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화 섬
6월 10일 저녁 날씨 맑음
의학 연구소 중환자실 병동
수국화 의학 실험 구역 근처의 사설 시설, 밝은 조명이 비치는 반자동화된 병동에서...
지친 얼굴의 리카와 여유로운 표정의 코헤이가 병실 밖에 서 있었다.
코헤이, 유우카 몸은 잘 회복되고 있나?
수술은 잘 됐습니다. 특정 모델의 나노 기계도 순서대로 이식했습니다.
현재 뇌 말단부 활성화율이 98%로 예상 수준을 초과했습니다.
컴퓨터가 지금 위치를 잡고 분석 중이며, 다음 단계는 신호 간섭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예상으로는...
내 말을 못 알아듣나? 유우카의 회복 상태를 물어봤잖아.
죄송합니다.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심각한 거부 반응은 없었습니다.
수치상으로는 큰 문제는 없지만, 깨어난 후 한동안 구토와 설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직 메스껍고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상태는 나아지고 있습니다.
유우카는 심장이 약하니 항상 주의 깊게 살펴봐.
걱정 마십시오. 중환자실에 의사 두 명과 자동 로봇이 상시 대기 중입니다.
지금은 그냥 편히 쉬게 둬. 그리고 명심해. 절대 서둘러선 안 돼.
알겠습니다.
이동하면서 얘기하지.
리카는 뒤돌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코헤이는 곧바로 빠른 걸음으로 리카의 뒤를 따랐다.
다음 주에 이 섬을 떠나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그 부자들을 만나야 해.
그런 일도 직접 하셔야 합니까?
최근 새로운 연구 과제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예산을 늘려야 해.
그래서 회의에 직접 참석해서 주주들의 질의에 답변할 필요가 있어.
새로운 과제 말씀이십니까? 현재 진행 중인 연구도 많으신데 가능하신지요?
제 짐작으로는 이번에도 의식 영역 연구이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어쨌든 아직은 예비 연구 단계야.
잘 되시길 바랍니다.
코헤이, 내가 없는 동안 네가 의식 투사 실험을 담당해.
연구팀은 네 지시를 따를 거고, 내 자원들도 마음대로 써.
다른 건 굳이 말하지 않겠지만, 두 가지만 주의해.
우선, 다음 달 초에 제1차 의식 투사 실험을 단계별로 검증해야 해.
유우카에게 양자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게 해. 이건 데이터 수집이 목적이야.
1:1 의식 투사가 성공하면, 군중 대상으로 간섭 실험을 진행할 거야.
그래서 네가 2단계 실험 준비 작업을 동시에 해주길 바라.
정원 고등학교 활동부 뒤에 암실이 있다. 공사할 때부터 만들어둔 비밀 공간이야.
신호 증폭기와 펄스 발사 단말기를 그 암실 안에 설치하고, 만전을 기해.
그리고 그렇게 큰 장비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들여놓지 말고 눈치껏 움직여.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총회 기간에 문제 일으키지 말고, 항상 신중하게 행동해.
다 말했으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판단해.
리카가 병원을 나서자, 검은색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코헤이가 먼저 다가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리카가 차에 오르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코헤이가 몸을 일으켰을 때 검은 승용차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코헤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천천히 걸어와 코헤이의 뒤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이야?
팀장님, 저희 정보원이 방금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오오사코 요시히로의 조수가 우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언론과도 접촉 중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겁도 없군. 그 녀석 이름이 뭐야?
스기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인사 좀 하게 사람 좀 보내서 데리고 와. 그리고 살려서 데려와.
코헤이는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스기키라... 어쩌면 쓸모가 있을지도 몰라.
쓸모가 있다니... 팀장님, 무슨 말씀입니까?
신경 쓰지 말고, 우선 내가 말한 것부터 처리해.
알겠습니다.
정원 학원 고등학교
6월 20일 밤
교문
자, 자! 야심한 밤의 정원 고등학교 괴담 동아리, 이제 모여주세요!
키시이, 전에 새 부원을 꼭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잖아. 어떻게 됐어?
결국 나와 이시마만 낚인 거네. 정말 어이없네.
