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이 달린 드림캐처가 반즈의 침대 머리맡에 걸린 지도 수년이 지났다.
드림캐처가 정말 효과가 있었던 건지, 수많은 악몽을 막아주었다. 당시 생명의 별 병상에서 깨어났을 때, 반즈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뒤엉킨 기억들도 이미 깊이 묻힌 상태였다.
그렇게 육성 센터에서 편안한 밤을 보낸 반즈는 진로를 결정할 시간이 되었다.
너희들 시험 결과 나왔어? 통과한 거야?
교실에서 나탈리가 프랭크의 등을 쿡쿡 찔렀다.
공학 정비 분야는 통과했어. 그리고 페로는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계속 아쉽게 떨어지다가, 마지막 기회인 이번에 턱걸이로 겨우 통과했다던데.
그거면 됐지. 이제 게슈탈트와 전문가의 확인만 거치면, 의대에 갈 수 있을 거야.
반즈는 어때?
프랭크의 얼굴이 살짝 굳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반즈는 의대 테스트에 통과했는데, 지상으로 가는 지원서를 제출했어.
지난달, 기초 교육 센터에서 올해 마지막 진로 시험이 끝났고, 학생들은 게슈탈트에 최종 희망 진로를 제출했다. 이제는 모두가 각자의 길로 흩어질 시간이었다.
서로 다른 직업 시험에 통과한 학생들은 교육 센터에서 계속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은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계속 공부하면서 다음 통합 시험을 기다려야 했다.
미친 거 아니야? 보육 구역과 구조체 개조 중 뭘 선택한대?
보통은 계속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고, 적절한 진로도 찾지 못한 학생들만이 지상 보육 구역에서 일하려 하거나, 구조체 개조를 선택했다.
반즈는 교육 센터를 떠나야 할 정도는 절대 아니잖아. 오전에도 얘기해 봤는데, 꽤 진지해 보이더라고.
육성 센터의 담당자랑 선생님들은 동의하지 않을 거야.
야, 너희 둘 "소원 목록"은 제출했어?
페로가 둘 뒤에서 나타나, 나탈리의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깜짝이야! 무, 무슨 소원 목록?
방금 담당자가 한 말 둘 다 못 들었어? 지원자들이 우리의 "성인식" 선물로 마지막 기부 행사를 준비했대.
갖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정리해서 제출할게.
페로는 "기숙생들" 중에서 리더가 되었고, 관련된 활동이 있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가 책임지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교사들과 육성 센터 자원봉사자들 눈에 그는 눈엣가시일 뿐이었다.
아직 모르겠는데.
쯧, 넌 왜 뭐든 간에 한 번씩 망설이는 거야? 빨리 정해서, 오늘 저녁 식사 전까지 알려줘.
나탈리는 뭐 갖고 싶어?
페로를 바라보던 나탈리는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나도 특별히 갖고 싶은 건 없는데, 머리핀은 어때? 꽃이 잔뜩 달린 그런 거 말이야. 어떨 것 같아?
난 모르겠고, 네가 좋다면 한번 올려볼게.
페로는 시선을 돌려 다른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선물에 대한 기대를 기록하러 갔다.
한때 반즈의 "실제 지상"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였던 아이들은 이제 모두 소년 소녀가 되어 있었고, 당시 그들 가운데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반즈는 뒷자리에서 졸고 있었다.
반즈도 키가 쑥쑥 자라났고, 앳된 얼굴에도 점차 남성적인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야야! 일어나!
페로가 반즈의 책상을 세게 두드리자, 책상 위의 물건들이 요동쳤다.
하암.
반즈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성인식" 선물로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지원자들이 주는 거래.
없어.
쿵.
반즈는 다시 잠들어버렸다.
오늘은 전문가와 최종 진로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그들에게는 보호자가 없었기에, 지원자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팀이 도와주기로 했다.
들어가면 안에 계신 전문가와 본인의 진로 시험 성적 그리고 공중합체 테스트 보고서를 꼭 확인해. 절대 착오가 없도록 꼼꼼히 봐야 해.
