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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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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8-4 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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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가 반즈를 앞으로 데려와 자기소개를 시켰다. 그리고 반즈는 사람들 사이에서 머리가 보라색인 아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분명 그도 반즈를 보았다.

더 분명한 점은 그가 반즈를 경멸한다는 것이었다.

반즈가 "단체 활동"에서 처음으로 다 같이 점심을 먹는 동안, 보라색 머리의 남자아이가 두 번째 만남에서 첫마디를 건넸다.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꺼져.

……

"갈 곳"이 없었던 반즈는 남자아이의 말을 무시한 채, 숟가락을 들어 식판의 음식을 떴다.

그 순간 남자아이가 손을 뻗어, 반즈의 숟가락을 뺏었다.

페로!

소란이 커지자, 근처에 있던 자원봉사자가 남자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그 후 숟가락을 "뺏어" 반즈에게 돌려주었다.

너만 아니었으면, 엄마는 분명 금방 깨어나셨을 거야!

깨어난다고?

반즈는 그 의사가 페로에게 한 거짓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페로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

페로, 오늘 벌써 두 번째 규칙 위반이야. 한 번만 더 그러면, 그에 맞는 벌을 줄 거야.

쟤가 먼저 시비 건 거라고!

반즈는 온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뭘 했다는 거야!

여기서 말고, 병원에서 나한테 시비를 걸었다고! 의사 선생님들은 우리 엄마가 휴면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쟤가 그 말을 해서!

자원봉사자는 페로가 하려는 말을 눈치채고 그를 데리고 갔다.

그 뒤 반나절 동안 반즈는 페로를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반즈는 다른 또래 아이들과 함께 수많은 장난감이 있는 방으로 보내졌다. 그곳에는 푹신한 바닥과 함께 "스패로우"의 단말기에서만 보았던 물건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반즈는 미끄럼틀 옆에 앉아, 아이들이 줄을 서서 미끄럼틀을 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멜비의 예비 조수를 하는 것이 이곳의 생활보다 좋을 거로 생각했다.

어느덧 바깥의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지만, 반즈는 그때까지도 미끄럼틀을 타보지 않았다.

조용한 밤, 반즈가 소리 없이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반즈는 페로 다음으로 육성 센터에 온 아이였기에, 불행히도 페로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반즈는 방 배정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방 안의 모든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책상 위의 작은 랜턴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 페로가 방으로 돌아왔고, 위층 침대에 있는 반즈를 무시한 채, 곧바로 잠들었다.

……

얼마 후, 페로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문가에는 침대의 랜턴을 등진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응?

페로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반즈를 불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자고 싶지 않아서 나가려고.

미쳤어? 소등 후에는 밖에 나가면 안 되는 거 못 들었어?

응, 못 들었어.

그럼, 마음대로 해. 걸려도 날 끌어들이지 말라고, 불길한 놈아.

자원봉사자 이모랑 뭔 얘기했어? 혼난 거야?

아니. 너랑 같은 방을 쓰기 싫으면, 다른 방으로 옮겨도 된다고만 했어. 육성 센터에 빈방이 있으니, 우리가 각자의 방을 쓸 수도 있대.

거절한 거야?

선생님은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고, 네가 악몽도 자주 꾼다고 하던데. 그리고 전에 병원에서도 혼자 자본 적이 없어서 겁도 많다면서?

난 겁쟁이가 아니야. 하암.

반즈가 하품을 했다.

그렇게 하품을 하면서 왜 안 자는 건데.

잠들면 악몽을 꿀 것 같아.

그 말이 진짜였나 보네.

페로가 도로 누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랑 더 이상 할 말 없어. 그냥 네 자리로 가서 잠이나 자. 오늘은 쉬는 날이라 하루 종일 놀기만 했지? 내일부터는 이렇게 편하지 않을 거야.

내일은 뭐 하는데?

많은 일.

반즈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주사도 맞고 약도 먹어야 하는 거야? 심지어는 밥도 못 먹게 하고, 잠도 못 자게 하고, 늙은 마녀가 때리고 그래?

