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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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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2-16 불타버린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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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 a.m.

하층 칸에서 소동이 일어난 것을 안 노안은 통풍 파이프를 통해 건너갔다. 30여 명의 상층 초병들이 평민 칸으로 들이닥쳐 가뜩이나 붐비는 통로를 단단히 에워쌌다. 그러자 많은 사람의 원성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인 거지.)

통풍 파이프를 따라, 초병이 가장 많이 모인 곳으로 간 노안은 바닥에 피로 물든 자국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봤다. 그리고 곧이어 아사의 옷이 피로 얼룩진 것을 봤다.

…………!

아사의 부러진 뼈가 근육과 피부를 뚫고, 반쯤 응고된 피와 함께 공기 중에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머리 상태도 온전해 보이진 않았고, 이빨이 없는 입이 죽기 전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사는 밧줄에 휘감겨, 몸 전체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변의 초병들은 아사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리기 위해, 이 참혹한 광경을 일부러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계속 입 다물고 있어도 돼. 다음은 수송팀의 다른 핵심 멤버들을 궤도에 매달은 모습을 네 앞에서 보여줄게.

그걸 보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물건이 있는 곳을 불어.

…………

레이첼, 이번엔 예전처럼 우리끼리 의논하고 처벌만 하면 끝나는 사소한 소란이 아냐.

이건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거야. 네가 계속 침묵하고 있으면 충돌만 더욱 심해지게 될 뿐이야. 위에선 오늘 내로 밝혀내지 않으면, 우리도 죽일 거라고 했단 말이야.

충돌이 심해진다고? 상층의 귀족 어르신들은 사람을 급사시키거나, 자살로 몰아넣거나, 상처를 입히고 죽였을 땐 충돌이 더 심해질 거라는 생각은 왜 못 하는 거지?

그럼, 네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해결될 거 같아?

우리도 널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모두" 윗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뿐이잖아. 왜 이렇게 상황을 안 좋게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물건을 내놔. 그러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 거야.

레이첼은 비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통풍 파이프의 입구를 곁눈질로 봤다.

…………

노안은 알고 있다. 레이첼은 지금 자신이 "위치 신호"를 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

하지만 통풍 파이프의 어둠에 기댄 노안은 어떤 소리도 내선 안 됐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난 가끔 네가 반딧불이를 어깨에 놓고 다녔으면 좋겠어.

노안은 조심스레 품 안에서 태엽 반딧불이를 꺼냈다. 그리고 꽁무니에 달린 작은 전구를 밝히고는 통풍 파이프의 출구 위치에서 살살 흔들었다.

…………

대체 누구를 기다리길래, 이렇게 꾸물거리는 거지?

…………

네가 파견한 두 소대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내가 알려줄게. 그들은 이미 죽었어.

초병은 자신의 단말기를 꺼내, 레이첼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이 겁쟁이 덕분에 오늘 윗분들은 일석이조가 됐어.

초병은 웃으면서 아사의 시체를 발로 찼다.

알았어. 함께 갈게.

레이첼 대장님! 안 돼요.

신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초병이 쏜 총알이 신야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신야의 뒤에 있던 청년이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고함과 항의하는 목소리를 냈다.

(지금 움직여야 해!)

너희들이 이렇게 뭉쳐있는 상태에서 수류탄을 던지면 몇 명이 죽을까?

***! 당신들이 그러고도 사람인가요!?

됐어! 신야! 이곳엔 무방비인 사람이 너무 많아! 모두를 죽일 셈이야!!

대장님! 어떻게 저희가 당신을...

총소리가 다시 한번 그들의 말을 끊었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타, 노안은 열차 칸 지붕에 있는 전등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던졌다. 어둠과 수많은 유리 조각이 순식간에 사람들 속으로 떨어졌다.

경보를 울려!

공격해!

신호를 받은 수송 부대의 멤버들은 망설이지 않고 재빠르게 옆에 있는 초병에게 달려들었다.

어둠과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노안은 통풍 파이프에서 재빨리 뛰어내렸다. 그런 뒤 손에 든 에너지 검으로 수류탄의 안전핀을 제거하려는 초병을 찔렀다. 그리고 초병이 손에 쥔 장검을 빼앗아, 옆에 있는 동료에게 던졌다.