지난달, "졸업"을 앞둔 모든 학생이 진로 시험 외에도, 탄탈-193 공중합체 적응성 테스트를 받았다. 이는 게슈탈트가 직업을 추천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높은 적응성을 보였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전장에 나갔던 구조체의 자녀들이었기에, 평균보다 높은 테스트 결과가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반즈의 보고서에도 모든 수치가 "적응성 우수"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곳에는 하얀 문들 앞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반즈는 맨 끝에 서서 멜비가 준 낡은 개인 단말기로 몇 줄을 입력했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반즈는 어떻게 편지를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멜비: 안녕.]
반즈는 인사말이 너무 쌀쌀한 것 같다는 생각에 글을 지웠다.
[사랑하는 멜비 이모에게:]
반즈는 한 번도 멜비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말을 그녀가 보면, 반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할 것이었다.
수업 시간에 편지를 쓰는 것에 대해 많이 배웠었지만, 계속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많은 시간이 흘렀다.
멜비 이모에게: 안녕.
일하고 있겠지? 이 메시지가 방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
오늘 진로 전문가와 함께 진로를 확인할 거야. 나는 지상으로 가는 걸 신청했어.
멜비는 내가 공중 정원에 남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난 지상에 가보고 싶어. 왜냐하면...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나도 지상 전투에 힘을 보태고 싶거든.
내가 출발하는 날, 가족으로서 군비 구역까지 배웅을 부탁해도 될까?
바쁜 걸 알기는 하지만, 시간을 내어 와준다면, 정말 기쁘고... 너무 행복할 것 같아...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나를 돌봐줘서 고마워. 언젠가 이 은혜를 꼭 보답하고 싶어.
거의 3년 동안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는데, 너무 격식을 차린 것 같네. 좀 더 고쳐야겠어.
그때, 반즈의 손이 미끄러져 단말기의 어딘가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러자 격식을 차리고 조심스러운 메시지는 그대로 전송되었다.
반즈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멜비가 이런 부탁을 보고, 과연 어떤 답을 줄지 궁금했다.
그 순간, 단말기가 다시 울리며 새로운 통신이 왔다.
멜비입니다. 다음은 자동 응답 내용입니다. 메시지는 받았으나 지금은 확인할 시간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손안에 있는 일이 끝나는 대로 답장 드리겠습니다. 급한 용건이시라면 생명의 별 소아과 접수처로...
반즈가 자동 응답 영상을 꺼버렸다.
하.
만약 진로 결과가 희망과 다르다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해야 해.
반즈는 단말기를 내려놓고, 어른들의 당부 속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반즈가 있었던 줄은 조금 짧아져 있었고, 함께 자란 학생들이 하얀 문으로 들어갔다가, 서로 다른 표정을 지으며 나오고 있었다.
반즈가 줄 밖으로 몸을 내밀어, 문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자원봉사 전문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네가 마지막이네. 반즈?
맞아.
너는 여전히... 에휴, 들어가 봐. 신중히 생각하렴.
자원봉사자가 반즈를 하얀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반즈는 이 좁은 공간을 다시 살펴보았다. 책상 하나, 의자 둘... 아니, 셋이 있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구석에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반즈는 생명의 별에서 자라왔기에 이런 가운이 익숙했다.
의사의 가슴팍에는 "케이론"이라고 적혀있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당신을 본 적 있어.
안녕, 나는 구조체 정비과의 주임이야.
반즈는 응급실에서 본 적 있는 이 의사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케이론은 반즈에게 먼저 앉으라고 손짓했다.
확인해야 할 게... 아, 이분은 생명의 별 의사 선생님이셔. 의사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테스트에 협조해 줘. 그보다 먼저 개인 정보와 희망 진로를 확인해 보자.
전문가가 보안 기능이 적용된 스크린을 펼쳤다.
어디 보자. 음, 탄탈-193 공중합체에 대한 적응성이 있고... 공중 정원에서 첫 기록이 생명의 별이네? 어렸을 때 몸이 안 좋았니?
