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0년 11월
잘 회복되고 있어서 다행이야. 치명적인 화재 현장을 겪고도 팔에 화상 흉터만 남았으니, 기적적으로 살아난 거야.
당장 흉터가 남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어. 군 병원에서는 미용 치료까지는 안 해주지만, 외부 성형외과에서 시술로 거의 흔적 없이 치료할 수 있으니까.
식단 관리만 잘하면 기타 주의 사항은 없을 거야. 베라? 내 말을 듣고 있니?
의사는 베라의 팔에서 붕대를 떼어내며,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를 다시 불렀다.
응? 응, 듣고 있었어.
아예 안 들은 것 같은데! 자기 일에 신경을 더 쓰는 게 그리 어렵니? 임무 수행할 때마다 다치고, 평소 훈련할 때도 다치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베라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의사의 "걱정 가득한 표정"을 슬쩍 확인했다.
됐다, 됐어... 넌 원래 이런 성격이었지. 신중했다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지도 않았을 거고.
좋은 소식이 있어. 네가 불길 속에서 구해낸 부상자가 의식을 되찾았어. 한 달 동안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맸지만 결국 기적처럼 회복했대.
기적 같은 소식에 베라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순간의 동요를 애써 감추듯 차분한 표정을 되찾았다.
다행이네.
면회하러 가볼래?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이제 일반 병실로 옮겼어.
아, 응.
……
의사는 베라의 집중하지 않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책상을 내리쳤다.
베라! 내 눈을 보고 말해!
!
지난번 붕대 교체 때도 똑같이 멍한 눈빛이었어. 무언가 깊이 고민하는 것 같은데... 혹시 졸업과 관련된 고민인가? 처벌 기간은 끝났을 텐데, 아직도 졸업에 문제가 있는 거니?
……
날 "끌어들이려는 놈들"이 더 이상 날 가두려 하지만 않는다면, 졸업은 문제없을 거야.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베라의 손가락이 팔뚝의 깊은 흉터를 더듬었다. 순간 그날의 맹렬한 화염 속으로 의식이 빨려 들어갔다.
그때 베라는 탈출하는 무리에 휘말려 쓰러졌고, 순간 의식이 현실에서 떨어져 나가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낯선 감각은 피부 깊숙이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온몸의 뼈와 살이 얼음처럼 차가운 금속으로 뒤바뀐 듯했다. 겉모습은 변함없었지만, 내면은 이미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지금 의족 생체공학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지?
의족? 생체공학? 갑자기 그걸 왜... 설마 "로봇으로 진화"하려는 거 아니지?
그냥 궁금해서.
음, 그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긴 하지. 특히 의족 생체공학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시장성도 높은 편이야.
생체공학계의 권위자인... 리스턴 교수를 아니? 인체 기계화 개조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졌어. 다만 최근 몇 년은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외부 활동은 잘 안 한다고 들었어.
그 부분이 궁금하다면, 내가...
그렇다면... 전신을 완전히 기계체로 대체하는 기술도 존재하는 걸까? 생체 조직의 흔적을 아예 없애버리는 그런 기술 말이야.
기술 자체는 존재하지, 우리 군사 구역에서도 간혹 최첨단 기밀 프로젝트들을 다루고 있거든.
얼마 전에 들은 소식인데, 완전한 기계화를 이룬 사례가 있다고 하는데, 생체 조직을 첨단 합금으로 대체하고, 뇌와 신경마저 특수한 방법으로 저장하는 거야.
맞아, 바로 그거야... 어딘가 비슷해.
그웬니스는 말을 멈추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베라를 살펴봤다.
너... 뭔가 심상치 않은데,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느껴져. 우리가 알고 지낸지도 벌써 몇 년이니, 네가 수상한 말을 하는 건 꼭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분명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만해, 베라. 네 안전을 위해서 이 대화는 여기서 멈춰야 해. 이제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 네가 다음에 어떤 충격적인 결정을 내릴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워.
의사가 물건을 정리하고 일어나서 밖으로 걸어갔다.
방금 네가 화재 현장에서 구조한 환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가보자. 이제부턴 그 사건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해.
베라는 병실 유리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봤다.
그날의 "진압" 작전 중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고, 베라의 후방 지원 소대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변이" 실험체들의 포위 속에서도, 소대는 불길에 갇힌 민간인 한 명을 구해냈다.
소대 대장은 구조된 사람의 신체에서 "변이" 징후가 없다는 걸 반복해서 확인한 후에야 군 병원 이송을 최종 승인했다.
회복 상태가 예상보다 더디네.
병실의 환자는 여전히 깊은 혼수 상태였다. 한쪽 팔을 잃었고, 병원복 아래로 보이는 피부 곳곳에는 아물어가는 화상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가까스로 명줄을 붙잡은 거지.
