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9 새벽과 황혼의 그림자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ER09-15 최고의 선택

>

당신의 이름은... 팔지 맞나요?

어.

팔지, 당신의 모든 신체 수치가 우수해서 수술 조건에 부합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왜 구조체가 되고 싶은 거죠?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나요? 전장에 나가면 언제든 죽을 수 있어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뭐라고요?

"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손에 든 단분자 진동검 "단홍"을 바라보며 팔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 검이 신조차 벨 수 있다면, 어쩌면 일말의 희망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다 쨍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부러졌다.

단홍, 단홍아, 결국 네가 먼저 부서지고 말았구나.

몸을 돌려 맞서 싸울 시간도 없었던 팔지는 간신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지만... 그마저도 늦어 버렸다.

위기일발의 순간...

이 정도까지 싸우다니 대단하네.

어느새 나타난 마사오가 칼을 휘둘러 팔지를 향해 내리꽂히는 침식체의 칼날을 막아냈다.

야, 팔지. 정신 차려.

때맞춰 오다니.

팔지는 말하면서 설택을 뽑아 검을 몇 번 휘둘렀다.

그쪽 상황은 어때?

뚫렸어. 뒷문이 이미 로봇 군대가 점령했어.

내가 부하들보고 철수하라고 했어. 계속 버티는 것도 방법이 아니잖아.

너도 철수했어야지. 여기 온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어?

방금 누가 널 구해줬는지 잊었냐? 그러니 날 너무 얕보지 마.

알았어. 원래 나만 못 나가는 거였는데, 이제 우리 둘 다 못 나가게 됐네.

그런데 이렇게 큰 소동이 났는데 섬 밖에서는 모르는 거야?

구조대가 오고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해. 그래서 지금은 버틸 수밖에 없어.

알았어. 앞은 나한테 맡겨.

그래.

침식체와의 정면 대결 끝에, 팔지와 마사오는 겨우 포위망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둘은 싸우면서 물러나다가, 숨겨진 창고 안으로 피신했다.

팔지가 문으로 들어오자마자, 오오사코 마사오는 무거운 물건을 가져와 문을 막았다.

계속된 질주 때문에, 마사오는 지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팔지는 조심스럽게 문가에 기대서서, 귀를 기울여서 밖의 동정을 살폈다.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아. 야. 마사오...

뒤를 돌아본 팔지는 지친 모습으로 바닥에 앉아 있는 마사오를 발견했다.

마사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교복의 가슴 부분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마사오가 손으로 상처를 누르고 있었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다.

미안해, 팔지. 결국 당해 버렸어.

로봇들이 정말 까다롭네.

마사오는 피를 토하면서도 웃었다. 그러다 곧 몸이 축 늘어졌다.

야, 오오사코, 버텨! 구조대가 곧 올 거야.

팔지는 당황해서 붕대 같은 걸 찾으려 했지만, 마사오가 말렸다.

늦었어. 난 가망이 없지만, 넌 아직 희망이 있어.

저 고철 덩어리들을 혼내줘야지.

정신 차려, 오오사코!

잘 들어. 팔지.

인간은 지지 않을 거야. 인간은...

말을 다 끝내지 못한 채, 마사오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젠장!

이런 곳에서 어떻게...

팔지는 부러진 "단홍"과 "설택"을 주워 들고 뛰쳐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를 막고 있던 침식체들 사이로 강제로 길이 열렸다.

팔지는 체육관과 강당으로 가서 그곳에 숨어있던 학생들을 이끌고 옥상으로 향했다.

얼마 후 그곳에 도착한 구조대의 수송기가 몇 차례에 걸쳐 생존자들을 차례로 데려갔다.

자신을 구조하러 온 군인에게 팔지는 서둘러 물었다.

유우카는 어디에 있어요? 그녀를 찾았나요?

유우카요?

사오토메 유우카요.

유감이지만, 유우카에 대한 소식은 없습니다. 구조된 명단에도 그녀의 이름은 찾을 수 없습니다.

잠깐만요. 계속 구조를 진행할 수 없나요? 유우카는 분명 학교에 있을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학교 내 인원들은 모두 대피 완료됐습니다.

제발요. 저를 내려보내 주세요. 제가 유우카를 찾을게요!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 당신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잠시만요. 새로운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군인이 몸을 돌려 위성 전화를 받았다.

네. 실험 구역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말하는 동안 고개를 돌려 팔지를 한 번 흘깃 쳐다보고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

학생. 방금 전 소식을 들었는데, 정확히는 다른 헬리콥터에서 온 소식입니다.

방금 말한 유우카가 오늘 아침 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로봇이 통제 불능이 되면서 건물이 붕괴하여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요. 유우카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말을 마치자 군인은 모자를 쓰고 자리를 떠났다.

팔지는 수송기 임시 좌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래서...

잠시 후, 팔지는 졸업식 리허설을 하고 있던 반 동창들도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수국화 섬과 정원 학원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침식체에게 점령당했다.

12월, 정원 학원 고등학교의 여름은 그렇게 끝이 났다.

팔지, 당신이 돌아가고 싶다는 그 "전장"이란...

제가 보기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보상 심리일 뿐입니다.

당신이 그 비극을 겪은 나이를 고려한다면, 그 기억이 당신의 뇌에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증오심을 품고 구조체가 된다 해도, 잃어버린 것들은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난 더 이상 생존자로서만 살아가고 싶지 않아!

지구 어딘가에는 분명 그때의 아이들처럼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오랫동안 난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지고 있었어. 그리고 이제는 지쳤어!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언젠가 후회하게 될까 봐 걱정됩니다.

후회하기 때문에, 퍼니싱을 물리치는 힘이 되기로 선택한 거야.

강해지지 않으면... 또다시 새로운 후회를 남기게 될 테니까.

구원을 위해 싸우겠다는 당신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습니다. 팔지. 당신은...

구조체가 되어, "무기"의 일부가 되길 원하십니까?

몇 번을 물어봐도 내 대답은 같아.

원해. 내가 계속 싸울 수만 있다면.

제발 날 구조체로 만들어 줘.

"아침 이슬처럼 사라진 팔지의 몸처럼, 지난 일들은 꿈속의 꿈이 되었다."

긴 환각과 기억의 여정을 거쳐, 팔지의 의식은 전장으로 돌아왔다.

팔지는 일부러 잊으려 했던 과거를, 지금 다시 마주하면서 그 잔혹했던 순간들을 모두 기억해 냈다.

환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꿈으로 들어온 걸까?

의식의 바다를 간섭하는 힘이 잠시 약해진 건 사실이야. 하지만 사라지진 않았어.

내 시점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시점도 볼 수 있어.

유우카, 네가 전하고 싶었던 게 이거야?

"강당으로 와, 팔지."

짧고도 선명한 고통이 팔지의 의식을 강하게 찔렀다.

팔지는 머리를 흔들며 교란에서 벗어나려 했다.

틀림없어. 유우카의 목소리야.

이제 때가 됐어. 유우카, 이제 깨어날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