선천적으로 허약해서, 어린 시절을 소아과에서 보냈어.
반즈는 이제 멜비가 시킨 말을 자연스럽게 뱉을 수 있었다.
누가 돌봐줬지?
멜비 의사 선생님, 지금도 소아과에서 일하고 있어.
좋아, 이제 네 진로를 확인해 볼까? 넌 구조체 전사가 되고 싶다고?
"구조체가 되어 가족과 친구를 위해 싸울 거야".
전문가가 웃었다.
그건 선전물의 문구잖아. 너도 가족과 친구를 위한 거로 생각해?
난 지상에 가고 싶을 뿐이고, 인간으로 입대해도 좋아. 내 두 번째 지망에도 그렇게 적었어. 아니면 기초 교육 센터에서 계속 공부하다가, 어쩔 수 없이 졸업해야 할 때, 보육 구역으로 배치해 줘도 괜찮아. 지상에만 갈 수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어.
음, 그렇구나.
전문가는 대답하면서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한 줄씩 훑어보았다. 그는 뭔가를 분석하려는 듯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짧은 삶에서 무엇을 분석하려는 것이었을까?
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지 않는 거지?
뭐라고?
전문가가 반즈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을 읽었다.
"기"... 반기... 구룡 출신들은 다들 이름이 재밌는 것 같네.
네 아버지는 훌륭한 의사였어. 예전에 구룡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했고, 공중 정원에 올 자격도 얻었지.
퍼니싱이 폭발했을 때, 그는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선택했어. 위대한 분이었지. 인간은 그분이 공헌을 잊지 않을 거야. 그런 "영웅의 자녀"로서, 아버지처럼 의사가 될 생각은 없어?
너는 모든 과목의 성적이 우수하고, 의대 전문 시험도 통과했잖아. 더 좋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지금 네 모습은...
전문가는 고민하다 적절한 형용사를 찾아냈다.
그래, "범속해". 너는 지금 너무 범속하다고. 네 부모님은 네가 이런 사람이 되는 걸 원치 않으셨을 거야.
반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아버지에 관한 전문가의 말에 빠져있었다.
처음 듣는 정보인 거니? 드문 경우는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스크린을 내리던 전문가가 다른 자료를 보더니 갑자기 말을 멈췄다.
더 확인할 건 없어. 그럼, 네 지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아도 괜찮겠어?
뭐? 방금 말을 하려다 말았잖아. 그리고 그건 엄마에 대한 자료인 거야?그 자료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전문가가 재빨리 앞에 있던 모든 자료를 닫았다. 그 후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서 오랫동안 듣고만 있던 케이론에게 책상 앞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반즈도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엄마 얘기만 나오면, 다들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다들"이라니?
멜비 이모도, 내 아카이브에 대해 아는 담당자들도 그리고 당신도 똑같잖아. 엄마는 아직 지상에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거야!
일단 앉으렴. 네가 집중해서 풀어야 할 시험지가 하나 더 있어.
케이론이 의대 전문 시험지를 반즈 앞으로 밀었다.
게슈탈트는 각 학생의 가정 상황, 건강 상태, 내신, 전문 시험과 개인의 지망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각자에게 맞는 직업을 추천해. 그리고 우리 전문가들이 최종적으로 상담하고 판단하지. 이 모든 건 너희들에게 공평한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야.
개인의 지망은 전체 과정에서 결정적인 요소야. 충동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어서, 보호자 신청 절차를 마련해 다시 생각할 기회도 주고 있어.
반즈, 너희 같은 아이들은 보호자가 없지만, 센터에서 대신 제출한 신청은 우리가 모두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어. 오늘 네가 주어진 기회도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된 거야.
넌 아직 어려. 그리고 모두가 네 선택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어. 우리는 네가 순간의 충동으로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해서 그래.
반즈가 시험지를 힐끗 보더니 도로 밀어냈다.
