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2 성화의 귀결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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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2-7 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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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다시 땅에 부딪혔고, 찌릿한 통증과 함께 어떤 기억이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흐려져 갔다.

불안한 표정의 파오스 학생, 구석에 쓰러진 연구원, 땅바닥에 떨어진 상자...

그 학생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 샘플은... 목숨 걸고... 가져온 거야... 정말 중요해...

이 샘플은 정말 중요한 거라고! 앞쪽 임시 안전 구역으로 꼭 가져가야 해! 절대 잊지 말고!

학생이 뭔가를 외치고 있었지만, 귓가에는 비행기 소리만 울려 퍼졌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인간은 문득 "이름도 못 물어봤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학생은 자기 할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쓸만한 물건들을 인간의 품에 닥치는 대로 쑤셔 넣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호루라기와 작은 칼까지, 모든 걸 평가에서 늘 1등을 하던 이 동급생에게 맡겼다.

그 학생은 이 동급생을 믿었다.

넌 샘플을 챙기고 연구원과 함께 탈출해. 시간이 촉박하긴 해도 가능할 거야... 내가 금방 잠금 해제할 테니까. 넌 앞쪽 안전 구역에 있는 사람들한테 직접 전달하면 돼. 그럼 내 임무는 끝나는 거야.

"학생 A" 같은 건 아니라고!

자, 부탁할게!

그 학생은 있는 힘껏 밀어냈다.

우우웅...

머리의 혈종이 또다시 악영향을 끼쳤다. 기억이 물결처럼 밀려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새로운 "재가동"이 시작되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폭격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간은 "샘플"이 든 작은 상자를 꽉 끌어안고, 등에 업은 연구원을 단단히 붙잡은 채 충격에 대비했다.

이어폰으로 베라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들려왔다. 모녀를 폭격 구역 밖으로 데려갔고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는 말이 희미하게 들렸다.

베라와 만날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많은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 모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파오스 학생의 임무도 진짜였으며, 그 학생을 도와 암호도 풀고 중요한 샘플도 가져왔고, 마지막 연구원까지 구해냈다고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이 많은 일을 해냈으니, 분명...

하지만 이 기억들이 점점 흐려져 갔다.

이 멍청아!!

눈을 다시 떴을 때, 베라가 눈앞에 있었다.

?

불쑥 튀어나온 말은 마치 고집부리는 것처럼 들렸다.

따로 행동하는 동안 실수 하나 없이 잘 해냈고, 영웅처럼 굴더라도 성공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기억은 조각만 남긴 채 사라져갔다. 가슴엔 복잡한 감정이 묵직하게 눌러와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이번이 처음으로 실제 지상을 밟아본 것이었고, 처음으로 이런 광경을 본 것이었으며, 처음으로 이런 감정을 느껴본 순간이었다.

만약 이것이 많은 선택의 "도화선"이 될 거라면, 반드시 기억해야만 했다.

하지만 베라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영웅담 따위를 들을 여유가 없다는 듯이 화난 표정으로 인간을 바닥에 눕히고 그 위를 덮쳤다.

귀가 먹었어?! 엎드려!!

수많은 말들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온전한 문장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폭탄이 휘파람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졌다.

구조체의 체온이 "강제로" 인간을 감쌌고, 구해낸 여성 연구원까지 함께 보호했다.

구조체의 체온을 느끼는 순간, 인간의 머릿속에 이상한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쾅...

폭격과 함께 기억도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이제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었다.

충격파가 생존자들을 스쳐 지나갔고, 옷을 통해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모래 먼지가 온몸을 뒤덮었다. 다행히 구조체의 보호 덕분에 인간은 다치지 않았다.

연기가 걷히자 베라는 머리카락의 먼지를 털어내며 인상을 찌푸린 채 인간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 아니 잠깐, 그걸 왜 그렇게 붙들고 있어!

베라는 마치 딱딱하게 굳은 돌덩이를 파내는 것처럼, 강제로 여성 연구원의 팔을 그 인간의 손에서 "떼어내듯" 빼냈다.

방금 발견한 건데... 이 사람은 이미 죽었다고!

하지만 그 인간은 창백하게 변한 연구원 시체의 손목을 꽉 붙잡은 채, 쉽사리 베라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어서 놓지 못해! 시체를 왜 끌고 다녀! 침식되고 싶어서 환장했어?!

