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차 한 대가 폐허가 된 도시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앞으로 30분 정도면 보육 구역에 도착할 것 같아. 예상 시간과 비슷하겠어.
그곳은 인근에서 제일 큰 보육 구역이야. 침식체 무리가 계속 접근하는 게 관측되면, 우린 주민들을 모두 철수시켜야 해. 다행히 다른 구조체 소대도 이송을 도와준다고 했으니, 큰 어려움은 없을 거야.
보육 구역에서 답장이 왔어요. 그쪽도 침식체 무리 접근 경고를 받아서, 물자를 정리하고 있다고 해요.
문제는 며칠 전 받아들인 난민들 중에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거예요. 아픈 아이들은 무리하게 움직일 수도 없으니, 이송이 생각보다 까다로울 것 같아요.
금발의 구조체가 수송차 구석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린아이들이 많다고? 그럼, 나랑 반즈한테 맡겨. 난 아이들 몇 명쯤은 혼자서도 들 수 있고, 반즈는 원래 소아과 의사였잖아. 아이들 달래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거야.
안 돼. 넌 우리랑 같이 보육 구역의 가장자리를 지켜야 해. 그리고 가급적이면 보육 구역 전체를 이송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반즈! 일반 의약품 아직 남았어?
수송차가 돌부리를 밟아 차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안에 탄 구조체들이 이리저리 부딪혔다.
차량 뒤쪽에서 누군가가 방금의 흔들림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잠깐 손을 들어 올려 수신호를 보낸 뒤, 그대로 다시 손을 내렸다.
반즈가 "괜찮대"!
사람과 구조체 모두 치료할 수 있는 군의관이 있으니 정말 든든하네요.
반즈는 구조체가 아니니까 보육 구역에 남아서 난민들 상태를 체크해. 다른 구조체들은 보육 구역 가장자리에 흩어져서, 다른 소대들과 협력하여 침식체 동향을 감시해. 그리고 유사시 침식체를 즉각 저지할 수 있게 준비해 둬!
슈트롤이 전투 단말기를 가리키며, 다른 대원들에게 지시했다.
소대 통신을 상시 유지하고, 정기 연락을 지키도록. 그리고 이상 상황 발생 시, 반드시 특수 신호를 보내야 해.
구조체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하며, 무기와 탄약을 점검하거나 각종 장치를 준비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반즈 군의관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으며, 거칠게 세탁된 듯한 흰 가운이 이를 슬쩍 가리고 있었다.
그때 공중 정원에서 통신이 왔다.
무슨 일이야?
역병이 발생해, 공중 정원에서 의료 자원봉사자를 그 보육 구역으로 보낸다는 통신이에요.
어린아이들을 돌봐야 하면서, 젊은 의료 자원봉사자들까지...
우안이 중얼거렸다.
어린아이들을 보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른 세상에서 늙으신 부모님을 뵈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다른 의료 자원봉사자들이 오면 좋은 거 아냐? 그러면 반즈도 좀 쉴 수 있잖아. 지난번엔 선 채로 잠들려 하던데.
그렇긴 하지만, 임무는 더 커질 거야. 난민들 외에도 그 의료 자원봉사자들의 안전도 책임져야 하잖아.
공중 정원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지상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울 거야. 오히려 난민들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지. 게다가 나는 "순수한 열정"만 가득한 의료 자원봉사자들을 많이 봐왔는데, 대부분 나이도 어렸어.
그들은 지상의 일들을 상상조차 못 할 거라고.
슈트롤이 고개를 돌려 반즈를 쳐다보았다.
반즈는 보육 구역에서 저 의사들을 잘 봐줘. 위험한 구역엔 절대 못 가게 하고, 불필요한 개입은 하지 못하게 해. 문제없지?
알았어.
그리고 넌 반드시 일정 시간마다 내게 연락해. 이곳이 페로의 사고 현장과 근접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혹시라도 진실을 캐내려는 생각은 버려. 페로가 왜 이탈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 너까지 휘말리지 말라고.
페로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심지어 션은 아직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어.
슈트롤이 반즈의 단말기를 가리키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
반즈가 지상으로 파견된 지 일 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계속된 조정과 구조체들의 손실로, 반즈가 원래 있던 소대는 해체되어 재편성됐다. 그 후로 반즈는 여러 소대를 전전하다가, 결국 지금처럼 임시 소대들을 떠도는 신세로 전락했다.
