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겨우 이송된 사람들이 임시 수용소에 도착했다.
엘리트 소대도 포위망을 뚫기 힘들다고 해. 지원도 올 수 없는 상황이라, 당분간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침식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고 있어. 중도 재난 지역 바깥에서 이런 규모의 침식체 무리는 처음 보는데 귀찮게 됐군.
중도 재난 지역에서 온 게 맞아요. 공중 정원에서 우리한테 관련 정보를 보내줬었거든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죠. 이 사람들을 여기까지 데려올 수 있었던 것만 해도 행운이에요.
일단 사용 가능한 장비부터 정리해 둬. 날이 밝기 전까지 엘리트 소대가 침식체 무리를 뚫지 못한다면, 우리도 큰 전투를 피하지 못할 거야.
정 안 되면 다 같이 전자 펄스 폭탄을 안고, 침식체 무리 속으로 뛰어들면 되겠지. 어떻게든 돌파구는 만들 수 있을 거야.
아무도 이 미친 듯한 제안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슈트롤은 자신의 통신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때가 되면 통신은 꼭 유지하고.
현장의 구조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이런 헛된 "위로"조차 더는 듣지 못하게 된 동료들이 생겨났다.
반즈는 어때? 다른 의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뒤통수에 부상까지 입은 의사는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
슈트롤이 팔을 들어 올리자, 금이 갔던 부위에는 임시방편의 응급처치가 되어있었다. 곧이어 그는 주변의 구조체들을 둘러보니, 반즈가 모두를 치료해 줬다는 걸 발견했다.
반즈는 아직도 뒤쪽의 난민들 사이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카무이가 반즈 곁에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도 평소처럼 태연한 건 아마 카무이뿐일 거예요. 하하.
우리는 모두 불안해하고 있는데, 카무이는 이런 전장까지도 적응한 것 같네요.
톰슨이 손목의 손상된 투영 장치를 두드리자, 희미하게 한 남자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순식간에 이미지가 사라졌고, 기계는 불꽃을 튀기며 완전히 멈춰버렸다.
슈트롤이 시각 모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슈트롤은 개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경찰이었어.
네?
나는 첫 개조 그룹에 속했었지. 그때도 나이가 꽤 있었어. 근데 "경찰"이란 말은 너한테도 낯설지 않을 텐데?
그게 아니라, 우안이 전에 슈트롤이 경찰일 것 같다고 했었거든요. 그 말이 정말 맞았네요.
왜? 내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워?
그럴 리가요. 조금 전에도 "전자 펄스 폭탄을 안고 침식체들이랑 동귀어진"을 하자고 하셨잖아요.
톰슨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억지로 지었던 밝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안이 점점 슈트롤을 닮아가고 있었어요.
날 보고 배우지 마. 난 겉으로도, 속으로도 좋은 놈이 아니야. 하지만 가끔은 남을 지키는 게 내 운명인가 싶을 때가 있어.
톰슨은 슈트롤의 목에 늘어난 명패들을 바라보았다. 이는 이번 임무에서 희생된 구조체 병사들의 것이었고, 그중에는 우안의 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슈트롤이 황급히 명패를 가리자, 톰슨은 더 이상 그것을 볼 수 없었다.
다른 소대에 연락해서 모두 수용소 주변을 지키도록. 오늘처럼 침식체들이 다시 떼로 몰려올 수도 있어.
슈트롤이 폐허 속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반즈가 아이들 앞에 몸을 숙인 채 있었고, 카무이는 그 옆에서 물품을 나누어주며 그를 돕고 있었다.
빌어먹을 퍼니싱 때문에 희생자가 더 나오지 않아야 할 텐데.
반즈는 가장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하늘에는 별 하나 없었고, 임시 거점 곳곳에 설치된 조명등만이 빛을 비추고 있었다.
여과탑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은 약이 부족했으며, 지원은 계속 지체되었다. 그렇게 난민들은 질병과 침식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미안해.
면역 혈청이 얼마나 남았어?
전부 떨어졌고, 나탈리 선생님 쪽에도 없어요. 어떡하죠?
난민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 중에도 중상자가 있는데, 이대로 죽는 걸 지켜만 봐야 하나요?
젊은 의료 자원봉사자가 혼란에 빠진 채 반즈의 질문에 대답했다.
……
아무리 "요구를 들어주는 소원기"라고 해도 혈청을 막 만들어낼 순 없어. 소원 카드를 모아야 한다고.
네?
카무이?
그 애가 벌써 세 장이나 모았어. 난 "의사 선생님"의 약속을 지켜주려고 사탕 가지러 가는 중이야.
그리고 이거 받아. 네가 찾던 가위야. 소독은 하고 사용하는 게 좋을 거야.
고마워.
카무이가 가위를 반즈에게 던져준 후, 의료 자원봉사자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그러자 자원봉사자는 구조체의 무게에 휘청거렸다.
물자 중에 사탕이 있을 줄은 몰랐네. 어쩌면 우리가 못 찾은 혈청도 있지 않을까? 봉사자! 나랑 같이 찾으러 가보자.
당신...
