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그건 다른 무언가가 죽은 거였다.
오래전부터 죽기를 갈망하던 것들이 죽은 것이었다.
그럼, 그가 광적으로 참회하던 시점에 없애버리려 했던 "자신"이 죽은 게 아닌 걸까?
나약하면서도 교만했던 "자신", 끊임없이 싸웠지만 늘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죽은 걸지도 몰랐다.
또 어쩌면 계속해서 죽었다 살아나곤 했던 "자신", 기쁨은 모른 채 두려움만 안고 살던 "자신"이 죽은 걸 수도 있었다.
설마 숲속 그리고 이 아름다운 강에서 죽음을 찾아 헤매는 건 "자신"이 아닌 걸까?
그는 이런 죽음이 있었기에 한 아이처럼 믿음으로 가득하고, 두려움 없이 매사에 기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지휘관의 강한 손길이 반즈를 붙잡아 밖으로 밀어냈다. 그 순간,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주위의 손들도 일제히 움직이며 그를 밀어냈다.
그곳을 다시 보니, 눈보라가 멈추고 얼어붙었던 강물이 녹아내리며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강물은 다시 힘차게 흘러갔고, 실망/갈망과 절규/환호가 물결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강물이 전하는 이야기는 결코 고난만이 아니었으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늘 함께하는 법이었다.
반즈의 모든 만남과 기억이 강물에 깃들어 있었다. 이는 수많은 강과 호수를 거쳐 바다로 흘러들었고, 다시 구름이 되어 비로 내렸다. 그리고 그 빗방울은 토양에 스며들어 나무를 키워냈고, 마침내 그 나무는 한 방울의 "눈물"을 맺어냈다.
사랑이 깃든 순간들은 만물을 안아주는 <phonetic=세계>앰버</phonetic>가 되어 반즈를 감쌌다. 그러고는 부드럽고도 단단하게 그를 품은 채,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으로 이끌었다.
반즈는 그 안에서 잠든 채로 긴 시간을 보냈고, 기체는 낡아 금이 갈 정도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반즈는 자신의 시작을 보게 되었다.
반즈가 처음 본 것은...
앰버가 생성된 초기에 지각이 형성되고 대지가 갈라져 황폐해진 모습이었다.
뒤따라 "물"이 생겨나면서 <phonetic=세계>앰버</phonetic>는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단분자에서 다분자로 변하며 최초의 생명을 잉태했다.
생명은 진화하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물에서 육지로 올라와 식물이 되고 동물이 되었고, 생명은 왕성한 번식력으로 <phonetic=세계>앰버</phonetic> 구석구석에 퍼져나갔다.
반즈는 생명의 변화를 계속 지켜보았다.
씨앗들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되었다. 그것들은 자라서 성체가 되었다가 가지가 꺾여 죽거나, 자연스레 시들어 사체가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씨앗들이 그 사체 위에서 자라나고, 떨어지고, 유전자를 이어받아 다시 자라났다.
처음에는 앰버 속에서 화초가 자라났다. 생명력이 왕성한 화초는 기체의 틈새를 뚫고 나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우로보로스가 반즈의 몸 위에서 기어다녔다. 곧이어 그는 반즈의 옆에 있던 지팡이를 휘감았고, 격렬한 몸부림과 함께 허물을 벗더니 새 생명을 얻었다.
그 후, 앰버 속에 새들이 반즈의 기체 위에 날아와,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웠다.
그렇게 씨앗은 계속 진화하며, 앰버를 점차 풍요롭게 만들면서 세월의 변화를 겪어냈다.
……
……
……
수십억 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이날이 왔다.
반즈는 앰버 속의 세상 만물에 익숙했었고, 모든 사물, 모든 정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의 짙은 안개는 어딘가 평소와 달랐다.
멀리서 숨을 헐떡이는 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반즈는 이 소리의 주인공이 인간 <phonetic=아이>씨앗</phonetic>인 걸 알고 있었다.
