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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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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2-20 부패한 풀 속의 반딧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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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의 새싹이 다시 황야를 뒤덮고, 074호 도시에 도착하기 직전에, 벨라는 기다리던 소식을 듣게 됐다.

이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정말요??

4년 전 일이었어요. 그날은 큰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상처 입은 아이를 안은 여자가 보육 구역의 직원들에게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어요. 그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아이요?

네. 길에서 구했다고 했었는데, 3살짜리 어린 남자아이였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열이 많이 나서, 그날 밤 세상을 떠났어요.

혹시 그녀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하시나요? 지금은 어디 있죠?

그 해의 기록에서 이름을 찾아볼게요. 그 아이의 유일한 간병인으로 이름을 남겼던 게 기억이 나요.

여기 있네요. 엘레나·벨라. 4년 전 9월 28일에 남겨진 기록이고, 일벌 부대 일원이네요.

엘레나·벨라? 이 이름이 맞아요. 분명히 그녀일 거예요.

4년 전 일벌 부대에 있었다면, 그녀는 아직...

아무도 모르죠. 지금은 일벌 부대 멤버들도 그렇게 흔하지 않아요. 그 사고가 아딜레 상업 연맹에 미친 타격이 꽤 크지 않았나요?

그럭저럭 괜찮아졌어요. 그리고 열차 안에는 아직 사람이 꽤 많아요. 자밀라가 조금씩 자리를 잡은 뒤, 모두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있어요. 굶주림에 시달리긴 하겠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에요.

옆에 있던 수송팀의 멤버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전에는 도대체 몇 명이나 죽은 건가요?

들은 바로는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이 넘는다고 했던 거 같아요. 사람마다 얘기가 다르긴 한데,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 대부분이 더 이상 살아있지 않아요.

수송 부대도 가까스로 재편성됐고, 대장님은 미래를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어요.

대장님?

지금 수송 부대의 대장은 누구인가요?

신야 대장님이에요.

신야? 아직 살아있나요? 하지만...

하지만 오슬란은 그 후로 계속 수송 부대의 핵심 멤버를 찾아서 책임을 추궁했는데, 어떻게 신야가 대장이 되는 것을 허락했을까요?

노안이 입 밖에 꺼내지 못한 말을 벨라가 앞장서서 물어봤다.

오슬란은 이제 자밀라를 꺾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신야 대장님은 그 첩자와 관계도 없고요. 신야 대장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열차 칸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했어요. 오슬란은 대장님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죠.

자밀라를 꺾지 못한다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 사고 이후로 공중 정원의 지상 거점은 오슬란과 협력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많은 귀족 어르신이 오슬란을 옹호하고 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오슬란을 멀리하기 시작했죠.

여러 가지 이유요?

소문으로는 오슬란이 사람을 보내, 말을 듣지 않는 귀족들을 암살하고, 과거의 수송 부대에 책임을 전가했다고 해요.

그래요? 전 애초에 수송 부대의 사람이 죽인 거라고 들었어요.

어쨌든 오슬란의 구질구질한 행동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어요.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은 진작에 오슬란을 멀리했고, 오슬란에게 꽉 잡혀있는 사람만 남아서 오슬란의 개를 자처하고 있죠.

오슬란은 지금 미친 듯이 이곳저곳의 사람을 마구 물고 있어요. 전에는 수리 부대를 모함할 계획까지 세웠었죠. %#&, 수리 부대까지 해치려 하다니! 그래서 소피아라는 여자아이만 살아남아 구조체로 개조됐어요.

망할 놈. 오슬란은 언젠가 고속 운행하는 오셀럼호에서 내던져질 거예요.

…………

어쨌든 그때보다는 좀 나아졌어요.

이전의 수송 부대가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오슬란이 무너지는 그날까지 버틸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됐을 거예요.

너무 많은 생명이 헛되게 죽었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길 하는 거야. 예전 수송 부대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슬란이 지금 이렇게 됐을 것 같아?

수송팀 멤버4

예전 수송 부대는 실패하지 않았나요?

