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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거리 한구석에서 온몸을 떨고 있는 한 여자가 권총을 들고,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침식체를 겨누고 있었다.
오지 마! 조준... 조준...
그녀는 무기를 들어 침식체를 위협해 보려 했지만, 곧 그게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지 깨닫고 말았다.
그녀가 반걸음 물러서려는 순간, 다리가 덜덜 떨고 있는 어린 소녀와 맞닿았다.
!
엄마... 지금 다가오고 있어요... 그 오빠는 연락도 없고...
여자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빨리 도망가... 어서! 엄마가 금방 따라갈게!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무서울 게 뭐가 있어! 어서!
쉬이익!!!
침식체가 순식간에 모녀 앞까지 다가왔다. 여자의 눈동자에 검은 그림자가 급격히 커졌다.
!!!
여자는 비명을 참으며 총을 높이 들어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엎드려!!
붉은 그림자가 날아와 두 사람을 한꺼번에 땅으로 밀어냈다.
바로 다음 순간,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연기가 걷히고 나서야 여자는 몇 번 기침하며 겨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붉은 머리의 여성 구조체가 일어나 먼지를 털더니, 여자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갔다.
총은 압수야. 이건 더 잘 다룰 수 있는 사람한테 넘길 거니까.
안 돼요! 돌려주세요!
여자는 본능적으로 총을 되찾으려 손을 뻗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위기 속에서 이 총은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방어 수단이었다.
쯧, 역시 이런 "뒤치다꺼리"는 나랑 안 맞아... 설명하는 것도 귀찮으니까, 저 녀석한테 맡길게.
꼬마 지휘관!
구조체는 짜증 난다는 듯 옆에 있는 인간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 인간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는데, 어디 의료소에서 도망쳐 나온 듯 보였다. 배와 얼굴이 온통 붕대로 감겨 있었다.
알아들었어? 은인인지 강도인지 구분할 수 있다면 입 다물고 따라와. 내 선의는 하루에 한 번뿐이니까.
공중 정원... 당신들도 공중 정원 소속인가요?
우리 말고 다른 공중 정원 소속인 자들을 봤다는 거야?
여자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베라는 경계하듯 바라봤다.
그렇다면...
저 사람들도 구해주세요!
!
여자가 갑자기 베라 앞으로 달려와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한 남학생이 계속 우리를 데리고 도망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애한테는 더 중요한 임무가 있었고, 같이 있던 연구원도 다쳤어요... 그러다 보니 결국 여기서 발이 묶였어요!
아니...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어요! 아마 저 건물 뒤에 있을 거예요. 제가 안내해 드릴 수 있어요!
그 아이가 공중 정원에서 왔다고 했어요! 파오스 학원 사람이래요!
공중 정원보다 몇 배나 더 넓고 황량한 지상에서 활동하다가, 갑자기 이 익숙한 단어를 들으니 마치 집에 돌아온 것처럼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베라의 생각은 달랐다.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 생각 없어. 내가 책임질 건 너뿐이야, 꼬마 지휘관.
그자가 살아있다면 진작에 이 모녀랑 같이 나타났겠지. 자기가 가지고 다니던 총까지 남한테 맡길 리가 없잖아.
베라는 여자에게서 빼앗은 총을 인간에게 던졌다. 총의 디자인과 문양을 보니 분명 파오스의 제식 무기가 틀림없었다.
손 치워. 내 몸에 손대지 마.
베라는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여자의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
하지만 그 인간은 베라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동료의 판단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에서 뭔가 더 합당한 이유를 찾으려는 듯했다.
단말기에 직접 기록해 둔 "기억 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일기에는 임시 의료소에서의 어느 날 밤, 베라가 그의 병상 옆에서 휴면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벌어진 일이 담겨 있었다.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임시 지휘관"도 지휘관이니까, 결단을 내려봐.
흥, 잘난 척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놓길 바라. 아니면 네 입을 꿰매버릴 거니까.
너 정말...
배에 구멍 뚫린 주제에 큰소리치기는. 진통제가 아직도 덜 깬 모양이네.
그딴 시시한 이유로는 날 설득 못 해. 거울로 네 정의감 넘치는 그 표정 좀 봐봐. 솔직히 말해, 너 그냥 영웅 놀이하고 싶었던 거잖아. 이 모녀 구할 때도 그랬고.
그딴 시시한 이유로는 날 설득 못 해. 거울로 네 정의감 넘치는 그 표정 좀 봐봐. 솔직히 말해, 너 그냥 영웅 놀이하고 싶었던 거잖아. 이 모녀 구할 때도 그랬고.
베라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날 구하겠다고 무턱대고 뛰쳐나왔을 때랑 똑같네.)
"태생적"으로 사명감이랑 정의감 넘치는 놈들 몇 봤는데, 너도 딱 그 부류 같네. 혹시 네가 자란 환경 때문인 거야?
말해봐,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하, 진짜 듣기만 해도 토 나올 것 같은 멍청한 소리네.
미안한데, 난 너랑 완전 정반대야. 난 상황을 완벽히 통제 못 하면, 남부터 의심하는 성격이거든.
베라는 갑작스레 날카로운 칼날을 여자의 목덜미에 들이대며 동맥을 겨눴다.
!
꼬마 지휘관, 잘 들어둬. 영웅 놀이 하고 싶으면 그만큼 책임도 져야 해. 난 네 발판 노릇 안 할 거야. 적어도 지금은.
각자 행동하자. 통신은 계속 연결해 둘 테니까. 네가 그렇게 배짱이 좋다면 이 모녀랑 같이 가. 운 좋으면 그 파오스 학원 놈도 구할 수 있겠지.
내가 친절하게 침식체는 막아줄게. 하지만 30분이 한계야. 그때까지 "좋은 소식"을 못 들고 오면, 모두 버리고 갈 거야.
아, 그리고 하나 더...
베라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녀를 노려보며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순진한 척하면서 뒤통수 치는 "난민"들 많이 봐왔거든. 그러니까 꼼수 부릴 생각 하지 마. 누가 말 안 듣는 기미라도 보이면, 어디로 도망가든 끝까지 쫓아가서 처단할 거야.
…………
다들 알아들었어?
베라는 칼날로 여자의 목을 가볍게 툭툭 건드리며, 다른 칼끝은 임시 지휘관을 향해 겨누었다.
바로 그때, 머리 위로 폭격기 한 대가 지나갔고, 베라의 예민한 청각 모듈이 위험한 소리를 감지했다.
칫, 운도 더럽게 없네. 침식체들이 벌써 쫓아왔잖아.
뭐 하고 있어? 빨리 움직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