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9 새벽과 황혼의 그림자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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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9-13 패배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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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학원 고등학교 학생 활동실

육상부 축하 연회

8월 16일 밤 날씨 맑음

축하 연회를 하려면 뷔페를 가야 하는 거 아냐? 왜 학교로 온 거야?

내 말이. 학교에서 뭔가 특별한 계획으로도 있나 봐. 혹시 깜짝 이벤트?

활동실에서 팔지는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 짓지 마. 팔지. 네가 이번 체육대회의 일등공신이잖아.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 같아. 그리고 이 의자들도 너무 반듯하게 놓여있잖아.

게다가 이렇게 늦은 밤에 왜 우리를 부른 거지.

그러게. 듣기평가라도 보려는 것 같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순간, 교실 앞쪽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노이즈가 울렸다.

안내방송

여러분, 각자 자기 이름이 적힌 의자를 찾아 앉아주세요.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차갑고 쉰 목소리가 안내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뭔데? 왜 이렇게 신비롭게 구는 거야.

말하는 사람이 누구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 같은데.

육상부 부원들은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도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렬된 의자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인원수도 딱 맞았다.

안내방송 반대편 어두운 방에선 코헤이가 마이크를 쥐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유우카 쪽은 준비됐나?

문제없습니다. 팀장님. 유우카는 이미 메인 컴퓨터와 연결됐습니다.

좋아. 단말기를 가동해서 원거리 의식 투사를 시작해.

안내방송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실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실험?

팔지가 반응하기도 전에 심한 두통이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젠장, 너무 아파. 왜 이러는 거야!

유리 조각으로 두개골을 찢는 것 같은 느낌에 팔지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맞아. 이 두통이 처음 시작된 건 그때였어.

그날 밤, 우리는 활동실로 불려 갔었어.

누군가가 우리를 실험용 쥐로 삼았던 거야.

젠장. 야, 다들...

팔지가 몸을 돌리자, 육상부 부원들이 차례로 바닥에 쓰러졌다.

팔지가 흔들어봤지만, 의식이 전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활동실의 사람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고, 팔지만이 서 있었다.

간신히 몸을 지탱한 팔지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환각 속에서 비틀거리며 활동실 문으로 향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왜 학생들이 쓰러진 거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원인을 찾아내!

원인을 찾았습니다. 유우카가 의식 연결 중에 기절했습니다.

유우카 뇌 속의 나노 기계가 혼란에 빠졌고, 메인 컴퓨터의 입력 신호원이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시간 내 투사된 펄스 신호량이 당초 계획의 300%에 달하는 상황입니다.

수치는... 아직도 상승 중입니다!

젠장, 하필 이때 그 쓸모없는 것이 말썽을 부리다니.

당장 유우카와 메인 컴퓨터의 연결을 끊어!

네. 동시에 메인 컴퓨터와 단말기 발사 장치의 연결도 끊겠습니다.

어쩔 수 없군. 오늘은 여기까지다.

제2차 집단의식 투사 실험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팔지는 의자를 들고는 교실 위쪽 안내방송 스피커를 내리쳤다.

스피커는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스피커가 아닌가? 그럼, 대체 뭐지!

팔지의 두통은 더욱 심해졌고, 결국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눈앞의 광경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환각이 현실을 뒤덮으려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팔지의 눈동자에서도 서서히 초점이 사라져갔다.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안 돼.

여기서 쓰러지면 안 돼. 팔지! 넌 더 이상 그때의 무력한 풋내기가 아니야!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 팔지의 손이 벽에 닿았다.

그 순간 팔지는 복도에서부터 느껴왔던 위화감의 원인을 파악했다.

다른 층과 비교하면, 여기 벽 두께가 달라.

팔지는 벽면을 주먹으로 한번 쳤다. 그러자 내부에서 울리는 메아리 소리가 들렸다.

안에 또 다른 방이 숨겨져 있구나!

그래. 환각을 만들어내는 건 그 작은 스피커가 아니라...