수년 전, 반즈의 어머니는 "에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에덴"으로의 "여행"을 원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래서 반즈에게 공중 정원은 꿈속을 여행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멜비는 공중 정원이야말로 현실이고,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은 모두 망상이라고 말해왔다.
이에 반즈는 자신을 가둔 우리를 깨부수겠다고 결심했다.
아니. 난 공중 정원에 남지 않을 거야.
왜 그렇게 지상에 가고 싶어 하는 거니?
반즈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케이론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어린 시절, 멜비와 한 의사가 팽팽하게 대립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를 떠보는 거야? 지금 나한테 엄마가 남긴 뭔가가 있어 보여?
난 엄마에 대한 어떤 기억도, 어떤 특별한 장면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아무리 나를 떠봐도 내게서 얻을 수 있는 건 없어.
그리고 이 기회도 멜비 이모가 육성 센터와 의대에 부탁해서 생긴 거 아냐?
꽤 신중하구나. 하지만 상황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 그리고 멜비와는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반즈는 멜비가 자신을 육성 센터로 보냈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반즈에게 너무 많은 걸 짊어지게 했어. 그건 네게 좋지 않으니, 우리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야 해.
멜비 이모는 못 본 지 꽤 됐어. 물론 이모가 내 일에 간섭할 필요도 없고.
난 지망을 바꾸지 않을 거야.
……
좋아. 네 선택이잖아. 우리는 조언만 할 뿐, 간섭할 권리는 없어.
반즈, 넌 성적도 좋은데 굳이 지상에 가야만 해?
전문가랑 어떤 이상한 사람이 나보고 공중 정원에 남으라 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왜 기회를 줬는데도 거절하는 거야? 지상의 그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분명 후회할 거야! 넌 퍼니싱과 그걸 보지 못했잖아.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질 거야.
너희는? 나탈리는 페로랑 같이 의대에 가기로 한 거야?
누가 널 말리겠어. 그만하자.
난 의대 시험에 합격했고, 전문가랑 게슈탈트도 이 진로를 지지해 줬으니 문제없을 거야. 의대에서 몇 년만 노력하면, 관련 기관에서 실습도 할 수 있을 거야. 물론, 내 최종 목표는 생명의 별...
네 최종 목표는 생명의 별이 아니라 페로잖아.
아아악 입 다물어! 누가 그래!!
나탈리와 프랭크가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본 반즈는 화제를 전환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었다.
그만 때려! 휴, 나는 공학 정비 분야로 지망을 정했어. 어느 학교로 배정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오늘 결과가 나올 거야.
다행히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됐네. 그리고 소문으로는 육성 센터에서 몇 명이 턱걸이로 통과한 것 때문에 지망에 떨어졌나 봐. 그래서 지상으로 가게 됐대. 울면서 상담실에서 나오던 사람도 그중 하나였던 모양이야.
그런 일은 처음 듣네.
나도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했어. 성적이 낮아서 무리하게 지원한 줄 알았거든. 근데 아무리 턱걸이라고 해도, 기준은 통과한 거 아니야? 도대체 왜 거절된 거지?
통학생들도 그런 일이 있었대? 아니면 우리 기숙사생들만 그런 거야?
우리만 그래.
다른 이유가 있어서 거절당한 거라고 벌써 단정 짓는 사람도 있어. 부모님의 직업으로 차별하는 거라던데, 웃기지 않아? 나랑 반즈처럼 부모님의 직업이 뭔지도 모르는 애들도 있는데 말이야.
……
페로는 어디 갔어?
그러게? 밥 먹으러 온 걸 못 봤네.
나탈리의 말을 들은 반즈가 식판을 들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반즈가 기숙사 방에서 페로를 발견했다.
페로.
책상에 앉아 있던 페로는 반즈가 들어오는 순간 앞에 있던 스크린을 꺼버렸다.
전문가랑 지망에 관해 확인했어?
했어.
게슈탈트가 내 의대 지원을 거절해서, 난 지상으로 가야 해. 그게 다야.
다음 시험도 있잖아. 그리고 어려웠던 부분은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다음 시험 같은 건 없어. 너도 알잖아, 난 너보다 나이가 많아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고.
