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는 3시간 동안 계속됐지만, 흩어져 있는 침식체나 이합 생물이 09호 의료 구역으로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다.
방어 시설도 어느 정도 손상을 입었고, 침식체의 잔해가 길목에 가득 쌓여 있었다. 그래서 가뜩이나 낙관적이지 못했던 퍼니싱 농도를 한 층 더 끌어올렸다.
가장 절망적인 문제는 의료 구역 밖의 가로수길에 큰 균열이 생겨서 그 틈으로 적조가 쏟아져 나와, 사람들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뭔가 이상해. 저것들 이합 생물처럼 사방에서 덮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지를 알고 있는 거 같아.
의료 구역 안은 어때?
부상자가 많아서, 상황이 안 좋아요. 퍼니싱 농도가 높아지게 되면, 여과탑에도 과부하가 걸릴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의료 구역에 남아있는 것이 안전해요.
어서 빨리 모두를 데리고 철수하거나, 지원을 불러서 이곳의 방어를 강화하도록 하시죠.
안돼. 철수할 수 없어.
내가 방금 순찰에서 돌아왔는데, 바깥길에 대량의 파열과 적조가 있었어. 완전히 잠기진 않았지만, 우리의 방어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그리고 다른 인간들은 우리보다 상황이 더 나쁘겠지.
그럼 우린 갇힌 건가?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어! 누가 일부러 그런 것처럼! 탤버트! 네가 승격자를 불러온 거지?!
내가 말한 승격자라면, 날 찾아오겠다고만 했지. 굳이 왜 이런 일을 벌이겠어?
당연히 파괴를 위해서겠지! 특별히 널 왕좌에 앉혀주러 오면서,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을 줄 알았어?
미안해, 릴리안. 탤버트를 쫓아내는 게 좋을 거 같아!
하지만! 탤버트도 심하게 침식된 상태라, 이대로 가면 분명히 죽을 거예요.
그럼, 탤버트가 그토록 바라는 승격자한테 구해달라고 하겠지!
잠깐...
청년이 광장 입구의 마지막 이합 생물을 처치한 후, 문을 밀고 의료 구역으로 들어갔다.
승격자와 연락했던 사람이... 나일 수도 있어.
……?
기억이 조금 돌아왔는데, 기억상실 전에 승격자를 만난 거 같아.
또?
이 청년은 침식된 흔적이 거의 없어. 조금 전까지 우리와 전투를 오래 치렀어. 그럼, 상태가 심해야 하잖아.
역원 장치만 강화가 된 건가?
…………
침식체를 제어할 수 있는 건가요?
어떻게 제어할 지 모르겠어.
수격자 아니야?
아니야. 몸에서 고농도 퍼니싱이 나오지 않잖아.
정말로 사실이 아니겠죠?? 너무 터무니없잖아요. 기억상실의 승격자가 자신이 승격자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사람 속으로 자연스럽게 섞인다. 꼭...
무슨 만화 같지 않아?
자신이 악마 과학자인 것을 잊어버린, 가면 기사를 말하는 건가?
아니에요. 사신의 노트를 주운 이야기를 말하려 했어. 거기서도 기억상실을 계획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 책을 봤다니....
당신은 기억상실 아니었나요? 어떻게 만화 내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죠?
너희,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미안, 미안.
탤버트, 전에 만난 승격자가 쟤 맞아?
아니. 그때 어두운 곳에 승격자가 서 있었는데, 승격자의 그림자가 꼭 거대한 뱀 같았어.
당신은? 승격자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나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거대한 뱀은 분명히 아니었어.
승격자가 당신에게 뭐라고 말했나요?
승격자가 내게 동료가 되라고 했어. 그리고 거절했고. 그 후에 의식을 잃어버렸어.
제가 만난 승격자도 당신이 한 말과 비슷하게 했어요. 선별이 그렇게 엄격하지 않은 걸까요?
피해자 절찬 모집 중! 누구라도 좋으니, 하나만 걸려라!
안나가 했던 말을 반복하지 마!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이 두 놈을 모두 쫓아내자!
잠시만요. 이렇게 해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은 퍼니싱 농도가 너무 높아서, 그들을 쫓아내면 목숨을 잃게 될 거예요!
