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밤, 육성 센터의 로비에서 거대한 구조체 하나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일을 도와주러" 온 이 구조체는 한숨을 쉬며 밖의 인공 천막을 바라보았다.
휴.
다음 달에도 육성 센터에 가야 하는 거야? 최근에 연속으로 많은 임무를 수행했는데, 좀 쉬는 게 어때?
며칠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그 아이도 이제 다 컸을 거잖아.
마음이 놓이지 않네요. 의대를 지망하는데, 계속 시험에서 떨어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번 학기가 마지막 기회고, 앞으로의 계획도 없는 것 같던데, 이마저도 안 되면 어쩌려는지.
그때 제가 조금만 더 보초를 섰었어도, 그 아이의 가족은 희생되지 않았겠죠. 제 잘못이에요.
……
슈트롤이 션의 어깨를 토닥였다.
청소년 육성 센터에서 구조체에게 임무를 의뢰하기 시작한 이후로, 이 마음씨가 따뜻한 구조체는 그곳에서 보기 드문 "상객 구조체"가 되었다.
슈트롤은 오래전부터 청소년 육성 센터의 임무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시작은 션이 임무를 진행하던 중 자신에게 특정 새의 깃털을 모아달라고 요청했을 때부터였다.
이번에도 션은 육성 센터의 의뢰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지상 임무 중에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슈트롤은 구조체 정비과에 들러봤지만, 결과는 뻔했다. 그렇게 부모님을 잃은 아이에 대한 걱정은 이제 슈트롤의 몫이 되었다.
슈트롤이 육성 센터 밖의 인공 천막을 바라보았다.
쯧, 벌써 밖이 어두워졌네.
아무도 육성 센터의 의뢰를 받지 않는 건가? 잡다한 일이 엄청나게 쌓여있네.
바쁜 일과를 마친 슈트롤은 겨우 숨을 돌리며, 이제 "진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오늘 페로라는 남학생에 대해 알아보려 했다.
그때, 아이들을 재우려고 방으로 돌려보내던 젊은 스태프가 슈트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교육 구역은 아직도 교재와 파오스 학교에서만 구조체를 접할 수 있는 건가?
슈트롤은 불안해하는 여자 스태프에게 질문을 이어가지 않고 복도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스태프 두 명이 육성 센터의 사무 구역을 가리켰다.
하지만 담당자는 퇴근한 후였고, 내일에나 만날 수 있었다.
복도에 서 있던 슈트롤은 불이 꺼진 방들을 바라보며, 또다시 한숨을 쉬려고 했다.
달칵.
복도 안쪽의 한 사무실에서 갑자기 불이 켜지더니, 한 남자아이가 문가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
……
슈트롤을 멍하니 바라보던 남자아이가 깜짝 놀란 표정과 함께, 다시 사무실 안으로 숨어버렸다.
?
담당자의 사무실 안에서는 마른 체격의 소년이 문가에서 밖을 살피고 있었고, 다른 두 명의 "도둑"이 담당자의 서버 앞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페로가 반즈에게 작은 불빛이 반짝이는 검은색 접속 단말기를 건넸다.
이걸 연결하면 우리가 권한을 얻을 수 있어.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지망을 바꾸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데, 도대체 누가 우리를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거야?
당연히 이런 쓰레기 같은 시스템이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이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전에 통학생들한테 들었는데, 걔네 중에는 부모님이 사람을 써서 전문학교에 합격시키기도 한대.
내신을 조작한다든가, 교수의 추천서를 제출한다든가, 심지어는 개인 정보를 위조한다든가. 뭐든지 가능하대. 우리는 도와줄 사람이 없잖아.
게다가 의대 정원은 정해져 있고, 우리 둘만 서로 바꾸는 거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없을 거야. 하기 싫으면 침투 단말기를 내놔.
너, 너희 둘 빨리 좀 해! 방금 선생님들한테 들킬 뻔했다고.
……
반즈가 단말기를 서버에 연결했다.
