하면 돼.

문답이 끝났다. 성공이 눈앞에 있었지만, 둘 다 그것을 이루기 힘들 것 같은 무거운 부담감이 느껴졌다.

다른 질문 있어? 없으면 말 아껴. 체력을 아껴둬야 해.

베라가 인간의 옆구리를 가리켰다. 샘플 상자의 구멍은 단단히 막혀 있었지만, 안의 샘플은 이미 천천히 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이미 마비됐고, 인간조차 자신이 샘플을 전달하기 전에 죽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결심한 거야?

됐어. 도중에 죽으면 영웅이 될 수 없잖아.

아무것도 아니야.

세계에는 네가 가고 싶지 않은 길이 많지만, 운명이 그곳으로 이끈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어쨌든, 네가 나를 완전히 활용하기 전까지는 죽으면 안 돼.

잠시 생각한 베라는 뭔가를 결심한 듯했다.

베라는 인간의 손을 잡아 자기 빗장뼈 위에 올려놓았다. 그곳에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플러그" 형태를 한 장치가 있었다.

이대로 뽑아.

인간의 마음속에 모호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베라의 손끝에 실린 힘을 빌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 장치를 직접 뽑았다.

장치를 뽑자, 기체의 모든 엔진이 굉음을 내기 시작하면서 베라의 머리카락 끝까지 불타오르는 듯한 빛을 내뿜었다.

……

…………

희미한 붉은 빛이 베라의 빗장뼈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면서 기체와 액체의 중간 같은 물질이 조용히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하하... 쿠로노의 미친 놈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거야.

맞아.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계속 잘못된 일을 해왔어. 난 그걸 이미 알고 있었어. 그러니 끝까지 잘못된 길로 가보자.

우리가 연락하기 쉽게 신호를 하나 정해.

인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점점 더 강해지는 불안감이 밀려왔고, 조용한 폐허 아래에 어떤 문제가 발효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할 말 없어?

아니. 이 빌어먹을 밧줄이 아직 묶여 있잖아.

너무 생각하지 마. 출발 전에 하는 정상적인 절차일 뿐이야. 파오스에서 안 배웠어?

헤어지지 않아. 이 빌어먹을 밧줄이 아직 묶여 있잖아.

베라는 오랫동안 둘을 이어주었던 밧줄을 잡아당겼다.

뭐든 좋으니까, 어서... 휘파람 소리로 하는 건 어때? 난 이 방식이 더 익숙해.

베라의 시선이 갑자기 멀어졌다. 또 무언가를 떠올린 것 같았다.

좋아. 어떤 의미가 있어?

알았어. 기억했어. "의미 없는 휘파람 신호".

베라는 마지막으로 손을 뻗어 인간의 이마를 만졌다.

아직 열이 이렇게 높은데... 말을 할 수 있다니 정말 질겨.

됐다. 지금은 이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출발하자. 내가 널 업고 갈게. 지금 네 속도론 너무 늦어.

미리 말해두는데, 밖은 온통 침식체야. 고개만 내밀어도 산 표적이 될 거야. 내가 업고 갈 땐 말을 아끼고, 내가 내려놓을 땐 최대한 빨리 움직여. 추격당하면 끝이야. 알겠어?

그건 필요 없어.

네 걱정이나 해.

베라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거 같았다. 하지만 고열에 시달리는 인간의 머리는 그냥 "나중에 하자."라고 처리해 버렸다.

인간은 순순히 베라의 등에 올라탔고, 배의 샘플을 꽉 누른 채 녹슨 무기를 든 초라한 시골 영웅처럼 길을 나섰다.

둘은 틈새를 빠져나와 폐허 위에 섰다.

하.

인간은 베라의 귓가에 뜨거운 수증기를 내뿜었지만, 곧 찬바람에 베라의 가슴에서 끊임없이 새어 나가는 빛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이 작은 붉은 기운이 주변에서 배회하는 침식체 모두를 끌어들였고, 그들은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꼬마 지휘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마지막엔 네가 초라하게 기어가게 되더라도, 반드시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가.