실패하긴 했지. 하지만 실패를 했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

수송팀 멤버4

실패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당시 오슬란의 부하인 초병 수는 엄청나게 많았고, 초병들의 좋은 무기는 말할 필요도 없었지. 그 공 같은 군용 로봇은 구조체마저 상대하기 힘들 정도였어. 그런데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오슬란을 배신하겠어?

수송 부대와 일벌 부대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오슬란의 가면을 벗겨내지 않았더라면, 분명 오늘날과 같지 않았을 거야!

누군가가 칼로 네 등뼈를 겨누고 있는데,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

난 지금까지 너희들과 이런 걸 토론하기 싫었지만, 너의 말을 들으니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생존 공간이 있을 것 같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난 하층 칸의 아이일 뿐이었어. 그래서 수송팀에 가입하지도, 그들과 함께하지도 못했어. 하지만 직접 내 눈으로 그 피와 시체로 가득 찬 열차 칸을 본 적이 있어.

아직도 난 밤에 그날의 꿈을 꾸곤 해.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아!

너희들이 지금 싫어하는 오슬란과 반황실파들의 나쁜 짓은 지금에 비하면, 예전이 백 배는 더 가증스러웠었어! 오슬란의 초병은 심지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기도 했었지!

공중 정원의 지상 거점이 왜 오슬란과 협력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오슬란이 한 그 더러운 일들은 또 어떻게 폭로됐을까?

핵심 멤버가 준 증거가 있어서, 오슬란 주변의 세력이 조금씩 무너질 수 있었던 거야. 증거 단말기가 현장에서 파괴되는 바람에 심판이 몇 년 더 미뤄지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와야 할 것은 왔어. 하지만 자연스럽게 좋아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앞에서 시체로 길을 깔아놓은 거야!

그러니 넌 그들의 죽음이 헛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영웅이라고 불러야 해!

…………

이전 멤버는 얼마 남지도 않았어! 나머지는 죽었거나, 오슬란에게서 도망치고 있지. 심지어 어떤 사람은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 채, 누명을 벗지도 못하고 있다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잘 지낼 수가 없어!

수송팀 멤버2

네. 맞아요. 저번에 신야 대장님을 찾아갔었을 때, 대장님은 불도 켜지 않은 채, 니트 반쪽을 들고 있었어요.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었어요.

…………………………

오슬란이 열차에서 내던져지지 않고, 퍼니싱이 계속 우리의 생존 환경을 빼앗는 한, 이전 세대의 수송 부대와 일벌 부대가 우리에게 맡긴 무거운 짐은 내려놓을 수 없어.

승리까지는 아직 일러! 그리고 그 누구의 희생도 헛되지 않아!

수송팀 멤버4

죄송해요. 대장님.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화 좀 푸세요. 과거의 일을 젊은 사람이 알 리가 없죠.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됐어요.

며칠 전에 오슬란이 또 행운의 박스 짓거리로 멤버를 모집해서 어떤 승격자를 찾아가려 한다고 들었어요. 듣기로는 퍼니싱에 면역까지 된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너까지 아는 거지?

당신들의 말을 들은 거죠.

승격자라고요?

오슬란이 어디서 이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요즘 계속 이걸 선전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 이합체가 열차에 떨어졌을 때, 오슬란은 그 기회를 틈타 그 말들을 꺼냈었죠. 어떤 속셈인지 정말로 모르겠어요.

이합체요?

네. 이합체는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인데, 위험하기 짝이 없죠.

최근에는 어떤가요?

해결됐어. 공중 정원에서 사람을 보내 그것을 작살냈거든.

그나저나 그날 오슬란은 정말 광대 같았어요.

무슨 말이죠?

오슬란은 그 이합체와 승격자의 소문을 엮어서 수많은 계획을 세웠어요.

결국 소피아라는 구조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열차나 공중 정원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어요.

그다음은요?

다들 진심으로 소피아가 한 말이 옳다고 생각했죠! 소피아가 무슨 말을 하든, 오슬란의 말보다 더 믿을 만했거든요!