공중 정원 사람들은 이제 반즈를 잊은 듯했으며, 그 역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때때로 육성 센터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받긴 했지만, 그는 답장 한 번 보내지 않았고, 결국 공중 정원과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
반즈는 구조체들의 전장에 들어가는 것에 익숙해졌고, 조용히 제식 권총을 들고 동료들 뒤를 따라다니며 누구도 낙오되지 않게 했다.
콜록콜록! 켁켁!
다행히 단순한 독감이네. 자, 이 약만 먹으면 좋아질 거야.
심하게 기침하는 소년은 의료 자원봉사자가 건네는 약을 거절하며, 옆에서 잠들어 있는 여자아이를 가리켰다.
전 괜찮으니, 콜록콜록, 건강이 제일 안 좋은 저 아이 좀 먼저 봐주면 안 돼요?
열 살 남짓한 어린 나이의 소년 주위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소년의 말을 듣고, 모두 뒤로 물러나 의료 자원봉사자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환자 치료에는 누가 먼저라는 게 없어. 네 상태도 좋아 보이지는 않으니까, 괜히 참지 말고 진료받아. 저 아이는 다른 선생님이 봐주실 거야.
그때, 반즈가 앞으로 나와 소년이 가리킨 여자아이의 뜨거운 이마를 살짝 만져보더니, 재빨리 손을 떼었다.
지금은 상황이 그렇지 않아요! 보육 구역 사람은 약을 일부만 주고, 우리를 보육 구역 끝자락에 수용했어요. 게다가 이제는 대부분이 병에 걸렸고, 약도 다 떨어졌다고요. 콜록콜록!
저는 약이 부족한 상황을 많이 봐왔다고요. 지금은 아무리 단순한 독감이라도 죽을 수 있어요.
의사 선생님들이 오셨으니까 너희들도 숨지 말고 빨리 나와서 진찰받아. 이건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콜록콜록!
아이들은 소년의 뒤에서 고개를 내민 채,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깔끔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을 바라만 보았다.
너희들... 휴.
너도 일단 누워. 한 명씩 검사해 줄게.
의료 자원봉사자가 다소 슬픈 표정을 지으며 소년을 눕혔다.
공중 정원에서 어떤 약품들을 받았어? 목록 좀 보여줄래?
아! 당신이 저희를 돕기 위해 오신 구조체 의사셨군요? 방금은 저기서 주무시고 계셔서 몰랐네요.
응. 나도 예전에 소아과에 있었거든. 어린아이들 진료도 익숙해.
약은 다른 사람들한테 나눠줘. 그리고 이 여자애는 열이 계속 안 떨어져서 탈수 증상이 심각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 애한테도 약을 줘야죠! 안 살리실 거예요??
반즈는 걱정스러운 눈빛의 소년을 한번 보더니, 소매를 걷어붙이며 서둘러 소독 준비에 들어갔다.
정맥 수액을 바로 놓아야 해. 의사 선생님, 부탁할게.
아, 네. 알겠어요!
……
너무 걱정하지 마. 의사들은 다 모두를 살리고 싶어 하거든.
반즈가 잘라낸 약품 조각과 물병 하나를 소년 앞에 놓았다.
방금은 죄송했어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소년이 겨우 약을 삼키는 것을 본 젊은 의료 자원봉사자는 그제야 안심하며 다른 약품을 준비하러 갔다.
이 의료 자원봉사자는 상당히 젊었고, 소년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공중 정원은 정말 어른들이 말한 것처럼 좋은 곳 같네.
공중 정원을 동경하는 거니?
부러워하는 마음이 들통난 게 민망했는지 소년은 뻘쭘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크흠, 당연하죠. "상층"의 삶을 누가 싫어하겠어요.
전 지금 건강이 안 좋긴 하지만, 능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편이에요. 어쩌면 언젠가 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넌 이름이 뭐야?
네이슨이에요.
그럼 저 아이는?
반즈가 잠들어 있는 여자아이를 가리켰다.
저 아이는 이름이 없어요.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우리랑 같이 지낸 지도 얼마 안 됐어요. 콜록콜록.
……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혹시 우리가 착하게 굴면, 공중 정원에 갈 기회라도 생기는 건가요? 하하, 콜록콜록!
반즈가 고열에 시달리는 여자아이의 팔에 약물을 주입했다.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
반즈가 말을 마치자 구석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모두 반즈를 바라보았다.
