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체?
어. 성갑충이 보내온 정보로 봤을 때, 실험의 핵심은 유우카라는 이름의 여성이야.
몇 분 전, 팔지가 설치한 통신 앵커 포인트가 공중 정원과의 연결을 복구했다. 그래서 임무 관련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송신하고 있었다.
기록상 표준에 맞지 않는 프로젝트 지출이 두 개가 있었어. 하나는 거대 신호 증폭 장치이고, 다른 하나는 코드가 누락된 임상 수술이야.
뇌 과학 연구소
수국화 섬 과학 연구 구역
11월 초 아침 날씨 맑음
내가 이사회에 참석하는 동안 사고를 치다니, 너도 제법 성장했구나. 코헤이.
죄송합니다. 박사님. 하지만 이번 실험은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과학 이사회가 완전히 개입하기 전에 성과를 낼 수 있다면... 학계에서도 우리의 노력을 인정해 줄 거라 믿습니다.
유우카의 몸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겠지?
제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해결 방법을 찾았습니다.
예전에 학계에서 인체 개조에 대한 연구가 있었는데, 초기 단계의 진전까지 이룬 상황입니다.
구조체 개조 수술을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그 수술을 언급했으니 말해봐. 성공률이 얼마지?
성공 확률은 아직 매우 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실험을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아시다시피 구조체는 일반인보다 신체 기능이 훨씬 뛰어날 뿐만 아니라, 고도화된 의식 구조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오토메 리카는 코헤이의 발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든 기록을 넘겨보고 있었다.
긴 침묵 속에서 한 장, 또 한 장 넘기는 오래된 종이 기록본의 소리만이 들렸다.
연구 기록을 보시고 싶은 거라면, 죄송하지만 그건 아직 실험실에 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건 유우카 양의 병력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게 바로 병력이야.
의식 투사는 의식 연결의 한 분야로, 연구 초기부터 구조체의 의식 구조를 기반으로 진행됐어.
공중 정원의 예산 기준과는 맞지 않았어. 하지만 선행 조건들과 프로젝트의 다른 용도를 고려해 보면, 그 임상 수술이란 게 아마 구조체 개조 수술이었을 거야.
왜 처음부터 개조를 하지 않은 거지?
수술 성공률이 너무 낮아서일 거야.
지금 가지고 있는 자료만 봐도, 사오토메 리카의 손에는 많지 않은...
아시모프의 동공에 미묘하게 스쳐가는 혐오감이 드러났다.
"실험 소모품."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건 현재 가진 실험 정보를 바탕으로 한 추측일 뿐이야. 팔지가 전한 정보에 따르면, 유우카는 사오토메 리카의 양녀였어.
이런 관계 때문에 진행이 지연됐을 수도 있어.
니콜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유우카가 왜 수십 년 만에 갑자기 깨어났는지에 대한 거겠군.
누구야? 나와!
안녕하세요. 귀여운 구조체.
어둠 속 그림자가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인사했다.
콜레도르!
팔지는 품에 안고 있던 헤바를 뒤쪽에 있는 로봇 팔에 맡기고, 양 주먹을 들어 올려 경계했다.
긴장하지 마세요. 당신의 상대는 제가 아니라...
유우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적조의 힘으로 "심장"을 줬을 뿐이에요.
유우카의 몸은 처음부터 불완전했어요. 아무리 시도해도 깨어나지 못했죠. 하지만 그녀의 의식의 바다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었어요.
콜레도르의 말이 갑자기 날아온 두 발의 펄스탄에 의해 끊겼다.
V!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싸움에 집중해.
팔지, 유우카를 다시 만나는 게 당신이 바라던 일이 아닌가요?
혼자서 지껄이지 마! 유우카를 그런 모습으로 만들어놓고, 자신을 은인인 것처럼 포장하다니!
정말 유감이네요. 하지만 이건 유우카가 바라던 거일지도 모르겠네요.
팔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지켜보고 싶지만, 전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그럼, 다시 만나길 기대할게요.
콜레도르는 미소를 띤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 텅 빈 복도를 다시 성갑충들에게 남겨두었다.
V, 헤바를 부탁할게. 유우카가 아직 의식 투사를 하고 있어. 이대로 가면 모두 깨어나지 못할 거야.
네 의식의 바다도 매우 불안정해.
유우카와 난 같은 과거를 공유하고 있어.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것도 그 때문이야. 맞설 방법이 있어.