잘 했어!

초병들은 어느 정도의 충돌은 발생할 거라고 대비했었지만, 하층 칸의 저항이 이렇게 셀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상층 초병1

어서 그를 잡아! 윽!

신야는 아직 쓰러지지 않은 초병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상대가 휘두르는 무기를 튕겨낸 신야는 어둠 속에서 몸을 숙인 뒤, 방어가 약한 목을 칼로 찔렀다. 입에서 솟구치는 선혈이 초병의 말을 틀어막았다.

다음 순간, 사람들의 고함과 폭발음이 뒤섞이면서 모든 이들의 귀가 먹먹해졌다.

비상등이 다시 열차 칸에서 켜졌을 때, 30여 명의 초병과 무고한 평민들이 피를 뒤집어쓴 채 소리 없는 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존의 두근거림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초병을 죽였으니, 이제 우린 돌아갈 길이 없어.

잘됐네요. 저도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거든요.

지금 바로 전투를 시작하시죠. 계속 미뤄지다 보면 더 많은 초병이 몰려올 거예요!

대장님, 명령을 내려주세요.

알았어!

레이첼은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 위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하층 칸의 경보기를 주먹으로 내리친 뒤, 수송 부대 대장의 신분 카드를 경보기에 꽂아 귀에 거슬리는 경보 소리를 강제로 멈추게 했다.

수송팀에 가입하면서 한 그날의 선서를 기억하나?

많은 사람이 침묵하는 가운데, 레이첼은 적의 피가 묻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람들을 억압에서 해방하고, 모든 희생자의 명복을 빌어주겠어요.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겠어요!

지금이 그걸 지켜야 할 때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상층 귀족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이상, 하층 칸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만장일치로 모든 병력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간 동안, 참전을 원한 사람들은 G 열차 칸의 근처로 빠르게 모여, 보관돼 있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원치 않거나 역부족인 평민들은 계속해서 후방으로 이동했다.

양측은 오셀럼호의 중간보다 뒤에 있는 열차 칸에서 충돌하게 되면서, 교전을 펼쳤다.

처음엔 상층 초병이 정교한 장비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하층 평민들은 레이첼과 다른 핵심 멤버들의 인솔하에 우회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열차 곳곳에서 밀고 나갈 때, 적의 매복에 잇따라 당하면서 연락이 끊긴 소대가 8개 소대를 초과했습니다.

젠장, 도대체 그 쥐 같은 놈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지! 어서 그놈들을 찾아내!

그들은 자신들의 열차 칸에 대한 익숙함을 이용해 통풍 파이프, 지붕, 각종 엄폐물로 뒤에서 기습했다. 열차의 전기회로와 조명을 계속 차단하며, 눈에 띄지 않는 "함정"을 닥치는 대로 만들어 냈다.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못, 깨지기 쉬운 유리 상자, 땅에 널브러진 전선 심지어 구석에 버려진 우산 뼈로 만들어진 매우 조잡한 함정이었다.

볼품은 없었어도, 난전 속에서 이 잡동사니들은 많은 사람에게 유리한 도구가 돼줬다.

노안은 초병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상층 칸으로 후퇴해서 교전하라고 외치는 것을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초병들은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상층 귀족들이 위험을 감수할 리 없지.

이곳을 지키기로 하자, 초병들은 빠르게 재무장을 한 후, 한 번 더 공격해 왔다.

중화기에 밀려, 우회 전술의 효과도 약해졌다.

절망한 사람들은 초병들의 뚫을 수 없는 억압을 무너뜨리기 위해 더 큰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우리가 몇 년 동안 인내해 온 것은 이 순간을 위해서다! 우리가 여기서 쓰러진다면,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나?!

해치워 버리자!

수송팀이 상층 칸의 초병을 지금까지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좁은 열차 칸에 설치한 진지의 방어선과 적절한 인원 배치 때문에, 무장과 병력의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출격을 시도하자 모든 이점이 사라지게 됐다.

