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2 성화의 귀결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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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2-9 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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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시공간의 끝에서, "나" 역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일단... 발부터...)

한쪽 발을 들었다. 땅을 밟았다.

(발... 다른 쪽도...)

다른 쪽 발이 따라왔다... 쓰러졌다.

"나"

후...

(앞으로... 가야... 해.)

(앞으로... 가야...)

멈췄다. 한 남자가 있다.

아, 네가 마침내 왔구나. 내 최고의 걸작.

"네가"?

나는, 따라 한다. 흉내 낸다.

이게 마지막 이야. 내가 열어주면 저 너머로 가면 돼. 그 뒤에는 너희들의 양분이 기다리고 있지.

남자, 쪼그리고 앉았다. 나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문을 열어줘. "나"를 위해.)

문 열어주기 전에... 이름 하나 가져보는 건 어때?

"이름"?

오, 고개를 갸웃거리네? 그냥 내 말을 따라 하는 거야, 아니면 생각하고 있는 거야?

하하하... 이 원숭이 같은 녀석, 원숭이도 여기까지 발전했나? 내가 정말... 너무 잘 만들었어... 웃겨 죽겠네...

남자, 고개를 갸웃거리네? 웃겨 죽겠네? 웃겨 죽겠네? 고개를 갸웃거리네?

뭔가가, 내 몸속에서, 꿈틀거린다.

자, 내가 조물주니까, 이름도 내가 지어줘야지. "이브"는 어떨까?

조물주... "이브".

이브.

하하하하! 역시! 너희들은 내 최고의 창조물이야. 내 유전자로 만든 아이답다니까! 앞으로 이 행성을 지배할 새로운 종족... 완전히 새롭고, 완벽한 존재! 그 이름값 하는군.

조물주, 웃는다. 문을 "돌려 열었다".

자, 문 열어줬어. 이 유전자은행에서 제일 두꺼운 대문이 너를 위해 활짝 열렸다고.

나는 대문을 바라봤다.

나는 따라 한다. 흉내 낸다.

(대문, 검은색... 나, 들어가야 한다.)

조물주, 쪼그리고 앉았다. 나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이리 와, 그렇게 한 발짝만 내디디면 돼. 이 뒤에 너희들의 에덴이 있으니, 실컷 사과를 따 먹어.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된다.)

무서워하지 마. 난 인류를 버린 신과는 달라. 난 너희를 가장 사랑하는 주인이니까. 이 에덴은 전부 너희 거야. 여기 있는 사과들도 너희한테 해가 되지 않을 거고.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된다.)

본능을 따라! 삼키고, 빼앗고, 흉내 내고, 배우고, 진화해! 이 문을 넘어! 문 안의 경비병들은 그저 하찮은 똥거름일 뿐이야. 무시해 버려!

"똥거름".

자! 뛰어!

(뛰어.)

더 빨리 뛰어! 그래, 바로 그거야!

(더 빨리 뛰어.)

후...

빠르게,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나는 빠른 걸음으로, 조물주에게 다가갔다.

후...

나는 바람을 가르며, 조물주에게 다가갔다.

멈춰 섰다... 조물주의 눈 속에 비친 나를 바라봤다.

하하하!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야? 인간의 눈으로는 네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어. 계속 뛰라고!

조물주가 멈춰 섰다. 손을 흔들었다. 나는 계속 달려야만 한다.

발을 내디뎠다.

그래! 바로 그거야! 달려! 하하하하하...

…………

나는 조물주를 바라봤다. 발을 내디뎠다. 빠르게 달렸다.

나는 대문을 떠났다.

나는, 세계로 들어갔다.

달리면서 느끼는 바람 소리,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의 느낌이 신기했다. 하지만 갓 태어난 "이브"는 아직 이런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브는 투명한 병들이 가득한 방으로 재빨리 뛰어들어, 본능적으로 어둠 속에 숨었다.

거기 누구 있나요?

……

누구신가요? 오늘은 혼자 당직인데... 실습생이 온다는 얘기도 없었는데?

이브는 선반 틈새로 하얀 가운을 입은 젊은 연구원을 발견했다.

