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한때 활기 넘치던 구룡마저 퍼니싱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절망적인 눈으로 무너진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맹렬한 불길이 타오르고, 붉은빛을 내뿜는 침식체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아이들이 아직...
어서 도망가! 병원은 이미 다 타버렸고, 침식체들도 몰려오고 있다고!
아직 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반서는 작은 보따리를 품에 꼭 안은 채, 불길에 휩싸인 구룡 인민병원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지휘하는 군인을 따라 대피했다.
사실 반서는 아이를 돌보는 것에 서툴렀다. 그녀의 보따리 안에 있던 아기는 상처들과 고열로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었다.
소독이라도 해주세요. 제발 아이는 살려주세요.
당신이 반서인가요!
병사가 전쟁터 한가운데서 큰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맞아요! 저와 반즈는 수송기를 탈 자격이 있어요!
따라오세요! 대장님! 찾았습니다!!
병사가 통신 너머로 대장에게 수색 상황을 보고하면서, 달려드는 침식체들을 격퇴했다.
수송기를 찾으면, 당신들을 지켜줄 이들이 올 거예요.
아야!
한 침식체가 인간 병사의 다리를 물어버렸다.
빨리 가요! 저 앞에 수송기가 있어요!
폭발음과 함께 뜨거운 열풍이 덮쳐왔고, 그녀는 반즈를 감싸안은 채 재빠르게 몸을 낮췄다.
……
056번은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연구소 숙소에서 눈을 떴다.
시간이 벌써...
시간을 확인한 056번은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복도를 비추는 연구소의 창백한 불빛 속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챙겨야 할 물품들을 점검했다.
노트, 펜 그리고 구식 손목시계 하나.
시곗바늘이 정각을 가리키자 056번은 투명한 테스트존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정시에 딱 맞춰 왔나?
제가 여러분을 방해한 건 아니죠?
장비 앞에서 바쁘게 일하던 다른 연구원들도 고개를 들어 056번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오늘 할 일이나 잘해. 오늘 네 임무는...
"실험체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실험 폐기물을 처리한다." 맞죠?
문제없으면 어서 자리로 가.
문제 있어요.
지난달까지만 해도 연결 실험의 데이터는 제가 직접 처리했어요. 하지만 피크맨 의사가 오신 뒤로는 저를 프로젝트에서 빼고, 이런 말단 일만 시키더군요. 이유를 알고 싶어요.
평범한 업무 변동일 뿐이야. 지금 네 일은 실험 쥐들 관리하는 거니까 그것만 잘하라고.
그들은 실험 쥐가 아니에요.
그래서 네 업무가 변동된 거야.
056번은 바쁘게 일하는 "전 동료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중 몇몇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고, 어떤 이들은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냈다.
056번은 곧이어 발걸음을 옮겨 실험실을 떠났다.
승강기를 탄 056번은 실험 쥐를 키우는 지하 1층의 "양성 구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몇몇 실험체들이 복도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056번이 왔어!
에비아나, 테오도르, 내 뒤로 와.
이 실험체들은 모두 10살도 안 된 어린 인간들이었고, 그중 가장 큰 아이가 바로 이몬이었다.
에비아나와 테오도르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모두 구조체로 개조되어 있었다.
그들의 의식의 바다에는 각기 다른 "증상"들이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아이는 각 연구팀의 실험 대상이 되어 "전문 연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인원 점검하게 나와 볼래?
다른 실험체들도 양성 구역에서 뛰쳐나왔다. 몇몇은 이몬의 뒤로 몸을 숨겼고, 이몬조차 천천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조슈아는 어디 있지?
오늘 대열에서 한 남자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조슈아는 아침 일찍 다른 어른들이 데려갔어요.
데려갔다고?
어제 "수업"에서 또 떨어져 "X"를 3개 받았대요. 그래서 어른들이 불합격인 조슈아를 쓰레기장으로 데려갔어요.
이몬이 담담하게 오늘 아침 조슈아에게 일어난 일을 말했다.
……
056번은 양성 구역 복도의 기록표를 주의 깊게 살폈다. 표 위의 "√"와 "×" 표시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고, 기준 미달이 잦았던 실험체들의 이름은 대충 그은 선 하나로 지워져 있었다. 그 선은 곧 "쓰레기장"행을 뜻했다.
마침 오늘 056번의 업무 중 하나가 "실험 폐기물 처리"였다.
조슈아랑 다른 애들은 다시 돌아오는 거예요?
돌아올 거야. 에비아나, 테오도르, 팔을 내밀어봐.
칫! 걔네가 왜 또 주사를 맞는 거예요?!