노안의 옆에 있던 수송 대원이 무기를 들고,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갔다. 하지만, 한쪽에 쓰러진 누더기 의자 사이에 번쩍이는 붉은 빛을 알아채지 못했다.

조심해요!!

하층 칸에서 생활하며, 온갖 괴롭힘을 당했던 모든 사람은 이날을 꿈꿔왔다.

사람들은 포화가 교차하는 굉음이 지나가기만 한다면, 많은 이에게 진정한 평화와 공정 그리고 자유가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상층 칸 초병을 압도하는 인원수를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전투에 휘말린 사람들은 생명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연기와 어둑어둑한 어둠이 하층 칸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혼잡한 폭발 소리와 비명이 들려왔다.

정교하게 무장한 상층 초병들은 분노한 사람들에 의해 해산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초병들의 정교한 장비 때문에 끊임없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순간, 오셀럼호에 실린 모든 생명은 귀천을 막론하고,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절망의 비명을 지르고 포효했다. 그리고 불빛과 함께 흔들리며 무너졌다.

노안은 살짝 열린 열차의 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통해, 끊임없이 솟구치는 혈액을 봤다.

진홍빛의 액체, 파편, 잡동사니 그리고 인간의 신체 조직이 뒤섞여, 좁은 통로에 흩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아직 푹신푹신하고 따뜻한 신체로 가득했고,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문을 폭파해 수많은 신체와 피가 질주하는 열차 밖으로 나가게 하면서 터널 벽에 긴 핏자국을 남겼다.

수많은 삶과 꿈, 갈등과 편견, 억압과 원한이 죽음과 함께 흘러 내려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떠들썩했던 열차도, 연이은 폭발과 함께 잠잠해졌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수송팀의 생존자는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최전선에서는 아무런 외침도 들리지 않았고, 총성만 계속 울려 퍼졌다.

그들 곁에는 수천 명의 시체가 피와 함께 침묵을 지키며, 최종 전투 결과를 선언하고 있었다.

최후의 적 몇 명만 제거하면, 남은 사람들은 연결 칸을 넘어, 상층 칸으로 돌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송팀이 참혹한 승리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 연결 칸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거대한 구형 로봇 한 개가 굉음과 함께 바닥의 시체를 밟으며,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향해 붉은 레이저를 발사했다.

다음 순간, 이미 조명 시스템이 손상된 열차는 터널에 들어섰다.

7초의 짧은 어둠이 걷히자, 9명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의 시야에 들어왔다.

젠장! 막아낼 수 없으니까 이런 것에 의지하네!

신야는 달려가면서, 초병의 시체 곁에 있는 기관단총을 주웠다. 그리고 몸을 돌려 로봇을 겨눈 뒤, 난사했다. 하지만 총알들은 모두 금속 외피에 튕겨 나갔고, 어떤 손상도 입히지 못했다.

이런! 엄청 단단하네!

그럼, 좀 비켜봐!

세나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알 수 없는 유탄 발사기를 들고 신야의 곁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신야가 안전 지역으로 후퇴하기도 전에, 개선형 대장갑 유탄이 청회색 포연을 뚫고, 그 거대한 물체를 들이받았다.

해치웠나요?

아마 죽었을 거야.

불빛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기괴한 기척이 전방에서 다시 들려왔다.

죽지 않았어!

세나 씨,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난 한 발밖에 없었어!

그럼 어떡해? 뒤에는 아직 초병이 있다고! 레이첼 대장님은??

대장님은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계세요. 우린 로봇 때문에 분리된 거예요.

우선 후퇴해요! 열차 칸 조인트에 있는 중형 방화문을 이용해, 재정비할 시간을 벌도록 하시죠.

그래. 지금은 후퇴할 수밖에 없겠어!

가는 길에 쓸만한 거 주워야 하니 잊지 마!

핵심 멤버 3명의 명령에 따라 여러 엄폐물 뒤에 숨어있던 수송 대원들은 서로를 엄호하며, 빠르게 하층 칸으로 철수했다. 하지만 전멸에 가까운 상층 초병들은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구형 로봇 뒤에 숨어서 계속해서 공격했다.

저 초병들 좀 봐!

마이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보니, 수많은 초병이 구형 로봇의 엄호 아래, 지붕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거지?