방금 네 의식의 바다를 살짝 조정했어. 헤바를 안정시키고 나서 뒤따라 갈게.
알았어.
팔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몸을 날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뇌 과학 연구소
수국화 섬 과학 연구 구역
12월 아침 날씨 맑음
개조 결과는 어때?
절반 정도... 성공했습니다.
유우카의 심장이 너무 약해서, 개조 시 임시로 에너지 공급 장치를 연결했는데, 개조가 끝난 후에도 그걸 떼어낼 수가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외부 에너지 공급 장치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정상적인 활동은 가능합니다.
이제 유우카는 더 우수한 의식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실험도 곧 성공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코헤이의 말에 흥미를 잃은 듯, 리카는 곧바로 실험실로 향했다.
금속광택이 빛나는 실험대 위에는 인형처럼 보이지만 생기 없는 소녀가 누워 있었다.
고문 도구를 연상시키는 에너지 공급관이 소녀의 등 뒤에 하나씩 연결되어, 유우카의 허약한 생명을 간신히 지탱해 주고 있었다.
박... 박사님?
유우카의 창백한 얼굴이 순간 힘없는 붉은 기운으로 물들면서,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일단 누워.
리카는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투가 자연스레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유우카의 등을 조심스레 받쳐 천천히 뒤로 기대게 했다.
몸은 좀 어떠니?
이제... 약한 심장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잠시 망설이다가, 유우카는 창백한 미소로 답했다.
……
유우카의 미소를 마주하기 힘들었는지 리카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소위 "허약한 심장"을 대신한 것은 차가운 에너지 공급관들이었다.
리카 앞에서 유우카는 늘 자신을 억지로 내몰았는데, 창백한 미소가 바로 그 증거였다.
박사님, 왜 그러세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다급한 부름이 리카를 멍한 상태에서 끌어냈다.
아니다. 유우카. 난 그냥...
박사님... 이거 보세요.
유우카는 말하며 리카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넸다. 리카는 직접 받아 들고 나서야 종이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건... 제가 접은 거예요. 수국화인데 예쁘죠?
파란색으로 물들인 꽃잎에는 정교한 무늬가 자연스럽게 새겨져 있어서, 수국화 생화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종이의 질감이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리카는 5월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제 몸은 항상 허약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실험에 참여할 수 있어서... 저 같은 사람도 박사님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전 항상 섬의 수국화를 좋아했어요. 하지만 수국화는... 9월이 되면 시들어버리죠.
그래서 가끔 "이 꽃들이 영원히 피어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종이꽃으로 만들어서... 박사님께 드리는 거예요.
수국화가 피지 않는 계절에도 박사님 곁에 있을 수 있도록요.
유우카의 목소리는 몹시 약했지만, 어떤 고집스러움과 결연함이 묻어났다.
종이꽃을 받은 리카는 입을 열어 뭔가 말하려다가 말았다.
리카는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이런 감정이 짜증 났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감정을 싫어했다.
모든 과학 연구원들이 이런 감정을 싫어했다. 미지는 통제 불가능을 의미했고, 그것은 곧 골치 아픈 일을 뜻했기에 리카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모든 인간의 의식이 하나로 연결된 장관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자 리카의 가슴이 살짝 풀어졌다가 다시 조여들었다.
그 광경의 한구석에서 소녀 하나가 무기력하게 움츠러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사님?
유우카의 조심스러운 부름에 눈을 뜬 리카는 소녀를 응시하며 한동안 침묵했다.
실험을 중단하고 싶니? 유우카.
네? 박사님... 왜죠?
유우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옆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코헤이도 급히 달려왔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실험이 이 단계까지 진행됐습니다!
코헤이의 고함에 리카는 정신이 들었지만, 가슴속의 답답함은 더욱 커졌다.
내 전문성을 의심하는 건가?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코헤이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자, 유우카가 먼저 리카의 옷자락을 잡았다.
박사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제 몸은 이미 구조체로 개조되었어요. 반드시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박사님...
갑자기 눈물을 쏟은 유우카가 애원하듯 말했다.
네가 잘못한 건 없다. 유우카.
다만 네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이대로 실험을 계속할 경우 성공 가능성과 그 가치를 장담할 수 없다.
계속 실험을 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 실험이 박사님의 학설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유일한 선택이라면, 그게 바로 최선의 선택이에요.
