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9 새벽과 황혼의 그림자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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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9-18 꿈을 엮는 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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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화 섬 상업 계획 기획 본부

정원 그룹

11월 아침 날씨 맑음

여기 내 입도 신청서다. 필요한 자료는 다 가져왔으니 문제 없겠지?

사오토메 박사님, 자료는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습니다만...

왜 그러지?

죄송하지만, 박사님의 연구 경력에 약물 남용, 규정 위반 실험 등 여러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그런 건 너희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이잖아?

날 초대한 건 너희들이면서, 왜 이제 와서 그걸 가지고 고민하는 거지?

저희는 박사님의 연구를 지지합니다. 오히려 저희는 박사님의 도전적인 면을 높이 평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도 명단을 과학 이사회에 제출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그들은 저희처럼 융통성이 있지 않습니다.

"교사" 명단에서 박사님의 이름을 보게 된다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으십니까?

즉시 박사님의 급진적인 연구 방식을 섬의 연구 방향과 연관 지을 겁니다.

박사님의 입도가 거절될 뿐만 아니라, 수국화 섬 전체 상업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겁쟁이들이 연구 방향을 좌우하다니, 모든 인간의 수치야.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연구를 "교육"이라는 목적으로 위장하면 됩니다. 이를 위해 학교를 설립할 예정입니다.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는 주목받기 쉽지만, 고등학교는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누가 고등학교에서 첨단 분야 연구를 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박사님께서 고등학생의 "보호자" 자격으로 입도하신다면...

박사님의 이름을 "학생 가족" 항목에 숨길 수 있습니다.

나보고 학부모로 위장하라는 건가?

맞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도 성공 사례가 있었습니다.

너의 생각에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 오류가 있어.

난 아이가 없어. 결혼한 적도 없고.

경력과 가정 모두를 완벽하게 꾸려 나가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더 할 말이라도 있나?

그럼, 입양은 어떻습니까?

입양?

서기관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내 서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이쪽으로 알아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리카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거기엔 보육원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예전부터 저희와 자주 협력해 온 보육원입니다.

제가 미리 연락해 두겠습니다. 도착하시면 담당자가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이후의 입양 수속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정원 그룹 산하 복지 시설

명함에 적힌 주소대로 한적한 보육원에 도착한 리카는 반신반의하며 문을 밀어 열었다.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의 마당에서 중년 남자가 리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오토메 박사님 되십니까?

그래.

저를 따라오시죠.

형식적인 절차이긴 하지만... 박사님 분위기와 어울리는 아이를 골라주시면 됩니다.

아시다시피, 사진도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모든 세부 사항에서 최대한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원장이 뒤쪽의 무거운 대문을 열자, 백열등 아래로 날리는 먼지 때문에 리카는 입과 코를 가렸다.

우아한 양장을 입은 남녀 아이들이 리카를 보자 곧장 몰려왔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박사님.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괜찮았다.

박사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이 너무 멋지세요!

박사님. 저와 잠시 이야기 나누실 수 있으신가요?

……

예상하지 못한 아이들의 열정적인 반응에 리카는 잠시 당황했다.

리카는 조심스럽게 아이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그들의 예쁜 얼굴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리카는 이 강렬한 열정 속에 숨겨진 냉담함을 간파했다.

어른들에게 배운 겉치레의 기술보다, 세상을 향한 아이들의 혐오감이 더 강하게 드러났다.

이런 감정들은 몇몇 아이들의 미숙한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아이들의 억지스러운 미소는 리카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오히려 거리감만 생겼다.

보시는 것처럼, 이 아이들은 모두 영리하고, 연령대 또한 다양합니다.

왼쪽에 있는 잭은 수학을 잘하고, 그 옆에 있는 도라는 물리를 잘하죠.

대부분 우수한 아이들입니다. 어떤 아이가 마음에 드십니까?

왜 굳이 나와 닮은 아이를 찾아야 하는 거지? 거울 보는 걸 좋아하나?

하하,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앞으로 가보시죠. 마음에 드시는 아이가 있을 겁니다.

리카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걸어가며, 여러 아이들이 하는 인사를 계속 받았다.

리카가 계단을 오르려 할 때, 구석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기침 소리는 웃음소리가 가득한 분위기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호기심에 고개를 돌린 리카는 구석에 혼자 웅크리고 있는 한 소녀를 보았다.

그 소녀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고, 책을 읽고 있었다.

리카는 왠지 모르게 이 소녀를 보자마자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리카도 혼자 책을 끌어안고 구석에 앉아 있곤 했다.

고독하고, 집중하며,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저 아이 말이야.

원장은 리카의 시선이 멈춘 것을 예리하게 포착하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전에도 손님이 데려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선천적으로 심장병이 있어서 몸이 좋지 않습니다. 사춘기를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손님"?

리카는 옆에 있는 남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이들을 상품처럼 거래하면서, 꽤 돈을 챙겼나 보네?

제가 무례했습니다. 사오토메 박사님.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알고도 찾아오셨기에, 개의치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

사오토메 리카는 한숨을 쉬고는, 더 이상 얽히지 않기로 했다.

저 아이 이름이 뭐지?

유우카입니다.

리카는 바닥에 앉아 있는 유우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유우카도 리카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았다.

발소리가 멈추자, 유우카는 조심스럽게 책을 덮은 뒤, 옆으로 치웠다.

<풍자화전>... 배우가 되고 싶니?

아니요. 그냥 시간 때우기일 뿐이에요.