반즈는 겨우 수백만 년밖에 존재하지 않은 이 종을 특별히 아꼈다. 그렇기에 맨발의 <phonetic=아이>씨앗</phonetic>이 춥지 않기를 바라며, 주변의 흙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phonetic=아이>씨앗</phonetic>은 반즈가 묻혀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 후, 그녀는 거대한 나무의 껍질을 더듬으며 쪼그려 앉아, 뿌리 근처의 흙을 파다가 무언가를 찾았다.
이건 앰버라고 해.
앰버? 안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잘 안 보여.
아이가 발견한 노란 앰버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짙은 안개에 가려진 햇빛 때문에, 반투명한 보석 속의 형체가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본 반즈는 짙은 안개를 조금 걷어내어 햇빛이 비치게 했다. 아이가 앰버 속을 잘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해가 떴으니 이제 잘 보일 거야.
안에는...
<phonetic=나 자신>씨앗</phonetic>이 있는 거야?
여기가 바로 반즈의 시작점이구나.
그때, 고대 시가에 나오는 <phonetic=파네스>어둠의 알</phonetic>처럼, 새끼 독수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단단했던 앰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돌아서자, 반즈의 몸을 감싸고 있던 앰버가 떨어져 나갔다. 그는 더 이상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으며, 거대한 나무 앞에는 화이트 팔콘같은 구조체가 서 있었다.
"사랑"이 기체의 균열과 가슴의 공허함을 채워, 온전한 그를 만들어낸 것이다.
반즈는 준비를 마치고 안개 속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반즈야, 나는 반드시 널 "에덴"으로 보내야 해.
알았어.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다 보내고, 구조체의 모든 힘마저 소진하며 여기까지 왔으니, 잠시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의 삶이 고통이나 즐거움으로만 이뤄진 건 아니잖아. 나도 마찬가지고.
이런 삶을 살았으니, 이제 어서 돌아가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해야겠어. 나는 아직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게다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
만약 "사랑"으로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미래와 바꿀 수 있다면, 난 영원히 이 사랑을 간직할 거야.
반즈가 눈을 감았다.
47호 병상에 응급 대응 시스템을 가동하세요. 먼저 기관 삽관 확인하고, 정맥로를 확보하세요.
……
책임은 임시 보호자인 제가 질 테니 서둘러주세요.
……
47호 병상이 눈을 떴어요!
반즈가 작은 병상 위에서 깨어났다.
난 에덴에 있는 거야?
기억이 너무 혼란스러워.
뭐라고? 우선은 조급해하지 말고, 내 말대로 따라 해볼레?
그녀가 정말 해냈나?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흐릿한 시야 속에서 누군가가 반즈에게 손을 뻗어,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반즈는 그리웠다는 듯 의사의 손바닥에 힘겹게 얼굴을 가져다 댔다.
멜비 이모.
지휘관, 그가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정말 회복된 게 맞아? 북극 항로 연합에서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정도 의식의 바다 손상으로는 아마도...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끊이지 않는 총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멜비 이모가 아니야?
반즈가 눈을 깜빡이며 시각 모듈을 다시 조정했다. 그러자 이곳이 생명의 별이 아니며, 아무도 그의 이마를 쓰다듬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버려진 연구소의 한 통로, 그곳에서는 인간과 로제타가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반즈를 뒤에 둔 채, 광기에 물든 이합 생물들에 맞서고 있었다.
행운의 여신은 아직도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잠복이 끝난 후, 지휘관 일행은 가장 안전해 보이는 길을 골랐지만, 숨어있던 수많은 이합 생물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다.
지휘관!
로제타가 순식간에 방패를 던져 바닥에 꽂았다. 이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이합 생물들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방패의 엄호로, 인간은 적절한 각도를 찾아 연속으로 총을 격발했다. 그러자 전술 권총의 총구에서 번쩍이는 불빛과 함께 방패에 막혀선 이합 생물 몇 마리가 쓰러졌다.
