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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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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2-14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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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의 과거에서, 모든 사람이 그녀를 "꼬마 지휘관" 앞으로 들어 올린 뒤, 자기 살과 피를 바쳤다.

베라는 이 인간을 끌고 마지막 여정에 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의식의 바다 세계가 투사된 것처럼 거꾸로 흘러갔다.

부스러기가 흩날리는 가운데, 셋은...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한 명과 한 쌍의 "연결된 이들"이 비참하게 관로에서 굴러 나와 유전자은행의 복도로 떨어졌다.

구조체를 업고 있던 인간은 이번 낙하로 꽤 심하게 다쳤을 텐데도, 잠시 숨을 고른 뒤 곧바로 몸을 일으켜 베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11%,12%……

마인드 표식이 기체 데이터의 동기화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비정상적으로 느렸다.

하니프가 먼저 몸을 굴려 일어섰다.

얼마나 쫓아왔나요?!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큰 구조체를 업고도 이런 것까지 신경 쓰시다니... 쿨럭쿨럭! 먼지가...

우선 그 위치 추적기를 보시죠. "이브"는 어디 있나요?

위치를 표시하는 붉은 점이 희미하게 표시되고 있었지만, 이 근처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역시 이 유전자은행 안으로 도망쳤군요. 가시죠.

이 외골격은 확실히 좀 무거웠는데, 하니프는 인간을 친절히 일으켜 주었다.

동시에, 하니프는 그 인간이 기회를 틈타 자신을 살피는 시선도 알아챘다.

왜 그러시죠? 질문이라도 있으세요?

그건 제가 쿠로노 소속이니까요. 이런 작은 비밀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죠.

출발하기 전에 이 유전자원 센터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봤다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절대 여러분을 해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여러분이 저를 쿠로노에서 데려 나가 주길 바랐고, 그 대가로 저는 여러분을 "보물"로 인도하려 했을 뿐이에요. 다만 그 과정에서 불운하게도 큰 문제가 발생했을 뿐이죠.

갑자기 왜 그런 세부 사항을 물어보시는 거죠? 이틀간의 고난을 함께했더니 드디어 제 매력을 발견하신 건가요? 아니면 스카우트라도 하고 싶으신 건가요?

하니프는 질문 자체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인간은 다시 한번 하니프의 옷깃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를 수송선에 "태웠을" 때, 외투 안쪽에서 작은 파오스 휘장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파오스 스타일이 뭐죠? 어제 저를 목 조르고 총까지 겨누던 지휘관님께서 제가 좀 "연기"를 한다고 미친 듯이 보복한 그런 스타일 말인가요?

지휘관님과 베라는 정말 한 통속이군요.

좋아요. 숨길 것도 없죠. 확실히 파오스 군사 학교를 졸업한 건 맞아요.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공중 정원과 관계를 끊었어요. 전 쿠로노의 충실한 개가 됐으니까요.

눈썹을 치켜올린 하니프는 여전히 "마음대로 생각하세요."라는 태도였다.

그저 그랬어요. 종합 평가에서 10등 안에 들었을 뿐이에요.

전 "수석"이 아니에요. 수석이란 자리는...

아니요. 빛 속에 서 있는 "영웅"이란 모습이 저와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에요.

하니프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말씀드려도 믿지 않으시겠지만... 제 혈육을 찾으러 왔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날뛰는 이합 생물들과 가족 관계를 맺으려는 게 아니에요.

전 제 진짜 출신을 찾고 싶었고, 마침 추적 결과가 이곳으로 이어졌을 뿐이에요. 태어나자마자 쿠로노의 통제를 받는다는 게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점이 그들의 눈에 들었는지 조사해 보고 싶었죠.

보세요. 역시 믿지 않으시죠.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네요.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가 결국 단순한 가정사에 불과하네요.

또 말이 없으시네요. 이게 지휘관님의 장점인 것 같아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시는 거요.

하지만 이게 바로 제 이야기예요. 지휘관님처럼 누구나 다 아는 영웅의 이야기는 흔치 않죠. 저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그림자 중 하나일 뿐이에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다 말씀드렸어요. 다른 질문이 없으시다면, 조금만 더 저를 믿어주세요. 게다가 지금은 상황이 매우 급박한...