넌 아마 몰랐겠지... 실은 그가 오랫동안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거든, 그런데 깨어나자마자... 그 빌딩이 정말 불타 사라졌는지 묻더라고.
베라는 그 말을 듣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래서?
건물이 전소됐다고 알렸더니, 갑자기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어. 결국 의료진이 진정제를 투여한 후에야 안정을 찾았지.
뭔가 수상한데...
뭐라고?
아니야, 나머지는 내가 확인해 볼게.
베라는 창문 너머로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를 지켜보았고, 그가 상처 입은 육신으로 연명하는 모습을 주시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네가 이 세계에서 숨을 거두기 전... 네 잔여 가치를 한 번 더 이용해 볼까?
사관학교
사관학교
"붉은 머리의 베라"가 병원에서 돌아와 사관학교 복도를 걸었다.
복도를 가득 메운 학생들 사이를 지나쳤지만, 그 누구와도 인사는 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졸업 시험 때문에 바빴고, 합격만 한다면 각 부대에 배속되어 현재 평화 체제 아래서 안정된 지위와 보장된 미래를 얻을 수 있었다.
각자 바쁜 일상에서도, 모두는 늘 홀로 다니는 베라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또 외출이야? 군 병원에 치료받으러 간 모양이네.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완치가 안 됐나? 의료 지원을 제대로 활용하는군.
3소대의 대장이 베라를 막아서며 독기 어린 목소리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지난 작전에서 네가 위험을 감수하며 구해낸 단 하나의 존재... 이런 공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인정받을 자격이 있겠어?
팔의 화상 자국은 어떻게 됐나?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나았어?
유치하네, 비켜.
베라는 이 "관심의 본질"을 정확히 알아챘다. 자신의 의도치 않은 공적 인정에 대한 그들의 "견제"였다.
지난번에 얘기했던 그 제안은 생각해 봤어?
졸업 후에 우리와 함께 후방 지원으로 배치받는 게 어때? 3소대 대원들 대부분이 이미 결정을 마쳤거든.
너한테 제안하는 것도 벌써 두 번째잖아. 눈치껏 행동해.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 신중하는 게 좋을 거야. 북극 항로 연합 국경처럼 척박하고 고립된 곳으로 "좌천"되는 일도 있으니까.
이게 제안이야, 협박이야?
베라가 발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조소를 띄웠다.
"베라의 능력이면 후방 지원대의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겠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거잖아?
졸업 전부터 네 경력을 받쳐줄 발판을 마련해서, 탄탄대로를 걷겠다는 거지? 세계를 너무 순진하게 보는 것 아닌가?
베라는 소매를 걷어 올렸다. 불꽃이 새긴 참혹한 낙인이 드러났다.
최전선에서 가서 흉터를 더 남긴다 해도, 너희 같은 집단과 어울리는 것보단 백배는 나을 거야.
하하... "황금시대가 길러낸 가축 떼"라는 말이 있는데, 꼭 너희를 보는 것 같군, 퉤.
젠장, 사람을 역겹게 만드는데 재능이 있다니까... 베라!! 넌 정말 고마운 줄도 모르냐!
베라는 차가운 표정을 한 채, 분노에 치를 떠는 소대 대장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한 마디면 상대의 자존심을 더 짓밟을 수 있었지만, 무의미한 언쟁에 시간을 낭비할 여유 따윈 없었다.
눈앞의 소소한 다툼보다 더 큰 임무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긴 복도를 지나 목적지에 다다른 베라는 조심스레 노크를 한 뒤, 사무실 문을 밀어 열었다.
그리고 화재에서 구해낸 그 "인질"에 관해서라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
장관의 맞은편에는 세련된 정장 차림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지난 "진압 작전"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중이었다.
미안. 나중에 다시 올게.
아니, 잘 왔어. 베라, 일단 옆에서 들어봐.
베라... 그 "인질"을 구조한 학생이구나.
힐다는 오른손을 내밀어 베라와 악수를 나눈 뒤, 자신의 신분증을 제시했다.
난 감사원의 힐다야. 이쪽으로 와서 들어봐.
힐다가 손짓하자 베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 옆에 똑바로 섰다.
마침 네가 구조한 그 "인질"에 대해 논의 중인데... 그의 신원을 확인해야 되거든. 현장 최초 접촉자로서, 네가 파악한 정황을 듣고 싶군.
알았어.
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의 안면부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야. DNA 분석 결과도 데이터베이스상 매칭되는 기록이 전무해서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가설은 이거야.
힐다는 베라에게 자료 하나를 건넸고, 베라는 즉시 확인했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그 건물은 카퍼필드 그룹 소속 생명공학 회사 본부였어.