안 돼. 너무 많아서 오래 버티기 힘들어!
그 순간 이합 생물 한 마리가 "장벽"을 뛰어넘어, 커다란 입을 벌리고 인간을 향해 사정없이 덮쳐 들었다.
나는 아직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안심이 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인간은 잠시 멍해졌다.
교정 모드, 가동.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집중하는 거야.
반즈의 말과 함께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면서, 경형 무인기의 날개가 흩어지자, 눈 깜짝할 사이에 인간 뒤로 거대한 역장이 생겨났다.
후.
무거운 정적이 깨지는 순간, 푸른빛의 강화 총탄이 역장을 뚫고 들어가 지휘관에게 가장 근접해 있던 이합 생물을 정확하게 명중했다.
이합 생물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소멸한 순간, 지휘관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뒤로 물러나 총을 재장전했다.
반즈는 총을 뽑아 앞으로 돌진하며, 로제타와 함께 앞쪽의 더 많은 뒤틀린 "벌레"들을 처리했다.
괜찮아?
눈올빼미는 로제타의 말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앞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교정 역장이 그의 동작에 맞춰 펼쳐지며, 남은 이합 생물들을 정확하게 조준했다.
곧이어 빗줄기처럼 응축탄이 쏟아졌고, 두 동료의 놀란 시선 속에서 반즈는 전술 수류탄을 앞으로 던졌다.
알았어!
로제타가 창을 거두고, 실드를 든 채 지휘관과 함께 안전한 위치로 물러났다.
쾅.
강력한 화력의 집중 폭격 아래 이합 생물들의 소름 끼치는 비명소리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마침내 반즈가 시체더미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
……
……
네 의식의 바다에 큰 혼란이 있었어. 제때 심층 연결을 하지 않았으면, 그 혼란이 의식의 바다를 "찢어"버렸을 거야.
하지만 지휘관은 네가 깨어날 거라며, 이 연구소에 남아있던 장비로 너와 연결했어.
……
반즈는 아직도 혼란스러운 듯 이마의 상처를 매만지며,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해 준 두 대원을 바라보았다. 로제타의 기체는 뚜렷한 손상을 입었고, 지휘관의 몸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반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반즈가 지휘관의 눈을 바라보자, 의식의 바다 속의 눈보라와 관이 점차 멀어져갔고, 앰버 속에 갇혔던 한 생도 긴 꿈처럼만 느껴졌다.
모든 "현재"와 "본질"이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침묵해온 반즈가 영겁의 시간 끝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휘관.
이제 "잠"에서 깼어.
지휘관과 로제타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긴장된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모두가 농담을 주고받았다.
반즈도 고개를 숙이며 살짝 웃었다.
고마워.
곧이어 반즈가 흐트러진 몸을 추스르며, 각 부위의 모듈을 점검했다. 그 후 그는 다시 앞에 놓인 임무에 집중하며,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가장 아래층으로 가봐야 해. "슈트롤"이 그쪽으로 이동했는데, 더 조사하지 못했거든.
아마 그곳이 단서가 가리키는 마지막 장소일 거야.
그 순간, 반즈의 말에 응답하듯 지면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공간 전체가 아래로 가라앉았다.
계속 흔들리고 있어. 지휘관이 심층 연결을 시작한 이후로 지하에서 계속 이런 진동이 전해졌다고. 지난 30분 동안 벌써 네 번이나 흔들렸어.
이대로 가다간 이 버려진 연구소가 무너지거나 완전히 지하로 가라앉을 거야. 우리에게 남은 시간도 얼마 없어.
그럼, 우리는 먼저 다른 구조체 대원들을 구출해야 해.
반즈가 허리의 총을 꽉 쥐며 눈앞의 생존자들을 선택했다.
맞아. 내 탐측 결과에 따르면 최하층에는 아직 적조가 있어.
