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총알이 발사되면서 폐허를 배회하던 침식체를 정확하게 맞혔다.
보고할게. 후방에 남아있던 침식체는 모두 제거했어.
알았어. 부상자들은 어떻게 됐지? 내가 벙커 아래로 호송한 후 신호 표식을 남겨뒀는데, 찾았어?
찾았어. 다들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응급 처치도 끝냈어.
반즈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부상 입은 구조체들이 눈을 감은 채 "줄지어" 누워있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처음 그 광경을 본 순간에는 심장이 멈출 뻔했다.
슈트롤, 앞으로는 제발...
참, 내가 있는 곳으로 와. 오는 길에 네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
또 그런 악취미나 보여주려는 거면, 앞으로 너랑은 임무 수행 안 하겠다고 크롬한테 말할 거야.
이 녀석 봐라? 대장 믿고 으스대는 거야? 성갑충에도 지휘관이 있다고.
간단한 마무리 작업일 뿐이라고. 너도 좀 움직여야지.
"간단한 마무리"라고? 지난번처럼 과거에 연인이었던 구조체 부상자 사이에서 한 시간 내내 싸움을 말렸던 그런 상황은 아니겠지?
말리는 게 싸우는 것보다 덜 힘들지 않아? 근데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그들이 나중에 너한테 민원 넣었다며? 그거 진짜야?
슈트롤.
알았어 알았다고. 앞으로는 주의할게.
오늘이 마지막이야. 전에 있던 곳에 처리 못 한 일이 좀 남았는데, 난 이미 멀리 와버려서 네가 좀 도와줘야겠어.
알았어. 난 척후병이니까 다음부턴 내가 앞에서 갈 거야.
좋아. 네가 앞에서 뭔 짓을 해도, 뭐라 하지 않을게.
삐.
반즈가 바로 통신을 끊어버렸다.
반즈는 근처의 지원 인원에게 벙커 아래 있는 부상자들을 맡기고, 슈트롤이 알려준 곳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앞으로 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반즈는 먼저 슈트롤이 남긴 "전진"하라는 신호를 받았다. 곧이어 길가에 널브러진 침식체들의 잔해가 시야에 들어왔으며, 주변은 섬뜩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에 그는 슈트롤과 다시 연락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반즈는 슈트롤의 위치 표시가 된 곳까지 걸어왔지만,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바닥에 사탕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
슈트롤이 늘 가지고 다니던 사탕이네.
반즈가 몸을 숙여, 그 박하사탕을 주웠다.
이게 뭐 하는 거야.
반즈가 사탕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사탕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빨간 불빛을 발견했다.
이런... 윽!!
그 순간, 박하사탕이 무시할 수 없는 강도로 "폭발"하면서, 반즈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전류가 로봇 팔을 타고 올라오면서, 한동안 팔이 마비됐었다.
이런 것에 속을 줄은 몰랐네.
슈트롤이 뒤에서 다가와 반즈를 일으켜 세웠다.
슈트롤!
경계심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진짜 적이 설치한 함정이었다면 어쩔 뻔했어?
침식체가 이런 함정을 설치할 리가 없잖아. 게다가 이건 네 물건이라서 내가...
그 순간, "박하사탕"에서 어설픈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내가 아끼는 반즈의↘ 생일 축하합니다↓
?
"예상" 못 했다는 그 표정은 뭐야? 오늘이 네 생일인 거 잊었어?
……
반즈는 자신이 개조된 이후로, 인간처럼 "생일"을 기념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기동일은...
크롬의 말에 따르면, 개조 전의 치명적인 부상으로, 일부 기억 데이터가 의식의 바다에 심각한 편차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개조 과정에서 그 기억들을 봉인했다고 하였다.
반즈는 개조 받은 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고, 카무이와 슈트롤도 간단히만 설명해 주었다. 당시에 반즈는 난민 철수 임무 중에 폭발로 크게 다쳤고, 크롬 일행이 그를 발견해서 호송해 주었다.
톰슨과 동료들의 "상실"은 반즈에게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빈자리가 되었다. 이에 슈트롤은 반즈와 친했던 대원 대부분이 그 임무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그의 기동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슈트롤은 반즈에게 "생일"을 챙겨준 마지막 친구가 되었다.
자, 생일 선물이야. 멍하니 있지 말고 받아.
슈트롤이 컴뱃 나이프를 건네주었다.
음, 고마워.
그 말 한번 듣기 힘드네. "고마워 아저씨"라고 하던 그때가 그리워지는걸. 정말 예의 바른 애였는데.
하아.
반즈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자, 이쯤하고 장비를 정리해서 돌아가자. 전방에 있는 침식체들은 내가 다 정화했으니까 "처리 못 한 일" 같은 건 없을 거야. 안심해.
슈트롤, 왜 아직도 내 생일을 챙겨주는 거야?
슈트롤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뭐가 "왜"라고 할 게 있나. 굳이 말하자면, 넌 아직 어리잖아?
뭐?
개조를 받는다는 건 네 시간을 잠시 멈추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 이후로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체를 바꾸지 않는 한 너는 그대로의 모습이잖아.
하지만 누군가는 네가 계속 성장하길 바라. 네가 쌓아온 기억 데이터들과 함께 말이야. 쯧, 좀 오글거리네.
……
슈트롤은 자기 말에 무안했는지, 손을 휘휘 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가자. 임무 완료 보고서를 제출할 때, 네 신청도 함께 올려둘게. 다음 임무에서는 네 의견대로 한번 앞장서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