우리와의 교전을 피해서 뒤를 치려는 걸까요? 잠시만요!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민들이잖아요!

초병들은 계속 평민들로 위협해 왔어요! 어떡하죠? 지붕에 올라가서 싸울까요?

안돼. 수가 너무 많아. 귀족 어르신들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레이첼 대장님께서 집계한 인원수로 봤을 때, 오슬란의 밀착 호위병일 가능성이 높아요.

세나, 노안, 많은 호위병이 우리를 피해 지나갔어!

저도 봤어요. 이제 어떡할까요?

뒤로 후퇴해! 오셀럼호는 지금 204터널 앞쪽에 있어서, 높이가 부족해. 초병들이 지붕에 올라간다 해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을 거야.

15분 후면 204터널을 통과할 테니, 모두 G 열차 칸의 뒤쪽으로 철수해! 방어를 빈틈없이 해!

G 열차 칸이요?! 뭘 하시려는 거죠?!

폭발시킬 거야!

9:01 a.m.

겨울 하늘이 먹구름 속에서 희미한 빛을 뿜어내자마자, 주변에 큰 눈이 흩날렸다.

질주하던 열차가 204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G 열차 칸에서는 격한 폭발음을 내다가 중간에서 끊어졌다.

상층 칸은 관성에 따라, 앞으로 운행하다가 5km 떨어진 궤도에 멈춰 섰다.

폭발로 하층 칸은 크게 흔들렸고, 폭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저장 칸도 전복됐다. 하지만 다행히 사람들이 미리 준비를 해놔서 뒤편의 평민 칸은 대부분 무사했다.

신호 접수 완료. 앞쪽도 멈췄어요.

의외도 아니지. 뒤편에 있는 열차 칸을 이렇게나 많이 잃어버렸잖아. 귀족들 눈에는 이게 다 돈이니까.

거대한 군용 로봇은 아직 따라오나?

현재까진 아직이에요.

싸울 수 있는 대부분 멤버는 모두 레이첼을 따라 선두에 남았다. 이제 세나, 신야, 노안, 지미라는 이름의 수송 대원 그리고 일벌 대원인 마이크만이 남게 됐다.

다들 먼저 열차 칸을 떠나라고 해. 양쪽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쫓아온다면, 공든 탑이 무너져 버릴 거야.

밖에 나가면 안전할까? 초병도 활발하게 행동할 텐데.

무슨 소리지?!

먼 하늘에서 수송 부대의 멤버들에게는 절대 낯설지 않은 소음이 들려왔다.

헬리콥터?!

바로 다음 순간, 격렬한 불빛이 파손된 열차 칸을 연달아 집어삼켰다.

저 미치광이들! 어디까지 하는 거야?

우선 엄폐물을 찾으세요!

총알은 폭발의 연기를 뚫고 사람들을 향해 발사됐다. 그리고 불꽃과 함께 열차 칸의 벽과 바닥에 탄흔을 남겼다.

윽!

뒤에 있던 지미는 피할 겨를도 없이, 왼쪽 어깨에 총 한 발을 맞았다.

노안은 지미를 일으켜 세우려고 손을 뻗었지만, 뒤에 있던 마이크에게 등판이 잡혀 엄폐물로 끌려갔다.

지미!

노안은 뛰쳐나가려다, 세나에 의해 다시 마이크의 뒤로 끌려왔다. 노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뜨고 마이크를 바라봤지만, 마이크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고, 노안의 호흡이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포기해. 지금 나가면 너도 죽을 뿐이야.

총에 맞은 지미는 고통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집중적으로 아무렇게나 발사된 총알이 지미의 곁을 스쳤지만, 지미의 몸에 명중하지는 않았다.

지미는 엄폐물이 있는 방향으로 기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미가 조금만이라도 움직이면, 총알이 지미의 몸을 명중하였다. 강렬한 불빛의 반대편에서 건방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초병들은 빈사 상태에 빠진 지미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젠장!! 저것들 죽여버릴 거야!!!

멍청아! 아직도 모르겠어? 이게 바로 저 놈들의 목적인 거야!