반즈는 애매하게 둘러댄 거짓말 때문인지, 자신을 믿고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음, 너희가 정말 말을 잘 들어야 할 거야. 예를 들면 약도 잘 먹고, 주사도 얌전히 맞고.
그것만 잘하면 되는 거예요? 콜록콜록! 정말이죠? 다른 애들도 말을 잘 들으면, 공중 정원에 갈 수 있는 거겠죠? 그럼, 어른들이 입양해 줄 수도 있나요?
상체를 일으킨 네이슨이 다급하게 질문을 쏟아내며 반즈의 대답을 재촉했다.
이 아이들은 어릴 때 부모님을 잃어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아직도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해요. 혼자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아이들이라고요. 콜록콜록!
의사 형, 진짜로 공중 정원에 갈 수 있다면 이 아이를 먼저 데려가 주면 안 될까요? 사흘이 멀다 하고 아프거든요. 지상은 이 아이한테 너무 안 맞아요.
그리고 이 아이도요. 정말이지 코도 제대로 못 닦는다고요. 그리고 이 녀석도... 숨지 말고 나와봐! 몇 번을 말해야...!
네이슨이 여러 아이를 반즈 앞으로 밀어냈다. 어떤 아이들은 옷도 제대로 못 입어서, 단추가 잘못 채워져 있기도 했다.
심지어 한 남자아이는 훌쩍이며 맹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마 공중 정원이 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
너는?
저요? 전 상관없어요.
우선은 잘 쉬고 있어. 조금 있다가 다시 와서 상태를 봐줄게.
반즈는 서둘러 의료 상자를 챙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너도 아직 어린애일 뿐이잖아".
결국 반즈는 네이슨에게 이 말을 전하지 못했다.
반즈는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아이들을 피하듯 밖으로 나와, 의료 자원봉사자들이 가져온 약을 확인했다.
나머지 약품도 꼭 나눠줘. 나한테는 면역 혈청이 얼마 안 남아서 더 보충...
어라? 반즈? 네가 왜 여기 있어?
나탈리? 의료 자원봉사자로 지원한 거야?
나탈리는 반즈를 보고, 다시 자신의 의료 자원봉사자 명찰을 보더니, 그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하하. 맞아, 지상으로 내려왔어. 구조체들의 전장은 어떤지 보고 싶었거든.
페로의 마지막 통신 위치가 이 근처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다른 의도는 없어. 우연히 내가 탔던 의료 자원봉사자 수송기의 착륙 지점이 근처였던 거야.
지상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 퍼니싱, 침식체, 무너진 건물들까지 하나하나가 다 목숨을 앗아갈 수 있어. 게다가 의료 자원봉사자들이 무사히 돌아갈 확률은 극히 낮아. 그러니까 어서 돌아가.
난 안 갈 거야. 수송기도 이미 돌아갔다고. 난 한 가지의 일만 하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너는 연락 한번 없었고, 프랭크는 다른 보육 구역으로 발령받아 작업하러 떠났어. 게다가 구조체로 개조된 그 녀석들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어. 내게 가까운 사람들이 다 떠났다고.
그중에도 페로가...
어렸을 때는 우리 모두가 지상과 아무 관련이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결국 모두 이곳으로 끌려왔잖아.
그래서 너희가 다리로 걸었던 길, 눈으로 봤던 광경, 가슴으로 느낀 감정들을 내려와서 느껴보고 싶더라고.
설렘, 절망, 죽음, 뭐가 됐든 상관없어. 난 더 이상 공중 정원에서 안전하게만 자라는 "화초"로 살고 싶지 않아.
너는...
반박하기 전에 너 자신한테 먼저 물어봐. 넌 왜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위험한 지상에서 버티고 있는 거야?
……
생명을 구하려고.
여기서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어.
그럼, 너도 결국 나랑 같은 거잖아.
누군가의 구원으로 살아남았다가, 결국엔 또 홀로 남겨지는 그런 삶은 아무도 원치 않아.
네가 선택한 방식은 목숨 걸고 생명을 구하는 거고, 내 선택은 이 길을 걸어보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마.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 넌 모두를 구할 순 없어. 차라리 일찍 포기하고 너 자신을 해방시켜줘.
슈트롤은 보육 구역의 최전선, 침식체 무리와 가장 가까운 외곽 지점에 자리 잡았다.
그는 밀려오는 침식체들을 차례대로 쓰러뜨리고 멀리 걷어찼다. 그렇게 쌓인 침식체들의 잔햇더미는 보육 구역을 지키는 방어선이 되었다.
