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 나 왔어.
아저씨는 가셨어?
응.
있잖아.
응?
노안은 방금 들은 이야기를 펠드에게 하려고 했지만, 잠시 망설이고는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이 뭐라 하셨어?
내가 면역력이 약해서, 하층 칸의 습하고 추운 환경에서는 질병에 걸리기 쉽다고 하셨어.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네.
더 따뜻하면 질병에도 걸리지 않을 거고, 아버지도 내 걱정을 좀 내려놓을 수 있겠지.
손에 든 라벨이 없는 약병을 펠드는 넋을 놓은 채 만지작거렸다.
이 약은... 역시 너무 비싸.
아저씨는 약 때문에 오슬란과 연락하신 거야?
난... 모르겠어. 유독 이 일만은 아버지가 말씀하려고 하지 않아.
노안, 넌 여름 좋아하니?
열차 칸 안에서는 다 똑같아. 그리고 난 딱히 좋아하는 계절이 없어.
나중에 수송팀을 따라서 외부로 나가게 되면, 어떤 계절이 좋아질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구나. 그럼 여름철이 되면, 우리 같이 숲에 가서 반딧불이를 찾아보지 않을래?
왜 반딧불이를 찾으려는 거야?
왜냐하면... 예쁘니까. 혹시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니?
책에서 본 적 있어. 그려보기도 했고.
펜을 든 노안은 폐지를 제본해 만든 연습장 위에 수직선을 그려 배열한 뒤 원을 만들었다. 그것은 민들레 같으면서도, 만화처럼 빛나는 둥근 공 같기도 했다.
진짜 반딧불이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
펠드는 진지하게 손짓하며 날아다니는 벌레를 흉내 냈다.
반딧불이는 날개가 있고, 배에서만 불빛이 나.
단말기에서 반딧불이의 사진을 검색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보는 것만큼 예쁘지 않을 거야.
지금도 진짜 반딧불이를 직접 볼 수 있다고?
응, 예전에 어머니랑 같이 보러 간 적이 있었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우리도 같이 가자.
좋아. 지금 진행 중인 훈련이 끝나면, 수송팀을 따라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야.
소년은 고개를 들어, 열차 칸 지붕에 매달려 있는 먼지투성이 전등을 올려다봤다.
반딧불이...
예전에 반딧불이와 연관된 자장가를 들은 적이 있어.
자장가? 혹시 그 노래를 말하는 건가?
노안의 의아한 눈빛을 보이자 펠드는 멜로디 한 소절을 흥얼거렸다.
아니, 이 노래가 아니야.
음...
펠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다가, 또 다른 멜로디 한 소절을 흥얼거렸다.
응! 맞아. 바로 이거야.
이거였구나...
두 사람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 오랜 시간 동안 침묵했다.
"부패한 풀 속에서 반딧불로 탄생한다 (腐草为萤)"는 말을 들어봤어? 썩은 풀은 빛을 낼 수 없지만, 반딧불이로 변해 한여름밤의 하늘을 빛낼 수 있어.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근데 그건 옛날 사람들의 미신 아닌가? 풀이 썩으면 반딧불이가 자라난다 뭐 그런...
그래?
예전에 우리 어머니께서 그러셨어. 우린 땅에서 자라나는 야초라고. 그런데 이유는 알려주지 않으셨어.
난 요즘 들어서 그 뜻을 깨달은 것 같아.
펠드는 손에 든 책을 받들고, 페이지에 적혀있는 글자를 반복해서 읽었다.
우리의 삶은 야초처럼 평범하다... "야초, 뿌리는 깊지 않으며, 꽃잎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이슬, 수분 그리고 오래전 세상을 떠난 사람의 피와 육체를 흡수해, 그것의 존재를 사라지게 한다."
"살아있는 동안 짓밟히고 깎이다 죽음에 이른 후 부패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야초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건 아니다.
죽음은 우리가 존재했음을 의미하고, 부패함은 우리가 결코 공허하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 야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하늘에 빛이 없다 하더라도, 야초를 태우는 화염은 하늘을 밝혀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부패한 풀 속에서 반딧불로 탄생한다 (腐草为萤)"는 말은 마치 평범한 생명이 죽은 뒤, 그리움을 남겨둔다는 걸 가리키는 것 같아, 그럴 법한 도리가 있지.
펠드는 진지한 얼굴로 노안을 바라봤다.
소년은 책의 내용을 해석했다, 가끔은 소년 특유의 일방적인 면과 소년의 연상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해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일방적인 것도 소중한 "등불"이 되어 막막한 앞길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근데... 갑자기 그 구절은 왜... ?
왜냐하면 이 책에서... 그리고 네가 언급했던 그 노래에는 모두 반복적으로 "안녕"을 말하고 있거든.
난 우리 어머니를 떠올렸어. 어머니도 반딧불이가 되어, 어떤 숲에서 나에게 "안녕"이라는 작별 인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
이런 말들이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환상 같아?
아... 아니.
만약 네 말대로... 반딧불이는 고인이 남긴 그리움이라면, 그냥 곁에 남겨두고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야.