네가 절망에 갇히는 걸 거부한다면, 누군가가 반드시 널 붙잡아줄 거야.

베라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초라한 영웅이 마지막 여정을 시작할 때, 멀지 않은 기지에서도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대량의 침식체가 기지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예상 남은 시간... 50분입니다!

탐측 장비를 지키던 병사가 가장 먼저 경고를 외쳤다.

연락은 아직도 안 되나?

지원을 위해 파견했던 소대가 아직 전부 복귀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벌써 나흘째입니다. 장관님!

철수 준비는 모두 완료했습니다. 언제든 철수할 수 있습니다!

……

장관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병사들 뒤에선 어떤 젊은 얼굴이 단말기를 들고 무언가를 간절히 빌고 있었다.

왜 아직도 연락이 안 되는 거야?!

해리조는 큰 불상을 모시듯 파오스에서 일괄 지급한 단말기에 대고 중얼거렸다.

제발... 응답 좀 해라. 이 기지마저 철수하면 너희들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이상 발생 당시, 해리조는 우연히 사람들이 없는 곳에 매복하고 있어서, 자신이 침식체의 첫 번째 습격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해리조의 시점에서 보면 동급생들의 신호가 어느 순간 일제히 사라졌다. 그 후 그는 겨우 몸을 숨길 곳을 찾았지만, 저녁을 먹으러 집에 불려 간 아이들 사이에서 숨바꼭질하다 혼자 남겨진 어린아이 같은 처지가 됐다.

해리조는 아무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 멍하니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공터에서 인생에 대해 고민하던 중, 병사들을 가득 태운 장갑차가 나타났다.

어른들은 이 멍한 파오스 소년을 차에 태웠고, 길고 험한 이동 끝에 그는 최신 장비를 갖춘 이 기지에 배치되었다.

통신학 성적이 좋았다던데?

? 네. 맞습니다! 장관님!

이렇게 해리조는 일련의 행운이 섞인 우연으로 임시 통신병이 되었다.

주변 소대와의 연락을 담당하면서도 해리조는 동급생들과의 연락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마음속 최악의 예감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player name], 바네사, 시몬... 다 끝장난 거야? 10등 안에 드는 세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해리조!

네!

자신의 단말기를 내려놓은 해리조는 장관에게 응답했다.

준비해라. 너는 우리 중에서 가장 어린...

정말 철수하는 겁니까?

해리조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졸업도 하기 전에 이렇게 많은 동료를 잃는다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해리조. 넌...

장관은 복잡한 표정으로 이 젊은이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해리조는 주의력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빼앗겨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해리조의 주머니 속 단말기에서 급박한 삐삐 소리가 울렸다.

!! 장관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 동기입니다! [player name]의 신호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해리조가 단말기를 들고 외치는 동안, 인간을 업고 질주하기 시작한 베라도 많은 것을 떠올렸다.

혹은 이 이상한 인간을 만난 후 베라는 항상 무의식적으로 자기 일을 다양한 모습으로 떠올리곤 했다.

먼저 떠오른 건 몇 번밖에 얼굴을 못 본 친부모였다. 하지만 너무 어렸을 때의 기억이었고, 부모의 흐릿한 그림자와 어머니의 비단 같은 붉은 머리카락만이 남아있었다.

귀찮은 친척들은 제쳐두고, 두 번째로 떠오른 건 의외로 교관과 의사였다.

베라는 교관이 늘 자신을 돌봐주었고, 심지어 졸업 후 좋은 자리도 신청해 주어 많은 더러운 일들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베라는 또한 의사 그웬니스가 자신의 후원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웬니스 자신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돈을 많이 벌지 못했지만, 그녀의 학업을 지원하기 위해 야간 근무를 하기도 했었다.

또 훈련하다 다쳤니? 꼭 그렇게 강도 높게 훈련해야만 해?

간단히 붕대만 감아줘. 고마워.

솔직히 말해봐. 또 누가 너한테 시비를 건 거지?

설마 내 "유치원"에 고자질하라는 거야? 난 상관없어. 게다가 그들도 꽤 처참하게 맞았어. 사관학교니까, 다들 폭력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좀 있잖아?