(똥거름.)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은 이 기지에 일어난 이변을 전혀 모른 채, 이브가 숨어있는 샘플 선반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몸을 웅크린다.)

다행히도 연구원은 가장 위험한 모퉁이에서 멈춰 섰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설마 귀신이겠어, 에이.

연구원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

연구원이 사라지자마자 이브는 선반에서 뛰어나와 가장 가까운 샘플로 달려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겹겹이 쌓인 유리 용기 속에는 미세하게 떨고 있는 수많은 생생한 배아들이 있었다.

빼앗는다. 삼킨다.

우두둑우두둑... 이브가 유리를 깨부수자 그 소리에 멀어졌던 연구원이 다시 돌아왔다.

또 무슨 소리지? 설마 쥐가... 으악!!

연구원의 손에 있던 기구가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이브"를 가리켰다. 목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새어 나왔고, 얼굴의 "표정"은... 이브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너너 이이이게...

똥거름.

뭐뭐뭐야아아아... 경보! 경보! 경보!!

이브가 보기에 "똥거름"은 계속 소리를 지르며 벽에 달린 빨간 경보 버튼을 누르려 했다.

똥거름, 뛴다. 나, 빼앗는다.

5분 후, 축 늘어진 인간의 시체가 이브의 몸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끈적한 피가 자국을 남겼다.

이브의 목표는 진화였다. 똥거름을 처리하고 그에게서 뒤틀린 감정 하나를 배웠다.

([공포]의 표정을 짓는다.)

[공포]

이브는 [공포]를 음미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충격과 두려움, 그 자극적인 느낌에 빠져들게 되는 감각... 인간들이 늘 이런저런 활동으로 [공포]를 찾는 것도 이해가 됐다.

이브는 똥거름의 옷으로 갈아입고 온몸을 꽁꽁 감췄다. "공포"의 표정도 숨겼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걸었다.

방금 배아에서 얻은 유전자 정보를 곱씹으며, 완벽한 "학습"을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작은 방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고 있었다. 모두가 똑같은 두꺼운 방호복을 입은 채, 무감각하게 복도에서 걸으며 이브와 스쳐 지나갔다.

똥거름.

이브의 시선이 이 똥거름들 사이를 맴돌았다. 영혼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살의를 누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참는다. 빨리 뛴다.

이브는 새로운 세계의 첫 번째 존재였다.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이겨내야만 새롭고 완벽한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당직실

21:00:00

원 페어 4.

원 페어 7.

게임이 막 시작됐다. 몇몇 병사들이 의자에 기대앉아 심심풀이로 카드를 내고 있었다.

진짜 귀찮네... 밖에서 또 난리가 났다더라. 우리 섬이랑 제일 가까운 항구가 함락됐는데, 보육 구역에서도 꽤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미쳤다 진짜.

그래서 우리가 섬으로 온 게 잘한 거죠. 여기서 십 년 넘게 갇혀 있긴 해도, 안전하잖아요. 그 침식체들도 아직 바다는 못 건너왔으니까요.

야, 네 차례야. 원페어 7인데도 안 내고 뭐 해? 빨리 내.

나이 많은 병사가 구석에 있는 젊은 병사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젊은 병사는 카드를 쥐고 허둥지둥 순서를 맞추느라 바빴다.

아, 네네 지금 낼게요. 원 페어... 원 페어 8이요.

카드를 쪼개서 내냐? 그럴 필요 없어. 우린 그냥 심심풀이로 하는 거야. 인정사정 볼 것도 없어. 일부러 우리 봐줄 필요 없다고.

네네, 제대로 할게요. 진지하게 할게요!

뭐 또 긴장하고 그래?

급해하지 마. 아직 섬에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여기 사정을 잘 모를 수도 있지.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긴 하지만, 여긴 그냥 유전자은행일 뿐이야. 딱히 중요한 일은 없어. 쿠로노 내부에서도 "최고의 꿀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니까.

아,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그냥... 저는 그냥...