이곳의 적조는 상당히 활발해. 적조가 그런 "슈트롤"을 집어삼키면, 더 빠르게 몰려들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뿐만 아니라 189번과 190번 보육 구역의 철수에도 위협이 될 거고.
이제 알겠어.
승격자들은 슈트롤을 퍼니싱 실험에 이용했고, 지금도 그의 의식이 그 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아동 실험체들과 연구원들은 모두 슈트롤의 환상이었고, 그가 처리한 건 이곳을 거점으로 삼은 배신자들이었던 거야.
그러면 이해가 되네. 단말기에 남아있던 흔적들도 그가 남긴 거였구나.
반즈가 리볼버를 꺼내들자, 무인기가 그의 뒤에서 전개되었다.
따로 행동하자. 난 최하층의 일을 먼저 처리하러 갈게.
그리고 그 침식체 말인데. 아마 우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려던 걸 거야. 그래서 그 침식체를 찾아, 자료를 공중 정원으로 가져가야 해.
침식체? 저걸 말하는 거야?
앞에 있던 로제타가 멈춰 서서, 저 멀리 모퉁이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심한 부상을 입은 침식체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
눈앞의 형체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님을 알면서도, 반즈는 그 모습을 마주한 순간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알았어.
반즈는 마지막으로 그 침식체를 몇 번 더 보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
잠깐만.
그때, 로제타가 장창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곧이어 고에너지 방출 부품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느릿느릿 붕괴하는 건 우리 작전에 맞지 않아. 차라리 뚫어버리는 게 좋겠어.
또 한 차례의 격렬한 진동이 전해지면서, 별처럼 빛나는 창이 하늘에서 떨어져 흔들리는 지면을 관통했다.
튀어 오르는 파편 속에서 로제타가 반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휘관의 곁에 섰다.
그때, 거대한 구멍 아래 미지의 공간에서 퍼니싱이 분출하듯 솟아올라, 공기 중의 퍼니싱 농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인간이 마지막 남은 혈청을 꺼내 주사했다.
지휘관의 말과 함께 반즈는 구멍 아래로 뛰어내렸고,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과 로제타는 침식체를 뒤쫓아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지휘관과 로제타가 음침한 통로로 들어간 그때, 그들의 통신 장비에서 잡음이 들려왔다.
나도 소대의 신호를 받았어. 그들이 근처에 있는 걸까?
앞서가던 침식체가 멈춰 서더니 숨겨진 방으로 들어갔다.
여긴...
실내의 설비를 보자마자 이곳의 본래 용도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메인 관제실 구석에서 반가워하는 외침이 들리면서, 경상을 입은 구조체가 달려왔다.
지휘관님!
그레그를 따라 파이프 반대편으로 돌아가 보니, 바닥에 구조체 몇 명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연구소에서 실종됐던 구조체였다.
"구원자"가 나타나자, 그레그가 오열하며 인간의 팔에 매달렸다.
저희가 뭘 만났는지 아세요? 전갈처럼 생겼고, 그렇게 큰데도 잠복해 있을 때는 소리 하나 안 내던 침식체가 나타났었어요.
샌디가 퍼니싱 반응을 탐측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저도 여기 누워있었을 거예요!
그레그가 또다시 긴장한 나머지 구역질을 하려 하자, 지휘관이 샌디처럼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저희가 그 전갈한테 습격당한 뒤에, 이놈이 나타났어요.
그레그가 메인 관제실 반대편에 멈춰 서 있는 침식체를 가리켰다.
그 후 저 침식체가 우리를 아래에 있는 구멍으로 끌고 갔다가, 다시 여기까지 끌고 왔어요.
이 운 없는 구조체들도 똑같은 일을 당했나 봐요.
이 구조체들은 아직 살릴 수 있겠죠?
그레그가 다시 쪼그리고 앉아, 한 구조체의 상처를 손으로 압박해 순환액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았다.