보육 구역의 스태프 같은 것도 마음에 안 드니, 그냥 바로 구조체 개조나 받아야겠어. 그러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네 성적은 의대의 합격점을 넘었던 거 아니야? 근데 왜 거절당한 거야? 그런 경우는 처음 들어.
내가 어떻게 알아?!
페로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 녀석이 내가 들어가자마자 내 부모님이 어쩌고저쩌고. 무슨 "부모님의 신체 능력을 물려받았으니, 개조에 적합할 거다."라느니...
페로, 일단 진정해.
너 같으면 진정하겠어? 네 일이 아니라고 막말하는 거야? 난 너와 다르다고.
난 너처럼 머리가 좋지 않으니까 죽어라 공부해서 시험을 봤어. 그렇게 마지막 기회에서 겨우 의대 합격점을 넘겼는데, 네가 그렇게 무시하던 의대가 결국 나를 떨어트렸다고.
뭔가 잘못됐어.
이미 결과는 정해졌어. 나는 부모님과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그렇게 발버둥 쳤는데, 다른 사람들은 날 부모님과 똑같이 인간을 위해 모든 걸 바치는 존재로 정해놨던 거야. 그리고 나는 그럴 오늘에서야 알게 된 거고.
예전에 전시관에서 우리한테 연설이나 하던 그 자원봉사자 기억나? 우리를 버리고 간 가족들은 다 "영웅"이고, "인간의 대의"를 위해 죽은 거라면서, 우리도 그 길을 걷게 하려 했잖아.
페로, 그건 지금 상황과 관련 없어. 메이카 선생님도 설명했었잖아.
한두 번이 아니야. 내 결과가 바로 증거라고.
오늘 누가 알려줬어. 게슈탈트가 내리는 "판단"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따라 결정되는 거래.
우리 같은 고아들은 어릴 때부터 사회가 원하는 그런 뻔한 이야기만 접하다가, 결국 또 다른 뻔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거야.
그 외부 사람들은 허구한 날 자발적으로 개조를 신청한 아이들을 취재하잖아. 근데 왜 하나같이 중요한 걸 빠트리고 보도하는 건데?
나도 한 번 취재하지 그래? 가족한테 버림받은 내가 그들을 얼마나 원망하는지, 그들처럼 되는 걸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말해주려니까.
왜 우리가 이런 알고리즘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데?
페로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졌다.
난 지상에 가고 싶지도 않고, 구조체를 보고 싶지도 않아. 게다가 사람들은 구조체를 안 좋게 보잖아. 육성 센터에서 그렇게 많은 임무를 의뢰했는데, 일 년 동안 임무를 수락한 구조체가 얼마나 되려나?
자원봉사자와 선생님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구조체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것을 너도 봤잖아.
우리 부모님도 피해자고, 구조체는 결국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돼 있어. 하나같이 구조체 정비과에서 휴면을 하게 되는 거지. 더는 그런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아.
반즈가 놀란 눈으로 흐느끼는 페로를 바라보았다.
반즈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의 어머니가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믿는 것처럼, 페로도 자신의 어머니가 그저 휴면 상태일 뿐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반즈는 더 이상 위로의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때 기숙사 문이 다시 열렸다.
반, 반즈!
반즈는 옷깃을 정리하며, 달려온 프랭크가 숨을 고르기를 기다렸다.
너도 지망 결과에 문제 생긴 거야? 방금 나탈리와 함께 네 최종 결과를 봤는데 의대로 되어있었어.
뭐?
허, 이제 너도 네가 바라는 대로 지상에 갈 수 없게 됐네.
페로의 쓴웃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는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반즈를 바라보았다.
이제 나랑 같은 처지가 됐으니까, 같이 이 결과를 바꿔보지 않을래?
반즈 너도 공중합체 적응성이 있으니까 구조체 개조를 받을 수 있잖아.
우리가 서로 갈 곳을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 둘 다 원하는 운명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방법이 있어. 아니, 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