팔지는 주먹을 꽉 쥐고, 활동실 벽을 세게 쳤다.

오래된 벽돌과 철골이 우르르 무너졌다.

그러면서 무너진 벽면 뒤로 새로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활동실 뒤에 숨겨진, 누구도 알지 못했던 밀실이었다.

밀실 안에는 먼지 쌓인 거대한 기계 괴물이 쉼 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팔지는 그 괴물 앞으로 다가가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케이블 장치를 파괴했다.

격렬한 불꽃과 함께 기계 괴물의 굉음이 멈추자, 주위가 고요해졌다.

팔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까지 있던 환각이 사라졌어. 두통도 많이 나아졌고...

어두운 밀실 안에서 팔지는 손바닥 조명 장치를 켰다.

팔지는 어깨를 한번 움직여보고는 조심스럽게 기계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고성능 펄스파 무기... 군용 무기를 개조한 것 같아.

팔지는 그 기계의 표면을 살짝 쓸어보며 튀어나온 글자들을 확인했다.

구역 대테러 전투, 무인기 전략 그리고 고수부지 방어 전투에 적합.

그런 거였군.

임무 자료를 봤을 때, 유우카한테 실험한 사람들은 쿠로노 출신이라고 했었어. 아마 쿠로노에서 가져온 것 같아.

그때 그 자식들이 특별한 원거리 입력 장치까지 연결해...

환각을 투사하는 도구로 변해버렸고, 무고한 학생들이 피해자가 됐어.

이게 바로 정원 학원 집단 실신 사건의 진실이야.

나를 포함한 육상부 부원들이 이곳에 불려 와 정체불명의 실험 대상이 됐어.

실험용 쥐처럼 이상한 계획에 이용당하다니... 젠장!

그때 제대로 조사했더라면 비극을 미리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환각이 약해진 틈을 타서 움직여야겠어. 지금이라면 유우카를 찾을 방법이 있을 거야.

코헤이, 유우카는 어때?

정말 죄송합니다. 집단의식 투사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1:1 실험에서는 신호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조종당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나노 기계를 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단의식 실험에서는 그렇게 많은 대상에게 기계를 심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의 실험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코헤이, 내가 다시 한번 물어보지.

통화 상대방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생기가 없었다. 그리고 코헤이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유우카 양은 실험 도중에... 실신했습니다.

현재 상태는?

모든 것이 정상입니다만, 심장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함부로 다음 실험을 진행하지 마.

유우카 양은 아직 버틸 수 있습니다.

유우카는 반드시 살아있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말 알아듣겠나?

알겠습니다.

수국화 섬 중앙 지역

성갑충 소대 착륙 지점 근처

밤 날씨 맑음

오블리크, 침식체들의 협동이 약해졌어.

팔지 쪽에 진전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한 번에 끝내버리자.

알겠습니다.

둘은 포위망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공세를 펼쳤다.

바렐리아가 폭발탄 두 개를 던지자,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침식체들이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가자. 팔지와 합류해야 해.

정원 대강당. 파손된 거점

정원 학원 고등학교 학교 건물

밤 날씨 맑음

내 힘이 약해지고 있어.

팔지가 증폭형 펄스 발사 장치를 파괴한 걸까?

정말 대단해, 팔지. 넌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뛰어나구나.

못 하는 게 없고, 체력도 투지도 정말 감탄스러워.

유우카는 텅 빈 강당을 바라보며 차분히 불만을 토로했다.

유우카가 불평하는 그 순간, 귓가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우카의 붉은 눈동자가 주변을 훑더니, 구석에 나타난 검은 그림자에 멈췄다.

두 침식체가 좌석 사이에서 비틀거리며 튀어나오더니, 갑자기 유우카를 공격했다.

잠시 통제에서 벗어난 꼭두각시가 조종하는 이를 공격하려는 건가?

유우카는 바닥의 거대한 자수 가위를 움켜쥐고, 달려드는 침식체를 단숨에 두 토막 냈다.

또 다른 침식체가 유우카의 등 뒤로 돌아갔지만, 손도 대기 전에 보이지 않는 실에 묶여버렸다.