베라는 낮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한 명은 내가 꼬리뼈를 부러뜨려서 걸을 때마다 흔들거려.

베라!

하하하하...

그때의 베라는 아직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후원자의 돈은 헛되이 쓰지 않았어. 가장 강한 실력을 배웠고, 앞으로도 계속 진급할 거야.

유치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나중에 진급하면 그쪽 병원으로 옮겨. 내가 보호해 줄 테니 더 이상 3교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보호"... 들어보니, 역시 유치한 말이네. 이제 교정할 거니까 소리 지르지 마.

스읍!

자, 됐어. 졸업하고 나면, 우리 베라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그럼, 그때는 자유로워질 거야.

의사는 천천히 붕대를 감으며 중얼거렸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을 거야.

그웬니스는 진심으로 베라에게 축복을 보냈다. 퍼니싱이 발생하기 전의 축복을.

하지만 퍼니싱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을 때, 축복은 단 한 마디만 남았다.

베라, 절대...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함부로 자신을 부러뜨리지 마.

……

베라는 한 번도 그웬니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베라는 그웬니스를 따라 하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 문"을 막아섰다.

평범한 얼굴이 죽기 전, 베라는 자신의 팔을 희생했다.

허밍버드와 말 못 하는 소녀가 죽기 전, 베라는 자신의 왼쪽 눈을 희생했다.

베라는 한 번이 아니라, 매일 자신을 부러뜨리려 했다. 자기 피와 살을 바꿔 꿈을 이루려 했다.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남게 하려고.

모두 실패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어." 하나도 이루지 못했어.

오늘은 꼭 하나를 이루고 말겠어.

팔과 왼쪽 눈으로도 모자라면, 더 중요한 걸 바쳐서라도.

베라의 귓가에 인간의 짧아진 숨소리와 점점 가까워지는 침식체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베라는 가슴의 붉은 빛을 바라보았다.

<i>내 피와 살을 먹는 걸 허락할게. 태양의 불을 나눠가지는 것도 허락할게.</i>

<i>조그마한 불이 부족하다면, 태양 전체를 너에게 주마.</i>

베라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인간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사실 왕 할머니 일행이 자신을 인간 앞으로 들어 올렸을 때부터, 베라는 이 모든 "이어달리기"의 진실을 깨닫고 있었다.

밖에 있는 네가 지금쯤 많이 조급할 거야.

지금의 네가 아니라, 미래의 너말이야.

네가 정말로 해냈나 보네. 앞으로는 내가 너를 조금 의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

너 같은 사람은... 나중에 정말로 뭔가를 위해 죽으러 갈 때, 분명 많은 이들이 달려와서 말릴 거야.

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널 처음 만났을 때 난 네가 공중 정원의 온실 속 꽃이라고 했어. 그때 넌 그게 편견이라는 걸 증명하겠다고 반박했지.

넌 내 앞에서 이미 여러 번 증명했어.

이제... 내가 널 도울 차례야. 단순히 널 돕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야.

베라는 반쯤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었다. 햇빛이 인간의 윤곽을 유난히 선명하게 그려냈고, 그녀의 의식의 바다 속 찢어지는 듯한 고통도 점점 더 무시할 수 없게 커졌다.

네가 비극적인 결말로 무너지는 걸 원하지 않아. 그리고 나 같은 꼴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아.

난 나의 꼬마 지휘관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길 바라.

네게 속한 영웅 이야기가 처음부터 찬란하게 빛나길 바라.

베라는 이해했다는 듯 낮게 웃음을 흘렸다.

하하... 역시 좋은 축복은 아니네.

이렇게 하자. 이 모든 게 끝나고, 네 기억이 초기화되기 전에... 서로에게 "달려와서 만류하기."를 하는 거야. 모든 편견과 오해를 내려놓고, 평범한 전우처럼... 포옹하는 거지.

베라는 둘의 허리를 묶은 밧줄을 단단히 고정한 뒤, 인간의 허리에 계속 걸려있던 단말기를 빼냈다.

