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몇 달 동안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 그날도 반즈는 수업과 활동이 모두 끝난 후, 다른 아이들과 함께 가지 않고 혼자 기숙사로 돌아갔다.
반즈가 방금 기숙사 구역 복도에서 구조체 몇 명을 봤다. 그들은 자원봉사자 뒤에 어색하게 서서, 자원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몇몇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최근 육성 센터에서 의뢰를 받기 시작하면서 가끔 구조체들이 임무를 의뢰하러 오곤 했다.
반즈는 오래전 응급실에서 본 구조체와 액체들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른 지금, 반즈는 그 액체에 대해 배웠었고, 그건 구조체의 순환액으로, 인간의 혈액처럼 너무 많이 잃으면 "사망"에 이르는 액체였다.
기숙사 문을 열자, 책상 위의 물건들이 위치가 바뀌어 있는 걸 발견했다.
페로야?
아무도 없네. 누가 다녀간 건가?
반즈가 문을 닫고 의아해하며 책상 앞에 앉은 순간, 기숙사의 모든 불이 꺼졌다.
누군가 밖에서 반즈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기숙사 안에서도 여기저기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반즈가 책상 위의 작은 랜턴을 집어 들었다.
펑.
생일 축하해!!!
아이들이 구석에서 뛰쳐나오고, 반즈의 머리 위에서 폭죽이 터졌다. 그러자 반짝이는 조각들이 공중에 흩날리다가 반즈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졌다.
생일?
동시에 기숙사 문이 열렸고, 책상 위의 화면도 밝아지면서 게슈탈트의 메시지가 재생됐다.
오늘은 11월 5일, 당신의 생일입니다. 게슈탈트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이 중요한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열람 취향을 종합 분석하여,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지금부터 <학습 백과사전>, <기초 교육 교재 해설집>, <식물: 단원별 복습>, <공부의 신 따라 하기: 자격증 시험 출제 포인트>를 전송하겠습니다.
……
자신의 생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주인공은 작은 랜턴을 든 채, 눈앞의 사람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멜비가 문가에서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케이크의 중앙에는 초콜릿 시럽으로 "반즈"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생일 축하해, 반즈. 네 생일에 대해 말해주지 못했던 것 같네, 미안해. 앞으로는 우리가 기억해 줄게.
걱정 마! 난 기억력이 엄청 좋거든!
첫날에 촐랑거리던 소녀도 나서서 반즈의 머리 위에 폭죽을 하나 더 터뜨리더니, 다른 아이들과 함께 깔깔 웃었다.
이건 선물이야! 생일을 시끌벅적하게 보낼수록 앞으로 일 년이 더 행복해진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거든!
다른 아이들도 환한 미소와 함께 축하를 하면서 반즈에게 선물을 건넸다. 직접 만든 선물들은 대부분 가벼웠지만, 반즈가 선물들을 품에 안았을 때는 특별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페로가 멜비 옆에서 나와, 어색한 듯 손에 든 물건을 반즈에게 쥐여주었다.
자, 생일 선물. 내가 주고 싶은 게 아니라, 선생님께서 네가 말했던 걸로 다 같이 준비하라고 시켜서 주는 거야.
내가 말했던 거?
반즈가 손에 든 선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드림캐처였다. 둥근 테두리에는 하늘색 리본이 감겨 있었고, 아래쪽에는 반짝이는 돌멩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돌멩이 밑에는 깃털 몇 개가 달려 있었는데, 반즈가 기억하는 새의 깃털과 매우 비슷하게, 끝부분이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드림캐처를 살짝 흔드니 깃털이 손목을 스치면서 그를 간지럽혔다.
지상에 갈 수 있는 구조체들이 모아준 거야. 고맙다고 하려면 그 구조체들한테도 해.
반즈는 사람들 뒤에 서 있는 구조체들을 보았다.
고마워.
이제 촛불을 불고 소원 빌까?
도시락도 가져왔어. 양이 꽤 많으니까, 케이크 먹고 나서 친구들이랑 같이 나눠 먹으면 되겠다.
음, 도시락은 나중에 생각하고, 먼저 소원부터 빌어 봐.
반즈?
두 손을 모은 반즈는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잠들었던 기억은 없는데.
