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화 섬 숙소 구역
4월 2일 저녁 날씨 맑음
오오사코 가문 저택 응접실
서양과 구룡 스타일이 잘 어우러진 현대식 응접실이었다.
창문을 통해 정원의 벚나무와 하늘을 가득 메운 분홍빛 꽃잎들이 보였다.
벽감 위 얕은 접시에는 수국화 한 다발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뒤쪽 벽면에는 장식용으로 진열된 각양각색의 진검들이 걸려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오오사코 박사님. 몇 년 동안 연락을 못 했었죠.
뜻밖의 손님이로군요. 사오토메 박사님. 이런 곳까지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 사신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와 봤습니다. 물론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요.
아직 옛 동창의 이름을 기억해 주신다니, 다행이네요.
겸손하시군요. 박사님의 명성은 과학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텐데요.
최첨단 영역의 학술 천재이시면서, 지금은 이 섬의 기술 이사이시지 않습니까?
리카, 당신은 저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늘 주목받으셨죠. 저는 이제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네요.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으세요. 요시히로.
풍기시는 분위기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멋져지셨어요. 주변의 시선도 많이 받으시겠어요.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저 같은 늙은이를 놀리시면 곤란합니다.
그런데, 박사님 곁에 계신 분은 누구신가요?
제 조수인 코헤이입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른 자세로 앉아 있던 코헤이는 오오사코 요시히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자기소개를 했다.
알겠습니다. 오늘 무슨 일로 오셨나요?
오오사코 박사님께서는 최근 첨단 기술의 발전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영점 에너지 프로젝트와 에덴 계획의 동향은 예전부터 지켜보고 있었어요.
몇 년 전에는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직접 가서 봤는데, 정말 대단한 괴물이더군요.
이대로 발전한다면, 머지않아 인간은 은하계로 날아갈 수 있을 겁니다.
오오사코 요시히로는 매우 흥분된 모습이었고, 눈빛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사오토메 리카는 두 손으로 찻잔을 들고 가볍게 입김을 분 뒤 몇 모금 마셨다.
정말 대단한 발전이죠. 하지만 저는 작은 의문이 있습니다.
인간이 은하계로 날아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당연히 더 넓은 우주를 개척하고 다른 행성에 인간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다음은요?
대기를 개선하고, 농사를 짓고, 도시들을 건설하고, 후대 양성 및 지식을 전파하는...
그것은 단순히 터전만 옮겨 지구에서의 삶을 반복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계획이 위대한 사업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거창한 미래 뒤에도 평범한 일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행성 자원을 먼저 차지한 개척자들이 후발 주자들을 사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주민의 후손들이 보지도 못한 고향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문화적 격차는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멀리 있는 지구 정부와 이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폭발하지는 않을까요?
전 은하계 식민은 결국 진부한 우주 서사로 귀결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어디를 가든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이기심, 적대감, 신비주의는 외계에 가더라도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주여행이 멋지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른이라면 더 많은 걸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는데, 과연 어떤 미래를 논하고 있는 걸까요?
낭만주의만으로는 현실의 여러 과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도 낭만주의자이지만, 인간의 선천적 한계는 잘 알고 있죠.
사오토메 박사님. 죄송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관점이 너무 비관적인 것 같습니다.
그게 제 장점이죠.
은하계 식민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모두가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박사님께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요?
오오사코 요시히로는 사오토메 리카의 말에 숨은 뜻이 있음을 알아챘다.
사오토메 리카는 미소 지으며 검지를 관자놀이에 살며시 가져다 댔다.
뇌입니다.
뇌요?
저는 여기서부터 변혁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모든 인간의 의식을 하나로 연결해서 정신 영역에 새로운 집을 만드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의식을 하나로 연결한다고요?
맞습니다. 인간의 마음 사이에 있는 장벽과 의심을 없애고, 집단 무의식 아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걱정과 분쟁이 사라진 정신의 에덴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방금 말씀하신 문제들이 소위 정신의 에덴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인간성에서 부정적 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면요?
모든 인간의 뇌를 통제하겠다는 겁니까!
인간의 미래를 위해선 우리가 더 나은 종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의지를 하나로 통일해 다시 한번 계몽을 맞이하는 겁니다.