자의식조차 없는 가련한 강철 껍데기...

유우카가 실이 감긴 다섯 손가락을 움켜쥐자, 그 침식체는 산산조각이 났다.

꿈조차 꿀 수 없다면, 존재할 이유도 없어.

바닥에 흩어진 부품들을 내려다본 유우카는 가위를 바닥에 꽂고 손잡이에 기대어 섰다.

밤바람이 유우카의 치맛자락을 살랑이며 스쳐가자, 유우카는 기억 속 노래를 가볍게 흥얼거렸다.

새로운 발소리가 유우카의 취미를 방해할 때까지...

????

힘에 부치시나 보네요? 적조의 힘을 일부 얻으셨는데도 말이죠.

누구?

유우카는 눈썹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다가 이내 긴장을 풀었다.

또 너야.

왜 나타난 거지?

좀 걱정돼서요. 결국, 당신의 "심장"이 점점 약해지고 있잖아요.

그렇지 않다면, 몇 개의 꿈들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었을 텐데요.

음...

이대로 가다가는, 당신이 만든 꿈처럼 이 육체마저도...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건 내가 원해서 얻은 몸이 아니야. 한때는 내 것이었다 해도...

하지만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에요. 적조에 의지를 빼앗기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강화했으니까요. 이건 정말 드문 일이에요.

저도 당신에게 흥미가 있어요. 유우카. 그래서 당신을 잠식하는 대신 육체를 재구성했던 거예요.

당신과 연결된 메인 컴퓨터와 저장된 것들을 분해해서 당신에게 드렸죠.

제가 이 정도까지 해드렸는데, 당신은 새 생명을 준 적조를 미워하시네요.

이건 "은혜를 모른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당신은 적조로 아름다운 환상과 무한한 천국을 만들고 싶어 하시죠.

저는 당신의 꿈을 막지 않았어요. 오히려 늘 당신 편에 서 있었어요.

무슨 뜻이지?

지금 의식 증폭기와 투사 장치가 파괴됐어요. 곧 이곳은 공중 정원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될 거예요.

섬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된다면, 당신의 소원도 이룰 수 없는 것이 되겠죠.

뭘 제안하고 싶은 거지?

적조는 당신에게 강력한 힘을 줄 수 있어요. 그 기계보다 더 강력한 힘을요.

우리의 축복을 받아들이면, 적조의 힘을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돼요.

그 구식 기계 대신 적조를 매개체로 해서 환각을 퍼뜨리세요.

당신이 만들어낸 꿈 꾸는 미래가 물결이 닿는 모든 곳에 울려 퍼지게 말이에요.

콜레도르는 유우카의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새로운 세계의 프로메테우스가 되고 싶지 않으세요?

그렇게 하려면 먼저 완전체가 되어야 해요. 유우카.

"프로메테우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유우카의 눈빛이 잠시 멍해졌다.

유우카는 말없이 다소 쓸쓸한 눈빛으로 강당 중앙에 있는 연단을 바라보았다.

유우카는 천천히 걸어가 나무로 된 연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박사님이 이곳에서 연구 토론회를 여러 번 열어 자신의 가설을 설명하셨던 게 기억나.

박사님께서는 광활한 우주에 다른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셨어. 그 존재들이 언제나 인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하셨지.

우리는 모든 인간의 의식 연결을 통해 한층 더 높은 종으로 진화해야만 해.

인간의 의식을 하나로 통일해야만 그들과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어.

오랫동안 박사님께서는 자신이 상상해낸 적과 머릿속에서 싸움을 벌이셨어.

고차원의 위협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청중들은 웃음으로 반응했었지.

하지만 박사님께는 선천적인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으셨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박사님께서는 "구세주"에 관한 연구를 끝까지 고수하셨어.

그래서 박사님은 연구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세상의 적으로 여기시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셨지.

결국 그 숭고한 이상과 사명감이 박사님을 그릇된 길로 이끌고 말았어.