그 말을 듣자, 보육 구역의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또 남들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할지 너도 모르니, 함부로 말하지는 마.

하하, 전 오슬란이 굴복할 때가 있는 것에 기쁠 뿐이에요.

…………

그거 아나? 예전부터 전해져 오는 말 중에 "지록위마"라는 말이 있지.

…………

정확한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밤새 길을 재촉해, 열차가 074호 도시의 역에 정차하기 전에 그곳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열차에 있을 줄을 몰랐네. 그래도 잘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긴 해.

노숙자가 어딜 갈 수 있었겠어? 어머니는 베테 그 늙은 짐승도 피해야 했으니까, 오셀럼호에 갈 수밖에 없었던 거야.

구겨진 초상화를 쥔 벨라는 텅 빈 역을 보며,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예전에 너랑 레이첼이랑 다 나한테 수송팀에 가입하라고 권유했었지, 그때 내가 동의했다면 우리 어머니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한다고 해도 넌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 없잖아, 일단 열차에 올라탄 후, 어떻게 빨리 네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지나 생각해.

칫.

벨라는 초조해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무언의 기다림 속에서 열차가 들어온다는 신호등이 깜빡거릴 때까지 서 있었다.

가능한 한 빨리 네가 원하는 소식을 얻기를 기원할게.

내가 너 대신해서 다른 사람들 상황도 좀 물어봐 줄까?

열차는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 않아. 빈손으로 떠나고 싶지 않다면 우선 네 일부터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노안은 손을 흔들고, 역 밖으로 걸어갔다.

넌 어디로 가려는 거야?

슈렉

나가서 좀 걷고 싶어. 혹시 돌아온다면, 074호의 남쪽 3호 거점에서 봐.

…………

역을 떠난 노안은 빠르게 폐허를 지나, 숲의 아침 햇살과 옅은 안개 속으로 발을 디뎠다.

산들바람이 약간의 온기와 함께 불어왔다. 노안은 고개를 들고서야, 주변이 푸르러진 것을 알아차렸다.

노안은 펠드가 실종된 지 7년 만에 074호 도시로 돌아왔다.

수송팀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노안은 어디를 가든 펠드의 소식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임무로 인해 자꾸 지체됐고 074호 도시에 올 기회가 생겨도,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노안은 감방에서 레이첼이 남긴 자료를 보고, 어느 정도 "그런 가능성"을 예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레이첼이 남긴 경로를 따라, 수년 전 수송팀이 걸었던 길에 발을 내디뎠다.

노안이 이 길에 발을 들인 건 처음이 아니었다.

노안은 수송 임무의 수행을 시작한 첫해에 074호 도시로 돌아올 기회를 얻었다.

그날, 노안은 어두워진 틈을 타 펠드를 찾으려고 했지만, 레이첼에게 걸렸다.

네가 뭘 하고 싶은지는 알아, 하지만 내일 아침에 임무가 있어. 널 기다린다고 우리 일정이 늦어지면 안 돼.

먼저 가셔도 돼요.

여기서 침식체에게 갈기갈기 찢어지게 놔두라고? 벌써 단독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제가 그럴 수준은 안 되겠죠, 그래도 이 일만큼은 타협할 수 없어요.

사람들 곁에 있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에요. 밴크로프트 아저씨가 바로 좋은 사례죠.

다른 사람들이 밴크로프트 아저씨를 신경 써줬더라면, 아저씨도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고, 결국 행방불명되지도 않았을 거예요.

뭐라고?

제가 잘못 말했나요?

계속 그렇게 생각해 온 거야?

네. 펠드가 실종된 후로 계속 그렇게 생각해 왔어요.

…………

그날 밤 많은 사람이 널 도와서 새벽까지 펠트를 찾았어.

많다고요? 아니요. 전혀 많지 않았어요. 대부분은 냉담하게 무시하는 것을 선택했죠.

그날 기꺼이 나서준 사람들에게는 감사하지만, 전 더더욱 용서할 수 없었어요.

팍!!!