지미의 목숨을 살려둔 건, 엄폐물 뒤에 있는 사람을 끌어낸 후, 직접 사살하기 위한 것뿐이었다.

아파요. 너무 아파요.

나이로는 아직 소년일 뿐인 지미는 총상의 통증에 몸을 떨었다. 떨림과 함께 쏟아지는 눈물은 피 얼룩을 씻어내어, 여린 얼굴을 드러나게 했다.

그런데도 지미는 엄청난 고통을 참으며, 총알이 빗발치는 사이에서 몸을 일으킨 뒤, 흐느끼며 전방을 향해 권총을 들었다. 온몸이 진흙투성이였음에도, 지미는 무릎을 꿇지 않았고, 오히려 웅장하고 눈 부신 불빛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으아아아악, 네놈들, 이놈들아.

하지만 총알이 빗발치는 바람에 목숨에 위협을 느낀 상층 초병들은 지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지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쯧" 하는 혀를 차는 소리가 난 후, 총알 몇 발이 지미의 가슴을 관통했고, 목이 쉰 외침을 멈추게 했다. 바닥에 쓰러진 지미의 시체는 여전히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눈물과 피로 인해 맑았던 눈이 흐려졌다.

비열한 놈들, 이 쓰레기들 같으니!

이제 우린 어떡하죠. 정면으로는 절대 승산이 없어요.

우리가 이곳에 남아도 죽을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야. 차라리 그들과 맞서자!

아직은 맞설 때가 안 됐어. 저길 봐.

세나는 G 열차 칸이 끊어진 곳을 가리켰다. 상층 초병들이 있는 자리 바로 옆에는 열차 칸 갑문의 공기 압력 장치가 있었다. 그건 오셀럼이 과거에 헬륨-3 융합 에너지를 사용하기 전, 비상시 열차 칸의 문을 여는 장치로 사용했었다.

저 안에는 대량의 압축 고열 가스가 들어있어. 예전에 수리 부대 한 녀석에게 배운 적이 있는데, 가스가 새어 나오게 할 수만 있다면, 한동안 저 녀석들은 정신이 없을 거야.

그때, 우리는 기회를 틈타, 흩어져서 숨어있다가, 매복 공격을 하자. 혹시 우리 수류탄 같은 폭발물이 아직 있어?

있었다면, 진작에 썼을 거예요!

그러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 저걸 파괴할 방법이 없다고!

난 저것을 열 줄 알아. 접근할 수만 있다면, 드라이버 하나로도 충분해.

신야는 세나를 보며, 몇 초 동안 침묵하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안 돼.

동시 사격으로 날 5초, 아니 3초만 엄호해 주면 충분해. 나 혼자 엄폐물에서 저쪽 길까지 달려갈 수 있어.

안 된다고! 네가 이러는 건 자살이랑 다를 바 없어. 너도 방금 나한테 뭐라고 했잖아!

그거랑은 다르지. 지금은 이 방법이 유일한 살길이고, 전에 레이첼 대장님이 말한 것처럼, 논쟁이 있으면 내 말을 들어야 해.

이런! 기억 안 난다고!

연이은 사격이 다시 이어졌고, 여러 발의 총알이 엄폐물 가장자리를 스치면서 귀를 찌르는 충격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큰일이에요. 초병들이 포위해 오고 있어요.

망설일 시간이 없어. 내가 3을 셀 테니, 동시 사격으로 적어도 3초 동안은 계속 화력 엄호를 해줘! 상대 진형이 흐트러진 후에는 각자 흩어져야 해. 이해했지?

정말로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요?

모두가 침묵했고, 오직 노안만이 그들을 대신해 이 질문을 던졌다.

맞아. 다른 방법이 없어.

무서워하지 마.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잖아. 우리가 보호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한, 내 선택은 정확해.

신야, 지난주에 네가 말한 그 일은 동의할게. 앞으로 같이 살아보자.

뭐라고?! 왜 지금 그걸 이야기하는 거야?!

맞아. 이미 늦었지.

신야는 무슨 말을 더하려고 했지만, 세나의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됐다. 마치 세나의 남은 생명을 의미하는 카운트다운 같았다.

——3!