쳇, 끝도 없네.
다행히 침식체들이 한 번에 몇 마리씩만 오고 있고, 여과탑도 있으니 전체 철수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겠어.
슈트롤은 방금 반즈에게서 보육 구역 내 난민들의 대략적인 수를 들었고, 전체 철수는 점점 더 현실성이 없어졌다.
다음 정기 연락까지 3분 남았으니, 그때 침식체의 위치 정보를 한 번에 업데이트해야겠어.
크으윽.
왜 또 몇 놈이 달려오는 거지? 뭔가 이상해!
슈트롤은 탐측 장치를 주시하고 있었다. 침식체 무리는 지난 몇 시간 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었지만, 갑자기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슈트롤 일행이 정해둔 철수 선을 넘어버렸다.
가까운 곳에서 철재가 짓눌리며 귀를 찌르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슈트롤이 즉각 소리가 난 방향을 경계했다.
크아악!!!
젠장, 너무 빨라. 침식체 무리가 벌써 여기까지 왔어!!
정기 연락, 여기는 반즈.
약이 좀 부족하지만, 응급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반즈는 트여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리더와 대원들의 상황 보고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
반즈? 슈트롤에게 메시지 받은 것 없어? 난 연락이 안 돼.
나도 못 받았어.
이상하네. 신호 문제인 줄 알았는데, 너랑 연락이 되는 걸 보면...
톰슨 쪽의 화면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톰슨?!
긴급 철수... 당장... 전원 철수...! 반즈!!
그 순간 반즈의 단말기에 특수 신호가 깜빡였다. 슈트롤, 카무이, 톰슨 그리고 이 보육 구역에 있는 모든 구조체 소대로부터 긴급 철수 신호가 들어왔다.
빨리 차에 타! 뒤에 있는 분들도 서두르세요!
나탈리는 고열이 떨어지지 않는 여자아이를 안고, 난민들과 함께 수송차를 향해 달렸다.
사람들은 모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듯했고, 갑작스러운 습격에도 크게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우움.
반즈, 이 아이는 열이 너무 심해. 차에 탄 후에도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아. 아무나 좀 배치해 줘.
네가 애랑 같이 차에 타고 옆에서 지켜봐.
안 돼. 약을 아직 다 못 가져와서 다시 가봐야 해!
네이슨 오빠.
반즈가 수송차를 눈앞에 두고 발걸음을 멈췄다.
네이슨? 네이슨이랑 다른 아이들은 어디 있어?
누구? 거기엔 이 아이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
나탈리는 반즈가 이렇게까지 공포에 질린 모습을 처음 봤다. 그때, 무슨 일인지 물어볼 새도 없이 반즈가 그녀를 황급히 앞으로 밀었다.
차에 타.
난민들이 힘을 합쳐 나탈리와 여자아이를 안전한 차 안으로 당겨주었다.
잠깐만, 반즈! 수송차가 곧 떠날 거고, 모두를 이송하는 건 불가능해. 누군가는 버려질 수밖에 없어! 네가 그들을 찾지 못하면, 너마저 탈출할 기회를 놓치게 될 거라고. 그건 너무...
네 말이 맞아. 난 더 이상 순수한 마음으로 생명을 구하는 게 아니야. 이제는 누군가의 보호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살지 않을 거라고.
반즈가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반즈가 인파를 헤치며 달리는 동안, 그의 눈앞으로 수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벌써 세 번째 이송이야. 이제 어디로 가란 거냐고. 보육 구역조차 안전하지 않은데...
머리랑 온몸이 아파. 더는 못 걷겠으니, 너희들끼리 가.
난민들의 얼굴에선 혼란스러움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오랜 고통으로 남은 무감각만이 남아있었다.
달릴 힘이 남은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의지가 완전히 꺾인 사람들은 탈출을 포기했다. 어쩌면 이런 끝없는 도망자의 삶과 작별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침식체 습격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의료 자원봉사자들은 당연히 혼란스러워했고, 각종 장비와 물품을 한가득 안은 채 반즈를 스쳐 지나갔다.
……
단말기가 계속해서 울렸고, 카무이의 통신이 띄엄띄엄 들려왔다.
침식체가... 순식간에... 반즈 네가 있는...
걱정하지 마. 우린... 너는 먼저...
조심해... 반드시...
반즈는 통신을 종료하고, 인파를 거슬러 계속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