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8 기나긴 이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ER08-16 반박

>

응급실의 절박함이 밤까지 계속되면서, 인공 천막도 함께 어두워졌다.

반즈는 한 장비에 기대어 서서, 눈앞의 "참상"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른 체구의 교수가 다가와 순환액이 흥건한 장갑을 벗었다. 그 후 그는 반즈를 일으키려 손을 뻗었지만, 머리를 감싸쥐고 있던 반즈는 힘없이 교수의 손길을 거절했다.

응급 처치는 다 끝났어. 내일 네 지도교수님께 상황을 설명드릴 테니, 이제 가서 쉬어.

끝나지 않았어. 아직도 저렇게 많은 구조체가 누워있잖아

끝났어. 인력과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구조체 정비과는 수용 한계를 완전히 넘어섰을뿐더러, 다른 의사들을 불러와도 소용없을 거야. 대규모 전투 후에는 늘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되지.

교수는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한숨을 쉬었다.

하, 모두를 구할 수는 없는 거야.

방금 희생된 구조체는 네 친구였니?

희생된 게 아니야.

……

반즈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지만, 몇 걸음도 채 못 가 비틀거리며 벽에 기대어 섰다.

멈춰서는 안돼. 페로가 안 돌아왔고, 마카의 아버지도 아직 못 찾았어.

다 살릴 순 없다고 해도. 멈출 수는 없어.

반즈는 벽을 짚은 채 거친 숨을 추스르고는 정비실들을 살피러 가려 했다. 하지만 케이론이 갑자기 그의 앞을 막아섰다.

차라리 저기서 찾아봐.

케이론이 옆을 가리켰다. 그곳엔 순환액으로 범벅이 된 금속 상자가 놓여있었다.

저 안에는 뭐가 들어있는 거죠?

명패야.

상자 안에는 각 구조체에게서 떼어낸 명패들이 있었다.

……

반즈는 몸을 숙여 상자 안의 명패들을 하나씩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명패에 새겨진 이름을 한 글자씩 더듬어가며 확인했다. 어떤 명패는 이름이 다 닳아 없어졌고, 어떤 것은 흠집 하나 없이 반짝거렸다.

마침내 마카 아버지의 명패를 찾아냈다.

찾았어.

찾았으면 가져가. 오늘 수고 많았어.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뭐?

어떻게 해야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거야?

누구를 구하겠다는 건데? 구조체?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아. 인간이든 구조체든, 단 하나의 생명도.

반즈는 자신의 첫 번째 생일을 떠올렸다. 그 먼 옛날, 주위에는 페로, 멜비, 션과 같은 많은 이들이 있었다.

반즈는 그때 소원을 빌었다.

"모두가 계속 내 곁에 있으면 좋겠어".

과를 옮기고 싶어. 돌아가자마자 실습 기간 연장을 신청할게.

차라리 지금 당장 밖에 나가서 퍼니싱을 없애버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를 구할 순 없어. 그러니까 이제 이곳에 오지 마. 소아과는 구조체 정비과보다 훨씬 나을 거야.

나는...

그때, 뒤에서 작업자 몇 명이 다가오더니 반즈를 주시했다.

당신이 반즈 맞습니까?

작업자가 말을 마치자, 장비를 꺼내 반즈의 얼굴을 스캔했다.

신분 정보 일치. 데려가.

……

당신은 지금부터의 모든 질문에 답변할 의무가 있습니다.

밀폐된 방 안, 책상을 사이에 두고 정체불명의 이들이 반즈를 응시하고 있었다.

금일 응급실에서 구조체 응급 처치에 참여했습니까?

당신들은 누구지?

오늘 구조체 응급 처치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까?

응급 처치에 참여했어.

몇 건의 수술에 참여했고, 몇 명의 구조체를 처치했습니까?

얼마나 처치했냐고? 기억 안 나. 게다가 "몇 명"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았다고.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세고 있어.

소아과 수련의 과정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왜 갑자기 구조체를 다룬 겁니까?

갑자기가 아니야. 그건...

그때, 작업자가 밖에 둔 반즈의 가운을 뒤졌고, 순환액으로 얼룩진 주머니에서 명패 두 개를 꺼냈다. 그러자 이를 본 반즈는 순간 멈칫했다.

이 두 구조체와 어떤 관계입니까?

반즈가 마카 아버지의 명패를 가리켰다.

이 구조체의 아들이 소아과에 입원해 있어. 곧 수술을 받게 될 거고, 내가 그 아이의 담당 의사야.