그러자 서버에서 창밖의 복도까지 환해질 정도의 강한 빛이 났고, 두 "도둑"은 허둥지둥 밝기를 조절했다.
평소에 이렇게 밝게 해놓고 일하면, 눈이 안 아픈가?
쉿, 조용히 해. 프랭크, 방금 갑자기 밝아졌는데 밖에서 아무도 못 본 게 확실하지?
프랭크가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보았다.
……
프랭크가 갑자기 움츠러들었다.
바, 바깥에!
뭐가 어쨌는데?
밖에 구, 구조체가 있어! 날 봤다고!
뭐라고?! 반즈, 어서 숨어!
아직 시스템에 진입하지도 못했는데.
그때, 고개를 든 반즈가 문틈 사이의 날카로운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지?
슈트롤은 서버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 속에서 페로를 발견했다.
응? 설마 네가...
젠장! 도망가!
페로는 슈트롤이 딴생각하는 틈을 타, 반즈와 프랭크를 잡아당기고는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멈춰!
하지만 소년들은 군용 구조체를 상대로 도망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몇 미터 채 도망가지 못하고 슈트롤에게 옷깃이 잡혀 끌려왔다.
슈트롤의 양손은 소년들을 붙잡고 있었고, 그의 앞에는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하는 프랭크가 서 있었다.
슈트롤이 보라색 머리의 소년을 잠시 살펴보았다.
너가 페로구나?
넌 누군데?
그래. 인사는 나중에 하고, 너희가 안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나 말해봐.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반즈는 그 말을 듣자, 땀에 흥건한 손으로 혼란 속에서 가지고 나온 단말기를 꽉 쥐었다.
슈트롤은 그 단말기를 반즈에게서 빼앗아 들더니,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건 어디서 났어? 솔직히 말하면 눈감아줄게.
몰라.
그런 뻔한 대답을 바란 게 아니야. 그러고 보니 이 며칠은 지망을 확인하는 기간 아닌가?
슈트롤이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소년들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이러면 입학 자격이 취소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난 기준을 통과했다고! 분명히 합격점을 넘었는데 게슈탈트가 마음대로 결정한 거야! 난 절대로 지상에서 구조체 같은 거나...
먼저 대답해. 누가 너희한테 이 단말기를 준 거야?
우리가 부당한 일 당하는 걸 못 보겠다는 사람이 줬어!
……
슈트롤이 침투 단말기를 "압수"하여 자신의 휴대용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신속하게 사무실의 장비들을 끄고 문을 잠근 뒤, 세 사람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반즈는 자신들의 "범죄"를 숨겨주고 있는 구조체를 조용히 바라보았고, 그는 슈트롤을 기억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반즈가 실수로 응급실에 들어갔을 때, 이 구조체가 그의 시선을 가려준 적이 있었다.
자, 이제 자세히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공중 정원의 다른 한 곳에서는 작은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공중 정원의 교육 체계는 대부분 공립입니다.
공공 기초 교육 센터에 진학한 학생들은 더 많은 걸 배우게 됩니다. 그 후에는 직업 훈련 교육 시스템으로 넘어가 의료 시스템, 과학 연구 시스템을 배우거나 파오스 군사 학교로 진학하는 등 과정을 밟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체계에서 배출되는 한정된 인재들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렇게 제한된 분야의 인재만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공중 정원에서 사립 학교 설립 권한을 개방하거나, 교육 자원 분배 제도에서 우위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비공립" 조직에 이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의회는 게슈탈트의 보조를 받는 현 교육 시스템이 공평하다고 보고 있어서, 이전에 제출된 관련 의안들도 심의 일정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입니다.
