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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8-24 현재와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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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사회

실험장

엄격한 검사를 통과하고, 복도들을 하나둘 통과한 끝에, 마침내 굳게 닫혀있는 실험실 앞에 다다랐다.

그곳에서는 창을 등지고 서 있던 아시모프가 실험 장비를 조작하고 있었고, 반즈는 의식의 바다 관측 기기에 연결된 채 시험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반즈의 의식의 바다 안정도가 표시되고 있었다.

그 순간, 안정적이던 연결에 갑자기 파동이 나타났고, 동시에 반즈도 눈을 찡그렸다.

곧이어 반즈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온 걸 발견했고, 아시모프가 먼저 그에게 다가갔다.

마침 잘 왔어. 반즈의 상태에 대해 말해 줄 게 있거든.

새 기체로 바꾼 이후로, 간혹 봉인된 기억 데이터를 무의식적으로 읽어 들이는 현상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네가 제때 반즈의 의식의 바다에 잠복해 안정시켜서 다행이야. 그렇게 혼잡한 상태에서 데이터까지 쏟아졌다면, 반즈는 의식의 바다 혼란으로 죽었을 거라고.

이제 그 기억 데이터가 반즈를 위협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의식의 바다의 파동이 관측되고 있어. 아마 너희들에게도 말했을 거야. 순간적으로 멍때리는 상태... 라고 해야 하나?

정확히 말하자면, 통제할 수 없는 일시적인 휴면 상태라고 할 수 있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일상생활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앞으로의 전투를 위해서라도 주의해야 해

자세히 검사해 본 결과, 순간적인 기억 데이터 교란이 원인이더라고. 반즈의 기억 데이터 저장이 불안정해진 거야.

연구소에서 일어난 의식의 바다 혼란이 너무 심각했어. 네가 제때 안정시키긴 했지만, 이 정도의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은 이미 예상했지. 현재 기술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야.

두 가지 방법이 있어. 가장 간단한 건 잠시 기존 기체로 돌아가는 거야. 이 방법은 의식의 바다 편차를 해결하는 데 주로 사용하지만, 반즈에겐 효과가 없었어.

다른 방법은 외장 기억 모듈을 사용하는 거야. 백로 소대의 밤비나타가 좋은 예시지. 반즈의 경우 밤비나타보다 상황이 덜 복잡하니, 더 안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외장 기억 모듈을 사용하면 반즈의 많은 기억 데이터가 소실될 거야. 최소한 "스스로 회상"하는 건 불가능해.

그건 반즈도 이미 명확하게 거부했어.

반즈는 연결된 관측 기기를 해제하고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지휘관은 그가 어떤 식으로 거절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휘관은 반즈의 의식의 바다에 잠복해 봤기에,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반즈를 떠난 이들의 기억 데이터마저 외부에 저장된다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이 두 가지 방법은 안 돼. 나와 아시모프는 세 번째 방법을 시도해 보려 해.

아시모프가 파일 하나를 꺼내, 특정 프로젝트팀의 공개 가능한 연구 주제를 지휘관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과학 이사회가 몇 년 전에 새로 설립한 프로젝트팀이야. 다양한 구조체의 의식의 바다 혼란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지.

그 프로젝트팀은 기존의 의식의 바다 연구와는 달리, 의료적 접근에 초첨을 맞추고 있어. 게다가 생명의 별 의료진과 긴밀하게 협력 중이야.

나도 알아봤는데, 반즈는 상태가 워낙 특이해서 프로젝트팀 내에서도 비슷한 병례가 없다고 해.

그래서 반즈의 결정이 필요해.

프로젝트팀의 임상 실험실에서 "첫" 사례가 되어, 의식의 바다 연구에 협력할 의향이 있어?

미리 말하지만, 첫 임상 사례는 상당히 위험할 거고,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어.

난 의식의 바다 편차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구조체를 많이 봤어.

이 기회를 통해 의식의 바다 손상 치료의 새로운 치료법을 찾으면, 나처럼 고통받는 수많은 구조체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 거야.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당장은 이 선택이 옳다고 생각해.

반즈의 진지한 표정을 본 아시모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보장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지휘관도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짓지 않아도 돼.

아시모프가 또 다른 파일을 꺼냈다.

이건 의회가 통과시킨 최신 <임상실험 관리 방안>이야.

이 방안에서는 임상실험의 최우선 고려 사항이 시험 대상자의 권익과 안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윤리 심사 및 사전 동의 절차를 반드시 준수해야 하고, 모든 시험 계획은 연구 시작 전 윤리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해.

모든 연구 과정은 관련 감독 체계하에 진행될 거야.

아시모프가 가리키는 내용들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했다. 이는 모두가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었다.

인간은 "인간 문명의 존속보다 중요한 명제는 없다."라는 걸 진작에 깨달아야 했어.

반즈에게 관련 파일을 확인시킨 후, 아시모프가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할 칼날을 잘못된 대상에게 겨눈 이들이 있었지. 이제는 그 칼을 올바르게 사용할 이에게 쥐여줘야 해.

과학은 멈추지 않고, 인간 문명의 교정 또한 계속될 것이었다.