듣도 보도 못한 위험한 발상으로,
터무니없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요시히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헤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급하게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사오토메 리카가 찻잔을 살며시 내려놓자, 코헤이는 눈치 있게 물러났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경직되며, 양쪽 다 침묵에 빠졌다. 그 와중에 오오사코 요시히로는 태연히 차를 우려내고 있었다.
사오토메 리카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다가 전시되어 있는 화려한 검들을 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검들입니다. 모두 오오사코 박사님의 소장품인가요?
유명한 도장이었던 선조의 영향으로, 여가 시간에 검을 만드는 취미가 있습니다.
보시는 이 검들은 모두 제가 최근에 만든 작품들입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참으로 화려합니다. 검집에 꽂혀 있어도 그 날카로운 기세가 형태를 통해 배어 나오는 듯합니다.
오오사코 박사님의 기예가 참으로 감탄스럽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검을 제작하실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여기 단분자 진동검도 있는 것 같은데, 과학 검도 만드실 수 있습니까?
특별히 무기 설계사에게 사사하였습니다. 과학 기술을 냉병기에 접목하는 발상에 매우 감명받았었거든요.
저도 매우 좋아합니다. 언제 저한테도 하나 만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사오토메 박사님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요.
그런데...
사오토메 리카가 무기가 전시되어 있는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검 걸이의 두 자리가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습니까?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오오사코 요시히로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검이 진열된 곳을 확인해 보니, 분명 검 두 자루가 자리에 없었다.
이상하군요. 아침에만 해도 분명히 있었거든요. 제가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네요.
정원 학원 고등학교
4월 2일 저녁 날씨 맑음
여자 탈의실 샤워실 안.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팔지의 머리카락의 거품을 쓸어내렸다.
방금 땀을 흠뻑 흘린 팔지는 이제야 얻은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돌려 수온을 높이자, 팔지 주위로 은은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좋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팔지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그때, 옆 칸에서 여학생 둘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들었어? 2학년의 그 음침한 애가 올해 정원의 별이 됐대?
걔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잖아. 웬만한 애들은 다 좋아하던데.
말도 안 돼. 학교도 안 나오면서 예쁜 얼굴만 믿고 그러는 거잖아.
아프다는 건 그냥 핑계일 거야. 눈빛 봤어? 완전 소름 끼쳐.
그렇긴 해. 어쩌면 진짜로 "사람"을 죽였을지도 몰라. 병원에서 말이야.
걔 그거 있잖아.
하하, 입이 너무 더럽다. 카나코.
너희 뒷담화 그만 하지!
팔지가 주먹으로 세게 문을 치면서 일부러 크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 즐겁게 떠들던 두 여학생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30초쯤 지나서...
미안. 우리 먼저 갈게.
미안.
다급한 발소리가 들린 후, 샤워실 안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남게 됐다.
팔지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유우카는 석양 아래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팔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
온수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5초마다 찬물과 더운물이 바뀌는데 완전 고문이었어.
오늘 운이 좋지 않아서 뜨거운 물로 씻으면 안 된다는 뜻인가 봐.
고개를 돌린 유우카가 왼손으로 입을 가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우카? 너 지금 웃었지? 나 몰래 웃었잖아.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안 웃었어.
어서 가자.
팔지는 유우카에게 장난스럽게 달려들어 간지럽혔다. 그러고는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전에 연주부에 간 적이 있었잖아? 근데 가 보니까 대부분 타악기를 치고 있더라고.
리코더가 재미없어서 다들 큰 악기로 바꿨대.
그러고 보니 유우카는 리코더 불어본 적 있어?
있어. 근데 불대를 자주 도둑맞아서 그냥 포기했어.
그래? 우리 학교 도둑놈은 정말 이상한 걸 훔치는구나.
네가 학교 나오지 않는 동안 연주부는 타악기부가 됐어.
어, 왜?
부원들이 공연할 때 보기 좋고 영상 올리면 더 인기 있을 것 같대.
그래서 선배 둘은 마림바 치고, 후배 한 명은 실로폰, 또 한 명은 드럼을 연주해.
내가 갔을 때 다들 열심히 연습하고 있더라고.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는데 묘하게 조화롭더라.
다들 대단하다. 팔지는? 팔지는 어떤 악기 맡았어?
아무것도 못 다뤄서 그냥 춤만 춰.
신경 쓰지 마. 밴드에서 조용한 애들도 춤춘다고 하더라.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건, 뭐든 존경받을 만한 일이야.