……
리카의 시선이 옷자락에서 소녀의 얼굴로 옮겨갔다.
유우카의 단호한 눈빛에 리카의 동요된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고, 이성이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
박사님...
유우카가 뭔가 더 말하려 할 때, 리카가 갑자기 손을 뻗어 유우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우카...
죽지 말고 살아남아라.
네! 그럴게요. 박사님!
리카는 몸을 돌려 코헤이를 데리고 방을 나온 뒤 관제실로 향했다.
실험을 계속하고, 실험 범위를 학교 전체로 확장해.
학교 전체요?
코헤이는 놀란 듯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리카가 너무 신중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너무 급진적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구조체가 된 이상, 차라리 속도를 높여서 가능하면 돌발 상황을 피하는 게 좋겠다.
리카는 마이크를 켜고 두 번 두드리더니, 엄숙한 말투에 진중함을 담아 말했다.
유우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버티기 힘들면 즉시 의식 투사를 중단해.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박사님.
실험실 안에서 힘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좋아. 실험을 시작하자.
지금부터 제3차 의식 투사 실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뇌파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각 지점의 의식 신호 위치 추적을 완료했습니다. 전송을 시작합니다.
활성화에 성공했습니다. 동기화 진입을 시작합니다. 동기화 진행 중입니다.
제어 콘솔이 바빠진 가운데, 한 연구원이 창가에 서서 바깥 풍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잠깐만요. 저기 거리의 로봇들이 왜 저러죠?
실험할 때 딴 데 신경 쓰지 마! 어서 돌아와!
하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코헤이의 뒤편 연구소 로비에서 다른 연구원들의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제어장치가 해제된 수많은 자동 로봇들이 현장의 스태프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오토메 리카는 실험실에서 온몸을 떨고 있는 유우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무슨 상황이지?! 경비원! 경비원 어디 있어? 빨리 와서 이 미친 것들을 막아!
코헤이가 소리치는 가운데, 리카는 앞의 기기 스크린과 계기판에서 미세한 변화를 감지했다.
로봇들이 통제 불능이야. 바이러스인가?
리카가 고개를 돌리자, 연구소 로비에 사람들이 잇따라 쓰러졌고,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이상해. 로봇뿐만 아니라, 인간까지도...
유우카, 당장 의식 투사를 중단해!
어떤 결론에 도달한 리카가 재빨리 마이크를 켰다.
하지만 리카에게 돌아온 건 계속해서 치솟는 동기화율과 딸깍거리는 기기음뿐이었다.
유우카? 대답해. 유우카.
의식 투사를 중단해. 당장!
유우카는 실험실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리카는 마이크를 던져버리고 실험실 문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곁에 있던 사람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리카 박사님, 뭘 하시는 겁니까!
로봇 시설 장비가 통제 불능 상태야. 투사 실험을 원격으로 중단할 수 없으니 직접 들어가서 물리적으로 차단해야 해.
이미 늦었습니다. 박사님! 지금 당장 대피하셔야 합니다!
실험 재료는 없어지면 다시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은 단 한 분뿐입니다!
유우카도 단 하나뿐이다!
리카가 돌아서서 소리치자, 그녀의 태도에 코헤이는 순간 멍해졌다.
실수를 깨달은 리카는 깊은숨을 들이쉰 뒤, 동요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방금 내 말의 뜻은 유우카는 현재 투사 실험에 가장 적합한 지원자다. 그런 그녀의 특성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어.
유우카의 존재는 이 프로젝트에 매우 중요해!
……
코헤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리카를 넘어 다른 곳을 향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박사님. 늦었습니다.
마침 잘 왔다. 지금 실험실 문을 수동으로 열어야 한다. 네가...
리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코헤이의 눈짓을 본 보안 요원이 그녀를 기절시켰기 때문이었다.
리카 박사님을 모시고 나가라. 그리고 총을 줘. 의식 투사 메인 컴퓨터의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지 않으면 아무도 여기서 나갈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인 보안 요원은 총을 건네준 뒤 리카를 들쳐 메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코헤이는 연이어 총을 쏴서 에너지 공급 파이프의 안전밸브 여러 개를 터뜨린 뒤, 실험실 안에서 계속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유우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연민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코헤이는 형식적으로 이상 현상이 일어난 조작 콘솔에 실험체 강제 휴면 명령을 입력했다. 그리고 명령이 제대로 실행됐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재빨리 관제실을 빠져나갔다.