선배, 물어볼 사람은 다 물어봤다고요. 다 절 바보 취급한다니까요~
그럴 만하지.
그 엄청 신비로운 정원의 별에게도 물어봤어요. 이참에 홍보도 좀 할 겸 해서요.
엄청 신비로운 정원의 별이라... 혹시 사오토메 유우카 말하는 거야?
맞아요! 근데 깔끔하게 거절당했어요.
말수도 적은데 남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아. 왜지?
알 수 없을 거예요. 하세가와. 그게 바로 신비감이라는 거예요.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이라고요!
뒤에 선배 붙여라. 버릇없이 굴지 말고.
다들 그만해. 영적인 신들이 다 도망가겠어.
설마 진짜로 유령을 보고 싶은 거야? 내가 보기엔 키시이가 그냥 지어낸 것 같던데.
지어낸 게 아니라니까요.
소문에 의하면, 달이 없는 밤마다 미술실의 조각상들이 복도를 뛰어다닌대요.
오늘밤은 마침 달이 없으니까, 조사하기 딱 좋은 기회죠.
달은 그냥 구름에 가려진 거잖아?
아, 어서 가시죠! 출발!
키시이는 두 선배를 뒤에서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함께 정원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건물 내
음악실
아무것도 없잖아. 키시이.
방금 네가 말했던 미술실에 갔었는데, 거기 조각상들 다 멀쩡히 서 있던데.
이제는 음악실까지 끌고 오고 말이야. 부활한 조각상이 음악 수업이라도 들으러 왔다는 거야?
이시마는 손전등을 들어 복도 양쪽을 비췄다. 그러자 유리에 세 명의 풋풋한 얼굴이 비쳤다.
야심한 밤, 학교 건물은 낮의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고요한 상태였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셋은 동시에 숨을 죽였고,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화장실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잖아.
이시마는 벽을 더듬으며 문 쪽으로 걸어가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교실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밤에 불 켜지 못하게 한 건, 누가 여기서 나쁜 짓할까 봐 그런 건가?
돌아가자. 어차피 이상한 건 없잖아.
어차피 학교 괴담이란 게 도시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신화" 같은 거잖아.
이야기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이야기 자체가 진실과 멀어질 수 있어.
불분명한 부분을 채우려는 거일 수도 있고, 뭔가를 숨기려고...
어쨌든 입소문이 퍼지면서 기이한 내용이 더 붙여진 거라고.
이과 교실의 귀신불도 당번이 점검을 깜빡한 걸 거야.
밤늦게 나가던 학생이 마침 그걸 보게 됐고, 그래서 그런 소문이 퍼진 거지.
하지만 괴담 동아리는 이런 걸 확인하려고 있는 거 아니야?
하세가와, 그런 걸 다 밝혀버리면 재미없잖아.
잠깐만요! 선배님들, 혹시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으셨어요?
키시이, 무슨 소리야. 조용하기만 한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니야. 진짜 뭔가 소리가 났었던 것 같아. 하세가와. 잠깐만 조용히 해봐.
몸을 낮추고 바닥에 귀를 댄 이시마는 아주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무거운 물체를 끌 때 나는 둔탁한 소리, 혹은 바퀴가 바닥을 굴러가는 것 같은 소리였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키시이와 하세가와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손전등 불빛이 복도 끝을 비추다가 잠시 후 사라졌다.
우리 말고 또 누군가 있는 거야?
왔어요! 분명 폭주하는 조각상일 거예요!
몸을 일으킨 키시이가 살금살금 교실 밖으로 향했다.
야, 키시이! 이 바보야! 이... 이시마, 이제 어떡하지?
우리도 따라가자. 혼자 둘 수는 없잖아.
아, 정말 저 녀석 때문에 골치 아프네!
교실 문을 살며시 닫은 이시마와 하세가와는 키시이를 따라 아래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계단을 돌아서자, 키시이가 활동실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키시이, 뭐 하는 거야? 아무 말도 없이 뛰어가지 좀 마!
숨을 헐떡이는 하세가와는 키시이의 어깨를 치며 짜증 난다는 눈빛을 보냈다.
하세가와, 여기 안에 있는 거 본 적 있어요?
선배라고 부르라니까. 그리고 활동실에 들어와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
그게 아니라...