하니프의 말을 끊은 인간은 손에 든 총을 가리키며 노골적으로 경고했다.

……

네. 알겠어요.

왜 갑자기 등을 보여주시는 거죠?

아... 진작에 발견하셨군요.

하니프는 부리를 잡힌 새처럼 날개를 접고, 전과 다르게 조용히 따라왔다.

인간은 베라를 업은 채 어둠 속을 큰 걸음으로 전진했다. 동시에 마인드 표식으로 기체의 의식의 바다와 연결하며 적응 과정을 가속했다.

영웅은 늘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존재였기에,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복도의 희미한 불빛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고, 하니프는 영웅의 그림자 속에 잠겨 숨을 여러 번 고른 뒤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았지만, 결국 모두 삼켜버렸다.

하니프는 자신의 타고난 숙명이 "모방"이었고, 오랜 시간 "그림자"가 되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은 하니프가 이 숙명에 반항하려 시도한 것이었다.

계략을 꾸미고 일부러 일을 망치는 것도 더 많은 자유를 얻으려는 하니프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자신이 모방해야 할 "영웅"에 대한 호기심이 자라나고 있었다.

하니프에게는 "출신"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태어날 때부터 가진 이름 하나뿐이었다.

그의 이름은...

네 이름은...

너는...

"헤인스".

작은 배아에서 인간의 형태로 발달하고,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이 점차 늘어나고, "자의식"이 빠르게 싹틀 때까지... 그의 모든 기억은 이 이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의 흐릿한 기억 속에는 총 10명의 "헤인스"가 있었고, 그는 10호였다.

1호부터 9호까지의 헤인스는 어른들에게 "유전자 결함"이나 "부적합" 같은 평가를 받은 뒤 차례로 사망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이익을 좇고 위험을 피하는 본능이 강했다. 죽음이 두려웠기에 "착하고 말 잘 듣는 것"이 살아남는 비결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림자" 역할에 적합했다.

네가... 마지막으로 걸러진... "헤인스"냐? 원래는 공중 정원에 배치됐던 건가?

헤인스가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군.

……

그는 이 이름을 가진 채 공중 정원의 청소년 육성 센터로 보내졌다. 쿠로노의 호의적인 사람들이 보내는 지원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혼란한 시기인 십여 년을 의외로 안정적으로 보냈다.

그는 후원자들의 말을 잘 따랐다. 무엇을 배우라고 하면 배웠고, 어떤 작은 부탁이든 도우라고 하면 도왔다.

그는 어떤 요구나 욕망이 없었다. 모든 행동의 근본적인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앞선 9명의 헤인스의 죽음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어떤 이름이 그의 귓가에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그날, 그는 공중 정원 곳곳에서 보이는 홍보 영상 앞에 멈춰 섰다. 모든 사람이 그 안의 회색 그림자에 시선을 빼앗겼다.

복귀 세레모니... 구조체 소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그리고 케르베로스 소대의...

승격자를 물리치고, 바다에서 온 희망의 불씨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희망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쿠로노의 후원자가 와서 새로운 임무를 설명해 줬다.

파오스 군사 학교에 들어가라.

이것이 그의 인생 최초의 긍정적인 "우연"이었다. 그는 즉시 자세를 바로 했다.

네. 적극적으로 임하겠습니다.

이렇게 순순히 승낙하다니? 왜지?

쿠로노 후원자는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네가 자라서는 틀림없이 연구직을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성격이 바뀌었나? 혹시 정말 너만 다른 건가?

누구와 다르다는 거죠?

"헤인스"는 그 아홉 명 말고도... 더 많이 있나요?

아니. 없어. 하하...

뭐가 그리 우스우신가요?

헤인스는 갑자기 수년간 자신을 실험해 온 사람들이 꼬리를 잡아 공중에 들어 올려 살펴보는 실험용 흰쥐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수년간, 이 이름으로 받아온 감시와 통제 그리고 이 이름 자체에 대한 불쾌감이 순간 폭발했다.