부상자들이 너무 많아요. 전 보조형이 아니긴 하지만, 긴급 구조 데이터가 내장되어 있어서, 이곳을 지키며 이들이라도 구하려 했죠.
로제타는 구조체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살펴본 뒤, 더 이상의 위험은 없다고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상 상태를 확인해 봤는데, 다행히 상처가 모두 제때 처치됐어.
정말 다행이에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그레그는 끝까지 부상자의 상처를 압박하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드디어 좀 쓸모가 있었네.
그때, 지면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전의 진동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했으며, 심지어는 천장에서 파편이 떨어질 정도였다.
지휘관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통신 상태를 확인했지만, 다행히도 원격 연결 신호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흔들리는 정도로 봐서, 반즈가 저 침식체를 처치한 후에는 연구소도 완전히 무너질 거야. 지금 바로 제어 콘솔을 작동시킬게!
천장에서 떨어지는 파편이 머리 위로 떨어지자, 모두가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레그가 상황을 받아들이려 어리둥절하던 사이, 지휘관이 구조체 정비 도구를 그레그에게 쥐여주었다.
아, 네!
한편, 로제타는 재빨리 장비를 가동하고, 가져온 메모리를 연결했다. 게다가 그 둘이 중앙 실험실의 전력 시스템을 복구해서인지, 이곳에도 전력이 공급되었다.
가능할 것 같... 조심해! 으윽!
건물 잔해가 지휘관을 덮치기 직전, 순식간에 로제타가 막아주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잔해가 제어 콘솔을 강타하면서, 스크린은 순식간에 노이즈로 뒤덮였다.
장비에 집중해! 시간이 없어!
붕괴에 더해 적조도 덮쳐오고 있어! 한 시간 안에 여기서 철수하지 못하면 적조에 익사하고 말 거야!
작업을 멈추지 않던 로제타의 노력으로 스크린이 다시 깜빡거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권한 없음"이라는 창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그러자 지휘관이 어떤 스위치라도 누른 듯, 장비가 느릿느릿 작동하더니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붕괴 직전이던 장비가 마치 지휘관의 심호흡에 반응하듯, 순간적으로 안정을 찾으며 새로운 화면을 띄웠다.
"검색 중입니다".
방금 지휘관과 로제타를 이 메인 관제실로 "안내했던" 침식체의 몸에서도 규칙적인 불빛이 반짝였다.
그 순간 침식체가 순식간에 달려왔다. 지휘관이 재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퍼니싱에 뒤덮인 침식체와 정면으로 부딪칠 뻔했다.
지휘관과 로제타가 지켜보는 가운데, 침식체는 자신이 "제물"인 것처럼 장치의 인터페이스에 자신을 연결했다.
화면이 다시 업데이트되면서 방대한 실험 데이터와 기록이 쏟아져 나와 지휘관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빠르게 내용을 훑어보던 지휘관은 이내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지휘관은 그 정보들을 통해 각 실험체의 짧은 삶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오고, 구조체가 되며, "쓰레기장"에 버려진 시점들이 자세히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이는 한 어머니가 아이의 성장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기록한 것 같았다.
사랑과 연구에 대한 집착이 뒤섞인 이 집념, 이것이 사람을 구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한 것인지는 반서만이 알 수 있었다.
데이터 기록이 끝났어, 지휘관!
로제타는 장비에 연결된 저장 단말기에 완료 신호가 뜨자마자 재빨리 분리해 안전하게 수납했다.
주위의 환경은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강렬한 진동과 지하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오더니, 메인 관제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원격 신호가 불안정하게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반즈의 상황을 알 수 없어 지휘관은 다시 한번 가슴을 졸였다.
내 옆으로 와!
로제타가 방패를 들어 무너지는 천장을 지탱하며, 뒤에 있는 그레그와 다른 이들의 안전을 확인했다.
방금 공중 정원에 구조 신호와 위치 정보를 보냈어. 철수 준비를 하자, 지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