카무이가 불안에 떨던 의료 자원봉사자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그 후, 반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앉아, 비교적 깨끗한 금속판에 봉합용 실과 가위를 준비했다.
콜록콜록!
의사 오빠, 저도 병에 걸린 거예요?
아니야. 우리가 너무 급하게 움직여서, 감기 기운만 조금 있는 거야.
의사 형, 제 상처는 어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 깊어서 죽을 것처럼 아팠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아무 느낌도 없어요.
남자아이의 팔을 감은 붕대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 아래 살점은 이미 퍼니싱에 의해 썩어 들어, 반즈가 필사적으로 봉합을 시도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 내가 진통제를 줬거든.
진통제. 네이슨 오빠도 진통제는 좋은 거라고 했어요.
오빠는 괜찮아요?
아이들은 네이슨이 눕혀져 있는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의 밑에는 한 의료 자원봉사자가 벗어둔 흰 가운이 깔려 있었고, 그마저도 완전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네이슨은 잠들어 있었고, 아마도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네이슨은 자고 있어. 내일 아침이면 깨어날 거야.
네이슨 오빠는 절 지키려다가 저렇게 된 거예요.
제 잘못이에요. 침식체가 나타났을 때 우리 모두 겁에 질려 꼼짝도 못 했는데, 네이슨 형만이 우리를 밀어내며 도망치게 했어요. 제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모두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콜록콜록!
의사 형. 사실 저도 온몸이 아파요.
……
의사는 천천히 손을 멈추고, 병마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작은 몸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오늘 낮에 정말 잘했어.
아무도 잘못한 게 없었어.
반즈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도 공중 정원에 가보고 싶니?
이 약통 몇 개를 너희에게 줄 건데, 아주 귀한 거라서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해. 그러니까 너희가 잘 지켜줘.
날이 밝으면 공중 정원에서 우리를 구하러 와줄 거야. 그리고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을 공중 정원으로 데려갈 거라고.
반즈가 약통 몇 개를 꺼내 흔들자, 약병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며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날이 밝을 때까지 약을 잘 지키면, 착한 아이가 될 거야.
공중 정원에 가면 청소년 육성 센터가 너희를 따뜻하게 맞아줄 거야. 더 착하게 지내다 보면 좋은 가정으로 입양될 수도 있어. 따뜻한 가족의 품도 생기고, 최고의 교육도 받을 수 있고, 더 많은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거야.
반즈가 낮은 목소리로 감정을 억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너희가 다 자랄 때까지.
다 크면 하고 싶은 걸 뭐든지 할 수 있어. 엔지니어, 의사, 예술가 등등 모두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어.
지구를 탈환하는 그날까지 다 같이 힘을 합쳐서 퍼니싱과 싸우는...
그런 삶은 어때?
마음에 들겠지?
반즈가 약통을 들어 올리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삶을 살고 싶으면 손 들어 봐.
아이들이 하나둘 손을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약통을 잘 지켜. 절대로 열어보면 안 되니까, 서로 잘 감시해야 해.
알겠어요!
아이들은 소망이 가득 담긴 빈 약통을 품에 안았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있어 에덴으로 가는 티켓이었고, 이 긴 밤을 조금이나마 더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이었다.
주변의 어른들은 멍한 눈으로 반즈를 바라보며 그의 거짓말을 쉽게 알아챘다. 조금 전, 반즈는 "소원 카드"를 빈 약통에 넣었던 것이다.
약통을 흔들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서, 정말 약이 들어있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아무도 반즈의 거짓말을 폭로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즈는 환자들이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포위 돌파 소대의 마지막 교신이 있고 한 시간이 넘었어요. 그들이 안 온다면 정말로 폭탄을 던져야 하나요?
일단 아이들을 한곳에 모아. 만약의 상황이 벌어지면 반즈와 카무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철수하고, 나머지는... 날이 밝을 때까지 버텨보자.
긴급 통신이 다시 전송되며, 귀를 찌르는 경보음이 모든 구조체의 단말기에서 울렸다.
더는 기다릴 수 없겠군.
전방에 다수의 침식체가 접근 중입니다! 수가 많습니다! 전투에 준비하십쇼!
슈트롤이 그 즉시 통신을 열어, 후방의 난민들에게 긴급 메시지를 전달했다.
카무이, 반즈! 들리나!
전투가 시작될 거야. 난민들을 모두 피신시켜. 침식체와 마주치면 끝장이야!
키이익!
으윽!
톰슨?! **, 뭐가 이리 빠른 거야. 조심해, 침식체들이 너희 쪽으로 향하고 있어!
톰슨과 다른 구조체를 덮친 침식체들이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사람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달려들었다.
나한테 맡겨둬!
카무이가 난민들 앞으로 뛰어나가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시각 모듈은 이미 다가오는 침식체들을 포착한 상태였다.
시간이 없어. 나도 무기를 가지러 가야겠어.
크아악!!
제법 빠르네! 뭐야? 뒤에도 있어?
사방에서 침식체들이 몰려들면서 카무이가 대검을 빠르게 휘둘렀지만, 몇 놈은 빠져나가고 말았다.