쩌렁쩌렁한 따귀 소리와 함께, 주먹이 소년을 향해 날아갔다. 노안은 연이어 뒷걸음치다가 결국 뒤편에 있던 나무에 부딪혔다.

네가 펠드를 찾으러 가게 내버려 둘 수는 있어.

그리고 널 수송 부대에서 떠나게 할 수도 있어. 네가 용서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우리를... 멀리하게 할 수는 있어.

하지만 펠드와 밴크로프트가 실종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잊지 마.

줄리가 왜 죽었는지도 잊지 마!

이런 문제의 본질을 놔두고도 희망이 없는 사람을 찾고 싶다는 건가?

펠드가 살아있다면, 펠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직접 위로하지 않아도 돼요. 만약 죽었다면, 그를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 펠드의 행방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렇다 해도 지금은 아니라고!

펠드를 찾으면 어쩔 건데? 펠드에게 사과하고 난처해하며 돌아올 거야?

…………

노안.

레이첼이랑 싸우지 말고, 날 따라와.

노안은 어느덧 숲의 깊은 곳에 이르렀다.

세나 대장님.

세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노안은 분명 자신의 응어리를 신경 쓰면서 살아갔을 것이다.

네가 그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마.

네?

사람마다 다 복잡한 부분이 있는 건데, 그런 상황에 또 모두에게 신체부터 영혼까지 고도로 조화를 이루도록 요구할 수는 없잖아?

우리끼리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존재하지, 그러면서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부분과 입장을 안고 타인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하기도 해.

하지만 난 네가 알았으면 해. 하층 칸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은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의 공통된 목표와 사람들을 버리고, 원래의 그 삐뚤어진 아이로 돌아간다면...

그건 펠드가 네게 남겨준 걸 버리는 것과 뭐가 다르니?

…………

힐 아주머니를 기억하니?

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남들과 싸우고 있을 때, 힐 아주머니는 두려워서 돕지 못했지, 그렇다고 아주머니가 널 적대시하는 걸까?

노안은 고개를 저었다.

우린 모두 평범한 사람이고, 완벽하지 않은 구석이 있어. 평범한 자의 완벽하지 않은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도 성장 요소의 한 가지 거든.

일치하는 점은 취하고, 차이점은 잠시 보류하라는 건가요?

좋아. 척하면 척이네.

세나 대장님.

레이첼 대장님을 믿나요?

…………

너 이 자식이... 이런 상황에서 하나를 보고 열을 아네?

제가 들은 게 있는데,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난 그녀의 믿을 만한 구석을 믿고 있어.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 수 있니?

레이첼 대장님과... 모두의 공동 소원을 믿는 건가요?

맞아. 상층 칸에 저항하려는 레이첼 대장님의 마음은 절대 거짓이 아니야. 난 대장님을 믿어, 하지만 대장님도 완벽하지 않은 부분이 있겠지.

네. 알겠어요.

세나는 노안에게 있어서 레이첼의 정반대되는 존재였다.

레이첼은 항상 상대방의 의심스러운 부분을 눈여겨보지만, 세나는 상대방의 믿을 구석에 눈길을 준다.

두 사람 곁에서 보낸 몇 년 동안, 노안은 이렇게 상반된 인격 특징 사이에서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정착하게 됐다.

이건 당신들이 내게 남겨준 보물이자...

내게 남겨준 아쉬움이야.

아무튼, 대장님의 이 아쉬움은 유통기한이 너무 길어요.

진작에 내려놓을 수는 없는 건가요?

염려하는 일이 있는 것도 나름 좋아. 사람은 때때로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나, 일에 끌려다녀야 무너지지 않아.

대장님도 그런 적이 있다는 것 같군요.

내가 있는지 없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설마 대장님...

어쨌든 전 이해가 안 돼요, 과거의 일에 끌려다니면서 잊지 못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최대한 빨리 내려놓을수록 편하잖아요.

과거의 경험도 없이 어떻게 미래의 방향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럼, 경험만 남겨두면 되잖아요.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는 거야. 경험이란 겪어보고 체험한 다음 정리해서 나오는 거잖아. 백신도 한 대 맞아야 효과를 아는 것처럼 말이야. 남의 가르침을 듣기만 한다면 무슨 감명을 받겠어?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걸 보라고.