젊은 병사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거기엔 붉은 불빛을 깜빡이는 감시 카메라가 카드 게임을 하는 병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 감시기가 좀 신경 쓰여서요. 곳곳에 달린 걸 보니까 관리가 엄격한 줄 알았거든요...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어! 위에서 보고 싶으면 보라지, 우리가 뭐... 젠장, 어차피 이 망할 세상도 끝나가는데, 지금 안 즐기면 언제 즐기겠어?

원 페어 K.

뭐야? 원 페어 8 냈는데 바로 K를 내?

구석에 서 있던 복면을 쓴 병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낯선 체격을 보니, 신입인 것 같았다.

그래, 난 뭐가 없네. 네가 내. 어떤 좋은 패를 들고 있는지 한번 보자고.

탁.

말없이 서 있던 복면 병사가 천천히 카드를 꺼내 내려놓았다. 카드가 닿으면서 날카로운 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원 페어 3.

하하하하! 내가 뭐라고 했어. 왜 그렇게 급하게 카드를 내나 했더니, 원 페어 3을 쥐고 있었구나!

내, 내. 참나, 어린 것들이 말이야. 내가 카드 못 치는 너희들 봐주는 거다, 알겠냐?

나이 많은 병사가 손을 휘휘 저었다.

원... 원 페어 5요.

원 페어 5? 어디 보자... 저놈이 카드를 쪼개서 내는 바람에 우리도 낼 게 마땅찮네...

그나저나 벌써 9시가 넘었는데 연구원들이 아직도 밥 먹으러 안 갔네요.

또 야근하면서 혼나고 있겠지. 며칠 전에 너희 젊은 초병들이랑 같이 온 새 상사 있잖아.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완전 일벌레야. 매일 실적 내라고 닦달하잖아. 연구도 성과 위주로 하라고 압박하더라고.

나이 많은 병사가 감시기를 힐끗 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욕도 장난 아니게 하더라. 어제는 연구원들한테 "사람 꼴로 연구 성과는 못 내놓고, 매일 처먹기만 하면서, 결국 역겨운 것만 만들어낸다."라고 하던데... 하하하...

풉! 틀린 말도 아니네요! 하하하하...

당직실은 구석에서 엉망으로 카드를 내는 두 젊은 병사만 빼고 유쾌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저기... 한번 순찰이라도 돌아볼까요?

제가 여기 있는 동안 계속 지켜봤는데, 연구원들이 아무리 그래도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식사도 제때 했거든요. 근데 오늘은 정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 같아요... 하나도 안 들려요.

하하! 설마 그 연구원들이 뭔가 큰 사고 쳐서 다 죽은 거 아냐? 황금시대 영화에 맨날 그런 거 나오잖아. 연구원들이 위험한 괴물 배아를 잡았다가, 결국 도망간 괴물한테 다 죽어 나가고...

그런 일도... 있었나요?

당직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마침 복면 병사 차례였는데, 그는 카드만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뭐 그렇게 무서운 얘기를 해서 애들 놀라게 해.

그냥 농담이야, 진지하게 들을 필요 없어. 뭐, 다른 데서는 그런 일도 있었다는데...

탁.

또 한 번 카드가 떨어지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복면 병사가 조금 전의 "3 원페어" 위에 조커 두 장을 냈다.

너 카드 룰도 모르는 거야?

나이 많은 병사는 재빨리 중년 병사와 눈빛을 교환했다. 한 손으론 카드를 쥐고, 다른 한 손은 조심스레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옆의 젊은 병사가 먼저 총을 빼 들며 튀어 올라, 복면 젊은 병사의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가면 벗어!! 좀 전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어! 너를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이 멍청한 **가 덜컥 손을 써버렸네!

순식간에 당직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다른 두 사람도 총을 꺼내 들고 일어나 구석에서 몸을 일으키는 복면 병사를 겨눴다.

세 개의 총구 앞에서 복면 병사는 천천히 양손을 들어 올리며 가면을 벗으려 했다.

움직이지 마!

나이 많은 병사가 먼저 손을 뻗어 가면을 확 잡아챘다.

서툴게 흉내 낸 "공포"의 표정이 모두 앞에 드러났다. 기괴할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빨리 뛰어.