키시이는 손을 들어 어두컴컴한 활동실을 가리켰다. 그러자 원래 잠겨있던 문이 바깥쪽으로 열려 있었다.
이시마가 문을 밀어서 열자, 이상하게도 바닥에 가느다란 빛줄기가 비치고 있었다.
일행은 빛이 비치는 방향을 따라 벽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책장이 있던 자리를...
누군가가 책장을 옮겨놓았고, 그 뒤로 벽틈새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시마와 하세가와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고, 키시이는 그곳으로 걸어가 벽에 손을 대고 있었다.
키시이가 문을 살짝 밀자 벽체 안에 숨겨진 "비밀문"이 뒤로 열리며, 먼지가 얼굴에 날렸다.
쿨럭.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자, 키시이의 앞에 크지 않은 암실이 나타났다.
이... 이게 대체 뭐야?
키시이는 밀실 안에 있는 거대한 기계와 첨단 장치를 바라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거대한 기계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무슨 무기 같은데?
학교에 왜 이런 게 숨겨져 있는 거지?
하세가와 선배, 이시마 선배, 빨리 와서 보세요. 엄청난 걸 발견했어요!
선배?
아무도 키시이에게 대답하지 않았고, 주변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키시이 뒤에 있어야 할 두 선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난 키시이는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손전등을 발견했다.
손전등이 굴러가다 멈추면서, 키시이의 발목과 활동실 절반을 비추었다.
이시마와 하세가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의식을 잃은 듯 보였다.
어... 어... 이건 아닌데.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키시이가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키시이의 입과 코를 막았다. 그렇게 키시이는 몇 초간 몸부림을 치다가 정신을 잃었다.
쓰러진 키시이는 완전히 의식을 잃지 않은 채, 몽롱한 상태에서 누군가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이상하네. 이렇게 늦은 밤에 왜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거지?
이어서 누군가가 뺨 맞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이 쓸모없는 것들, 잘 지키라고 했더니 어떻게 이렇게 쉽게 사람을 들여보내!
사오토메 박사님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셈이냐?
사오토메...
땅바닥에 누워있는 키시이가 희미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문제가 생기면, 너희들 가만두지 않겠어!
죄송합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팀장님.
힘겹게 버티던 키시이는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다.
팀장님, 여기 학생 셋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위층으로 데려가서 떨어뜨려 버릴까요?
또 한 번 뺨 맞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바보들아, 세 명이 동시에 투신자살했다고 하면 누가 믿겠냐?
다른 곳이라면 상관없지만, 정원 고등학교에서 이런 사고가 일어난다면...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뿐이야. 오늘 밤에 일어난 일이 외부에 알려지길 원하는 거냐?
최근 <정원 문춘>의 기자들이 꽤 성가셔졌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보건실로 데려가. 내가 지금 보건교사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할 테니.
다음 날 아침, 키시이, 이시마 그리고 하세가와는 보건실에서 조용히 눈을 떴다.
그들은 보건교사로부터 어젯밤 학교 주방에서 일산화탄소가 누출되어 세 명이 중독된 사실을 들었다.
그래서 모두 환각 증세를 겪었는데, 다행히 순찰 중이던 경비원이 적시에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심각한 교칙 위반을 한 세 사람에 대해 학교 측은 우선 심신 안정을 위해 추가 처벌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표하고 야간 경비를 한층 강화했다.
키시이와 선배들은 매주 한 번씩 심리 검사를 받게 됐고, 개별 사건 진술서도 제출해야 했다.
또한 학생 활동실은 수도, 전기, 벽면 보수 공사를 이유로 2주간 폐쇄되었다.
이로써 정원 고등학교는 공식적으로 하계 시간제에 돌입하게 되었다.
수국화 섬
7월 5일 오후 실내
뇌 과학 연구소 양자 컴퓨터 검증실
안녕하세요. 유우카.
……
오늘은 1:1 의식 투사의 제1차 실현 가능성 검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진행되며, 실험 중에 보게 될 장면들은 컴퓨터에서 실시간으로 구현됩니다
관련 설명 파일은 전에 전자 파일로 공유해 드렸는데, 기억하시죠?