구조체가 된 이몬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테오도르와 에비아나가 순순히 구속복 소매를 걷어 올리자 삐쩍 마른 팔이 드러났다. 그리고 피부 아래는 검붉은 혈관들이 희미하게 맥동 치고 있었다.
얇은 바늘이 그들의 팔에 꽂혔다. 테오도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에비아나의 큰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었다.
056번... 아파요.
꼭 필요한 과정이야. 미안해.
이몬이 그러는데, 오늘 약을 맞으면 며칠 뒤에 우리도 개조된다는 뜻이래요.
그만해.
이몬은 서둘러 대화를 중단시키려 했으나, 056번은 이미 들어버렸다.
056번은 주사기 속 약물이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이 프로젝트에서 제외되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계획이 떠올랐다. 그것은 에비아나와 테오도르를 구조체로 개조한 뒤, 그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두 아이를 아직 개조하지 않은 건 상태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연구원들은 이 둘의 향후 개조 결과에 큰 관심을 보였고, 마치 이전의 모든 실험체가 이 둘을 위한 실험 경험을 쌓는 용도였던 것처럼 보였다.
만약 이 두 아이마저 실패한다면, 이번 실험체들이 모두 소모된다는 뜻이고, 그러면 밖에 있는 빛의 보육원에서 새로운 재료를 "구매"해야 할 것이다.
빛의 보육원은 이제 없어졌다고 하지만, 다른 곳에서라도 괜찮았다. "성모 예배당" 보육원? "사랑의 집" 보육원? 아무 데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세계에는 고아가 넘쳐났다.
나이도 어리고, 생각도 미숙하며, 인간관계도 극히 단순했다. 이런 시기에 사람들은 자기 일도 벅찼기에 세상의 구석진 곳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주사는 다 맞았어.
이제 돌아가. 그들의 말을 잘 듣고, 절대로 화를 돋우지 마.
이몬, 알았지? 더 이상 감금 처벌은 안 돼.
특별히 이름이 거론된 이몬은 불만이 있는 듯했고, 다른 아이들을 밀쳐내며 자리를 떠났다.
다음 업무는 실험 폐기물 처리였다.
056번은 양성 구역을 지나 뒤편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이어진 낯선 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통로 끝에서 056번이 쓰레기장의 대문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문이 양쪽으로 천천히 열리면서 보기 드문 햇빛이 056번의 얼굴을 비췄다.
햇빛은 쓰레기장의 모든 것을 평등하게 비추었다. 그 "산", 오수 그리고 방금 쓰레기장 입구에 버려진 새로운 실험 폐기물까지도.
조슈아의 잔해는 056번의 앞에 무심하게 버려져 있었다. 생체공학 피부는 미세하게 반짝였고, 그 위에는 "S0145"라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오늘 아침의 실험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조슈아는 결국 버려진 구조체가 되었다.
어쩌면 방금이 056번이 에비아나와 테오도르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몰랐다.
056번은 거대한 쓰레기봉투를 들고, 작은 구조체의 몸을 안아 올려 그 안에 넣었다.
봉투가 가득 차자, 056번은 온 힘을 다해 그 쓰레기 산을 오른 후, 봉투들을 산꼭대기에 올려놓았다. 이는 쓰레기장 천장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056번도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바라보았고, 강렬한 빛이 시야를 새하얗게 만들었다.
이게 반즈를 위한 걸까?
반즈를 위해서 계속 해야 하는 걸까?
그녀가 공중 정원을 떠나, 이 보안이 철저한 지상 연구소에 온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당시 결정을 내릴 때, 056번은 이 연구소의 실체를 몰랐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었다.
056번이 과학 이사회를 떠나자마자, 누군가가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
어때요, 반서? 결정했나요?
그들이 우리의 연구 방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충분한 자원 지원도 약속했고, 앞으로 당신이 바라는 건 뭐든 지원해 줄 거예요.
저를 스카우트하려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충분한 자원이라는 게 그 "우수한 실험체 재료"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게 뭔지는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어차피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팀의 자료가 누구에게 유출된 건지가 더 궁금하네요.
범인을 찾아내면 뭔가 달라지나요? 성과를 내고 싶어 안달 난 사람도 있고, 자신이 가진 것과 바꿔 이득을 보려는 사람도 있죠. 그들은 뭐든 이용할 거예요.
한두 명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계속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것과 바꾸려 들 거고, 심지어 밖에서도 자신을 찾아올 텐데, 순진한 척 마세요.
……
당신은 실험에 그렇게 집착하면서, 이제는 과학 이사회 소속도 아니고, 다른 길도 없잖아요. 전 당신을 설득하는 게 제일 쉬울 줄 알았어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빨리 결정해야 할 거예요. 그리고 멜비라고 하는 사람한테도 물어봐 주세요.