반즈! 하나가 네 쪽으로 갔어!
의사 형!
봤어.
탕!
총을 가지고 돌아온 반즈가 저 멀리서 침식체의 "다리"를 산산조각 낸 후, 그 잔해를 구석으로 걷어찼다.
크으윽...반 ...
!
반즈가 한 발 더 박아 넣었다.
방금 그건 침식체의 발성 장치에서 난 소리야?
반즈! 사격 솜씨가 여전하네!
잘못 들은 게 분명해.
카무이의 뒤에 있던 반즈는 난민을 향해 돌진하는 구조체들을 저지하며, 가쁜 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하나, 둘, 셋... 안 되겠어, 수가 너무 많아.
연속된 전투로 반즈는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오랫동안 휴식도 없이 달려온 탓에 몸과 마음의 피로가 극에 달했던 것이다.
반즈가 난민들과 협력하여 침식체 한 마리를 더 정화한 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반즈가 침식체의 잔해 속에서 구조체의 팔을 보았고, 그의 눈빛에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전방에서 구조체들이 희생됐어.
난 유일한 구조체 의사야. 그러니까 그들을 찾으러 가야만 해.
그럼 우리는 어쩌라고요?
노인, 아이 그리고 부상자들은 뒤로 물러나고, 움직일 수 있는 의료 자원봉사자들은 계속 부상자들을 간호해 줘. 그리고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앞으로 나와.
한 난민이 절망에 빠진 듯 얼굴을 감싸쥐며 소리쳤다.
이런 생활은 이제 지긋지긋해! 왜 우리보고 침식체에 맞서 싸우라는 건데! 인간의 가죽을 쓴 저 쇳덩어리들을 뒀다 뭐 하는 거냐고!!
인간의 가죽이라고? 구조체는 결국 인간을 개조한 건데, 뭐? "쇳덩어리"? 내가 만약 퍼니싱과 싸우는 구조체였다면 제일 먼저 당신의 입부터 찢어버렸을 거야!
……
이명이 울리며, 극한의 고통이 반즈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반즈! 톰슨도 다쳤어! 방금 경보 신호를 받았는데, 더 이상 버티기 힘들대!
……
귓속을 파고드는 이명이 점점 거세지는 와중에도, 반즈는 떨리는 손으로 장비를 점검하고는 권총을 다시 장전했다.
그만들 하자고. 저들 입장도 이해해야 해. 전선에 있는 구조체들의 파손율이 너무 높으면, 우리도 얼마 버티지 못할 거야.
의사 형, 다시 돌아올 거죠? 콜록콜록!
의사 오빠 조심하세요. 우린 얌전히 있을게요.
…………
반즈!
바로 그때, 어딘가에서 침식체가 불쑥 튀어나왔고, 카무이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반즈의 몸을 잡아당긴 후, 순식간에 침식체를 처치했다.
괜찮아? 안색이 너무 안 좋아.
괜찮아. 앞으로 가자.
"괜찮아."라고 말하면서도, 반즈는 심해지는 두통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었으며, 그는 머릿속에서 정체 모를 존재가 그의 의식을 미친 듯이 찢어발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우선 최전선을 지켜야 해. 그러지 않으면 더 많은 침식체들이 여기까지 밀려들 거야!
내가 가진 구조체 정비 키트가 도움이 될 거야. 날 데려가 줘, 카무이!
조심해! 벨버트!
으윽!!
가까이 가지 마세요! 이미 침식됐어요.
보조형 구조체인 톰슨이 벨버트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제 정비 키트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다리까지 부러진 지금, 당장 뛰어난 구조체 의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침식체에 갈기갈기 찢기거나 동화되고 말 거예요.
톰슨이 손목의 망가진 투영 장치를 다시 한번 두드려보았지만, 여전히 어떤 영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 묻고 싶었는데, 저건 네 아들이야?
네, 아직 공중 정원에 있어요. 이제는 꽤 컸을 텐데, 반즈가 얘기 안 해줬나요?
반즈는 요즘 자기 얘기조차 안 하는데, 네 이야기는 하겠어?
슈트롤은 날뛰는 침식체들을 연달아 관통시켜, 뒤따라오는 무리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이 침식체 무리를 잠시라도 저지할 마지막 수단이 남아있었다.
이번 침식체 습격은 뭔가 이상해. 반즈와 카무이라도 살아있어야 할 텐데. 칫! 또 끝도 없이 몰려오잖아!
폭발 준비.
그 순간, 먼 곳에서 날아온 총알이 가장 가까운 침식체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숨 돌릴 틈이 생긴 그때, 대검이 날아와 지면에 꽂혔다.
!
이봐! 내가 반즈를 데리고 왔어!
카무이의 엄호 속에서, 반즈는 "구원"이 될 장비를 가지고 폐허를 가로질러, 가장 위험한 곳을 향해 돌진했다.
왜 그러려는지는 반즈 자신도 몰랐다. 어쩌면 "도살자"인 자신의 두 손으로 생명을 더 살리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반즈는 카무이를 바짝 쫓아 폐허를 뛰어다니며, 구조체 수리 부품을 꽉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