사립 학교 설립 권한을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기껏해야 관련 제도의 허점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허점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 보지 못하는 현 교육 시스템의 피해자를 "찾아"내고, 그들을 스포트라이트 아래 공개해서, 여론을 등에 업고 그들의 권익을 주장하면 됩니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만들어낼 수 있는 "허점"은 어디 있습니까?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몇몇 학생들의 진로 결과를 조작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곧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그저 그들에게 날조된 사건을 만들어주고, 불공정함을 부추긴 후, 소란을 피울 기회를 주면 됩니다. 그들은 아직 충동적인 나이이지 않습니까.
실패하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실패요?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상대는 다소 놀란 듯했다.
고작 고아 몇 명일 뿐입니다. 문제가 될 시, 버리면 그만이죠.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상에는 아직도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추위에 떠는 난민 아이들이 많은데, 육성 센터의 고아들은 충분히 좋은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래 교환" 계획이 실패한 후, 반즈 일행은 구조체에게 심문을 받았다. 대략적인 경위를 들은 슈트롤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 계획과 관련이 없는 프랭크를 먼저 돌려보냈다.
화가 가라앉은 듯한 슈트롤은 남은 반즈와 페로를 응시하고 있었고, 그곳에는 어색한 공기만 맴돌고 있었다.
결국 슈트롤이 먼저 휴대용 가방에서 사탕 두 개를 꺼냈다.
사탕 먹을래? 술이 들어간 박하사탕인데, 너희가 먹어도 되려나?
될 리가 없잖아. 안 먹어.
안 먹을게. 고마워 아저씨.
참 까다롭네.
슈트롤이 사탕 두 개를 자기 입에 넣고 씹어 먹었다.
슈트롤은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허점을 발견했고, 이 모든 게 사기극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방금 반즈에게서 압수한 검은 단말기를 꺼냈다.
이걸 너희한테 주고, 통학생들의 진로 조작에 관한 "진실"을 알려준 게 동일한 사람이니?
아니, 다 통학생들이 도와준 거야.
그렇구나. 이 단말기는 내가 조사해 볼 테니, 너희들은 육성 센터에서 관련 업무 담당 선생님과 성적을 다시 확인해 봐.
왜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그리고 당신은 우리 엄마랑 전우였던 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네 부모님 얘기는 들어봤지만, 같은 소대는 아니었어. 그리고 널 계속 지켜봐 온 건 내가 아니야. 오늘은 내가 그 구조체 대신 널 보러 온 건데, 이렇게 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몰랐네. 너희들은 정말 골칫덩어리구나.
그 구조체가 누군데?
페로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내가 말하는 것보다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아.
조용히 있던 반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션"을 말하는 거야?
응급실 로비에서 날 데리고 나가려고 했던 그 구조체 말이야.
기억나네. 넌 그때 엄청 못되게 말했던 꼬마지? 그때 네가 몇 살이었더라, 5살 정도였나? 그런데 이렇게 또렷이 기억하는 거야?
……
그만하고 이제 가주면 안 돼?
페로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자, 더 말해도 좋을 게 없겠다고 생각한 슈트롤은 두 소년에게 돌아가서 소식을 기다리라고 손짓했다.
잠깐만.
?
정말 그 정도로 우릴 도와줄 수 있다면...
자료 하나만 더 찾아주면 안 돼?
반즈는 어려운 부탁을 했다는 생각에 긴장한 채로 슈트롤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반즈는 그 "어려운 부탁"이 슈트롤은 물론이고,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쉬운 일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음날 오전, 슈트롤이 반즈에게 자료를 건네주었다.
네가 직접 봐. 별로 구하기 어려운 자료도 아니고, 너희 선생님도 볼 수 있는 거였어. 왜 너만 접근을 못 했던 거지?
"반즈"의 자료에는 기본적인 가족 정보와 지금까지의 기록이 적혀 있었다.
부모님 중 한 분은 의사고 한 분은 연구원이셨네. 그래서 네가 똑똑한 거였구나.
출생 연도랑 날짜는 문제없어. 퍼니싱이 폭발했을 때, 엄마가 나를 데리고 공중 정원으로 왔고, 중병과 후유증 때문에 생명의 별 소아과에서 계속 재활치료를...