인간의 삶에서 많은 상처와 아픔을 멀리하면, 같은 잘못은 또 반복되기 마련이야.

그러니까... 상처를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마.

이게 바로 네가 말했던... "부패한 풀 속에서 반딧불로 탄생한다 (腐草为萤)" 인 거야?

응. 새로운 생명은 야초 속에서 탄생할 거야. 하늘에 빛이 없다 하더라도, 야초를 태우는 화염은 하늘을 밝혀줄 거니까.

죽음과 신생은 나선식으로 뒤엉켜 있어.

죽음이 가져다주는 아쉬움을 받아들여야, 반딧불 미광의 인도를 손에 쥘 수 있어.

모두가 남긴 아쉬움, 뉘우침과 한탄, 혁신 그리고 미래...

난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 추억들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았어.

정오의 햇살이 차츰차츰 흐린 구름의 뒤로 물러나자, 비가 올 것 같은 기운이 몰려왔다.

노안이 바라본 황야의 끝자락에는 수많은 야초와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너... 여기에 있는 거니?

노안은 꽃밭으로 걸어들어가 과거의 흔적을 찾았다. 그러자 기억 속 정체된 시간도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1:01 a.m. / 1:37 p.m.

1:02 a.m.

야초가 산과 들판에 뒤덮여 있지 않았던 7년 전, 달빛 아래서 한 열의 수송차가 이곳에 들어섰다.

이곳은 거점에 가는 길이 아니잖아요?

그 길은 붕괴된 폐허로 막혀서 멀리 돌아갈 수밖에 없어.

알겠어요. 그럼, 제가 먼저 앞으로 갈게요.

그때, 수송차 화물 상자에 몸을 숨긴 펠드는 불안해하며, 지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

1:56 p.m.

노안은 흙 밑에서 부러진 백골을 찾았다. 하지만 이곳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이 땅 곳곳에서 죽음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 남아 야초의 자양분이 됐고, 야초는 다시 새나 짐승 혹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자양분이 됐다.

하지...

노안은 고목과 자갈 사이를 모색하며 힘없이 펠드의 이름을 불렀다.

1:21 a.m.

어슬렁거리던 침식체가 차량 행렬의 끝을 항해 돌진하자, 수송차 한 대가 전복됐다.

전체 차량 정지! 습격당한 차량을 보호하도록!

안 돼. 침식체가 너무 많아. 우선 철수해!

더 이상 화물을 잃어버릴 순 없어요!

젖은 흙 위에서 급제동한 밴크로프트는 부하 수송 대원을 데리고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화물을 파괴하고 있는 적을 향해 돌진했다.

어떻게 처리할까?

가서 그들을 도와줘.

쯧...

2:31 p.m.

청년은 아수라장이 된 땅 앞에 멈춰 섰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부러진 칼날, 먼지 속에 묻힌 탄피 그리고 수많은 침식체의 잔해 등과 같은 전투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노안은 알고 있었다. 계속 탐색하면, 작별의 순간이 올 거라는 걸.

이래도 정말 괜찮은 걸까?

청년은 자신의 마음에 되물었다.

그는 여태껏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친구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야 그것을 목표삼아 나아갈 수 있었다.

펠드가 정말 죽었다면, 모든 것을 잃은 노안은 어디로 가야 할까?

1:44 a.m.

20분 동안 계속된 전투가 한 세기처럼 길게 느껴졌다.

레이첼의 판단이 옳았다. 이곳에서 멈춰있으면 더 많은 차량이 습격당하게 될 것이었다.

총소리와 비명이 뒤섞인 가운데, 물건을 가득 실은 또 다른 수송차 한 대가 생체공학 로봇에 부딪혀 전복됐다.

화물 상자 안에서 새어 나온 비명은 혼란 속에서 하찮은 것 같았다.