앞으로 계속 "헤인스"로 살아야 하나요? 그리고 파오스에 가서 당신들을 위해 일해야 하나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질문이 많지? 그냥 들어.

쿠로노 후원자는 몇 장의 동의서를 꺼낸 뒤, 화면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동의서는 길었고, 인공 태양이 저물 때까지 쿠로노 후원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간단히 말하면, 파오스 학교에 입학한 뒤 어떤 방식으로든 "수석" 자리에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해. 그걸 해내기만 하면 쿠로노의 지원은 계속될 거다.

반대로, 하지 못한다면 죽는다는 거겠죠?

그렇게 심각할 것 없어. 넌 다른 쓸모가 있을 테니까.

좋아요. 해낼게요. 이 파일들의 내용을 제가 이해한 대로 정리해 볼게요. 쿠로노는 또 다른 "수석"을 만들고 싶은 건가요?

잘 이해했군. 네가 여러 면에서 자질이 뛰어나고 순응적이니, 이 임무에 적합할 것 같아.

거기다 우리가 너한테 박하게 대한 적이 없잖아? 헤인스의 "인질" 중 하나였지만, 네가 공중 정원에서 누린 생활은 꽤나 좋았을 텐데.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어디에 서명하면 되나요?

쿠로노 후원자는 화면 한쪽을 가리켰다.

안심해. 이건 좋은 일자리야. 파오스 졸업 후엔 쿠로노가 너의 진로를 잘 정해줄 거야.

마음대로 하세요.

파오스 학교만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질 거야.

이렇게 생각한 그는 손을 들어 십여 년간 자신과 함께했던 이름으로 서명했다.

쿠로노 후원자

좋아. 그럼, 가서 다음 "수석"이 되어보라고.

파오스에 입학한 첫날, 그는 즉시 "성실하게"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그는 과거 학생들 명부를 넘기면서, 역대 수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size=50><b>파오스 군사 학교 설립 초기, 제1회 학생 수석, ■■■■, 실종.</b></size>

<size=50><b>제2회, ■■■■, 전사 확인.</b></size>

<size=50><b>제3회, ■■■■, 실종.</b></size>

<size=50><b>제4회, ■■■■, 구조체 개조 완료. 현재 정화 부대 소속...</b></size>

<size=50><b>제5회, ■■■■, 전사 확인.</b></size>

……

<size=50><b>제?회, 크롬, 구조체 개조 완료. 현재 집행 부대 차징 팔콘 소대 소속...</b></size>

<size=50><b>제?회, [player name], 현재 집행 부대 그레이 레이븐 소대 소속...</b></size>

탁.

……

더 이상 보기 싫어진 그는 역대 학생 명부를 닫았다.

그날 그는 입학식에도 참석했다. 강당의 조명은 인색하게도 운 좋은 소수의 사람만을 비추고 있었다.

그 몇 줄기의 빛을 조용히 바라본 그는 이 "임무"의 결말을 예상했다. 그는 빛이 닿지 않는 곳의 운명은 결국 "실종" 또는 "전사 확인"이라는 기록으로 남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야. 너는 왜 파오스에 입학하고 싶었어?

옆자리의 소년이 귓속말을 건넸다.

……

그는 심장이 북처럼 울리는 소리와 온몸을 휘감는 전율에 사로잡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죽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자신이 죽음에 가장 가까운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됐다.

이 전율은 신입생 첫 수업까지 계속되었다.

첫 번째 수업은 어떤 이론이나 실습도 아닌 기념 광장의 기념비 앞에서 진행되었다.

기념비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유일한 경계석이었다.

기념비에 빽빽하게 새겨진 희생자들의 명단에서, 그는 방금 명부에서 보았던 수석들조차 찾을 수 없었다.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머릿속에 파오스의 노래가 울리는 상태로 그는 기념비를 만져보았다.

그는 두 번째로 자신의 소망을 말하고 싶어졌다.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어?