그들이 일으킨 문제라면, 추방하는 데 문제 될 거라도 있나?!
지금은 통신 신호도 끊어져서, 구조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가 없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은 다 내쫓는 게 나아!
지금이 위기 상황이라고 해도, 가뜩이나 의료 물자가 부족한데, 무턱대고 사람들을 구하지 말았어야 했어!
말이 너무 심한데...
내쫓는 거로만 되겠어? 그들은 승격자와 관련이 있다고! 죽여야 해!
윽.
우릴 죽이면, 넌 살 수 있을 것 같아? 승격자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면, 병력이 부족해서 언젠간 다 죽고 말 거야!
다 너 때문이야!
사람들의 격렬한 논쟁을 지켜보던 노안은 심장이 존재하지 않는 가슴이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되찾은 기억 속에서도 노안은 똑같은 일을 겪었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이었다.
무고한 사람이 "같은 죄"로 몰렸다.
몇 년 동안 변화를 줄 수 없었던 억압과 공황이 모두 폭발하는 그 순간...
무차별적으로 동료를 찌르는 칼이 되고 말았다.
고통과 시련이 계속해서 사람들의 생활 환경을 뒤덮고 있는 한, 이런 비극은 계속될 것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노안은 예전의 그 무기력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제어 불가"가 되기 전에, 이 "이상"을 잠깐 이용해야겠어.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구조를 요청할게요.
뭐라고?!
통신 신호는 끊겼고, 주위에는 적조까지 있어. 내가 가서 구조를 요청할게.
당신은 자신이 승격자인지 기억조차 못 하고 있잖아요. 퍼니싱에 면역된 게 우연일지도 몰라요. 농도가 높은 곳에 가거나, 대량의 침식체에게 습격당하면 혼자서 상대하기 힘들 거예요.
모든 일은 해봐야 아는 법이잖아. 그리고 내가 힘을 제어하지 못해서, 당신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고.
우리가 왜 너를 믿어야 하지?! 네가 도망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럴 바엔 힘을 되찾기 전에 죽이는 게 더 좋지 않겠어?
날 죽여도 좋아. 하지만 내가 죽고 난 뒤에는 모두 적조에 둘러싸여 죽고 말 거야. 릴리안이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여과탑은 오래 버티지 못해.
…………
그를 보내주세요.
뒤편에서 나이가 많은 난민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걸음걸이는 비틀거렸지만, 표정에는 연로자 특유의 중후함이 녹아 있었다.
왜죠?
도망가려 했다면, 처음부터 승격자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탤버트를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닐지, 누가 아나요??
그렇다면 탤버트는 남기면 되겠네요. 탤버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분명히 돌아올 거예요.
하지만...
모두가 어두운 곳에 숨어있는 적을 걱정하고 있는 건 알지만, 보지도 못한 그림자 때문에 무서워하기만 한다면, 실패하는 건 우리가 될 거예요.
탤버트와 이 청년은 도움이 되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들의 본심이 나쁘지는 않은 거 같아요. 더구나 아직 당신들이 말한 그런 능력은 없는 상태잖아요.
사람이 이렇게 적어졌는데, 주위의 사람들에게 계속 피해만 준다면 나갈 수 있을 거 같나요?
그를 보내주세요. 이 방법밖에 없어요.
…………
믿어줘. 승격자가 맞든 아니든 그 힘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거야.
노안은 마음속으로 최악의 수를 생각해 뒀다. 만약 제어 불가가 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을 것이었다.
반드시 구조 인원들과 함께 돌아올게.
정말 어떤 결과가 초래할지 알고 그러는 거야? 넌 승격자와 연관이 있으니, 돌아온다 해도 정화 부대로 보내질 거야.
그럼, 그전에 모두를 도울 수 있게 해줘.
노안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잠시 주저하던 사람들은 결국 넘을 수 없는 퍼니싱 농도의 벽과 노안의 확고한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일은 네게 맡길게. 하지만 다른 세 명은 남도록 해.
노안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탤버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노안은 웃으며, 익숙한 동료인 탤버트와 릴리안 그리고 혹사에게 손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