이곳의 침식체를 떼어놓기 위해, 레이첼은 차량 행렬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모든 전투가 끝나고, 물건을 회수한 소대가 하나둘씩 복귀하기 시작할 때...

레이첼은 그제야 창백한 달빛을 빌려, 무거운 화물 더미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는 몸을 발견했다.

밴크로프트가 뒤따라오기 전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레이첼은 이 문제를 덮기 위해 잔인한 결정을 내렸다.

    3:16 a.m. / 3:16 p.m.

밤과 낮이 뒤바뀌는 시간이 이 순간에 하나가 됐다.

3:16 a.m.

펠드가 버려진 과수원에서 깨어났을 때, 펠드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아무도 없는 어둠과 방황하는 침식체뿐이었다.

펠드는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메아리만 들릴 뿐이었다. 탈출하고 싶었지만, 조금씩 자기 몸이 불완전해지는 것을 보게 됐다.

두 손에서 피 온도조차 느낄 수 없을 때, 펠드는 낮은 묘목 옆에 누웠다. 그리고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영원히 안녕... 노안.

짧디짧은 작별 인사 한마디와 함께 펠드의 시간은 영원히 멈춰졌다.

3:16 p.m.

청년은 과거의 아픈 흔적을 따라 나아갔다. 낮은 언덕을 넘자, 시들어 있는 과수원이 노안의 앞에 나타났다.

과수원의 나무 대부분은 시들어 버린 상태였고, 인위적으로 벌목한 것도 적지 않았다.

가장자리에만 흰 꽃이 드문드문 피어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을 뿐이었다.

흔들리는 꽃들 앞에서 노안은 천천히 자기 고글을 벗었다.

7년이란 시간은 한 사람의 흔적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고요한 황야의 나뭇가지에 천 조각이 걸려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고, 천 조각에는 펠드의 스카프와 비슷한 무늬가 있었다.

노안

…………

노안은 이곳에 남아있는 건 스카프뿐이고, 펠드는 어딘가에서 밝게 웃고 있을 거라고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 꿈은 이미 끝에 달했고, 노안은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노안

배꽃이라...

세상을 떠난 생명은 부패를 통해 새 생명을 얻고, 어떤 한이 있더라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넓은 세상에 되돌아간다.

노안

이 나무가 살아있는 건, 네 덕분인 건가?

지금의 오셀럼호는 억압에서 벗어나고 있어...

너에게도 좋은 소식일까?

노안은 고요한 땅에 질문을 던졌지만 땅은 묵묵부답이었다.

노안

난 지금... 널 찾은 걸까?

산들바람이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스치자, 꽃잎 몇 잎이 노안의 손으로 떨어졌다.

허황한 바람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노안은 배꽃의 꽃잎을 그의 대답으로 삼아 조심스럽게 손에 쥐었다.

노안

오랜만이야. 하지.

난 드디어 현실을 마주하고, 너와 작별할 용기가 생겼어.

청년은 오랜만에 웃음을 지으며 하얀 꽃잎을 바라보며, 간신히 입꼬리를 올렸다.

노안

고마워... 정말 고마워.

마음속에 있던 한을 푸려는 듯, 청년은 이 한마디를 끊임없이 묵념했다.

펠드를 만나지 않았다면, 노안은 아직도 레이첼의 곁에서 자신을 마음속에 가둬둔 채, 살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주위의 냉담함을 미워하면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것이다.

펠드는 그런 노안에게 온화한 변화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그 변화로 인해 펠드와 완전히 이별하게 됐다.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펠드의 몸은 흙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생명이 됐다.

하지만, 영혼은 여전히 오랜 친구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었다.

노안

네가 남겨준 추억과 반딧불이는 내가 긴 밤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지금까지도 날 인도해 주고 있어.

죽음이 존재했던 의미를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는 걸 드디어 깨달았어.

너희들은 다른 방식으로 이곳에 남아,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 설원을 녹이는 불, 미래를 향하는 열차 그리고 내가 아직 살아 있는 원인과 이유가 됐어.

고마워. 하지.

노안은 다시 한번 황야와 배꽃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노안

그리고...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