이 구조체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작업자가 페로의 명패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내 친구야.

그가 탈주 혐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

페로는 이번 작전에서 정찰을 전담하던 구조체입니다.

그는 침식체 무리의 습격을 제때 통보하지 않아서 많은 구조체 및 난민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소대를 이탈해서 퍼니싱 농도가 매우 높은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동료들이 다시 데려오긴 했지만, 결국 생명의 별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그의 관측 모듈과 휴대하고 있던 관측 장치 모두 정상이었고, 공중 정원의 전투 보조 시스템도 제때 경고를 보냈습니다. 그가 침식체 무리를 감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이 구조체의 과거 기록으로 보아, 탈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스크린이 보안 처리돼 있어 작업자의 화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반즈는 과거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던 자원봉사 전문가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장 중요한 건, 이탈 중에 공중 정원으로 통신을 시도했다는 겁니다. 이는 최근 유일한 통신이었으며, 그 대상은 당신이었습니다.

통신은 받았지만, 뭐라고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어. 당신들은 구조체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지 않아?

반즈는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가슴속에서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 끓어올랐다.

페로는 탈주할 리가 없어. 분명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걸 거야.

페로의 기체 내 데이터 저장 장치가 파손되어 현재 복원 중입니다.

당신의 진술 내용은 모두 면밀히 검토할 예정입니다.

……

다른 질문도 있습니다.

작업자는 눈을 살짝 치켜뜨며 반즈를 한번 훑어보고는 다음 자료를 펼쳤다.

의대에 가기 전, 지인들과 함께 전시관에서 "작은" 소동을 일으켜 청소년 육성 센터에서 처분을 받았죠. 그때 일은 담당자가 처리했으니 더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명패만 확인하고 돌아가면 됐을 텐데, 왜 응급실에 그렇게 오래 머물렀습니까?

왜라니? 당연히 부상자를 구하기 위해서지. 내가 도울 수 있는데 왜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거야?

이건 당신이 구조체 정비과에서 사용했던 장비의 기록입니다. 당신은 원격 정비 세트 한 대를 독점했고, 그 외에도 많은 정비 자원을 낭비했습니다.

내가 장비를 "독점", "낭비"했다고?

당신은 구조체 정비과 소속이 아니라, 그저 소아과 수련의일 뿐입니다. 인간 의학과 구조체 정비 과학은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치료는 차치하고, 오늘 당신이 응급처치한 구조체의 생존율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많은 구조체를 구할 수 있는 자원을 독차지했고, 최소 8명의 구조체가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감금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일을 한 이유가 뭡니까?

……

책상을 파고들 듯 세게 누르고 있던 반즈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결국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분노와 혐오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그건 중상을 입은 구조체들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거라고! 내가 그대로 뒀다면 그들은 생존율이 10%도 안 됐을 거야!

당신들은 오늘 응급실이 얼마나 혼잡했는지 보기나 했어? 당신들은...

반즈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상대방의 분노에 익숙하다는 듯,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그의 진술을 계속 듣고만 있었다.

……

말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네. 그냥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지 그래.

반즈가 쓴웃음을 지으며 반박을 포기했다. 그에게 지금의 상황은 과거의 불꽃놀이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무력한 순간이었다.

반즈는 칠흑 같은 심문실에 홀로 남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갇혀있었다.

그는 간간이 잠들었다가 깨길 반복하며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자 그토록 급박한 순간에 자신을 찾은 이유, 나탈리가 페로의 소식을 들을까 하는 우려, 마카의 수술 결과에 대한 걱정이 그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그때 방으로 들어온 누군가가 전보다 다크서클이 심해진 반즈를 보며 조명을 켰다.

으음. 케이론 교수님?

갑자기 쏟아진 강한 빛에 반즈는 눈을 찌푸렸다. 곧이어 반즈가 밝은 빛에 적응되자, 자신의 단말기를 든 채 앞에 서 있는 구조체 정비과의 케이론 교수가 눈에 들어왔다.

교수님.

반즈는 자신과 페로에게 일어난 일로 목소리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페로는 배신자일 리가 없어. 모두를 죽게 내버려둘 리가 없다고.

나도 구조체 자원을 낭비하지 않았어. 8명의 구조체를 죽게 하지도 않았다고. 그건 당신이 증명해 줄 수 있잖아.

……

교수가 대답하지 않자, 반즈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른 질문을 했다.