와, 그런 옷차림으로 다니다니. 내일이면 교관이 네 귀에 달린 장신구들을 다 떼어버릴 거야. 강당에서 네 옷차림을 여러 번 눈여겨보더라.

뭐가 그렇게 불만이지? 다른 건 다 그대로고, 내 몸만 좀 꾸민 건데?

엥?

친근하게 다가오던 소년이 잠시 멍해졌다. 앞으로 같이 공부하게 될 친구가 이렇게 반응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화났어? 난... 난 그냥 말 걸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다들 네가 입학 테스트 종합 1등이었다고 얘기하길래.

잘하면 네가 미래에 우리 기수의 수석이 될지도 모르잖아? 하하하.

난 1등 같은 거 하지 않을 거야.

쿠로노의 계획은 마음속에 잘 새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계획보다 더 강하게 그의 마음 깊이 자리 잡은 것은 반항심이었다.

그렇긴 해. 나도 경쟁할 거니까, 하하...

이상한 녀석이네.

아직 내 소개도 하지 못했네. 난 비버야. 넌 이름이 뭐야?

비버는 헤인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학생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

내 이름은...

오랫동안 자신에게 붙어있던 이름이 입 앞까지 나왔지만, 갑자기 멈췄다.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 그는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마침내 기념비에서 하나의 평범한 이름을 발견했다.

…………

그는 정신을 차리고 비버가 내민 손을 잡았다.

타고난 "그림자"는 그 손을 꽉 잡은 채, 짧은 하루 사이에 벌써 세 번째 소망을 말하고 싶어졌다.

내 이름은...

그리고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스스로에게 진정한 이름을 부여하며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냈다.

하니프. 하니프라고 부르면 돼.

내 이름은 하니프고, 학번 1364야.

교무처 스태프

하니프... 학번 1364... 문제없어요. 졸업 자격 심사 통과, 졸업 평가 참여를 허가합니다.

하니프의 단말기는 교무처에서 발표한 테스트 공지를 즉시 받았다. 그는 그것을 읽으며 옆의 사람들 무리 속으로 걸어갔다.

<size=30>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교가를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졸업의 계절이 찾아왔다. </size>

<size=30>그는 스스로 이름을 짓는 순간부터 탐욕적이고 교활해졌다. 더 많은 걸 원하게 됐고, 지난 몇 년간 사소한 "반항" 행위도 점차 늘어났다.</size>

<size=30>예를 들면, 몸에 더 많은 장신구를 다는 것, 일부러 쿠로노가 요구하는 합격선에 맞춰 성적을 조절하는 것...</size>

<size=30>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size>

실전 훈련이 취소됐어. 지휘관과 구조체의 사상자가 너무 많아서... 협조할 인원을 내보낼 수가 없어서...

뭔가 무시당한 것 같은 느낌이네. 내가 현장에 나갈 수 있다면 분명 만점 받았을 텐데,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처럼 말이야!

(또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얘기네.)

하니프는 열띤 토론을 하는 사람들을 헤치며 지나갔다.

아직 낮인데. 그런 헛소리는 밤에 꿈나라 가서 하는 게 어때?

이 자식이!

비버는 재빨리 몸을 돌려 멋진 팔꿈치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익숙하게 막혔다.

유치하긴.

넌 아직도 그렇게 나불대는구나.

곧 파오스를 떠날 젊은이들은 한바탕 웃고 떠들다가, 각자의 홀로그램 시뮬레이션 캡슐로 흩어졌다.

심사는 예상보다 훨씬 간단히 진행되었고, 첫 번째 기지 구역도 빠르게 점령했다.

자신의 순위를 확인한 후, 하니프는 자신의 홀로그램 시뮬레이션 캡슐을 나왔다.

이곳은 감옥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상자처럼 좁은 방이었다.

하니프가 문 쪽에 있는 벨을 누르자, 짧은 전류 소리가 난 뒤, 무전기에서 감정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로노 조직원

순위는?

현재 10위에요. 이 정도면 당신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겠죠?

무전기의 반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니프가 말한 게 진짜인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잠깐의 정적 후,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로노 조직원

순위가 확인됐다.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다.