난... 운동 말고는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다음 달 진학 희망 조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진학 희망? 팔지는 뭐라고 할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달리기는 자신 있으니까 이쪽으로 계속 해 볼까 싶어.
사실 난 트랙을 계속 달릴 수만 있어도 행복하거든.
땀 흘리고 한계에 다다른 후의 상쾌함이 좋아.
몸이 피곤하면 잡생각도 안 나더라고. 이렇게 나 자신을 마비시키는 거야.
코치님 말로는 나 같은 애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대회에 많이 나가 보는 게 좋대.
나중에 육상선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은퇴하면 학교 체육 선생님 할 수 있잖아.
다들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 늙어 버리는 거지.
유우카? 넌?
난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리고 공부도 보통이라 갈 만한 곳이 없어.
너 문과 성적 괜찮잖아? 그리고 작문으로 상 받은 적 있잖아?
난 공부가 재미있다고 느껴 본 적이 없어. 그냥 선생님 기쁘게 해드리려고 대회 나간 거야.
그래?
넌 육상을 잘하니 특기자 전형으로 좋은 대학 갈 수 있겠지만, 난 뭐 하나 특출난 게 없어.
그나마 잘하는 꽃꽂이랑 종이접기도 진학에 도움도 안 돼.
그래서 나중에 할 수 있다면... 근처 꽃집에서 일할까 해.
하지만 요즘은 좋은 대학 나와도 운명을 바꾸기 힘든 시대잖아.
로봇이 각 업계에 대거 투입됐고, 복지제도도 잘 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최상위 엘리트만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잖아.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 찾는 게 낫지 않을까?
네 말을 들으니까 이해가 되는 것 같아.
고마워. 팔지.
그러고 보니 같이 만들자던 오르골 재료는 어디서 구하지?
수공예부 후배들한테 부품 구매 부탁하면 돼.
역시 수공예부 에이스야.
잠깐만, 팔지. 저기 애들이 몰려있는데.
아! 또 그 불량 학생들이네. 이번엔 혼 좀 내줘야겠어.
팔지는 가방에서 규율 위원 완장을 꺼내 익숙하게 팔에 둘렀다.
모여 있던 남학생들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팔지를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어때? 이거 아버지한테서 훔쳐 온 과학검이야.
완전 멋있는데, 대장! 이제 폭주족들이 벌벌 떨겠어.
야, 마사오. 하나만 빌려줘. 너 어차피 두 개 있잖아.
잘 들어. 폭주족 상대하려고 가져온 게 아니야.
강철도 자를 수 있는 괴물이니까, 손 잘리지 않게 조심해.
빨간색은 "단홍", 파란색은 "설택"이야. 잘 기억해 둬.
역시 대장!
불량배들이 무기를 구경하고 있을 때, 멀리서 느릿느릿한 발소리가 들렸다.
학교에 무기를 가져오는 건 중대한 교칙 위반 행위야. 너희들...
차례대로 이름 대. 그리고 장난감 두 개는 압수야.
팔지는 마사오가 들고 있는 물건을 자세히 살펴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감이 아니잖아. 단분자 진동 칼날... 전술 무기잖아?
이렇게 위험한 걸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너 물건 볼 줄 아는구나.
우리 아버지가 무기 엔지니어라서 알아.
대... 대장! 쟤가 전설의 "규율부 불량아" 팔지야!
혼자서 폭주족 절반을 박살 냈다는 "규율부 여자 야차"가 쟤야?
뭐냐? 그 이상한 별명들은. 짜증 나네.
아! 너희들 여자한테 겁먹은 거야? 쟤가 신선조건 뭐건, 난 상관없어.
팔지, 듣자 하니 너도 우리와 비슷하다고 하던데? 어쩌다 학교의 개가 됐냐?
내 밑으로 들어와서 우리 함께 이 섬을 제패하는 건 어때?
관심 없어. 그리고 조금씩 짜증 나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자. 나와 한판 붙자. 10라운드 동안 쓰러지지 않으면 네 말 들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난 봐주면서 할 거야.
준비는 됐어?
내가 할 말이야!
오오사코 마사오가 의욕에 차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 순간 시야 구석에서 검은 그림자가 아래쪽 비스듬한 방향에서 빠르게 달려들었다.
뭐, 어...
몸이 제어할 수 없이 뒤로 젖혀지며 눈앞의 광경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고는 등이 땅과 친밀한 접촉을 마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턱의 통증이 뒤늦게 찾아왔다.