기업 실적은 무난했고, 카퍼필드도 크게 관여하지 않았어. 최근 인수합병 논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특이 사항은 없었지.
이전 핵심 사업은 시장에서 성행하는 "유전자 선별" 프로젝트였는데, 상류층 고객들 사이에서 상당한 수익을 창출했어.
부모의 우수 유전자를 선별해 최적화된 태아를 "설계"하는 기술이야. 유전성 질환과 발달 장애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정당성을 내세웠지.
베라의 "분석"이 끝나자, 장관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하지만 힐다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중요한 발견이 있어. "인질"의 피부에 심각한 화상 흔적이 있었는데, 정밀 분석 결과 그 자국에서 특정 코드가 발견됐어.
실험 샘플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건가?
가능성이 매우 높아. 시설 내에서 발견된 다수의 "괴물"들을 고려하면, 인체 실험 정도는 그들에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을 거야.
하지만 현시점에서 이런 정황은 매우 의심스러워.
음? 네 생각을 말해봐.
베라는 잠시 생각에 잠긴 채 시선을 책상으로 돌렸다.
장관.
장관은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베라, 자유롭게 분석 의견을 제시해. "논리적 모순점"이 있더라도 괜찮아.
알았어.
최근 구룡 부희 연구소는 스캔들로 과학 이사회 윤리 위원회의 조사를 받았고, 엄중한 제재가 내려졌어. 다수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됐지.
이러한 사례들을 고려해 볼 때, 생명공학 회사가 위법 연구를 수행했다면, 실험실을 분산 배치하고 완벽한 보안망을 구축했을 테지.
도심 중심가의 본사 건물에서 실험 개체들이 "공공연히" 출현했어. 게다가 규정을 위반한 인체 실험을 진행했고, 일반 시민과의 접촉마저 있었지.
경영난을 겪고 있었더라도 인수합병은 긍정적인 출구전략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행태는 기업의 존폐를 위협하는 자멸적 행위야. 마치 위법 사실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지.
결국 이는 누군가가 실험 품들을 의도적으로 유출했으며, 증거물로 "인질" 한 명까지 남겨둔 계획적 폭로로 보여.
베라의 논리적 추론에 힐다는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음... 결국 이것은 "정의의 심판"을 의미하는 건가?
언론의 보도가 벌써 있어야 하는데...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왜 관련 뉴스가 전혀 없을까? 외부에서는 이 사건을 단순 진압 작전으로만 인식하고 있어.
당신들이 언론 통제를 한 건가?
베라는 미묘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무언가 어긋난 듯한 위화감이 스쳐 갔다. 마치 중요한 단서를 놓친 듯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힐다는 베라와 시선을 교환한 뒤 휴대용 모니터를 건넸다. 화면에는 영상 파일이 저장되어 있었다.
맞아. 우리가 언론 통제했어. 이거 때문인데, 한번 봐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제가 리스턴입니다. 자기소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상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인체 기계화 개조"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으며, 그 최고의 성과물이 지금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연구진 전원과 실험실에서 진행된 모든 연구는 윤리 규정을 준수하였으며, 정기적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비윤리적 행위는 일절 없었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제부터는 실명을 밝히고 고발하겠습니다. 저는 본인의 전직 제자 헤인스를 고발합니다.
헤인스는 저의 연구실에서 재직하던 시절부터 인체 개조 실험을 위해 불법적인 경로로 연구 대상을 확보했습니다.
당시 헤인스는 카퍼필드 그룹 산하 생명공학 회사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제가 해당 기업을 방문하여 헤인스의 불법 행위를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채용을 강행했습니다.
현재 확보한 정황상 해당 기업은 불법적인 유전자 데이터 수집과 배아 배양 실험을 진행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직접적 증거 확보에는 한계가 있으나, 관련된 정황 자료와 문서 일체를 전달해 드렸습니다. 철저한 검토를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화면 속의 리스턴이 손을 들자 화면이 꺼졌다.
리스턴 교수는 독특한 스타일의 학자야. 항상 이런 식의 명쾌한 화법을 구사하지.
두 달 전 리스턴 교수가 본부로 이 제보를 보내왔어. 정보의 중대성을 감안해 해당 기업에 대한 공개 조사를 실시했지. 조사 과정에서 기업이 경영난으로 인수 절차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어.
조사 결과 윤리적 위반 사항은 발견하지 못했어. 고발된 "헤인스"도 생물학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지. 다만 안전성 검증을 위해 프로젝트는 잠정 중단 조치했어.
표면적으로는 모두 정상이었어. 적어도 그 시점에는... 그 시설에서 "괴물들"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지.
……
뭔가 이상해.
베라의 눈빛이 번쩍였다. 중요한 실마리를 찾아낸 듯했다.
앞선 추론에 보충 설명이 있는데... "근거가 미약한 추정"일 수도 있어. 시간을 낭비할까 주저되네.