뭔 소리야? 기초 교육 센터에서 수업하고 활동하는 거밖에 없어. 그냥 육성 센터에서 비슷한 나이대 애들끼리 한 반으로 묶어 수업하는 게 다야.

너는 우리 반에서 제일 어리고, 난 제일 나이가 많아.

여기서는 열세 살, 열네 살쯤 되면 진로를 생각해 볼 수 있어.

난 너희들보다 크긴 한데, 너희랑 같은 반이야. 열여섯 살이 되면 여길 떠나야 해.

여길 떠나면 뭘 할 건데?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기초 교육 센터는 뭐야? 수업만 하는 곳이야? 기초 교육은 또 뭐에 관한 거야?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 건데.

반즈는 인간 사회에 우연히 날아든 어린 새 같았다. 호기심이 가득하면서도 조심스러운 그는 새로운 단어들을 곱씹고 있었다.

그건...

넌 항상 이렇게 꾸물거리는 거야? 짜증 나 죽겠네.

페로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짧은 대화 속에서 반즈는 많은 형용사를 들었고, 그것들이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알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들은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난 바보도 아니고, "불길한 놈"도 아니야. 느리지도 않을뿐더러, 전원이 "꺼질" 일도 없어.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잘못된 거야.

꺼져! 난 잘 거야! 이게 마지막 경고야!

왜 넌 매번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야?

반즈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의사, 의사... 맨날 그 의사들 얘기만 하네. 근데 너도 결국 그 의사들한테 버림받아 여기로 온 거 아니야?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의사들이 널 입양이라도 했어?

……

넌 나랑 다른 것 같아? 모두가 널 포기했어, 그냥 버린 거라고! 넌 쓰레기처럼 버려진 거야! 으악!

페로가 욕설을 이어가려던 순간 갑자기 말이 끊겼다. 반즈가 세게 달려들어 그의 턱을 들이받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페로는 뒤로 넘어졌고, 하마터면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

페로는 잠시 벙찌고는 큰 모욕을 당했다는 듯,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날렸다.

둘은 결국 서로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당직자의 급한 발소리가 곧 들려왔고, 소동은 몇 분 만에 끝이 났다.

반즈는 청소년 육성 센터에 들어온 지 이틀 만에 처벌을 받게 되었다.

원래 오늘은 반즈의 반에서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다른 아이들 말로는 기숙사생들도 외부에서 오는 통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같은 내용을 배운다고 했다.

하지만 페로의 말은 달랐다. 통학생들은 부모가 있고 기숙사생들은 고아라는 점이 차이점이었다. 그리고 반즈는 아직 외부에서 오는 통학생들을 보지 못했기에 그들이 궁금했다.

네가 날 들이받지만 않았어도 우리도 입학식에 갈 수 있었을 거라고. 벌써 점심인데 걔들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

복도 반대편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입학식을 마친 신입생들이 드디어 돌아온 것이었다.

그들은 선생님들의 안내를 따라 복도 양쪽의 교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신입생 대열은 점차 줄어들었고, 결국 복도 끝에는 "같은 반" 기숙사생들만 남게 되었다.

페로와 반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던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둘을 보았고, 둘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는 몇몇 아이들은 비웃기도 하였다.

새로 온 애도 페로를 따라 나쁜 짓만 하나 보네!

뭐? "나를 따라 나쁜 짓"을 한다고?

나는 페로를 따라 하지 않았어.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사감 선생님이 왜 널 벌주셨겠어?

나탈리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 조용히 하자!

페로의 화가 난 표정을 본 자원봉사자가 그에게도 경고를 했다.

페로, 더 이상 말썽 부리지 마.

먼저 시작한 건 내가 아니라고!

네가 먼저 욕한 거 아니야?

나는...

됐어, 곧 점심시간이니까 이제 그만해. 다행히 너희 둘 다 다치지는 않았네. 페로는 다음부터 그러지 마.

육성 센터의 자원봉사자가 인솔 교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페로에게 손짓했다.