마사오는 몸부림 치며 일어나 머리를 세게 두어 번 흔들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시야의 초점이 맞춰졌다.
더 할래?
뭐... 더 하다니? 무슨... 일이 있었지?
설마 내가 여자애한테 한방에 날아갔다고? 말도 안 돼. 아니. 뭔가 이상해.
대장! 괜찮아? 쟤가 먼저 기습 했잖아!
뭐하고 서있어? 어서 대장을 도와주자!
몇몇 부하들이 뒤늦게 마사오를 부축했지만, 마사오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비켜! 도와주긴 뭘 도와! 너희 도움 필요 없어. 날 비웃음거리로 만들 생각이야?
팔...팔지, 잘난 척하지 마. 꼭 복수하고 말 테니까!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고, 그전에도 그랬잖아. 다시 와봤자 결과는 똑같아. 바보야!
규율 위원인 팔지가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상대를 나무랐다.
오오사코 마사오는 그 기세에 눌려 잠시 멍해졌다.
내가 보기엔 넌 건달할 재능이 없어.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다시 일어서는 근성으로 조금만 노력하면 우등생이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딱 기다려. 팔지!
오오사코 마사오는 허둥지둥 과학검 두 자루를 챙기고는 불량배들의 부축을 받으며 도망쳤다.
별명이 또 늘었네. 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상대가 강할수록 패배가 더 멋지게 보이나 봐.
그런데 팔지는 어떻게 불량 학생에서 규율 위원이 된 거야?
지각 때문에 맨날 규율 위원한테 시달리다가, 이기지 못하면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한 거야.
그래서 신청서를 냈는데, 마침 잘 싸우는 애가 필요했었나 봐.
우연히 정의의 편이 된 거네. 잘됐다.
어서 가자. 늦었어.
응.
두 소녀는 해가 지기 전에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패배한 오오사코 마사오는 풀이 죽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허세 부리려고 아버지의 검을 훔쳐 나온 터라 얼른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했다.
마사오는 아버지가 발견하지 않았기를 빌며 살금살금 응접실로 향했다.
방 안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손님이 와 있는 것 같았다.
호기심이 생긴 마사오는 귀를 벽에 대고 엿듣기 시작했다.
비현실적인 환상을 위해 미성년자를 실험 대상으로 삼으시겠다는 겁니까?
미성년자는 성인보다 뇌의 형성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미성년자 중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안정도가 높죠. 이건 데이터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사오토메 박사님은 아이가 있으신가요?
네. 현재 정원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하나 있습니다.
따님이 이론상 적격자라면, 실험에 참여시킬 겁니까?
당연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실험에 참여할 수 있다면, 어머니로서 영광일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제 딸은 선천성 심장병이 있어서 이런 중책을 맡기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어떤 경우라도 두 분의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오사코 박사님, 이게 인간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이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
사오토메 박사님의 방안이 실현 가능하다고 증명된다면, 인간은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기회를 얻게 되는 겁니다.
어떤 과학의 진보도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이루어선 안 됩니다!
죄송하지만, 박사님의 관점은 다소 구시대적인 것 같습니다.
됐다. 코헤이.
오오사코 박사님의 뜻은 이해합니다.
저 또한 생명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더 많은 사람의 미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실험 과정에서 실험자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개개인의 신체 상황에 따라 조정도 할 것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위험 관리 예비안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의료 지원팀도 있습니다.
1차 심사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며칠 내로 좀 더 완벽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과학 이사회가 파견한 윤리 위원으로서 저만의 입장과 판단이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겠습니다.
방 안에서 몇 사람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마사오는 서둘러 반대편 창문 아래로 숨었다.
갑자기 재미있는 질문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오오사코 박사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사오토메 박사님, 물어보시죠.
뛰어난 도장이시니, 가장 날카로운 검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가장 날카로운 검 말입니까?
세상의 여러 검은 각자 장단점이 있어서, 개별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답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질문이네요.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마사오는 예쁜 여자와 정장 차림의 남자가 집 응접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조금 언짢아 보였고, 여자는 계속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오토메 박사님.
걱정 마. 문제 없어.
먼저 가서 실험 사전 준비를 해.
알겠습니다.
그 후, 둘은 검은색 고급 승용차에 탑승한 뒤 저택을 떠났다.
대체 누구지? 저 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