박사님 체면을 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유우카 양. 살아남지 못해서 원망하고 싶다면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세요.
실험실 내부 에너지 공급관의 신호등이 하나둘씩 꺼져갔고, 주변 장치에서 대량의 냉각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실험대에 평온하게 누워있는 유우카의 눈에선 핏줄이 터져 나왔다. 이 순간 유우카가 보고 있던 광경은...
컴퓨터가 시뮬레이션한 의식의 바다였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찬 의식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모든 것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있었다.
그 순간, 유우카는 자신의 시야가 바다 너머까지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멀리 있는 빛점이라도 닿을 수 있었고, 연결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로봇이 의식의 바다를 침식하면서 유우카에게 준 힘이었다.
팔지...
유우카가 그렇게 생각하자, 그 빛나는 점들 속에서 팔지의 의식을 찾아냈다.
유우카는 그 빛을 건드리며, 몸에 남아있는 마지막 이성으로 그 말을 전했다.
섬의 로봇들이 통제 불능이 됐어.
팔지, 어서 도망쳐!
운동장
정원 학원 고등학교
12월 아침 날씨 맑음
운동장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던 팔지가 갑자기 강한 두통을 느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졌다. 곧이어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듣게 됐다.
이 목소리는 유우카야.
왜 내 머릿속에서 들리는 거지?
환청일까? 하지만 유우카가 로봇이 통제 불능이 됐다고 했는데, 혹시...
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 멀리 바라보았다.
항구 지역 거리에서 무리를 지은 로봇들이 학교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륙의 과학 연구 구역에서는 다수의 감시 로봇들이 이미 학교 통제구역을 통과한 상황이었다.
역시 그런 거였어. 이 멍청한 로봇들이 통제 불능이 됐잖아!
몸이 날렵한 팔지는 교장실로 달려가 교직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에 있던 그 누구도 이 품행이 바르지 못한 "불량아"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일하고 있던 스태프들은 자신들의 일만 하면서 팔지를 무시했다.
주목받지 못한 팔지는 학생회 사무실로 달려갔고, 거기 있던 사람들은 그나마 말은 들어주었다.
하지만 상황을 듣고도 "장난치러" 온 팔지를 쫓아낼 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팔지는 스스로 무장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체육실로 가서 무기를 찾아보기로 했다.
팔지는 우연히 체육실 창고에서 오오사코 마사오를 만나게 됐다.
야, 규율 위원, 또 나한테 시비 걸러 온 거냐?
오오사코, 지금 너랑 상대할 시간 없어. 더 급한 일이 있다고.
팔지는 마사오를 무시한 채 허둥지둥 도구들을 챙겼다.
무시하지 마라, 팔지! 이 몸을 대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
솔직히 말해봐. 대체 무슨 일이야? 네가 이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보는데.
로봇 군단이 항구 쪽에서 우리 학교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야, 됐다.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한들 믿지 않겠지?
……
팔지, 방금 한 말 진짜라고 맹세할 수 있어?
당연하지.
로봇 군단이라...
듣기만 해도 만만치 않네. 철로 된 녀석들이니 말이야.
하지만 내 오오사코 조직과 네 육상부를 합치면 한번 붙어볼 만하겠는데?
잠깐, 너 지금 믿는 거냐?
네 표정이 장난치는 것 같지가 않았거든.
솔직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많은 생각을 했어. 이곳이 단순한 섬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거든.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제는 놀랍지 않은 것 같아.
오오사코...
오오사코 마사오가 등 뒤에서 천에 싸인 두 개의 물건을 천천히 꺼냈다.
이건 아버지가 남기신 과학검이야. 너도 전에 봤잖아.
빨간색은 "단홍", 파란색은 "설택"이야. 잘 기억해 둬.
단분자 진동검... 그 로봇들을 벨 수 있을까?
장난해! 이건 아버지의 최고 걸작이라고.
야, 팔지. 신이 네 앞을 막아선다 해도 이거면 신도 둘로 가를 수 있어.
나한테 검을 다 주면 넌 어쩔 건데?
난 이렇게 무거운 검은 못 쓰겠더라. 야구 방망이가 더 편해.
"단홍"과 "설택"을 건네받은 팔지는 반신반의하며 육상부를 향해 다급히 달려갔다.