하니프의 앞에는 깊고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고, 통로 양쪽에는 똑같은 철문들이 있었다.

정말 "수석"을 만들어내고 싶은 건가?

어둠 속에서 하니프는 낮게 비웃었다.

3일째부터 거점 공략에 차질이 빚어졌다. 주공을 주장하던 학생들이 전략 거점으로 직행하려 했으나, 매복해 있던 적군에게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모두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고, 실제 전장을 시뮬레이션해서 만든 부상과 사망 상황은 더욱 끔찍했다.

으윽!!

침식체가 프리먼의 복부를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냈다.

프리먼! 내가 금방...

가지 마! 구할 수 없어! 저쪽엔 침식체가 너무 많아!

하니프는 비버를 잡아끌어, 침식체가 다음 칼을 휘두르기 전에 옆의 엄폐물 뒤로 데려갔다.

다음 공격만 시작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했잖아! 다른 방법이... 어떡하지?

지금은 어떤 지원이나 보급도 없어. 다른 이들을 기다려야 해. 더 이상 무모하게 나갈 순 없어.

알았어, 알겠다고!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지금은 철수하자! 하니프. 우리 일단 물러나서 다른 이들과 합류한 뒤 다음 기회를 노리자!

비버는 이를 악물며 상처를 묶었고, 좌절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고집이 얼굴에 드러났다.

……

역시 시뮬레이션 테스트일 뿐이구나.

하니프는 잠시 테스트를 종료했다.

쿠로노 조직원

아직 끝날 시간이 아닌데 왜 테스트를 중단했지?

다음 거점은 혼자서 할 수 없어서 다른 이들을 기다려야 해요.

이번 파오스의 졸업 테스트는 이전과 달라요. 소대 전술보다는 전체 전략 기획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요.

혹시 군부도 더 이상 당신들이 원하는 그런 "수석"을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아닌가요?

쿠로노 조직원

네 할 일이나 해. 추측하지 말고, 시험하지도 마.

"제 할 일이나 하고, 추측하지 말고, 시험하지도 말라"라... 재미있네요.

하니프는 귀중한 "30분의 자유시간"을 이용해 기념 광장에 가서, 습관적으로 수많은 영웅의 이름 아래 흰 꽃 한 다발을 내려놓았다.

기숙사로 돌아와 보관소에 지난 몇 년간 반복해서 검색했던 그 이름을 입력했다.

시뮬레이션 테스트 문제가 실제 있었던 일이라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전투 기록을 검색해 봐야겠어.

제한된 공개 자료가 눈앞에 비치면서 작은 기숙사 방을 밝혔다.

하니프의 망막에 1인칭 시점의 전투 기록이 재현되었다. 그러자, 화면 속 주인공이 무언가에 유난히 집착하는 것 같았다.

비참하게 기어가면서도 단 한 명의 동료도 버리지 않았고, 결국 처참한 상태로 목적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끌려온 이들은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전투 기록 화면에는 감정이 없다. 하지만 기록 영상을 통해 보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짙은 슬픔이 전해졌다.

흥, 시간 낭비였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까지 이런 무모한 짓을 하다니... 비버가 따라 하지나 않았으면 좋겠네. 가장 멍청한 방법이야. 모두를 구하려다가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게 당연해.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할 "그림자"들은 일찍 포기하는 게 맞아.

하니프는 전투 기록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어둠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림자의 존재... 나 같은 사람의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지?

하하... 이름 하나 지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네.

쿠로노 조직원

NO.1364. 금일 행적을 보고해라.

16:00에 출발해서 16:12에 상업 거리에 도착했고, 거기서 인공육 꼬치를 하나 샀어요. 이후 16:42에 도미니카 기념 공원에 도착해 잠시 앉아 있다가 17:00에 복귀했어요.

쿠로노 조직원

이번 주 내내 휴식 시간마다 도미니카 기념 공원에 가는 이유가 뭐지?

기념비 놓을 목 좋은 자리를 골라놓으려고요.

쿠로노 조직원

제대로 대답해.

진지하게 말하는 거예요.