이 짧은 3초가 지나면, 세나의 목숨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사신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라는 걸 세나는 잘 알고 있었다.

——2!

신야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욕을 했고, 손에 든 소총은 이미 발사 준비 위치에 놓여 있었다.

——1!

세나는 시도 때도 없이 다음 순간에 자신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했다. 동료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도 익숙했기에, 자신은 예전부터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마지막 1초에 세나는 참지 못한 채, 아쉽다는 눈빛을 자신의 전우들에게 보냈고, 그건 세나가 자신에게 허락한 최후의 연약함이었다.

사격!

엄폐물 뒤에서 수송 부대의 포효와 총성이 들려오자, 서서히 포위하고 있던 초병들은 적의 화력을 알 수가 없어서 순식간에 각자의 엄폐물에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날아다니는 총알을 피했다.

눈치가 빠른 초병은 엄폐물 뒤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을 봤지만, 화력 제압 때문에 조준할 수 있는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사격을 멈추지 마!

이것이 지금 그들이 세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눈물 대신 포효와 총알을 쏟아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슬픔에 억눌리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짧은 3초가 지난 후, 수송 부대의 탄약은 이미 초병들의 집중 사격에 대응하기 부족해졌다. 불빛이 꺼진 순간, 상층 초병의 무기가 포효하고 현장을 장악하면서 반대로 수송 대원 몇 명을 엄폐물 뒤에서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곧 초병이 비명을 질렀다. 뜨거운 가스가 문 쪽에서 분출되면서 초병들의 진형을 크게 흐트러뜨렸다.

야! 그 여자야! 죽여버려!

짧은 총소리와 함께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세나의 목숨은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어졌다. 끊임없이 분출됐던 뜨거운 기류도 폭발물에 의해 날려지면서, 더 이상 상층 초병들을 위협하지 않게 됐다.

각자 흩어져!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셋은 엄폐물 밖으로 뛰쳐나와, 복잡한 열차 칸 내부의 통풍 파이프와 장치 시설 속으로 각각 흩어졌다.

남은 이들은 화력과 병력이 거의 열 배나 되는 적에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이야말로 상층 초병보다 이곳이 가장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먼저 어디서 발사된 건지 모를 총알이 머리 위에 높이 걸려있는 전등을 깨트렸다. 열차 칸 안은 다시 어두워져, 초병들의 수색을 더 어렵게 했다. 그리고 열차가 끊어진 곳에 서 있던 초병들은 열차 내부로 쏟아지는 햇빛으로 인해서 살아있는 표적이 됐다.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그러자 적의 흔적을 쫓기 위해 몸을 내밀던 초병의 머리가 단발에 관통당했다. 어떤 초병은 분명히 엄폐물 속에 숨었지만,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총알에 관통당하고 말았다.

끊임없이 병력이 감소하자, 상층 초병들은 인내심을 잃고,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엄폐물을 향해 중화력 무기로 소탕하기 시작했다. 맹렬한 폭발이 연이어지자, 수송 부대의 총성은 멈추게 됐다.

3명의 소대로 나눠서 진격해! 반드시 그들을 찾아내야 해!

초병들은 조심스럽게 전방을 향해 탐색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등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러자 여러 소대가 곧 전멸했고, 상층 초병들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이 개똥 같은 놈들, 고통의 맛을 보여주마!

적의 가슴에 박힌 단검을 뽑아 든 노안은 신야가 열차 칸 구석으로 몰래 다가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신야 씨! 뭘 하려는 거예요?

방금 초병들이 일으킨 폭발로 인해, 불길이 계속 번지고 있었다. 공기압력 장치 근처는 이미 불바다가 돼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될 것이었다.

적어도 시신은 되찾아야지. 그들을 이런 곳에 머물게 할 수는 없어. 난 세나를 맡을 테니, 너희들은 지미를 맡도록 해.

말릴 틈도 없이, 신야는 허리를 굽히고는 초병의 눈앞에 있던 엄폐물에서 벗어나, 재빨리 열차 칸의 구석으로 달려갔다.

신야는 세나의 곁에 도착했다. 시체를 보기 전까지, 신야는 순간 세나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천진난만한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세나의 시신을 안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발밑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잡동사니 속에 숨겨져 있던 대형 덫이 신야의 왼발을 세게 물었다.