불멸의 신창의 성장을 위해서는 불필요하고 잘못된 가지는 쳐내고, 봄날의 새싹이 자라도록 보살펴야 하는 법이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반즈의 치료는 곧 진행될 거야..

고마워.

별거 아니야.

과거의 의식의 바다 프로젝트가 남긴 "후유증"을 치료하는 셈이기도 하지.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아시모프가 파일을 정리하며 떠날 준비를 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휴식?

우린 육성 센터에 가보려고 해.

그날은 공중 정원 주민들의 휴일이었으며, 학생들도 수업이 없어서 많은 육성 센터의 아이들이 로비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구조체가 익숙하다는 듯, 구조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고, 가끔은 발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휘관과 반즈가 로비의 장의자에 앉아, 인공 천막에서 내리쬐는 맑은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예전엔 이곳도 구조체가 몇 없었는데, 이제는 흔한 광경이 됐네.

좋은 일이지.

슈트롤이 처음 육성 센터에 왔을 때는 나도 경계했었어.

연구소에 있던 슈트롤의 물건들은 전부 바렐리아에게 줬어.

슈트롤 얘기가 나오자, 지휘관은 지상에 있을 때 성갑충 지휘관 바렐리아와의 통신이 떠올랐다.

당시 모두가 임시 수용소에서 분주했었지만, 지휘관은 성갑충의 통신을 받자마자 바로 연결했었다.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에는 한 여성의 검은 머리카락만 희미하게 보였다. 바렐리아는 임무 수행 중이었던 것 같았다.

바렐리아가 통신이 연결된 걸 확인하자, 화면이 안정되며 늠름한 모습이 나타났다.

바렐리아는 지휘관의 주변 환경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슈트롤에 대한 소식이 있다고 들었어.

있는 그대로 말해줘. 슈트롤은 죽은 거야?

대원의 사망을 확인하자, 화면 속의 바렐리아가 한동안 침묵했다.

그럼 내가 그때 찾은 슈트롤의 사지는 전부 배신자들이 분리해 놓은 거야?

널 유인하려고 한 짓이겠지.

어느새 지휘관의 옆으로 온 반즈가 바렐리아에게 답했다.

반즈, 네가 처리한 거구나.

나한테 슈트롤이 준 사탕이 있어. 돌아가면 너한테 줄게.

사탕?

네가 예전에 슈트롤에게 줬던 거야.

알았어. 네가 공중 정원으로 돌아오면, 내가 받으러 갈게.

더 물어볼 건 없어.

바렐리아가 다시 속도를 내며, 다음 임무를 향해 질주했다.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말해.

예전에 슈트롤의 영상에 대해 내게 말했었잖아.

그 영상은 슈트롤이 실종되기 전, 반즈가 들은 슈트롤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바렐리아가 속도를 낮추더니, 반즈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통신을 종료했다.

통신을 종료하기 전, 그녀는 반즈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별거 아니야. 그냥 시시한 농담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와 작별하는 곳까지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갔잖아. 그것들은 나보다 더 절실한 이에게 가야 해. 바렐리아와 통신하면서 확실히 알게 됐어.

바렐리아는 특별한 말이 없었지만, 늘 그랬듯이 결국 그걸 받았어.

반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음.

지휘관이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자, 반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최근에 헤바가 수송기 운전을 배운다고 들었어.

음, 다른 건 나도 잘 모르겠어.

둘이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한 여자아이가 반즈 앞으로 달려와 거리낌 없이 인사를 건넸다.

반즈 오빠, 왔구나!

음? 너구나, 기억나.

익숙한 아이를 보자 반즈는 무의식적으로 간식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멈췄다.

지난번에 아이들한테 간식 나눠줬다가 자원봉사자한테 한 소리 들었거든.

정수리에 솟아있던 곱슬머리가 축 처진 반즈가 아쉬워하며 소녀에게 설명했다.

지금은 면회 규정이 복잡해서 안 돼. 다음에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간식을 보내줄게. 다른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

???

반즈!!

지휘관과 반즈가 함께 뒤돌아보자, 눈을 크게 뜬 여성 자원봉사자가 주머니에 있는 반즈의 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반즈! 그 아이는 며칠 전에 충치 때문에 유치를 뽑았잖아! 단 거 주지 마!

나탈리가 수납장에서 자원봉사자 표식이 있는 평상복 두 벌을 꺼내 앞에 있는 둘에게 던졌다.

육성 센터에서 같이 자란 친구야. 지휘관도 생명의 별에서 봤을 거야. 그곳의 의사거든.

몇 년 전, 의료 자원봉사자였던 나탈리는 최전선에서 살아남아, 공중 정원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녀는 의학을 갈고닦은 끝에 구조체 정비과 의사가 되었다.

가끔 정비받을 때, 차징 팔콘 대원들도 그녀와 인사를 하곤 했다.

일로도 바쁠 텐데 뭔 시간이 있다고 자원봉사까지... 윽!

나탈리가 반즈의 등을 한 대 때린 후, 앞으로 밀었다.