이브는 번쩍이는 경보등 아래에서 당직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몸에 묻은 피와 살점은 닦을 틈조차 없었고, 성가신 인간의 옷도 벗어 던졌다. 이브는 걸음을 재촉하며 빠르게 도망쳤다.

똥거름도, 빨리 뛰고 있어.

저놈 잡아!!

등 뒤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아마도 나이 많은 병사가 죽기 전에 누른 경보 버튼이 귀찮은 일을 만든 모양이다... 병사들이 우르르 쫓아 나왔다.

(굴러서 피한다.)

당직실이 전부! 젠장, 엉망진창이야! 저 앞에 있는 놈, 절대 보통이 아니야!

이브는 네 발로 움직여보려 했지만, 진화 중인 이 몸은 더 이상 그런 원시적인 움직임에 적응하지 못했다. 두 다리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귀찮네.

총알 하나가 이브의 "어깨"에 박혔다. 짙은 악취가 나는 검은 물이 튀었다. 아직 진화 중이라 피 대신 이런 것으로 에너지를 운반하고 있었다.

**?! 역겨워! 뭐야 저건?!

방금 수색해봤는데... 연구실도 큰일 났어! 비상 대책 가동해!! 저기 도망가는 놈...

"똥거름" 병사들의 외침이 퍼지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심각한 상황임을 깨달았다.

저건 절대 인간이 아니야!!!

귀찮네!

빗발치는 총격이 이브를 쫓았다. 도망칠 틈도, 피할 여유도 없었다. 고속으로 날아오는 총알이 갓 만들어진 인간의 형상을 무참히 찢어놓았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귀찮네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똥거름!! 젠장!!!

도망치던 모퉁이에서 갑자기 무기를 든 녀석들이 더 튀어나왔다.

죽여! 똥거름!

이브가 달려들며 입을 벌렸다. 기괴하게 찢어진 입이 귀까지 갈라졌지만, 아직도 부족했다...

삼켜! 먹어! 똥거름을 먹어 치워!

우걱.

피가 사방으로 튀고, 뼈가 부서지고, 살점이 찢겨나갔다. 마치 낡은 천이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연구원의 머리는 처참히 갈라지더니, 순식간에 한입에 삼켜져 버렸다.

삼키고... 빼앗고... 흉내 내고... 배우고...

진화한다.

!!!

이브는 "똥거름"에게서 얻은 정보를 순식간에 분석했다. 그것을 씹어 삼키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을 이해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감정이 이브를 사로잡았다. "공포"가 주는 느낌을 훨씬 뛰어넘어, 마치 가슴속에서 터져 나올 것처럼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졌다.

너무 [즐거워].

이브는 머리 없는 연구원의 어깨에 매달린 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쫓아오는 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헤헤.

세계 최초의 "새로운 인간"인 이브는 유전자은행을 빠져나와 한 외딴섬에 도착했다.

도망치는 동안 삼킨 샘플들만으로도 충분했다. 넘쳐나는 정보가 끊임없이 이브의 몸 안에서 해석되고 있었다. 그 대문을 넘어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새로운 여정은 거의 "완벽한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바다만 뛰어들면... 대양은 건널 순 없겠지만, 물속에서 잠깐만 버티면 모든 게 끝날 터였다.

바다로 뛰어들기 직전, 이브는 마지막으로 한 번 뒤쫓아오는 놈들을 돌아봤다.

저들은 이제 더 이상 [즐거워]하지 못할 것이다... 이브와 같은 종족이 무리째 둥지를 떠났으니 말이다. 모든 "나"는 진화를 갈구하고, 모든 "나"는 똥거름을 사냥하고 있었다.

똥거름은 똥거름일 뿐, 새로운 인간의 디딤돌이 되는 게 당연한 운명이었다.

이브는 공포에 질린 저들의 얼굴을 보며, [즐거움]을 마음껏 발산했다.

히히, 잘 가.

이브는 해안가에 서서 몸을 날렸다.

(바다로 뛰어든다.)

이겼다!

물속으로 뛰어들며 생긴 거품들이 귓가에서 보글보글 울렸다. 마치 새로운 종의 탄생을 축하하는 듯한 섬세한 소리였다.