오랜 훈련으로 다져진 신야는 왼발이 산산조각 날 정도로 아팠음에도, 이를 꽉 깨물고는 조금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장치가 작동된 소리는 매우 집중하고 있는 상층 초병에게 신야의 위치를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폭우 같은 총알이 신야가 있는 곳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야는 곧바로 엄폐물에 숨었지만, 복부에 총알을 두 발을 맞았다.

이곳의 모든 함정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던 신야는 그런 저급한 실수를 저지를 수는 없었다. 유일한 가능성은 상층 초병들이 일부러 이 함정을 옮겨서 시신을 수습하려는 사람을 잡으려고 한 것밖에는 없었다.

**! 비열한 놈들!

노안과 마이크는 지미의 시신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지만, 신야는 초병들에게 타겟이 된 상태였다.

신야 대장님이 부상을 입은 것 같아. 신야 대장님을 구해와야 하는데, 적이 너무 많아! 가능해? 레이첼 대장님의 후계자.

손목을 푼 노안은 단검과 에너지 검을 손에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크의 총성을 신호로 노안은 열차 칸 안의 복잡한 지형 속에서 신야와 가장 가까운 초병 소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손에 쥔 칼이 신야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초병 몇 명을 관통했다.

쓰러진 초병 옆에 있던 동료가 몸을 돌려 노안을 조준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안의 다른 손에 쥐어진 단검에 의해 손목이 잘려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며, 사격을 시작한 3번째 초병은 마이크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 틈을 타, 노안은 슬라이딩해서 신야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번지는 불과 빗발치는 적의 총알 속에서 신야를 힘껏 끌어냈다. 하지만 세나의 시신은 그곳에 남게 됐고, 무자비한 화염에 잠식되는 모습을 노안과 신야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안전한 엄폐물에 숨었지만, 위치가 드러나게 됐다. 그리고 세 사람은 다시 적의 화력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돼버렸다.

망할!!! 모든 게, 다 내 탓이야! 세나를 찾지 못하고, 너희들마저...

하고 싶은 말은 이곳을 떠난 다음에 하시죠.

바로 그때, 신야가 지니고 있던 단말기에서 통신 요청음이 울렸다. 그 알림음에 세 사람은 정신을 차렸고, 노안은 신야를 일으켜 세웠다. 마이크는 남은 탄약으로 계속 대응 사격을 하며, 남은 초병들의 접근을 막았다.

여기는 신야. 우린 현재 G 열차 칸 뒷부분에 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지미와 세나까지 희생됐다. 그쪽은 어떤가?

그렇군요. 이쪽도 남은 인원이 얼마 없어요. 그래서 지원을 요청하려고 했어요.

위란의 목소리는 매우 불안정했으며,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됐어? 레이첼 대장님은??

상대방은 한참을 침묵한 뒤에야 대답했다.

레이첼 대장님과는 흩어진 상황이고, 연락을 해봤지만, 응답이 없어요.

신야는 계속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통신에서는 더 이상 응답이 없었고, 산발적인 총성도 들리지 않았다.

상대편에 거대한 군용 로봇이 있어서, 애초에 승산이 없었어요.

이번 혁명은... 실패했을 가능성이 커요.

그럴 리 없어.

위란 쪽은 이미 패배했고, 우리도 졌어요!

초병들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으니, 제 생각에는...

신야를 안고 있던 노안은 갑자기 손바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피가 노안의 복부와 팔을 적시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신야 씨!? 피를 많이 흘렸어요! 바로 지혈을 할게요.

노안은 신야의 상처를 강하게 압박했지만, 출혈을 막지 못했다. 노안은 신야의 생명이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흘러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안돼.

하지만 신야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통신 단말기를 끌어안고 있었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만약 이것이 우리가 오랫동안 노력하고 기대해 온 결과라면, 이보다 처참할 순 없겠어.