마카는 어떻게 됐어? 내 환자라서 그러는데, 상태 좀 확인해 주면 안 될까? 상태가 불안정해서 곧 수술해야 하거든. 그리고 마카에게 아버지의 소식은 전하지 말아줘.

나와 같이 있던 소아과 간호사에게도 이 일에 대해 말하지 말아줘. 페로의 친구인데, 아직 페로의 일은 알면 안 돼.

케이론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나가도 돼.

네게 한 심문은 정상적인 절차였어. 네 친구에게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무슨 일이든 샅샅이 뒤지려 하는 그들이 널 그냥 둘 리 없지 않겠어?

다행히 밖에서 모두가 네 일로 바쁘게 움직여줬어. 그러니까 저 사람들도 당분간은 널 찾아오지 않을 거야.

밖에서? 그게 누군데?

한두 명이 아니야. 네 동창들, 소아과 지도교수님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교수님까지. 가장 먼저 문제를 발견하신 게 히포크라테스 교수님이야.

아마도 곧 퇴직하셔서 시간적 여유가 있으셨나 보더라고. 문득 소아과 당직의 당직표를 보시다가, 가장 성실한 수련의가 결근한 걸 발견하신 거야.

그리고 구조체 정비과에서도 현장에 있던 의료진들이 네 행동이 의료 자원 낭비가 아니었다는 걸 증명했고, 새로운 자료도 제출했어. 과거 유사 사례와 비교해 보니 오히려 네가 구조 성공률을 조금 높였던데?

구조체 정비과의 데이터는 아무나 열람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네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만 알면 돼. 그들도 굳이 없는 죄를 만들어내지 않을 거고, 이 모든 절차는 그저 너에 대한 경고일 뿐이야.

네 친구의 일은 잘 모르겠지만, 오늘 응급실에서 했던 말들은 다른 구조체들을 불안에 떨게 할 수 있어. 진실을 밝히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모두가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건 아니야.

케이론이 문을 열어주며, 반즈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고마워.

페로에 대한 혐의가 크지 않아서 나올 수 있는 거야.

그들이 네 단말기를 조사해 페로가 남긴 메시지를 백업했어. 그래서 내가 널 데리러 들어올 수 있던 거고.

페로가 남긴 메시지라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거야.

케이론이 반즈의 단말기를 그에게 쥐여주었다.

페로의 얼굴이 순간 카메라에 잡히자, 그는 재빠르게 기록 장치를 주변으로 돌렸다.

페로

음, 신호가 너무 안 좋아. 겨우 연결했는데, 네 표정을 보니 내 말이 하나도 전달되지 않는 모양이네.

중도 재난 지역 근처라 하늘이 붉을 거라 예상했는데, 이렇게 맑은 파란빛일 줄은 몰랐네.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은데 전송이 안 돼. 오, 이제 됐어.

션이랑 다른 구조체들은 주변에 있는 침식체의 수를 조사하러 갔어.

지금 연락하는 건 내가 뭔가를 목격했고, 이걸 네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 같아서야.

아직은 확실하진 않고, 내 착각이길 바랄 뿐이야.

페로

이제 중도 재난 지역에 거의 다 왔어. 내 역원 장치로는 절대 못 들어갈 거야.

10년 정도 지나면 이곳의 퍼니싱 농도도 낮아지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나도 어느 엘리트 소대에 들어가 있겠지?

엘리트 소대는 전부 이름이 독특하더라고. 하늘을 지배하거나, 대지를 달리는 동물들의 이름도 있고, 맹금류도 있대. 맹금류라니, 생각만 해도 멋있지 않아?

이번에 내가 맡은 임무는 보육 구역의 철수를 돕는 거야. 지금까지는 다 순조로워.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은 침식체들이 근처에 모여드는지는 모르겠지만, 3일째 움직임이 전혀 없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만 아니면, 철수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

페로의 걸음을 멈추더니, 팔목을 들어 소대의 통신을 확인했다.

페로

대장이 집합하래. 이제 돌아가서 계속 침식체 무리를 감시해야겠어.

조금 전에 말한 내가 목격했다는 그건... 아니다, 다음에 확인해 봐야겠어. 생명의 별로 돌아가면 다시 자세히 얘기하자.

화면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기록기 장치를 든 페로가 숨을 헐떡였다.

페로

더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었는데, 그걸 또 봤어. 이건 네게 꼭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메시지를 보내. 션과 다른 구조체들에게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특수 채널로도 연락이 안 돼. 뭔가 이상해.