반즈가 페로의 뒤를 따라 교실에 들어가려 했지만, 자원봉사자가 반즈를 붙잡았다.

반즈야, 이리로 와볼래?

반즈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만지작거렸다.

바로 그때, 멜비 특유의 발소리가 뒤에서 들려왔고, 반즈는 흥분된 마음을 참으며, 고개를 돌려 멜비를 맞이했다.

멜비와 오랫동안 헤어졌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즈는 그녀를 정말 그리워했다.

하지만 반즈는 멜비의 표정을 본 순간 충격에 빠졌다.

다른 애랑 싸웠다면서? 게다가 네가 먼저 손을 댔다고?

멜비는 어두운 표정으로 반즈를 추궁했다. 그녀는 생명의 별에서 급하게 달려온 듯했고, 흰 가운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었던 것 같았다.

반즈는 반사적으로 사과를 했다.

미안해. 혼내지 말아줘.

이겼니? 다친 데는 없어?

?

괜찮아요. 저희가 확인해 봤는데 둘 다 다치진 않았어요. 서로 세게 때리지도 않았거든요.

반즈가 말을 하기도 전에 멜비가 그를 의자에서 벌떡 일으켜 세운 다음, 팔다리를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휴대용 호흡기는 갖고 있어? 숨쉬기 힘들면 얼른 써야 해.

머리도 좀 길어졌네. 진료실에서 미리 잘라줄 걸 그랬나.

생각과는 달리, 멜비는 반즈를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걱정과 함께 상태를 살펴본 후, 하늘색 도시락을 건냈다. 별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그녀는 조금 화가 난 듯 도시락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생명의 별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주먹질이나 하는 거야. 아니다... 우선은 여기까지만 하고, 일단 뭐라도 좀 먹어.

멜비가 도시락 뚜껑을 열자, 칠흑 같은 혼돈의 물질에서 무시무시한 냄새가 풍겼다.

보기엔 별로지만 맛은 괜찮을 거야. 가끔 집에서 요리할 때도 이렇게 먹으니까 안심해도 돼.

반즈가 식탁 앞에 앉아 몇 입 먹어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배불러.

벌써 배불러? 온 지 하루 만에 재활할 때보다 식사량이 줄었네?

……

반즈?

반즈의 눈물이 식탁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맛없어?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싸웠던 건 페로가 먼저 심한 말을 해서 그런 거라고. 페로가 나한테 아무도 날 원하지 않아서 버려진 거라고 했단 말이야.

엄마가 꼭 에덴에 보내야 한다고 해서, 말 잘 듣고, 밥도 잘 먹고, 조용히 잤는데, 그래도 결국 버림받았잖아.

아니야, 아무도 널 버리지 않았어. 단순히 네가 병원에 남을 수 없게 된 것뿐이야. 반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지켜봐 줘야 해. 자원봉사자, 지원자 그리고 선생님들이 있는 여기가 지금 반즈에게 제일 좋은 곳이야. 게다가 좋은 교육을 받아야만 공중 정원의 "평범한 자"가 될 자격을 얻을 수 있어.

반즈는 내가 본 아이들 중에서 제일 똑똑해. 나이는 어리지만 잘 배울 수 있을 거고, 미래에는 공중 정원에서...

다른 방법이 있잖아. 날 입양해 주면 안 돼? 그러면 통학생으로 다니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할게.

난 입양 자격이 없어. 사실은 널 보러 와서도 안 돼.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멜비는 바쁜 사람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반즈의 상태만 보러 온 것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생명의 별에서 통신을 받아 다시 불려 갔다.

입양을 허락받지 못한 반즈는 축 처진 채, 도시락을 들고 돌아갔다. 그렇게 반즈가 기운 없이 기숙사생 식탁에 앉자, 페로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게 바로 눈에 들어왔다.

반즈와 눈이 마주친 페로는 재빨리 시선을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또 왜 그러는 건데.

페로는 수프를 떠먹으며, 반즈의 말을 무시했다.