그리고 단말기는 일단 내가 가져간다. 쿠로노 구조체에 관한 정보가 가득 담긴 채로 제출되는 건 원치 않거든.

이 모든 걸 마친 후, 베라는 무기를 꺼내들고 뒤쪽을 향했다.

좋아. 내가 셋을 세면, 넌 샘플을 가지고 앞으로 달려.

걱정하지 마. 우리는 밧줄로 "묶여" 있으니까, 난 떠나지 않을 거야.

셋.

둘.

하나.

침식체들이 공격해 들어오는 순간, 인간은 쑤시는 다리를 움직여 크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밧줄이 펼쳐졌다. 인간은 밧줄이 빠르게 움직이며 내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허리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반대쪽 끝에서 베라가 버티고 있었다.

전투 소리가 빠르게 다가왔고, 베라의 총검이 재앙을 베어내고 있었다.

인간은 뒤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격렬한 전투 소리 속에서 앞쪽의 기지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해리조. 특별히 너에게 알려주려고 왔다.

우리는 철수하지 않는다.

모두 장비를 완전히 갖추고, 자신이 안전 구역의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생각해라.

우리마저 실패한다면, 이곳도 평지가 되도록 폭격당할 것이다. 절대로 재난이 퍼지도록 두지 않겠다.

하지만 넌 가장 어리니까, 너는...

!! 장관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 동기입니다! [player name]의 신호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구조에 지원하겠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장관님!!

감각을 잃을 때까지 달리는 인간은 여정의 종착점을 보았다.

도착하는 이의 상태를 확인했는지, 완전히 무장한 병사들 여럿이 앞쪽 기지에서 뛰쳐나와 인간을 향해 달려 나왔다.

이 순간, 모두가 영웅을 맞이하러 나왔다.

이날, 영웅은 마침내 필연적으로 자신의 것이 될 운명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영웅에게 훈장을 수여할 이는 없지만, 이런 여정 자체가 최고의 증명이었다.

"학생A", 그 모녀, 바네사, 시몬, 왕 할머니, 라이어, 셰퍼드...

그리고 공중 정원에 속하지 않은 한 구조체도 영웅의 용기를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렇다. 구조체 하나가 더 있었다.

그 붉은 형체를 떠올리자, 인간은 비틀거리며 땅에 무겁게 쓰러졌다.

하나하나의 이름들과 조각조각의 기억들이 흔들림과 함께 머릿속에서 흩어져갔다.

동시에,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 뻗어왔다.

하지만, 인간은 갑자기 머릿속 마지막 의문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밧줄이 이렇게 길었었나?

인간은 밧줄의 한쪽 끝을 보았다.

거칠게 잘린 밧줄이 땅에 끌려 있었다. 피와 순환액이 묻어있었지만, 유독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베라

……

흥......

상처투성이가 된 구조체가 침식체 하나를 떨쳐내고, 다시 한번 일어섰다.

의식의 바닷속에서 미래의 그 인간의 마인드 표식이 여전히 그녀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안정적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수년간의 단련이 결국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킨 거였다.

베라는 그 표식을 통해 고통을 살짝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꼬마 지휘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베라

이제 다 알겠어.

무너질 것 같은 휘파람 소리가 앞쪽 기지에서 들려왔다. 인간이 부르는 소리였지만, 베라는 응답할 여유가 없었다.

베라

너무 화내지 마. 그리고 너무 슬퍼하지도 마.

우리 사이의 허술한 시작은 정해져 있었어. 정말 이렇게 됐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끝없는 불만족이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몸부림쳤어. 그리고 마침내 미래의 어느 날 이어질 이야기를 맞이하게 됐어.

그래서 이건 비극이 아니라고 내가 말했잖아.

베라는 양날의 검을 부러뜨린 뒤, 양팔로 무기를 휘둘렀다. 불꽃이 눈꽃을 흩뜨렸다.

베라는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를 위해 칼춤을 바치고 있었다.

가슴속의 "생명"이 흘러 나가고 있고, 의식의 바다에서 오는 어둠이 그녀를 삼키고 있어도, 그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베라

"슬퍼하는 건 단 1초만."

1초가 지나면, 난 돌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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