이제는 누굴 믿느냐가 문제가 아니야. 지금은 누구와도 연락이 닿질 않아.

이 메시지를 받으면 꼭 답장해 줘! 최대한 빨리!

페로

그걸 따라가다가 이상한 곳에 왔어.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 메시지들도 아마 전송이 안 될 거야. 젠장, 전자 장비들이 다 뭔가에 영향을 받고 있어.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화면이 일그러지자, 페로가 기록 장치를 세게 내려쳤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페로

그냥 지금 말해줄게, 비정상적인 침식체가 출현했는데, 퍼니싱 수치가 탐측기의 한계치를 훨씬 넘을 정도로 높아. 아직도 근처에서 감지되는데, 더 있다간 위험할 것 같아, 즉시 철수해야겠어.

퍼니싱이 또 확산된 건가? 조금 전만 해도 이 길의 퍼니싱 농도는 이렇게까지 높지 않았는데.

고작 15분 만에 화면은 꺼진 것과 다름없었으며, 페로의 음성마저 끊김 현상이 심해졌다.

페로

헉, 허억.

그때 미래 교환 계획... 기억나? 네가 기꺼이... 그 교환을... 고마웠... 감사... 못 했네. 고마워... 반즈.

페로

난 정말로 구조체 의사... 되고 싶었어. 더 많은... 구하고 싶었어... 하... 어차피 엄마... 구조체... 많으니까. 근데... 복지가 별로더라.

반서에 대해 조사해봤는데... 정보가 다 지워져...

이번... 마찬가지야.

페로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페로

퍼니싱에 당했... 의식의 바다... 심각해... 의식 회수... 못할 거야. 차라리 부러뜨리는...

페로

돌아갈 수 없어.

반즈, 난 못 돌아가.

침식체가... 방법이 없어.

션이 와서... 그에게도 피해를... 미안...

그것이... 말한... 난 들었어.

반즈, 그게... 너를...

한 침식체의 그림자가 화면에 비쳤다.

페로

이게 뭐지?

너는 절대 이곳에 오지 마. 절대로 안 돼.

화면 너머로 괴성이 들려왔고, 곧이어 페로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페로

절대로... 오지 마!!!

……

반즈가 단말기를 꽉 쥐었다. 낮의 충격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던 그는 페로의 "유언"을 멍하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 메시지들이라면, 그들은 페로의 상황을 "사고"로 판단할 거야.

침식체 사고는 자주 있는 일이니까.

네 친구의 대장 션도 아직 정비과에 누워있어. 의식의 바다 편차가 심각해서 회복하는 데 꽤 오래 걸릴 거야.

페로의 메시지가 끝나자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고, 반즈는 반사적으로 이를 눌렀다.

나탈리

반즈, 메시지를 받으면 바로 답장 줘. 응급실에 구조체 몇 명이 더 왔는데, 자기들이 페로의 대원이래.

근데 페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그들도 아무 말을 안 해줘. 혹시 네가 뭘 알고 있으면...

나탈리의 목소리에서 억누르지 못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나탈리

네가 페로랑 제일 친했잖아. 뭐 아는 거 없어? 들어보니까 소대 전체에서 페로만 없다던데.

……

돌아가자. 네 지도교수님께는 내가 이야기했어. 며칠 쉬라고 하시더라.

아직 쉴 수 없어. 마카의 수술도 남았고...

먼저 네 몸 좀 추스른 다음, 수술대에 오르는 게 나을 것 같아.

반즈가 책상을 붙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예전에 교수님의 호의를 거절했던 건 큰 실수였어. 정말 미안해.

그때는 내가 뭘 위해서 의사가 돼야 하는 건지 몰랐어. 하지만 이제는 목표가 달라졌어.

그래. 새로운 목표를 찾은 걸 축하해.

내 전공을 구조체 정비과로 바꾸고 싶어.

……

의대에서 실습 지도교수님을 부탁했을 때도 거절했으면서, 오늘도...

넌 성실한 사람이잖아.

넌 오늘 같은 정비과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거야.

구할 수 없는 구조체가 많을 것이고, 할 수 없는 일도 많아. 뻔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지.

덮어야 할 비밀은 점점 더 많아지고, 이게 모두에게 좋은 거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야 해. 그래도 구조체 정비과에 오고 싶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상관없어.

케이론은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예전에도 반즈가 똑같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상관없어."라고 했었다.

먼저 소아과에서 할 일을 마무리하고, 지도교수님과 잘 상담해 봐. 나를 찾아오는 건 그다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