많이... 아픈가요?
아파요?
실험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셨다면, 이런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최대한 아프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은 피할 수 없을 거 같네요.
제가 견디지 못한다면, 박사님께서 많이 실망하시겠죠?
뭔가 했더니, 그런 걸 걱정하고 있었군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실험이 실패하게 된다면, 박사님께 질책받을 사람은 당신이 아닌 접니다.
오늘은 별로 복잡하지 않아요. 단순한 1:1 시뮬레이션일 뿐이에요.
부담 갖지 마시고, 편안한 상태로 임해주시면 돼요.
그럼, 준비가 되시면 말씀해 주세요.
준비됐습니다.
유우카는 혼자 앞으로 가다가, 탈의를 한 뒤 맨발로 무균 실험실로 들어갔다.
단방향 유리 뒤에서 코헤이는 뒷짐을 진 채 차분한 모습으로 기대에 찬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거대한 기계에서 뻗어 나온 "촉수"가 유우카의 척추에 가느다란 바늘을 삽입했다.
유우카는 입을 손으로 막았으나,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고통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유우카는 고통에 익숙했으나, 그 고통 속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찾을 수 없었다.
고통은 사랑을 위해 감내해야 할, 보답받을 수 없는 선물이었다.
마른 몸이 떨리면서, 창백한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결국 유우카는 고개를 떨구고, 하려던 말을 삼켰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는 쓸쓸한 미소만이 남아있었다.
박사님, 지금의 저는 프로메테우스인가요?
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유우카의 창백한 입술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처음엔 한두 방울이었지만, 이내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연구원들이 즉시 유우카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으나, 제어 콘솔의 코헤이가 저지했다.
신경 쓰지 마. 정상적인 현상이다.
마이크를 잡고 차분하게 말한 코헤이의 눈에는 어떤 연민도 없었다.
버티세요. 유우카. 성패가 이 순간에 달려있습니다.
코헤이는 연구 보좌관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유우카와 연결된 거대한 기계가 최대 출력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한편, 양자 컴퓨터의 메인 시스템이 유우카의 두뇌에 삽입된 나노 기계에서 송신되는 신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뇌파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각 지점의 나노 기계 위치 추적을 완료했습니다. 신호 전송을 시작합니다.
활성화에 성공했습니다. 동기화 진입을 시작합니다. 동기화 진행 중입니다.
동기화율 80% 이상 도달했습니다. 의식 영역 공간 초기 구축을 완료했습니다. 환경 렌더링 중입니다.
팀장님, 가상 의식 환경이 구축되었습니다. 유우카의 의식 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증폭 장치와 투사기를 가동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의식 투사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팀장님. 차단기를 착용해 주십시오.
코헤이와 메인 관제실에 있던 전원이 차례로 전자 차단 장치를 착용하여 영향을 받지 않도록 했다.
시작하자.
제1차 의식 투사입니다. 간섭 영역을 개방합니다.
양자 컴퓨터가 작동하기 시작하자 메인 패널의 수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험실 안 유우카는 감전된 것처럼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서 주위 환경이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온갖 기괴한 빛이 스쳐 지나가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회색 바다 한가운데 맨발로 서 있었다.
하지만 소리와 외부에 대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고, 유우카는 여전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유우카, 어때요?
여기가 어디죠?
지금 유우카가 보고 있는 건 집단 무의식 네트워크가 구체화한 공간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유우카에게 무엇이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저한테 말해 주는 게 좋겠어요.
저에게 보이는 건 바다... 잔잔한 바다에요.
바다요? 의식 영역 공간이 그런 환경인가요? 의식의 바다.
그 외에는 또 뭐가 보이죠?
하늘과 바다 끝에 반짝이는 별이 있어요. 하지만 닿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가까운 곳에도 비슷한 발광체가 있어요.
마치 인간의 생각과 목소리 같아요.
좋아요. 그 표식 포인트를 만져보세요. 그리고 다음 명령을 수행하세요.
코헤이는 마이크를 잡고, 연구원들을 향해 몸을 돌려 손짓했다. 그러자 연구원들은 그 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상의 "의식의 바다" 속 유우카는 그 빛나는 점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그러자 유우카의 의식이 누군가의 시야 속으로 들어갔고, 주위 광경은 하얀 벽으로 바뀌었다.