우리끼리 하는 대화일 뿐이야. "공식 분석"이 아닌 이상 너무 부담 갖지 마.
고마워. 그런데 헤인스의 현재 소재는 파악되지 않는 상황인 거야?
그래, 화재 발생 시점과 헤인스의 실종 시점이 겹쳐.
게다가 연구진 상당수가 희생되거나 다쳤고, 연구 자료도 소실됐어.
누군가가 이 실험의 실체를 의도적으로 "폭로하려 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발견한 그 "인질"도 계획적으로 남겨둔 증거일 수도 있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처음부터 이것이 진짜 시나리오였던 걸까?
베라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누군가가 카퍼필드 그룹 계열사에서 핵심 "순수 영역" 연구를 확보했어. 그리고 수년 후, 스승의 제보로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조사 대상이 된 거지.
그토록 공들인 연구 성과가 한순간에 붕괴됐다면, 내가 그 위치였어도 "복수"를 계획했을 거야.
내 "걸작"은 원래 황홀한 데뷔를 할 예정이었어.
그리고 나는... 최전선에서 내 작품이 공개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싶었겠지.
베라의 손가락이 팔뚝의 깊은 흉터를 더듬었다. 순간 그날의 맹렬한 화염 속으로 의식이 빨려 들어갔다.
폭탄이 베라의 머릿속에서 터졌고, 그 불길은 그날의 참상처럼 맹렬히 치솟았다.
펑.
군 병원에 수용된 그 "인질" 외에, 두 달 만에 이런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할까?
그가 바로 "헤인스"일 가능성이 높아 보여.
하지만 그의 DNA 정보는 헤인스와 일치하지 않아. 유전자는 생체 고유의 암호인데, 어떻게 자신의 유전 정보를 변조할 수 있다는 걸까?
현재의 생체공학 기술로도 기존 신체를 고성능 로봇 의족으로 대체할 수 있고, 생물학적 기능 강화도 가능하잖아...
헤인스가 그 이상을 넘어 유전자 조작 기술까지 완성했을 수도 있어.
본체에서 실현할 수 없다면... 다음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윤리적 논란이 되는 클론 기술은 원래 이런 불법 연구의 핵심 주제잖아. 무분별하게 시신을 도용한 연구자가 이런 윤리적 기준을 고려했을 리 없어.
지금 기술로는 "도주"의 선택지가 무한하니까.
……
힐다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장관을 향했다.
당신 분석이 정확해. 베라를 단순히 "미친 여자아이" 정도로 평가절하할 순 없지.
그녀의 통찰력은 날카롭네.
이미 예측했었지. 베라의 역량이 이번 작전에 완벽하게 부합한다는 걸.
베라, 추가 증거 확보가 필요해. 네 임무는 군 병원의 "인질"에 대한 지속적 관찰이야.
용의자의 혐의가 입증되어 체포될 때까지야.
정식 졸업 평가 전까지는 이 감시 임무에만 집중해. 이번 건이 최우선이야.
그렇다면 기존의 집중 훈련은...
그쪽도 제외하도록 해. 일부는 이미 소속될 부서가 확정된 듯한데, 네 경우는 그 방향과는 맞지 않으니까.
알겠어!
불꽃 같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베라가 장관실을 나섰다. 이번 임무 배정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증거이자, 졸업까지 시간을 확보했다는 안도감이 가슴에 퍼져나갔다.
장관실에 남은 두 관계자의 대화는 이미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교관이라는 신분으로 생활하는 소감이 어때? 그것도 엄격한 교육자 이미지까지 연기하면서.
음... 학생들 앞에선 교관다운 권위를 보여줘야 하니까. 아직 표면적 위엄에 더 현혹되는 연령대라서 말이야.
처음부터 이곳은 임시 거처에 불과해. 더 머물다가 나까지 철모르고 충성만 외치는 두 번째 멍청한 꼭두각시가 될 테니...
그래서 말인데, 이번엔 왜 날 찾아온 거야? 또 영점 에너지 원자로 점화 때문이야?
형식적인 "의식" 따위엔 관심 없어. 술을 마시고 싶다면 그냥 사무실에 한두 병만 놓고 가.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영점 에너지 점화와 연관은 있지만, 이번엔 누군가의 말을 전하러 왔어.
그 이름들은 꺼내지 마.
그래. 안전 정보국이 원자로 주변에 특수경비대를 배치해 점화 작업을 보호할 거야. 신임 안전국장이 현장 지휘를 맡는다더군.
신임 안전국장이 네 협조를 요청했어. 가까운 위치에 있으니 말이야.
단순히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응, 맞아.
……
힐다는 장관의 눈을 고요히 마주한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알았어, 한번 생각해 볼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