아빠는 구룡 제2 인민병원의...
반즈는 자료의 글자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현실과 다른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그러던 중 슈트롤이 가리키는 곳에서 한 이름을 발견했다.
"서".
반서, 연구원이었고 과학 이사회 소속이었지. 지상으로 내려간 후에는 "실종" 처리가 됐고, 그 뒤로는 다른 기록이 없어.
반서.
반즈는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조용히 되뇌었다. 분명 처음 듣는 이름인데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서 들어본 걸까?
반즈는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뭐 문제라도 있어?
아니.
문제가 없다고? 설마 그냥 네 어머니 이름이 뭔지 보고 싶었다거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싶었다는 거야?
오랜 고민 끝에 반즈는 선택을 내렸고, 결국 마음속의 의문을 묻어두기로 했다.
맞아. 그냥 이것들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게 숨길 필요가 있어? 네 표정만 봐도 뭔가 더 있다는 게 보이는데.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래. 그럼, 그건 안 물어볼 테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자.
소년의 어물쩍거리는 태도가 익숙한 듯한 슈트롤이 다시 그 검은 단말기를 꺼냈다.
통학생이 페로한테 이걸 준 거라면, 앞으로는 다른 학생들도 조심해야 해. 누군가가 뒤에서 그들을 조종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
뭔가를 알아낸 거야?
이 "침투 단말기"는 시스템을 해킹하는 기능이 없고, 경보만 울릴 뿐이야. 그러면 관리자들이 경보를 추적해서 너희 두 골칫덩어리가 있는 육성 센터를 찾아낼 수 있었겠지
누군가가 너희를 이용해, 육성 센터에서 뭔가를 하려 했던 거야. 하지만 하루 이틀로는 자세한 정보를 알아내기 힘들겠지.
그럼, 페로는 진짜로 의대에 갈 수 있었던 거야?
……
아니. 그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거야.
재검사를 통해서 진짜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한, 이게 너희의 "진짜" 성적일 거야. 만약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면, 이런 짓을 한 사람이 증거를 남겨뒀을 리가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너는 의대에 가게 됐잖아. 의대는 네가 원래 가려고 했던 지상보다 훨씬 좋은 곳이야.
우리보고 포기하라는 거야?
난 그저 너희가 마음의 준비를 하길 바랄 뿐이야. 나랑 션도 계속...
포기하지 않을 거야.
우리도 방법을 찾을 거야.
하.
슈트롤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반즈의 곱슬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래, 좋아. 담당 선생님과 많이 얘기를 나눠보고, 너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봐. 다만 다시는 남한테 속지 말라고.
아저씨는 우리가 우습고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나저나 페로는? 같이 오라고 했잖아?
페로는 아저씨를 만나기 싫대.
아직도 션과 어머니의 동료들을 원망하고 있는 거야?
맞아. 페로가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들이 다야.
그것도 그렇겠지. 그럼, 너는?
나?
너도 원망하니? 널 버린 네 어머니를?
난 그렇지. 하암.
슈트롤이 반즈의 어깨를 강하게 쳤다. 그 힘이 너무 세서 아플 정도였고, 반즈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거울 좀 봐봐. 과거 구룡에 있던 희귀 동물이 보일 거야.
자료를 구해줄 때까지 잠도 안 자고 기다릴 줄 알았어. 쉬지도 않고 발로 뛰길 잘했네. 너는 네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경 쓰고 있다고.
요즘 아이들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니까.
네가 단순히 지상에서 사람을 찾고 싶은 거라면, 한 번 더 생각해 봐. 지금 나는 네가 찾는 "진실"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야.
지상의 삶은 네 상상과 많이 다를 수 있어. 나는 육성 센터에서 지상에 간 아이들을 많이 봤는데,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어.
……
자, 이제 돌아가서 페로에게 전해. 육성 센터에서도 이에 대해 알고 있어 조사 중이며, 나도 관련 부서에 설명할 거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쉽게 믿지 말고, 사고도 치지 마. 매번 뒤처리해 줄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니니까.