자기는 뭘 자, 모두가 널 기다리고 있잖아. 아직도 꿈인 줄 아는 거야?
꿈이 아니야. 이건 네 삶의 일부고, 모두 진짜야.
……
정말 진짜구나.
다행이네.
모두의 축하 속에서 반즈가 눈을 감았다.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까?
이건 반즈의 첫 번째 생일이자, 첫 번째 소원이었다.
만약 소원이 정말로 이루어진다면, 반즈는 엄마가 왜 자신을 에덴으로 보냈는지, 지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았으면 했다. 멜비가 말한 것처럼, 아직도 혼란스러운 기억들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싶은 것이었다.
또한 반즈는 사람들이 계속 자신 곁에 있기를 바랐다.
그는 아직 어렸지만, 많은 소원이 있었다.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희미한 생일 초의 불빛만이 앞에서 아른거렸다.
촛불이 많은 기억 데이터를 비추었다. 엄마가 자신을 에덴으로 보낼 때 했던 약속, 생명의 별에서 눈을 뜬 순간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미래에서도 칠흑 같은 구렁텅이에서 한 표식이 빛나고 있었다.
반즈가 소원을 빌자, 격렬한 두통과 함께 한 정보가 머릿속에 전해졌다. 그리고 희미한 촛불처럼 흐려졌던 표식은 순환액이 온몸을 도는 20초가 지나서야 다시 선명해졌다.
기억 데이터들이 잠시 망설이더니, 모두 표식을 향해 나아갔다.
구조체는 눈을 감고 있었으며, 지휘관은 그의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 봉인된 기억 데이터를 발견했다.
마인드 표식이 의식의 바다에서 일어난 파동을 안정시키려 노력하며, 더 깊이 탐색을 시도했다.
으음...
이유는 모르겠지만, 뒤섞인 기억 데이터들이 그 방대한 양을 드러내며 인간의 마인드 표식을 덮쳐왔다.
조심해!
누군가가 뒤에서 완벽한 타이밍에 지휘관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지휘관은 바로 마인드 연결을 끊었다.
반즈도 눈을 번쩍 떴고, 지휘관과 함께 눈앞에 나타난 구조체를 바라보았다.
벌써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
난 자발적으로 따라온 거라... 임시 소대 명단엔 없지.
189번과 190번 보육 구역이 신소피아시 건설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어서, 최근에 계속 근처에 머물러 있었어.
버려진 연구소를 탐색하는 이 임무의 등급은 사실 그리 높진 않지만, 북극 항로 연합에서 있었던 몇몇 실험이 생각나서...
로제타는 다소 지친 것 같았다.
내가 보낸 신호를 받고 온 거지?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네. 나를 제외한 대원들과 연락이 두절됐고, 그들을 찾기 전까지는 이곳을 나갈 수 없어.
하지만 너희들도 상황이 안 좋아 보이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반즈가 일어서서 추가 설명을 했다.
밖은 안전하지 않아. 적조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어서, 금방 이 연구소와 주변 두 보육 구역을 덮칠 거야. 구조와 수색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
우리 소대의 다른 두 대원도 연락이 두절됐고, 보다시피 나와 지휘관도 이곳으로 끌려왔어.
끌려왔다고?
반신의 침식체였는데, 본 적 있어?
로제타가 고개를 저었다.
운이 없었어.
발을 헛디뎌 떨어졌어.
로제타가 지친 듯 눈을 감았다.
이번 임시 임무는 꽤 수월하네요. 자료들도 눈에 띄는 곳에 있고요.
올리버, 이 장비는 아직 사용할 수 있으니, 데이터를 백업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
네, 그리고 제가 단말기 하나를 주웠는데, 이걸 먼저 봐주시겠어요?
단말기?
올리버의 손에 있던 단말기는 거의 망가진 상태였지만, 공중 정원의 군용 전술 단말기라는 것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공중 정원의 구조체들이 이곳에 왔었나 보네요.
배신한 구조체일 수도 있어. 지금까지 탐측 결과로는 건물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해.
갑자기 단말기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스크린이 켜졌고, 뒤죽박죽인 데이터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근처에 있는 버려진 장비 뒤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수상함을 느낀 로제타가 확인하러 가려는 올리버를 막아 세웠다.
