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12-2 눈덩이
><i>"나는 잔혹하게 살해당한 연작의 그림자고,</i>
<i>범인은 유리창의 거짓된 하늘빛이다."</i>
2160년 10월
3소대, 위치 보고해.
15층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지시 기다리는 중입니다.
너희들이 위치한 곳엔 적군이 없어. 기억해, 너희는 수색 구조만 담당하는 거야.
전처럼 부적절한 경쟁 행위가 반복된다면, 소대 전체가 졸업 자격을 상실하게 될 거다.
문 뒤에 웅크린 청년들은 그 말을 듣고 눈빛을 교환하더니, 일제히 시선을 줄 끝의 그녀에게로 돌렸다.
그녀는 군모를 쓰고 있었는데, 군모 아래로 붉은 머리카락이 삐져나와 귓가를 어지럽혔다. 마치 주인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닮기라도 한 듯했다.
하, 저 친구만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한다면, 소대 임무 수행에 차질이 없을 텐데.
착각하지 마. 내가 있으니 소대의 임무 수행이 순조로웠던 거야. 현실을 알면서도 말만 앞세우는 모습이 안타깝군.
모두 정숙하고, 임무에 집중하도록!
60초 후 목표 지점 돌파 개시한다. 실전인 만큼,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유지하거라.
소대 대장의 억눌린 탄식과 무전기에서 울리는 경고음조차 그녀의 무심한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 붉은 머리의 그녀는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
지금 그 태도는 뭐지? 후방 대기 위치에서 명령대로만 움직여. 명심해... 베라!
그래, 그럴게.
3소대 대장은 베라의 반응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오늘은 왜 이리 조용한 거지? 평소였으면 이미 격한 반응이 나왔을 텐데...
그때 건물 아래에서 날카로운 군용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삐익!
3소대! 작전 돌입! 대문 제거!
3소대 대장의 수신호가 떨어졌다. 철제 방벽에 설치된 폭약이 작렬하며 진입로를 개방했다.
돌격 개시!
파괴된 문을 박차고 돌진하는 소대의 움직임이 번개 같았다. 총구를 겨눈 채 일사불란하게 내부로 진입했다.
내부 생존자 응답하시오! 구조대가 도착했습니다! 안전이 확보되었으니 응답해 주십시오!
소대원들은 총구를 겨눈 채 화재 현장을 수색하며 선두의 동선을 따랐다. 베라만이 후방 위치에 배치되었다.
민간인 구출 임무인데, 굳이 이런 "과잉 경계 태세"가 필요할까?
베라, 넌 현재 전방 작전 투입 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다. 다음번 규정 위반 시 전체 부대원의 임무 자격이 박탈될 수 있어.
현재 임무는 생존자 수색으로 제한한다. 모든 사각지대를 철저히 점검하라.
각자 맡은 구역을 나눠서 수색하는 게 어때? 진입로도 확보하면서 꼼꼼히 살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한데 모여있으면 시간만 낭비될 것 같아.
참 재수도 없네, 베라, 네가 또 마음대로 움직일까 봐, 우린...
비켜!
으윽!
대장이 눈을 깜빡일 새도 없이, 베라의 발차기가 폭발하듯 날아들었다. 대장의 몸은 테이블을 넘어 뒤로 쓰러졌다.
!!
"거대한 개"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대장이 있던 자리를 덮쳤고, 턱이 허공을 물어뜯으며 섬뜩한 소리를 울렸다. 한순간의 차이로 대장의 목숨이 살아났다.
베라는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그 거대한 개를 제압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앞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대장은 귓가를 스치는 총성 속에서 경악했다. 어둠 속에서 검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무리의 형체가 보였다.
대장은 눈앞의 광경을 표현할 말조차 찾지 못한 채, 무전기를 움켜쥐고 단 한 마디를 내뱉었다.
"괴물"이다!!
후퇴해! 전원 즉시 후퇴!
베라는 한 손으로는 계속 사격하며, 다른 손으로 대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동료들과 발맞춰 후방으로 빠져나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지? 우리가 받은 건 "진압" 그리고 "구출 임무"였을 텐데...
설마 날 응징하겠다고 임무의 실상을 감추고 부대를 최전선으로 끌고 온 거야?!
헛소리하지 마!!
우린 그냥 졸업도 안 한 학생들이라, 출동을 해도 단순 후방 지원이나 하는 수준인데, 이런 극비 작전에 투입될 만한 자격도 실력도 없다고! 게다가 너랑 아무리 원수지간이어도 목숨까지 걸진 않아!
이곳이 생명공학 회사 건물이라는 점을 주목해. 예측에 없던 "괴물들"이 나타난 걸 보면...
회사 측이 이렇게까지 진실을 은폐했다니! 저 기업들은 이익 앞에서 양심도 버리는군. 너와 함께하는 작전은 항상 위험했어. 지난 임무도 그랬지만, 이번엔 완전히 통제 불능 상황이 되고 말았다고!
대장은 극심한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로 무전기를 움켜쥐고 후방 지원 3소대가 직면한 긴급 상황을 보고했다.
교관님! 이 연구소에서 불법 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철저한 수사를 요청드립니다!
현장에서 돌연변이 생물체들을 목격했습니다.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개와 다리가 달린 물고기입니다. 극도로 높은 공격성을 보이며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무전기에서는 잡음만이 메아리쳤고, 차가운 정적만이 되돌아왔다.
쯧, 뭔가 일이 터진 것 같아.
일단 철수해!
베라는 후미를 방어하며 문밖으로 빠져나온 뒤, 실험실 내부의 "괴물"들을 향해 마지막 탄환까지 집중적으로 사격했다.
음영에 가려진 모퉁이에서 순간적인 움직임이 시야를 스쳤다.
!
단 1초 망설였을 뿐이었다.
"개"가 섬광처럼 달려들어 베라의 종아리를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 충격에 베라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모퉁이 벽에 강하게 후려쳐진 머리에서 충격이 퍼져나갔다. 시야가 흐려지며 의식이 아득해졌다.
몸속에서 이상한 증상이 퍼져나가는 것을 감지했으나, 긴박한 상황에서 확인할 시간조차 없었다.
흐려진 의식 속에서 현실과 다른 차원의 풍경이 번득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