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트롤은 반즈의 외침을 들은 것 같았다.
흐린 하늘 아래, 슈트롤은 격전이 끝난 자리에 앉아 주위를 살폈다. 그들 주위로는 금이 가득한 슈트롤의 팔을 급하게 수리하는 반즈를 제외하면, 연기 피어오르는 폐허와 시체들뿐이었다.
환청인가? 뭔가 들리지 않았어?
반즈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팔에 손상이 심하네.
방심했나 봐. 별거 아니야.
성갑충에 의료 로봇이 배치됐다고 하지 않았어? 돌아가면 잊지 말고 그걸 써.
크흠, 의료 로봇이 큰 도움을 주는 건 맞지만, 최근에 수리하러 보냈어. 그게 아니었으면 널 귀찮게 하지도 않았을 거야.
음, 의료 로봇이 수리 중이라고?
슈트롤이 다시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성갑충의 일은 네가 신경 쓸 게 아니야.
반즈는 따지기 싫다는 듯, 정비 장치를 끄고 슈트롤에게 팔을 돌려주었다.
간단히 처치해 뒀으니까,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면 구조체 정비과에 들러봐.
고마워.
다른 일 없으면, 난 좀 자야겠어.
다른 일은 없어. 하지만...
?
계속 뭔가 놓친 일이 있는 것 같아. 느낌이 이상해.
의식의 바다를 점검해 봐야 하나?
그 정도까진 아니야.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슈트롤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박하사탕을 먹으려 주머니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주머니가 텅 비어있었다.
다 먹었나?
뭘 찾는 거야?
출발하기 전에도 바렐리아에게 간식을 받았었는데, 왜 벌써 다 없어진 거지? 어디 떨어뜨린 건가?
간식이라...
이건 어때?
반즈의 손바닥에는 술이 들어간 박하사탕이 있었다.
최고야.
슈트롤이 사탕을 건네받아 포장지를 벗겼다.
최고야.
이걸 먹으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거야.
슈트롤은 사탕 포장지 안의 초록색 "사탕"을 보더니 잠시 주춤했다.
그는 이 사탕을 보며 잊고 있었던 많은 일들을 떠올렸다. 청소년 육성 센터에서 마주쳤던 두 도둑, 중도 재난 지역에서 사라진 젊은 대원, 그리고 퍼니싱의 전장에서 죽은 전우들까지.
슈트롤은 그들과 사탕을 나눠 먹었었고, 그들의 "생명"은 서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 거구나.
반즈는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이 슈트롤의 눈을 바라보았다.
난 그 안에서 얼마나 있었던 거지?
긴 시간이 지났어. 군에서는 너를 "사망자" 명단에 올린 지 오래야.
꽤 오래됐나 보네.
바렐리아가 네게 그건 안 보여줬어? 내가 의료 로봇을 붙잡고 주정 부리던 영상 말이야.
슈트롤이 정신을 차린 후, 가장 먼저 신경 쓴 건 반즈가 들어본 적도 없던 어떤 이상한 영상이었다.
……
안 봤다니 다행이네.
슈트롤이 반즈에게서 사탕을 받아, 자기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대충은 아는 것 같긴 하지만,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줄까?
승격자, 그 보라색 머리 꼬맹이가 이곳을 거점으로 삼고, 의식의 바다가 안정된 구조체들을 모아다가 융합시켰어. 게다가 우리는 실험 품 중 하나였을 뿐이고, 그들은 계속 이 짓을 이어갈 거야.
이제 다 끝났어.
반즈의 표정을 본 슈트롤은 대충 무슨 일인지 짐작했다.
아, 시간이 그렇게나 많이 흐른 거야?
또 누가 있어?
한두 명이 아니야. 들은 바로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과 네 복제체가...
네 명패는 병사들이 가지고 돌아왔어. 지금은 바렐리아가 보관하고 있지.
바렐리아라고? 그녀들이 뭔가 쓸데없는 짓은 안 했겠지?
그건 잘 모르겠어.
너는 어때? 어떨 때 보면 그 미치광이보다도 더 집착하던데.
……
됐어.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해.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우니, 다른 문제까지 듣고 싶진 않아.
슈트롤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수많은 의식의 바다가 겹치면서, 여러 기억을 봤어. 이곳의 기억들도 포함해서 말이야.
이 연구소에서는 뒤쪽에 있는 "쓰레기장"이 가득 찰 정도로 수많은 아이를 실험체로 썼어.
아이들을 탈출시키려고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는데,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어. 그러다 나도 침입자로 몰려 집중 공격을 받았지.
다 내가 만들어낸 환각이었나 보네.
난 네가 뭘 한 건지 알아. 네가 한 일들을 전부 봤었어.
그래?
슈트롤이 살짝 웃었다.
내가 남긴 단서를 따라 찾아온 거지? "나"를 해결할 방법까지 찾은 거로 봐서, 예전에 내줬던 그 과제들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 같네.
그렇게 성가신 과거라면 누구라도 잊을 수 없겠지.
슈트롤이 반즈의 어깨를 토닥였다.
반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자신의 어깨를 토닥여주던 누군가가 또 한 명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이제 가, 반즈.
적조가 곧 주변 보육 구역을 삼킬 거야.
너희들이 원하는 것과 구하려는 이들을 데리고 나가. 그레이 레이븐의 그 지휘관도 지금쯤이면 찾았을 테니, 어서 움직이라고.
당신...
어이, 그만해.
위험한 생각은 하지 마.
게다가 안에서 발버둥 치며 울부짖은 건 나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모두가 해방될 때가 온 거야.
슈트롤이 그 박하사탕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사탕을 입에 넣었다.
탕.
……
반즈가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전갈 괴물의 "얼굴"에 있던 마스크가 산산조각 나며, 날카로운 파편이 반즈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슈트롤의 방랑이 끝났음을 알렸다.
슈트롤은 이제 반즈의 앰버 속에서 온전한 채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