박사님은 좋아하시나요?

난 예술을 잘 모른다. 기껏해야 겉치레하는 정도만 안다.

하지만 박사님의 구두를 보니, 수국화 무늬가 정교하게 수 놓여있네요.

사실 박사님은 세심한 분인 거 같아요.

유우카는 바른 자세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어 리카를 마주 보았다

그 우수 어린 눈동자에 리카는 본능적으로 숨이 멈췄다.

인형 같구나.

어떠십니까? 이 아이가 마음에 드십니까?

리카는 아무 예고도 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눈앞의 유우카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아! 박사님, 이러시면!

나와 함께 가고 싶니?

그래도 될까요?

내 성씨를 물려받게 되면, 앞으로 많은 사람이 널 싫어하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니?

여기 오시는 손님들은 저에게 말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저는 박사님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위선일 수도 있는데도?

우리 사오토메 가문에는 겉과 속이 다른 자선가들이 많아.

아니에요. 박사님은 재미있으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네.

바보 같은 아이구나. 난 널 이용하려는 건데.

그럼, 저를 이용해 주세요.

너는...

됐다. 아무것도 아니다. 유우카, 정말 좋은 이름이구나.

보육원에서 나오자,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하얗게 뒤덮은 세상에서 뇌 과학 연구 토론회의 검은 전용차가 유독 눈에 띄었다.

너희들의 절차는...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빠르구나.

그럼, 유우카, 잠시 여기에 있어라.

연구 토론회가 끝나면 데리러 오마.

유우카의 평온한 얼굴에 실망감이 스쳐 지나가더니 곧 평온을 되찾았다.

뭔가를 일부러 숨기려는 듯, 유우카는 두 손을 등 뒤로 감추고 얌전히 리카를 바라보았다.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바로 여기였어.

그 후 유우카는 보육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내 차를 쫓아 한참을 걸었었지. 그러다 눈밭에 쓰러졌어.

유우카를 다시 데리러 갔을 땐,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들었어.

파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리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리카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소녀를 바라보았다.

사오토메 박사님, 회의가 30분 후에 시작됩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가지 않겠다.

유우카의 당황한 시선 속에서 리카는 한 걸음 한 걸음 되돌아갔다.

유우카, 네 도움이 필요한 실험이 있다.

기꺼이 도와드릴게요.

아직 어떤 실험인지 말하지 않았는데.

박사님께서 필요하신 거라면 뭐든지요.

리카는 유우카 앞에 서서 바람과 눈을 살짝 가려주었다.

인간 의식의 성장 법칙을 관찰하기 위해, 네가 "평범한 소녀"가 되어주길 원한다.

잘 이해는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할게요.

유우카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평범한 소녀"라면, 박사님께서는 제 "어머니"가 되어 주시는 건가요?

……

연구자들은 종종 연구 성과를 "아이"라 부르고, 자신을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군요.

유우카의 눈빛이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그리고 등 뒤로 숨긴 두 손을 살짝 움츠렸다.

인간 사회의 모녀 관계는 지나치게 감성적인 상호작용이다. 이건 실험의 정상적인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아.

리카는 그 우수에 찬 눈동자를 바라보며, 문득 자신이 뭔가를 설명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제가 박사님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박사님"이라고 부르면 된다.

알겠습니다. 박사님.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리카는 유우카와의 거리가 아주 멀다고 느꼈다.

리카는 자기도 모르게 두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가, 코트를 벗어 유우카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어?

갑작스러운 행동에 생각이 흐트러진 유우카는 등 뒤로 숨겼던 손을 어쩔 수 없이 내밀었다.

이건... 수국화?

리카는 유우카의 손바닥에 있는 하얀 종이꽃을 가리켰다.

네. 박사님께 드리려고 만든 꽃이에요. 그런데... 아직 색을 칠하지 못했어요.

고맙구나. 손재주가 정말 좋은 아이구나.

괜찮다면, 내 거처로 돌아가서 같이 색칠하자.

정말 감사해요. 박사님.

유우카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유우카, 나는 네가 "평범한 소녀"가 되어주길 원한다.

유우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카가 이런 부탁을 또다시 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이게 네가 참여해야 할 유일한 실험이다. 이것 말고는 다른 실험은 없을 거야.

그리고 이건 실험이기 때문에 네 성장 데이터를 계속 기록해야 한다.

연구원으로서, 너와의 일상적인 접촉도 꼭 필요하다.

심지어 인간 사회에서 말하는 "모녀"처럼, 같은 주거 공간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그리고 매년 연구 성과를 논문으로 정리해서 뇌 과학 저널에 발표할 거다.

이 연구 주제는 내가 이 섬에 온 뒤로 유일한 업무가 될 거다.

그러니, 네가 다른 생각 없이 성장하길 바라. 할 수 있겠니?

네. 박사님... 기꺼이 할게요.

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눈보라가 점차 잦아들었다. 그리고 햇살이 가닥가닥 대지를 비추며 따스한 기운을 전해주고 있었다.

리카와 유우카는 나란히 눈밭을 걸으며, 크기가 다른 발자국을 찍어갔다.

리카는 흐뭇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럼, 유우카, 잘 부탁한다.

네. 박사님, 잘 부탁드려요!

리카가 눈을 떴다.

유우카의 입가에는 미소가 살짝 걸려 있었고, 달콤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적조가 포효하며 복도를 집어삼켰다.

리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유우카를 품에 안은 채, 몸을 바짝 웅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