반즈는 도시락을 열고 잠시 마음의 준비를 했다. 멜비는 의술이 뛰어난 반면에 요리 실력이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다 먹기로 했다.

반즈에게 있어서는 멜비가 준 건 무엇이든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정체불명의 덩어리를 한 숟가락 떠먹으려는 순간, 페로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네가 연줄이 있을 줄은 몰랐네.

연줄이라니?

넌 말해줘도 몰라. 어쨌든 그 사람이 널 입양하려는 거지?

반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아니, 멜비 이모는 내 담당의야. 날 여기로 보낸 사람이고.

그래도 널 보러 오잖아. 그게 연줄이지.

게다가 의사잖아, 최고의 직업이라고. 나도 크면 의사가 돼서 우리 엄마를 살릴 거야.

반즈는 이제 페로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지 알았다. 그 후, 그는 조용히 멜비가 준비한 음식을 꾸역꾸역 삼켰다.

하지만 페로의 눈빛에 깃든 부러움은 너무 눈에 띄었었다.

반즈는 페로가 그날 응급실에서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그는 음식을 한 입 삼킨 후, 용기를 내어 도시락을 앞으로 밀었다.

뭐야?

먹을래?

싫어! 내가 그걸 왜 먹어!

괜찮아, 나눠 줄게.

전시관

학생 여러분, 이쪽으로 오세요. 다음 전시관은 "지구관"이에요. 출발하기 전에 선생님이 한 말 기억하죠?

자, 조용히 해 주세요. 이제 우리의 고향인 지구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아이들은 들뜬 마음을 달래며, 줄을 서서 문 안으로 들어갔다.

홀 중앙에 투영된 푸른 행성은 천천히 회전하며, 한 번도 지구를 밟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대들에게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손으로 만져봐도 돼요.

선생님의 허락에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지구"의 표면을 가볍게 만지자, 푸른빛 물결이 일었다.

잠깐의 고요함이 지나자, 주변의 어둠 속에서 하얀 갈매기 떼가 날아올랐다. 그 후, 발밑의 바닥은 모래사장으로 변했고, 집을 등에 진 소라게가 아이들 발 사이에서 지나다녔다.

우와!

공중 정원은 지구의 많은 생태 환경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했어요. 햇빛, 식물, 바람 한 줄기까지 여러분이 보는 모든 것은 지구에서 비롯된 거예요.

인간과 지구는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사이에요.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

아이들이 하나둘씩 "지구"를 만져보며, 아름다운 미지의 광경에 신기해했다.

자, 이제 "지구관"에서 30분 동안 자유롭게 둘러보세요. 그리고 꼭 시간 맞춰서 모여주세요. 아직 봐야 할 전시관이 많이 남았거든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씀하지 않으셨네요.

네?

퍼니싱 폭발로 이 모든 게 파괴됐죠. 불과 수십 년 만에 지구는 만신창이가 됐어요.

청소년 육성 센터에서 온 중년의 자원봉사자가 손을 휘저어, 가상의 지구를 한 바퀴 돌렸다. 그러자 푸른 지구의 표면에 검붉은색이 피어올르며, 문명을 나타내던 불빛들이 사라지고, 구멍 속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잠깐만요, 아이들에게 그런 얘기는...

자원봉사자는 메이카를 힐끗 쳐다보더니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이 지금 공중 정원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고, 교육도 받고, 자신만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건 누군가가 여러분을 위해 희생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최전선의 적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혈혈단신으로 지구의 땅을 조금씩 탈환했죠.

여러분은 다른 학생들과 달라요. 여러분의 부모님 대부분은 최전선에서 목숨을 바치셨고, 그분들의 전우와 공중 정원이 이곳에 맡긴 거예요. 보살핌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는지 반드시 기억하세요. 항상 그것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해요!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이 위대한 과업을 위해 계속 싸울 건가요, 아니면 공중 정원이란 온실 속에서 범속하게 살아갈 건가요?

아이들이 멍하니 자원봉사자를 바라보았다.