내가 가볼 테니, 넌 여기서 데이터를 백업해.
곧이어 로제타가 어두운 구석에서 수많은 단말기를 발견했다. 그 단말기들은 일부러 쌓아놓은 것처럼 겹겹이 쌓여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당장 보고해야 해. 여긴 배신한 구조체들의 거점인 것 같아.
이상하네, 단말기마다 비슷한 흔적이 있어. 뭔가에 찍혀서 망가진 것 같은데... 낫인가?
로제타가 미간을 찌푸리며, 단말기 두 개를 주워 살펴보았다. 깊게 패인 칼자국으로 단말기들이 망가진 것이 확실했다.
어떤 무기였을까...
올리버, 이런 흔적에 대해 아는 것 있어?
아아악!!!
올리버!
로제타는 비명을 듣고 바로 돌아갔으나, 올리버가 있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로제타가 다른 구역으로 흩어진 대원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건 긴 침묵뿐이었다.
그녀는 머뭇거리지 않고, 재빨리 공중 정원에 이 사고를 보고했다.
긴급 상황이야. 모든 대원과 연락이 두절... 윽!
로제타가 발을 헛디뎌, 폐지 더미에 가려진 구멍으로 떨어졌다.
그런가.
주변을 간단히 조사해 봤는데, 저쪽에 구조체 잔해가 쌓여있더라고. 누군가 일부러 그들의 단말기를 한곳에 모아둔 것 같아. 그리고 이것도 찾았어.
로제타가 마찬가지로 심하게 손상된 단말기 하나를 꺼냈다.
이 단말기만 규칙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어.
반즈가 단말기를 받아 잠시 만지작거리자, 단말기에서 익숙한 붉은 빛이 들어왔다.
슈트롤이라고? 성갑충 소대의 실종된 그 자도 여기 있었던 건가?
그래, 하지만 이번엔 많은 정보를 남겼어. 그의 평소 스타일과는 좀 달라.
단말기에는 많은 음성 메시지가 저장되어 있었다. 반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불안하게 만드는 노이즈가 지지직거리며 이어지더니, 어디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 후우... 이곳에... "알"이 하나 있다.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단어에 지휘관은 주위를 경계했고, 반즈도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슈트롤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른데?
이게 연구소의 그 망할 프로젝트의 실험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애들을 데리고 실험한다는 것만 봐도, 여기는 정상적인 곳이 아니다.
아동 실험이라... 역시.
그 "알"에서 "괴물"이 부화해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있다. 만약 누군가 여기를 발견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 괴물을 조심해야 한다.
난 그 "괴물"을 피해서 양성 구역의 실험체들을 그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생각이다.
성공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아직 괴물과 정면으로 마주친 적은 없지만, 그놈이 죽인 연구원들과 보안 요원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당장은 여기까지 기록하겠다.
음성 메시지는 여기서 끝이 났고, 지휘관 일행은 생각에 잠겼다.
실종된 내 대원들도 그가 말한 "괴물"의 습격을 받은 걸까? 내가 위에서 수상한 전투 흔적을 봤었거든.
확실하지는 않아.
모든 정보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아. 우선 나와 지휘관은 "존재할지도 모르는" "괴물"과 정면으로 마주친 적이 없어.
그리고 메시지 파일이 변조되거나 발성 모듈이 손상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목소리는 확실히 평소의 슈트롤과는 달라.
맞아, 퍼니싱으로 연구소가 붕괴한 지는 이미 몇 년이 지났어. 승격자와 잠시 그에게 의지한 구조체들을 제외하면, 적어도 슈트롤이 도착한 시점에는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을 거야.
하지만 누가 이런 재미도 없는 함정을 만들겠어. 그리고 슈트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안 돼. 아마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장소가 있는 것 같아.
정말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면, 실종된 대원들을 찾는 것 외에도, 아이들을 찾는 임무를 추가해야겠네.
그래도 주변 길은 익숙해졌으니, 훨씬 수월하게 행동할 수 있을 거야.
가다가 "괴물"과 마주치면, 처리해 버리자고.
로제타가 무기를 꽉 움켜쥐었고, 반즈도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지휘관이 전방의 어두운 복도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