육상부 부원들은 평소에도 팔지를 신뢰했기에,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행동에 나섰다.
한편, 오오사코 마사오도 "오오사코 조직"을 이끌고 학교 뒷문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이때, 무리 지은 침식체들이 교내 경비 초소를 쉽게 돌파했다.
정원 학원 방어전이 정식으로 시작됐다.
처음에 팔지는 정문 앞에서 침입해 오는 침식체들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곧 기계와 인간의 전투력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팔지는 학교 건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두려움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효과는 분명히 제한적이었고, 곧 로봇들도 학교 건물로 침입해 들어왔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살려줘! 살려줘!
침식체 둘이 넘어진 여고생 둘을 포위했다.
침식체의 섬뜩한 붉은 눈동자가 두 사람을 노려보았고, 로봇의 날카로운 칼날은 이미 치켜들린 상태였다.
그때 칼이 두 번 스치는 소리와 함께, 여학생들의 표정은 공포에서 멍한 얼굴로 바뀌었다.
침식체는 붉은 그림자에 허리가 잘려 나갔다. 그리고 잘린 반쪽 몸 뒤에는 팔지가 서 있었다.
너희 둘 괜찮아?
괜... 괜찮아.
체육관이나 강당으로 이동해. 거기 문은 특수 제작한 거니까.
말을 마친 팔지는 계단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모퉁이에서 두 침식체를 베어낸 뒤 계속 위로 올라갔다.
팔지는 손에 든 단분자 진동검 "단홍"을 휘두르며 손발을 모두 써 가며 움직였다.
조금은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계속해서 많은 사람을 구해냈다. 그러다 결국 포위당하고 말았다.
복도 한가운데에서 앞뒤 좌우로는 모두 적들이었다. 팔지는 칼을 가로로 들고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손에 든 단분자 진동검 "단홍"을 바라보며 팔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 검이 신조차 벨 수 있다면, 어쩌면 일말의 희망이 있을지도 몰라.
앞쪽의 침식체가 팔지에게 덤벼들자, 팔지는 옆으로 몸을 틀며 그중 하나를 베어냈다.
그러자 다른 침식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지는 다시 한번 다가오는 적을 벴다.
그러다 쨍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부러졌다.
단홍, 단홍아, 결국 네가 먼저 부서지고 말았구나.
이때 팔지의 뒤에서 침식체가 공격해 오고 있었지만, 설택은 좀처럼 칼집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팔지는 한 가지 확신했다. 다음 순간 베어질 것은 상대방도, 신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몸을 돌려 맞서 싸울 시간도 없었던 팔지는 간신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지만... 그마저도 늦어 버렸다.
이 정도까지 싸우다니 대단하네.
아무리 강한 무기라도 부러질 수 있어. 인간의 몸은 약점투성이니까.
희생할 각오 없이는 가장 기본적인 전투조차 할 수 없어.
전투 의지만큼은 네가 지금의 나보다 더 강해.
때맞춰 오다니.
그쪽 상황은 어때?
그럭저럭 괜찮아. 이제부터는 내가 너와 함께 싸울 거야.
좋아. 지금부터 함께 가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왜 넌 자발적으로 모두를 보호하려고 하는 거야?
우리는 원래부터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했잖아. 목숨을 걸더라도 적에게는 절대 굴복하지 않고 말이야.
설마 잊어버린 거야?
미래의 넌 모든 일에 무관심해진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 버린 거야?
초심을 잃어버렸다면, 난 그런 네가 되고 싶지 않아!
난... 아니. 잊은 건 아니야. 다만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야.
그런 무거운 책임감이 매 순간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어.
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후회하지 않겠어!
……
그래. 포기하면 훨씬 편하겠지. 하지만...
어려움이 여전히 그대로인데, 네 운명 앞에 무릎 꿇을 거야?
인생의 과제는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 사실 난 아직 "졸업"하지 못했거든.
어차피 후회가 남을 거라면, 적어도 우리가 싸워봤다는 걸 남기자.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실패해도 좋잖아!
실패해도?
후회를 남기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떳떳하게 가자.
전투의 이유를 잊었다면, 나를 봐.
알겠어.
앞은 나한테 맡겨!
팔지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 손에 든 칼이 두 자루가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인간의 기억이 완전히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과거의 일들을 혼동하기도 하고, 환각 속에서조차...
진실된 광경을 보았지만, 팔지는 어떤 것들을 선택적으로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