하니프는 카메라를 향해 항복의 손짓을 했다.

이 일의 사망률이 높다는 건 계약서에도 명시되어 있잖아요?

전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졸업 후 절 어디에 배치할 계획인가요? 집행 부대? 정화 부대? 아니면 당신들의 사설 부대인가요?

쿠로노 조직원

이건 네 의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네가 알 필요도 없어.

가능하다면, 전 집행 부대에 가고 싶어요.

하니프는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혼잣말을 이어갔다.

적어도... 마지막엔 누군가 기억해 줄 이름을 남길 수 있잖아요.

쿠로노가 잠시 감시를 멈춘 사이, 하니프는 비버에게 연락했다.

너도 전투 사례를 보고 있었어? 별로 도움은 안 되더라. 이미 시도해 봤는데, 기록대로 작전을 짜봐도 결국 전멸했어.

날 너 같은 미생물과 똑같이 보지 마. 난 그런 기록을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래야.

? 그럼, 무슨 새로운 생각이라도 있어?

특별히 뛰어난 생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시뮬레이션 실전 테스트에서는 효과가 있을 거야.

다음 전투부터는 네가 근처의 모든 전투원을 지휘해 줘. 그다음 전투원들을 하나로 모아서 통합 작전을 펼치는 거야.

인해전술?

목적이 단순히 성공이라면, "수석"이 될 수 없는 이들을 희생시키는 건 상관없잖아. 영웅과 그림자의 구분은 소설에서도 늘 분명했었잖아.

게다가 우리에겐 시도할 기회가 무한히 있어. 이게 바로 전투 사례 기록과 가장 다른 점이지.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비버가 갑자기 하니프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잠깐, 그럼 너 자신은 뭐가 되겠다는 거야? 영웅이야? 아니면 그림자야?

난 수석 자리엔 관심 없다고 말했잖아. 계속 10등에 머물...

그래. 알아. 예전에도 들었어. 다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게 꿈이지만, 네 꿈은 희생자 추모비에 이름 하나 새기는 거라고, 맞지?

난 정말...

"정말"은 뭐가 "정말"이야? 긍정적인 대답 하지 마. 너 정말 그걸로 만족해?

비버는 하니프의 오랜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직설적으로 물었다.

너 정말 스스로 희생될 "그림자"가 되고 싶은 거야?

……

이런 질문은 역시 솔직한 사람이 대신 물어줘야 한다는 걸, 하니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

하니프가 고개를 들자, 앞에서 안도감을 주던 그 뒷모습이 돌아보며 자신에게 무언가를 당부하고 있었다.

말씀하세요.

……

당부를 마친 인간은 다시 큰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무거운 짐을 진 채 앞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흔들거렸다. 조금 전의 말투를 보니 정말로 학창 시절의 추억에 잠긴 것 같았다.

아니요. 지휘관님께서 잘못된 결정을 하신 거예요. 지휘관님과 베라가 이곳의 최고 전력이에요.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가 가장 먼저 포기되어야 해요.

아니면 전장에서 저한테 "난 누구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는 위대한 말씀이라도 하실 건가요?

하니프는 비웃으며, 예전에 봤던 우스꽝스러운 전투 기록을 떠올렸다. 그 기록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눈앞의 이 사람이었다.

됐어요. 제 생각을 고려하실 필요도 없고, 굳이 예시까지 들어가며 설명하실 필요도 없어요. 다 알아요.

전 지휘관님의 후배일 뿐이지,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게다가 저는 더 잘할 수 있어요. 지휘관님과는 다르니까요.

하니프는 갑자기 발걸음을 재촉해 선배를 앞질러 나가더니, 자신이 최전방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저는 겉으로만 살짝 다쳤을 뿐이에요. 부상자처럼 후방에 둘 필요 없어요. 제가 정찰을 맡을게요.

저는 flag 따위는 세우지 않아요. 그만 물어보세요.

모든 감정을 마음 깊숙이 감춘 하니프는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속에 새로운 희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쉿, "이브"의 위치에 거의 다 접근했어요.

들어보세요. 누군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