그럼 너는 시간이 많아서, 허구한 날 여기 오는 거야? 어서 가봐, 마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나탈리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에게도 물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반즈랑 같이 마카를 보러 오신 건가요? 예약하셨나요?

코제트요? 지상에서 데려온 그 아이 말이죠? 마카에게서 많이 들었어요. 따라오세요.

나탈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문에서 한 남자아이가 튀어나와 반즈에게 달려들었다.

반즈 형!

뛰지 마!

반즈 형 몰랐어? 지난번에 수술이 끝나고 나서, 나탈리 누나가 뛰어도 된다고 했어!

이제 옛날 영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랑 똑같아! 멋지지?

마카가 당당하게 몸을 펴며, 가슴에 장착된 특수 장치를 가리켰다.

반즈, 마카는 이제 보통 아이들이랑 다를 게 없어.

나탈리는 팔짱을 낀 채, 앞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남자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의사 선생님들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는데, 이렇게 빨리 임상에서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될 줄은 정말 몰랐어.

그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네.

좋은 소식은 항상 반즈의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직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기 전의 그 짧은 시간 동안, 척후대를 맡은 차징 팔콘 소대는 계속 뭉쳐 다녔다.

특히 반즈는 임무 수행 중에 대장의 지시로 다른 대원들과 딱 붙어서 단체행동을 해야 했다.

왜 반즈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이 갑자기 많아진 거지?

로제타가 그걸 공중 정원에 가져간 후부터 그랬어. 반즈가 구조체 의사였을 때 연루됐던 구조체 탈주 사건에 대해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면서 재조사를 요구했거든.

……

비열하게 뭔가를 감추거나 얻어내려는 거지. 들리는 바로는 당시 정화 부대의 아카이브를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반즈의 임시 개조 때 상황까지 조사했대.

그럼 결국 반즈를 문제 삼으려는 거 아냐?

지금은 일단 임무에 집중하자.

크롬은 마지막으로 주변의 퍼니싱 농도를 한 번 더 체크하고, 단말기를 조작해 상황을 보고했다.

보고합니다. 전방에 남아있던 이합 생물은 모두 제거했습니다. 수송 소대는 계속 전진해도 좋습니다.

다만 의료 자원봉사자들에게 방호복을 제대로 착용하라고 당부해 주십시오. 전방은 퍼니싱 농도가 다소 높습니다.

통신 너머에서 특정 인물에 관한 지시가 내려온 듯, 크롬은 반즈를 바라보았다.

반즈 말입니까?

통신을 마친 크롬의 표정이 의외라는 듯 살짝 올라갔다. 이렇게 빨리 좋은 소식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이 방금 받은 소식이야. 이제 우리는 공중 정원으로 돌아갈 거야.

비앙카가 지휘관님에게 전한 말대로라면, 반즈는 정화 명단에서 완전히 제외됐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리고 또 다른 정보도 전달받았다고 했어. 그 탈주 사건과 관련된 음성 파일이라던데?

음성? 음, 알았어. 일단 고맙다고 전해줘.

돌아가서 처리할 일이 많겠지만,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제야 크롬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좋아! 드디어 돌아갈 수 있어! 반즈, 네 수면 캡슐은 내가 다 정리해 뒀으니까 돌아가자마자 써봐!

또 이상한 걸 잔뜩 쌓아둔 건 아니지?

흥, 이상한 베개 같은 건 이제 못 넣을걸. 이미 한번 혼났거든.

카무이가 기뻐하던 순간, 다른 한쪽에서는 수송 소대가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수송차에 공중 정원에서 내려온 기술자들과 의료 자원봉사자들을 태운 채, 차징 팔콘 대원들의 앞을 지나갔다.

젊어 보이는 그들은 주변 광경에 신기해했다. 그들에겐 이 폐허마저 새로운 세상처럼 보이는 듯했다.

의료 자원봉사자

처음으로 실제 지면을 밟아보는 거예요. 역시 영상에서 본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네요!

반즈

또 새로운 이들이 지상으로 왔구나.

크롬

맞아. 이번에는 공중 정원에서 의료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빨리 대응했어. 예전과 비교하면 의료 자원봉사자팀 구성이 훨씬 신속하게 이뤄졌지.

이제는 의료 자원봉사자들을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어. 지원 부대가 대동하니까 희생률도 많이 낮아졌고.

크롬은 그때 과거의 한 지원 작전을 떠올린 듯했다.

크롬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

수송차가 떠나자, 차징 팔콘 대원들은 새로운 임무를 위해 최전선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들의 보호가 필요한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무이

자, 가자! 저 앞만 정화하면 돌아갈 수 있어!

하지만 반즈는 따라가지 않고, 한동안 지면에 남은 차량의 바큇자국과 새로 온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곧이어 반즈가 손을 뻗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과거와 미래를 만져보려는 것 같았다.

크롬

반즈? 뭘 보는 거야?

반즈

이게 내가 원하던 미래야.

인간과 구조체로서의 삶을 다 바쳐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

카무

쯧, 또 멍때리고 있는 거야?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반즈

하암, 괜찮으니까 걱정 마.

반즈가 손을 내리고 동료들을 따라갔다.

반즈

이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