오늘날 박사님께서 상상하시던 신비한 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대신 퍼니싱이 나타났어.

그리고 지구는 더 이상 인간만의 보금자리가 아니게 됐어. 몇몇 세력이 갇혀 있는 맹수처럼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지.

어차피, 누가 만든 사회든...

난 인간이 만든 사회가 적조나 퍼니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인간이었던 시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비극을 목격했거든.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우리는 그런 종족이야.

박사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달리, 인간들이 퍼니싱에 필사적으로 맞설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인간은 결국 타락할 거야. 살아있기에 타락하는 거지.

난 박사님을 존경해. 약속대로 박사님께서 바라시는 프로메테우스가 될 거야.

다만, 박사님께서 꿈꾸는 미래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현할 뿐이야.

모두가 구원의 이상을 포기하고, 자신의 욕망과 나약함을 받아들이게 하면 돼. 그렇게...

종말의 안락함 속에서 떠다니며, 찰나와 영원 속에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도록 할 거야.

그렇군요. 당신의 소원이 왜 그토록 강렬한지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은 인간 중에서도 퇴보 주의자... 아니. 패배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 막을 내리게 될 거예요.

적조가 이 행성을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일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분이에요.

그럼, 답은요?

적조를 이곳으로 모이게 하자. 내가 그 조수의 일부가 될게.

그리고 이 섬이 인간 문명 타락의 시작을 되도록 할 거야. 여기를 시작점으로...

타락한 에덴으로 만들 거야.

그런 깨달음을 얻으셨다니 기쁘네요. 유우카.

하지만, 이것을 완성할 이는 제가 아닌 당신이어야 해요.

당신이 말씀하셨듯이, 저보다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있고, 목격자가 되기에 더 적합하니까요.

콜레도르가 전에 망각자라는 그 구조체에게 했던 것처럼...

콜레도르는 유우카의 하얀 손을 잡았다. 그러자 붉은 실이 유우카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유우카의 교복이 점점 선홍빛으로 물들어 갔고, 가슴에는 붉은 무늬가 나타났다.

적조의 여인, 뭐 하는 거야?

조금의 힘일 뿐이지만, 당신에게 빌려드릴게요. 이렇게 하면,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예요.

왜? 인간 문명을 여행하고 싶지 않아?

제가 여기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더 중요한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어디 가?

이곳에서 아주 먼 곳으로요.

이 힘을 제가 떠나기 전에 드리는 작별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이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네요.

콜레도르가 손을 놓자, 유우카의 흐릿했던 동공이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유우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자, 심장의 강한 울림이 전해졌다.

심장이...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저기...

유우카가 따라가기도 전에, 적조의 여인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정말... 밉상이야.

나와 똑같이.

유우카는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수국화가 만발한 돌계단을 지나 먼 곳을 향해 갔다.

이리 와라. 조수여, 내게로 모여들어라.

강당 천장에서 눈이 내리듯 하얀 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유우카의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주변에서 잇따라 미세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해안가에서 적조가 내륙을 향해 침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조수와 함께 밀려온 것은 하늘을 뒤덮은 이합 생물들이었다.

수국화 섬의 반대편에서는 지진의 여파가 계속 퍼지고 있었다.

지진입니까?

그뿐만이 아니야. 숲속에서 이합 생물들도 몰려오고 있어.

교란이 또 시작했습니다. 으윽!

오블리크는 고통스러운 듯 이마를 움켜쥐고, 지진으로 흔들리는 와중에 힘겹게 중심을 잡았다.

긴장하지 말고, 심호흡해. 지난번처럼 나와 연결하자.

바렐리아는 오블리크의 어깨를 부축하며 그녀의 몸을 단단히 지탱했다.

좀 나아졌어?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적조가 곧 들이닥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맞닥뜨린 위협이 커졌어. 팔지도 같은 상황일 거야.

팔지가 순조롭다면 곧 통신이 복구될 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원하러 가야 해.

계획은 그대로야. 최대한 빨리 팔지와 합류해서 고지대를 점령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