한 시간만 눈 좀 뗐더니, 이런 걸 주워 오고 있네! 그 손에 든 건 또 뭐야? 상자?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베라는 연구원의 시체를 인간의 품에서 빼내고는, 습관적으로 시체의 가슴에서 천으로 된 이름표를 떼어냈다.

인간은 낯선 작은 상자를 끌어안은 채, 분한 듯 땅을 세게 내리쳤다.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모랫바닥을 손에 피가 나도록 내리쳐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연약한 인간은 결국 육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옆구리 상처에서 진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방금 있었던 전투와 도주 때문에 상처가 더 벌어진 것 같았다.

그만 때려! 네 머리가 망가졌잖아, 발악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옆구리 상처와 두통이 한꺼번에 몰려와 인간은 고통에 몸을 웅크리려 했다.

탁!!

베라가 양손으로 "탁" 하고 인간의 얼굴을 세게 감싸 쥐고, 머리를 단단히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player name], 날 봐!

순간 세상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인간의 눈앞에는 베라의 분노에 차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보였다.

그런 걸로 괴로워하지 마!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네가 이러는 건 아무 의미 없어. 게다가 상처도 벌어질 수 있다고. 네 상처에 쓴 재료가 얼마나 귀한 건지 알기나 해? 너 같은 게 열 명 죽어도 못 갚을 만큼 귀한 거라고!

그래, 이게 맞아.

베라의 표정이 점점 복잡해져 읽기 힘들어졌다. 눈앞의 사람이 얼마나 혼란스러워하는지 이해한 듯, 평소보다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네 임무만 기억해. 너는 그저 너 자신과 재료만 지키면 돼.

마지막으로 그녀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네 기억이 또 재가동된 것 같네...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줄게.

날 그냥 "하운드"라고 부르면 돼. 난 공중 정원에서 널 감시하라고 보낸 구조체야. 자세한 건 안전 구역 가서 네 단말기 노트를 확인해 봐.

양쪽 일 다 처리했으니 빨리 철수하자. 방금 폭격으로는 침식체를 다 못 없앴을 거야. 여기 오래 있을 순 없어.

(쿠로노가 근처 거점에서 피해를 당했으려나...)

걸을 수 있겠어?

인간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자, 베라는 손을 놓고 인간을 일으키려 했다.

업혀.

인간은 고집스레 베라가 보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상자를 꼭 끌어안았다.

……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인간도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었다... 아니, 잊어버린 것이다. 결국 희미한 목소리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녀도 운 좋게 폭격에서 살아남았고, 이곳으로 피난 온 다른 난민들과 함께 서로 부축하며 나왔다.

제발... 저희도 데려가 주세요.

언니...

난민들은 눈앞에 서 있는 유일한 희망인 구조체를 애원하듯 바라보며, 마치 자신의 목숨을 이 강한 전사에게 맡기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쯧...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저 사람한테 물어봐.

베라는 짜증 난다는 듯이 인간을 돌려세워 애원하는 사람들과 마주 보게 했다.

자, 또 기억을 잃은 대단하신 지휘관님, 네가 불러온 골치 아픈 상황을 똑똑히 보시지.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함부로 다른 사람의 책임, 특히 목숨 같은 건 절대 네가 짊어지려고 하지 말라고. 그런 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이건 내가 오랜 시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이야.

인간은 눈앞의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베라는 그 모습을 보고 비아냥거리듯 눈을 치켜뜨려고 했다.

그 표정을 보니, 당장은 이해 못 하겠지? 흥, 괜찮아. 넌 앞으로도 계속 "구세주" 놀이를 하다가 결국 실망만 하게 될 거야...

하지만 지휘관은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고,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쓰러지기 직전, 베라는 재빠르게 인간의 몸을 붙잡았다. 그리고 인간이 끝까지 놓지 않던 작은 상자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었다.

[player name]!

베라의 다급한 외침이 귓가에 울렸지만, 인간은 이제 눈을 뜰 수 없었다... 구조체와 달리, 이 육체는 한 번 건드리면 부서질 것처럼 너무나 약했다.

???

멍멍!

의식을 잃기 직전, 인간의 귓가에 희미한 브레이크 소리와... 강아지가 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