그만하세요. 아이들은 부모님과 어떻게 헤어진 것조차 알지 못하는데, 왜 과거 사람들의 운명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거죠?

육성 센터에 오늘 있었던 일은 보고할 거예요. 아이들의 미래에 책임질 수 없다면, 무책임한 조언은 하지 마세요.

……

아이들이 다시 멍하니 메이카를 바라보았다.

여러분, 이제 다음 전시관으로 가볼까요? 다음 전시관엔 "게슈탈트"가 전시되어 있어요.

메이카 선생님은 자유 관람을 중단하고, 맨 앞의 아이들을 조곤조곤 재촉하며,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지구관"을 자유롭게 관람하려는 원래의 계획이 무산됐다.

줄의 맨 끝에 서 있던 반즈가 페로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우리 엄마는 "희생"한 게 아니야.

그래그래, 네 말이 다 맞아. 우리 엄마도 그냥 휴면하고 있는 거야.

그건 그만 얘기하자. 그나저나 "범속하게"가 무슨 뜻이야?

"평범"하다?

그럼 멜비 이모는 내가 범속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거네.

그리고 "쓸모"없는?

그럼 난 범속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흥, 내가 네 미래 따위 신경 쓸 것 같아?

전시관에서 돌아온 후, 육성 센터의 아이들은 평소와 같이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전시관에서 감정이 격해졌던 그 자원봉사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반즈는 천천히 음식을 씹으며, 낮에 전시관에서 본 광경들을 떠올렸다. 날아다니는 새, 흙, 모래사장은 전시관 바닥이 딱딱하지만 않았다면 모든 게 진짜라고 믿을 정도였다.

반즈는 바깥의 낮과 밤이 모두 지구 생태계를 모방한 시뮬레이션이며, 날씨도 맑음과 흐림 두 가지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반즈는 과거에 지상에서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했었다.

어른과 아이가 언덕 위에서 앉아 있었고, 거대한 참나무가 그들을 비바람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었다.

비가 그치면서, 남은 빗물이 나뭇잎을 타고 똑똑 떨어졌다. 완전히 날이 개자 한 여자가 옆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즈야, 이제 비가 그쳤으니 놀러 가도 돼.

밀밭에서 놀고 싶어.

안 돼, 밀에는 가시가 있어서 손을 다칠 거야.

반즈가 자기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그의 검지에는 작은 상처가 있었고, 이는 지난번에 몰래 밀밭에 가서 밀 이삭을 만지다가 생긴 것이었다.

그럼 바닷가는? 이미 물이 빠졌으니까 위험하지 않을 거야.

위험해. 저 "바다"는 언제나 위험한 거야.

……

엄마, 오늘도 나무 아래에만 있어야 하는 거야?

휴, 그럼, 바닷가에서 놀래?

응!

허락을 받은 아이는 신이 나서 나무 그늘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축축한 흙을 밟고, 막 피어난 들꽃을 지나, 언덕 아래 모래사장을 향해 달렸다.

반즈는 "엄마"라고 부르는 과묵한 여자와 함께 나무 아래에서 살았다. 비가 그치고 날이 맑아지면, 엄마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글자를 가르쳤고, 지구상의 온갖 생물들을 알려주곤 했다.

엄마는 맑은 날의 햇빛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반즈는 달랐다. 햇빛이 모래사장을 따뜻하게 데워주어, 산책할 때 좋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야!

반즈가 어디선가 굴러온 돌에 걸려 풀밭에 넘어졌고, 무릎이 까졌다.

뭐야. 넌 누구야?

……

풀밭 사이에는 흰옷을 입은 아이가 엎드린 채, 넘어진 반즈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닮았어. 역시 넌 그 분의 아이였구나.

넌 누구야? 왜 여기 엎드려 있는 거지?

난 계속 풀숲에 엎드려 있었어. 네가 날 보면 안 되거든, 그러면 들통나니까.

넌 계속 나랑 엄마의 세상에 있었던 거야?

그 말을 들은 풀밭의 아이는 조금 불쾌해 보였다.