과다출혈로 인한 기절은 신야의 의식이 침몰하게 했다. 이대로 놔둔다면 신야를 기다리는 건 쇼크로 인한 죽음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층 초병들은 숨 돌림 틈조차 주지 않았다. 총격전 중에서 초병은 열차 칸 내 작동하는 안내방송 확성기에 연결한 뒤, 완강히 저항하는 두 사람에게 항복하라고 외쳤다.

숨어있는 폭도는 지금 즉시 나와라! 나오지 않는다면...

갑자기 안내방송에서 한 아이의 비명과 부모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폭도들을 지지하는 협력자들에게 형을 집행할 것이다. 알겠나?

저들이 어떻게 협력자야! 사람을 납치해 놓고도 저렇게 당당하다니?!

사람들을 전투에 휘말려 들게 해서는 안 돼요.

하지만 우리 둘밖에 남지 않았어요! 자신을 보호하면서 모든 사람을 구할 방법은 없어요!

아직 최후의 방법이 1가지 남았어요.

위장 투항인가요?

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폐물 뒤에서 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린 뒤,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사격 중지!

초병들은 사격을 멈췄지만, 총구는 계속해서 엄폐물이 있는 곳을 필사적으로 조준하고 있었다. 수송 부대의 녀석들이 얼마나 완강하고 교활한지, 초병들은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었다.

노안과 마이크는 엄폐물 뒤에서 손을 높게 들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신야는 마이크가 등에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함께 엄폐물 뒤에서 걸어 나왔다. 적의 시선에 완전히 노출돼 있다는 감각은 사람을 매우 불안하게 했다.

아주 잘했어. 그렇게 그 동작을 유지하고, 천천히 걸어와라. 허튼짓할 생각은 하지 마.

초병은 권총으로 옆에 꿇어앉은 아이의 얼굴을 툭툭 쳤다. 불쌍한 아이는 놀라서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노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종아리에 숨겨뒀던 마지막 한 자루의 호신용 비수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노안이 납치된 사람들에게 다가가자, 다시 한번 힐을 보게 됐다. 힐은 어릴 때부터 노안을 잘 보살펴 줬지만, 겁이 많고 나약했던 여인이었다.

…………

레이첼은 종종 그런 말을 했다. "모두에게 다 악당과 맞설 수 있는 능력이나 용기가 있는 게 아니야"

"많은 사람은 나서기를 두려워하지만, 그렇다고 악당의 그런 행동을 찬성하는 건 아니거든"

열차의 하층 칸에서도 이 생각에 찬성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늘 전투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희귀한 자원을 낭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힐 또한 이동하는 우리에서 계속 자신의 힘을 보태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얼마나 많은 아이가 힐의 보살핌을 받았고, 얼마나 많은 찢어진 옷을 힐이 수선해 주었는가?

이 모든 것을 봤기 때문에, 노안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노안이 보호하려는 사람들은 아직 평안하게 곁에 있었다. 두 눈에서 끝없는 공포가 흘러나온다고 하더라도, 노안은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한 힘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만 할 뿐이었다.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해.

노인의 눈물이 주름진 얼굴을 적셨다.

왜 난 이리 못났을까... 왜 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널 지켜주지 못했을까?

힐 아주머니, 슬퍼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노안은 힐에게 미소를 지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초병의 감시 아래, 초병들을 향해서 천천히 움직였다.

줄리가 끌려가기 전에 바바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보고도... 난 줄리에게 알려줄 엄두도 내지 못했어. 너에게는 더더욱 입을 열 수가 없었어.

힐은 초병의 뒤에 서서 흐느껴 울었다.

……?

난 그렇게... 줄리가 그걸 먹고 죽어가는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힐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러다...

노안과 마이크가 초병에게 접근하기 직전...

총소리와 폭발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노안

힐... 아주머니?

힐이 언제부터 이 수류탄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언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노안은 알 수 없었다.

미안하구나. 내가 겁이 많아서, 너희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고도 나서질 못했어.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해.

…………

모두에게 다 악당과 맞설 수 있는 능력이나 용기가 있는 게 아니다... 노안은 이 말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람은 정말 그런 것뿐일까?

소년은 성장하면서 가라앉게 되고, 노인은 가라앉으며 변화한다.

꺼지려는 화염이라도 이렇게 자신을 불태울 용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