이브는 중력이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바닷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빼앗은 수많은 유전자가 몸속에서 빠르게 해석되고 진화하고 있었다. 매 순간 새롭게, "구 인간"이라는 종의 무수한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이브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 했다. 처음 본 인간의 감정이 [공포]였다면, 그보다 더 이전의 기억... 자신을 탄생시킨 그 남자... 문틀을 벗어나 진화를 추구하라고 격려하고 이름을 지어준 그 남자, 헤인스.

이제야 그때 헤인스의 표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광적인 [흥분]이었다.

[흥분].

갑자기 멀리서 거대한 파도가 밀려왔다. 익숙한 동족의 기운도 파도와 함께 밀려왔다. 지금 이 순간, 하필 이 외딴섬 근처에서 배 한 척이 침몰했는데, 그 배에서 퍼니싱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브를 더욱 흥분하게 한 건, 바다에 홀로 빠진 구 인간의 존재를 감지했다는 사실이다.

이 구 인간은 다른 똥거름들과는 뭔가 달라 보였다.

(빠르게 그 구 인간을 향해 헤엄쳐 간다.)

구 인간은 두꺼운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그 외투는 물에 젖으면 무거워져서 오히려 심해로 끌어당기는 돌덩이가 될 터였다.

퍼니싱의 눈에 비친 구 인간의 몸은 마치 실로 한 겹 한 겹 감싸 놓은 것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운명의 실에 묶인 자였다.

이게 어느 세계의 투사일까? 아니면... 착각인가? 그저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평범한 구 인간일 뿐인가?

([흥분]하며 다가간다.)

어찌 됐든, 이 구 인간에게선 정말로 방대한 정보가 느껴졌다. 맛보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브의 손이 구 인간의 드러난 발목을 감쌌다. 정보를 삼켜야 했지만, 퍼니싱의 침식으로 구 인간의 피부가 순식간에 썩어들어가고 붉은 살점이 드러났다.

구 인간의 발목을 잡은 손에서 저도 모르게 힘이 빠졌다. 이브의 마음속에 이상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안타까움]?

하지만 이 구 인간이 가진 정보는 너무나 방대했다. 그것은 빠르게 이브를 휘감았고, 그 순간 "구 인간"이라는 종 전체에 대한 해석이 급격히 가속화되었다.

멍한 상태에서, 수많은 구 인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의 목소리가 모두 바닷속을 울리며 퍼져나갔다.

사람들의 말:

"넌 내 아이야. 내가 사랑하는 보물이야."

"넌 나의 꼬마 지휘관, 네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길 바라."

"넌 우리의 희망이야."

"넌..."

…………

이브는 구 인간의 부름에 빠져들었다. 그 따뜻한 감정에... 순식간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저도 모르게 간절히 부르고 싶어졌다. 조물주 헤인스를 부를 때처럼 조심스럽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구 인간처럼 이 사람을 부르고 싶었다.

어머니...

갑자기 이브의 몸이 무겁게 끌려갔다. 구 인간의 발목에서 거칠게 떨어져 나간 후, 눈 깜짝할 사이에 물 밖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 매달렸다.

이브

▃▇▂▄█▄▄!!!

이브

으읍! 스읍!!!

이브가 미친 듯이 몸부림칠 때마다 몸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선명한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가 허리까지 바다에 잠긴 채, 위험할 정도로 매혹적인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이브

너무 가까워▆▆▇▅▂!

베라

이 섬의 벌레들이 왜 이리 점점 인간형에 가깝나 했더니...

뭘 처먹었길래, 누구한테 부추김을 받았길래 갑자기 사람이 되고 싶어진 거야?

현실을 똑바로 봐. 내가 알려줄게...

베라는 이브를 노려보며 잔인하고 조롱 섞인 미소를 천천히 지어 보였다.

베라

귀여운 녀석, 넌 그저 죽어 마땅한 이합 생물일 뿐이야.

이브

!!!

([공포].)

치익.

베라가 든 어마어마하게 긴 창이 이합 생물의 몸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