안 돼요. 멜비는 적합하지 않아요.
젤레노그라드 연구실의 화재 이후, 멜비는 그들이 보내온 실험 데이터에 깊은 자책과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과학 이사회의 조사령이 공식적으로 내려지기 전날 밤, 반서는 반즈의 병실에 앉아, 시간에 쫓기며 피가 묻은 그 데이터들을 모두 읽어보았다.
그녀는 아이들로부터 얻은 이 결과들을 내려놓고, 각종 생명 유지 장치에 둘러싸인 반즈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한 영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원거리 링크 시스템을 통해 반즈의 의식을 모의 의식의 바다에 넣으려 했다. 하지만 조악한 모의 의식의 바다는 오히려 반즈의 미약한 의식 반응을 잠식할 뻔했다.
반서는 절망에 빠진 채, 두 손으로 뇌파 감지 장비를 움켜쥐었다. 게다가 병상에 누워있는 그 아기는 너무나 연약해서 안아주는 것조차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그녀는 다시 두 사람의 뇌에 각각 브레인 칩을 이식했다. 이번에는 그녀도 함께 그 모의 의식의 바다에 "진입"했지만, 보이는 것은 온통 하얀 공백뿐이었다.
세상이 뒤집히는 어지럼 속에서, 그녀는 모의 의식의 바다가 붕괴하기 직전에 빠져나왔다. 그 후, 그녀는 병상 앞에 엎드려 떨리는 손으로 반즈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럴 수가.
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지만,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아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 또 실패했어.
의식의 바다가 아직도 불안정해. 한참 모자라.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에게 영감을 준 그 데이터들을 떠올렸다.
진짜 의식의 바다라면 어떨까?
이건 반즈를 위해서야. 전부 다 그 애를 위해서.
반서가 단말기를 들어, 그 연구원에게 통신을 보냈다.
……
반서는 자신이 지상으로 가는 진짜 목적을 숨긴 채 멜비를 불렀다.
그녀는 멜비의 감정과 신뢰를 이용해 진심을 담아 간곡히 부탁했고, 멜비는 병약한 반즈를 받아주었다.
언제 떠날 생각인가요?
내일 바로 떠날 거예요. 오늘 밤만큼은 이곳에서 반즈 곁을 지키고 싶어요.
그럼 방해하지 않고, 먼저 가볼게.
멜비.
양심의 가책을 느낀 반서가 무의식적으로 멜비를 불러세웠다.
다른 할 말 있어?
멜비가 병실 문을 붙잡은 채 반서를 돌아보았다.
저는...
반서는 말을 꺼내기를 망설였다.
의식의 바다 연구, 의식 회수, 수술, 인도적 처우까지, 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잠시 접어두고 싶었다. 그녀는 그저 마음속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멜비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고 싶을 뿐이었다.
절 비난할 건가요?
뭘 비난한다는 거죠? 반즈한테 수술한 거요? 전 그 마음 이해해요. 이 정도까지 온 마당에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요.
그게 아니에요. 저는 반즈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요.
반서는 자신의 속내를 멜비가 눈치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항상 까칠했던 멜비의 눈빛에서 이번만큼은 깊은 연민이 묻어났다.
열 살도 안 돼서 개조된 그 아이들도 반즈랑 다를 게 없었어요. 적어도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당신은 너무 멀리 가진 않을 거예요.
……
반서는 자기 아이의 병상 곁에서 하룻밤을 지새웠고, 다음 날 약속된 시간에 공중 정원을 떠나 056번 연구원이 되었다.
056번은 이전에 프로젝트 경험이 있었음에도 특별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연구소에서 아주 평범한 일을 하며, 이 아이들로부터 얻은 실험 결과들을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인간에서 구조체로 개조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고, 이곳에 왔을 때는 테오도르와 에비아나만이 개조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개조 수술을 언급할 때 보이는 공포에 찬 표정을 통해, 056번은 당시의 대략적인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실험체들을 대하는 "가식적인 태도"에 불만을 가졌었다. 거기에 피크맨 의사의 부임까지 더해지자, 반서는 결국 핵심 업무에서 배제되어, 단순 업무만 처리하게 되었다.
056번은 중앙 실험실의 의식 연결 장비가 필요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녀의 목표와 거리가 멀었다.
만약 실험체들에 대한 태도를 "바로잡으면", 이곳 사람들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반즈를 위한 것이라면, 056번은 양심을 조금 더 저버릴 수도 있었다.
아직 성공까지는 멀었으니, 계속 나아가야 해.
056번이 "쓰레기장"에서 나와, 조작 패널을 조작하여 쓰레기장의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