두려움과 고통이 느껴져요. 그리고 더 크게 느껴지는 건 떨쳐낼 수 없는 절망감이에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괴로워하죠? 저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유우카, 당신은 목표의 의식에 들어갔어요. 이제 그의 신체를 조종해 보세요
제가 무엇을 해야 하죠?
오른쪽에 총이 있을 거예요. 총을 들어 그의 고통을 끝내주세요.
네? 제가 어떻게... 죄송하지만, 할 수 없어요.
이건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상황일 뿐이에요. 진짜 인간이 아닌데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죠!
이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실험은 실패로 끝날 겁니다.
하지만...
유우카, 해야할 일을 완수하세요.
코헤이는 협박하는 말투로, 명령하듯 차가운 말을 뱉어냈다.
잠시 생각한 유우카는 누군가의 떨리는 손을 조종해 총을 들고는 천천히 머리에 겨눴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귀가 찢어질 듯한 총소리가 지나간 뒤, 유우카의 의식의 바다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유우카는 그렇게 핏빛 바다에 쓰러져, 남아있는 이성이 파도에 씻겨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끝없이 가라앉았다. 한없이 깊은 바다 밑바닥을 향해 가라앉았다.
팀장님, 유우카가 의식을 잃었습니다.
의료반, 들어가서 지원해. 그리고 며칠 동안 쉬게 해줘.
그러고 나서 코헤이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제1차 1:1 의식 투사 실험은 성공했다.
코헤이가 성공했다고 말하자, 제어 콘솔 안에서 우렁찬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과학자들이 환호하며 축하했다.
코헤이는 손을 흔들어 모두에게 그만하라고 신호를 보낸 뒤,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갔다.
문밖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고, 둘은 함께 옆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의자에 묶인 남자가 고개를 떨군 채 있었고, 그의 정수리의 구멍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코헤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서 총을 주워 탄약을 빼냈다.
스기키, 이게 바로 우리에게 맞선 자의 최후다.
개처럼 죽었군. 이제 오오사코 박사님을 뵐 수 있겠어.
그래도 과학을 위해 기여한 게 있으니, 다행으로 생각해.
시체 처리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실험체로 사람을 썼다는 건 사오토메 박사님에게 말하지 마.
알겠습니다.
7월 5일, 제1차 의식 투사 실험은 성공했다.
사오토메 팀은 이론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체 실험을 서둘러 완료했다.
연구 인생을 건 이 도박으로 사오토메 리카는 주주총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각 연구 기관의 익명 초청이 들어왔고, 이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벤처 캐피털도 있었다.
개발 중인 민감한 기술과 관련되어 있어 실험의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사오토메 박사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식 투사 실험의 전 과정은 안전하고, 인도적이며, 객관적 법칙에 부합니다.
8월, 1:1 의식 투사 기술 검증이 성공한 것을 기반으로...
집단의식 투사 실험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코헤이는 8월 16일 육상부 축하 연회에서 해당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번 실험은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코헤이의 독단적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팔지 선배, 요즘 떠도는 소문 들은 적 있으세요?
소문? 난 그런 거 관심 없는데.
그거 있잖아요. 정원의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사라지지 않는 밤안개" 말이에요.
사라지지 않는 밤안개?
소문에 의하면 달이 없는 밤마다 정원 교내에 핏빛 안개가 피어오른대요.
그리고 핏빛 안개는 날이 밝기 전까진 사라지지 않고, 학교 곳곳을 떠돌아다닌대요.
만약 해 질 녘에 미처 돌아가지 못하고 안개에 쫓기게 되면...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 건 기본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빙의까지 된다고 해요!
그렇게까지 무서운 거야? 갑자기 그렇게 전개하지 마!
동아리 활동 후에 그걸 만난 사람이 있었는데, 다음 날 복도에서 기절한 채로 발견됐대요.
팔지 선배, 최근 교내 통행금지령 아시죠?
바로 이걸 막으려고 한 거래요!
됐어. 분명 어디서 베낀 이야기겠지.
학교 괴담이란 게 말이야.
도시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신화" 같은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