여긴 원래 내 구역인데, 네가 밖에서 들어온 거잖아. 근데 내가 너를 피해 다니고 있네.

반즈?

멀지 않은 곳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즈가 일어서자, 자신을 찾고 있는 게 보였다.

내가 여기 있었단 걸 절대로 네 엄마한테 말하지 마!

아이가 반즈를 밀어버렸고, 반즈는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다.

반즈는 처음으로 땅에서 구르며, 그곳의 모든 것을 보게 되었다. 돌아가는 하늘, 꽃잎마다 색깔이 다른 꽃, 풀잎 가장자리의 작은 톱니 모양까지.

반즈는 밀쳐진 것에 화를 내기는커녕, 그저 눈앞의 모든 것을 잘 기억하고 싶었다.

넌 또 멍청... 아니지, 넌 뭘 그렇게 멍하니 있는 거야,

반즈가 음식을 씹던 걸 멈추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페로와 눈을 마주쳤다.

또 시비나 걸면, 내가...

지상은 그렇지 않아.

그들의 대화는 밥을 먹을 생각이 없던 다른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상엔 해변이랑 갈매기뿐만 아니라, 예쁜 것들이 훨씬 더 많이 있어.

네가 어떻게 알아? 설마 지상에 가봤어?

어릴 때... 아니, 난 가본 적 없어. 어른들의 단말기에서 봤어.

멜비의 당부가 갑자기 떠오른 반즈는 급히 뒷말을 삼켰다. 그리고 식탁에서는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난 알아. 지상에는 "퍼니싱"이 있어.

작은 목소리로 말하던 한 남자아이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모두 전사하셨어. 그분들이 공을 세우셔서 내가 공중 정원에 올 수 있던 거야.

너희들은 빨간빛을 내는 기계들을 본 적 없지? 사람의 팔다리가 폭발로 날아가는 걸 본 적 있어?

반즈는 자신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의 악몽에도 빨간빛을 내는 기계들이 있었다.

남자아이가 어두운 눈빛으로 반즈를 바라보았다.

반즈, 네가 단말기에서 본 지상은 정말 그렇게 좋아?

……

용기를 낸 반즈가 의자에서 일어나, 부드러운 쿠션이 깔린 바닥을 밟으며, 흙을 밟는 감촉을 떠올렸다.

좋아, 지상에는 퍼니싱 말고도 좋은 게 많이 있어.

반즈가 더듬거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 잠깐 봤던 바다 풍경부터 시작하여, 조개껍질 말고도 짠 바닷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모래알은 전부 부드러운 건 아니어서, 맨발로 밟으면 안 되는 갯벌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언제나 황금빛인 밀밭,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 밀 까끄라기...

빛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한 나무와 얼굴보다 큰 낙엽, 나무 아래의 온실에 있는 채소, 이슬, 야생화와 야초 그리고 일곱 개의 점이 있는 무당벌레까지.

그리고 비가 오기도 해. 비가 그치면 새들은 나무 위로 날아가. 갈매기가 아니라, 날개 끝이 회색이고 몸에 예쁜 무늬가 있는 새들 말이야.

깃털이 빠지기도 해?

응, 깃털은 보들보들하고 가벼운 느낌이래.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반즈를 바라보며, 처음 접하는 풍경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깃털에서 냄새는 안 나? 설마 거기에 얼굴을 파묻고 냄새를 맡는 사람은 없겠지...?

그, 그러지는 않을걸!

아이들 사이에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마침, 육성 센터 밖의 인공 햇빛이 식탁 한가운데 있는 마른 아이를 비추었고, 그들은 하늘과 땅, 진짜 태양과 달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우리도 진짜 지상을 볼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은 거기 계신 것 같은데.

볼 수 있어. 어쨌든 난 지상에 갈 거야. 그곳에서 나는...

다시 멜비의 당부가 떠오른 반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반즈는 육성 센터 밖의 인조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멜비가 그렇게 거리를 두던 엄마가 아직도 지상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