슈트롤이 어디선가 사탕 하나를 꺼내 반즈에게 쥐여줬다.
난 못 먹어.
받아. 이번엔 술이 들어간 게 아니야.
슈트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난 반즈는 손에 든 사탕을 만지작거리며 페로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담당자가 반즈를 불러세웠다.
누구? 멜비 이모가 왔다고?
오랜만에 만난 멜비는 조금도 변한 게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성격이 좋지 않았고, 도시락을 식탁에 세게 내려치며 분노를 드러냈다.
의대에 갈 기회를 놓칠 뻔했다면서?
왜 안 가려는 거야? 전문 시험도 통과했잖아? 매번 널 보러 올 때마다 의대에 지원하라고 신신당부하지 않았니?
멜비의 몇 마디가 반즈의 들떠 있던 마음을 한없이 가라앉게 했다.
난 의대에 가기 싫어. 처음부터 거절했었고, 시험도 이모가 시켜서 본 거잖아.
내가 왜 그런 건지 정말 모르겠니?
……
반즈는 멜비의 분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에 멜비가 의학 관련 책을 많이 보라고 하고, 의대 시험을 치르라고 했을 때에도 반즈는 모든 것을 따랐다.
반즈는 자신의 의지로 진로 전문가와 케이론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이는 반즈가 자라면서 처음으로 멜비의 뜻을 완전히 "거역한"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멜비가 충격을 받고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반즈는 더 이상 "날 버리지 마."라고 울며 애원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렸을 때처럼 바로 사과하는 대신 질문을 하기로 했다.
당연히 모르지. 이모는 한 번도 내게 이유를 말해준 적이 없잖아.
멜비를 보지 않으려 시선을 돌린 반즈는 방금 슈트롤에게서 자료를 받았던 게 떠올랐다. 이는 자신이 어머니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반즈는 멜비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걱정하는 어른임을 알았지만, 왜 그녀가 오랫동안 숨기고,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던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면서 나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거짓말을 시키고, 잊으라고 하고...
엄마를 잊으라고도 했잖아. 나는 몇 년 동안이나 그 말을 따랐어.
사실 나는 거짓말한 적이 없어. 그렇게 오랫동안 잠든 아이가 어떻게 깨어나자마자 모든 걸 할 수 있었겠어. 그건 정말로 엄마가 내 "꿈속"에서 가르쳐 준 거라고. 내 기억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내 말이 틀려?
왜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내는 거야?
"갑자기"? 이건 내가 계속 알고 싶었던 거야!
난 왜 이모와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숨기는 건지 계속 생각해 왔어.
그날 온 진로 전문가도 내 부모님에 관한 자료가 있었어. 그럼에도 아빠는 훌륭한 의사였다고만 말하고, 엄마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넘어가 버렸다고.
의대 교수님도 그렇고, 다들 나한테 뭔가를 숨기고 있잖아.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보려고.
반즈?
맞아. 얼마 전에 이미 그 자료를 찾았어.
반즈가 종이 서류 하나를 꺼냈고, 자료 상단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게 진실이야.
반즈가 자료를 멜비 앞에 올려놓았다.
엄마의 이름은 "반서"였어. 연구원이었고, 공중 정원을 떠난 후 실종됐어. 나를 공중 정원에 남겨두고 떠나서 이모가 날 돌봐준 거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들, 그건 다 엄마가 내게 남겨준 거야. 혼란스러운 기억들이랑 그 "꿈들"까지도.
……
멜비 이모, 나는 이모가 시킨 대로 했잖아.이모가 원했던 대로 의대에 가서 공중 정원의 "평범한 사람"처럼 살 거라고. 그럼, 평온해질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제 말해주면 안 돼? 엄마는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연구 과정에서 실수라도 한 거야?
반즈가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는 뭐야?
나는 엄마의 실험 품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