…………
어쩌면 난 그게 필요했던 거야. 추억 속에서 어둠에 잠긴 나 자신에게 작별을 해야 하니까.
어째서?
나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어머니는 항상 나더러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셨어. 하지만 집에는 책이 매우 적었고, 제약 공장 단말기에만 어느 정도의 전자 파일이 있었어. 그래서 가끔 사람이 없는 심야가 되면 날 데리고 공장으로 갔어.
그러다... 그날 밤, 공장에 일이 터졌어.
두 눈을 내리깐 펠드는 손에 든 책을 넘기며,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난 계속 후회하고 슬퍼했어.
아버지는 내 약을 사기 위해 위험한 상황에 빠졌는데... 난 과거의 추억에 잠겨있었고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숲에서 작별 인사를 제대로 하고, 그 일들을 잊을 수 있었다면, 미래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을까?
노안은 고개를 저었다.
네 어머니께서는 널 보호하기 위해 그 선택을 하신 거야. 어머니와 관련된 추억을 잊거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난 아직 과거의 잘못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털어내지 못할 거 같아.
난 너처럼 될 수가 없어. 넌 많은 걸 잃었지만,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어.
어? 뭘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야?
노안은 자신이 굳게 믿었던 모든 목표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현실을 직면했다. 그리고 이야기 속 환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잖아. 과거의 추억도, 자신의 신념도.
포기했다면, 그날 내 앞을 가로막지도 않았을 거고, 내게 손 내밀지도 않았을 거야.
펠드는 자신의 약간 차가운 손을 노안의 어깨에 얹었다.
노안, 너 사실은 영웅 스토리를 엄청 동경하는 편이지?
그런 이야기들은... 다 비현실적이야.
네가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건 영웅 같은 힘이 없어서 그런 거고, 근데 영웅만큼의 결심이 부족한 건 아니잖아.
그게 뭐가 다른데?
결심이 없는 사람은 힘을 얻어도 결국 악당이 돼버리거든.
하지만 넌 달라. 힘이 없어도 날 도와줬어... 그게 결심의 중요성이야.
결심...
하지만 그때 난 자칫하면 모두를 다치게 할 뻔했어, 그래서 레이첼 대장님께서도 내게 다시는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하셨어.
노안...
펠드는 노안에게 한 걸음 다가가, 굳은 노안의 얼굴을 가볍게 토닥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마.
후회하든 안 하든, 다음에 그렇게 하든 안 하든, 내가 너에게 구원받은 건 사실이야. 그러니 자신의 무력함에 겁먹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난 이 일을 영원히 마음속에 새겨둘 거야. 그리고 앞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도 너처럼 도움의 손길을 건넬 거야.
네가 영웅처럼 모든 사람을 도울 순 없지만, 너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어. 이것도 나름 괜찮지 않니?
…………
도움을 주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거라 해도 그럴 거야?
그래도 도울 거야. 도움을 준다는 건 좋은 일이고, 좋은 일을 허용하지 않는 환경이야말로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
네가 내 앞을 막아섰던 그날에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차라리 미치광이가 되겠어요."라고 말했잖아.
잠깐, 그 말은 제발 잊어줘.
왜?
너 혹시... 인제 와서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지?
…………
설마 진짜 그런 거야?
잊어버리라고 했잖아!
풉.
알겠어. 더 이상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네가 날 도와준 일은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사실 요즘 다리가 괜찮아지면, 너처럼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넌 이미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어.
그런가?
응. 그... 그게...
사람들이 펠드를 향한 편견을 떠올리고 또 최근 펠드가 자신을 격려했던 걸 생각하니, 노안은 왠지 모를 무거운 격차를 느꼈다.
노안은 심호흡을 몇 번이고 하며 망설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펠드에게 감사를 표했다.
내게 그런 조언을 해줘서 고마워.
금발 소년은 이 말에 어떤 이유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지만 이내 고개를 숙여 웃기 시작했다.
노안, 장래희망이 뭐야?
장래?
응. 미래의 꿈이나 계획 그리고 자신에 대한 기대 같은 거 말이야.
노안은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난 말이야...
노안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왜 이렇게 평범한 대화도 잊어버린 걸까?
펠드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다리가 괜찮아지면, 혼자만의 힘으로 열차를 떠나 숲에 있는 반딧불이를 보러 가고 싶어. 가능하면 너랑 아버지랑 함께 갈 수 있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
하지만 너무 멀리 있는 목표인 것 같아. 일단 지금은 어서 여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야.
펠드 넌... 정말 여름을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지. 여름이 돼야 내 상태가 좋아지니까.
열차 칸 안은 춥지 않음에도 펠드는 여전히 여름날의 따스함을 그리워했다.
어쩌면 기후와 온도뿐만이 아니라, 펠드의 걱정과 추억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노안은 생각했다.
그럼 내가 축복의 힘을 가진 이름을 지어줄까?
예를 들면?
펠드·염마의 왕·하지·헤파이스토스.
아니... 됐어.
펠드는 스스로를 껴안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 뇨르드와 축융의 아들·적염 천사 펠드는 어때?
완전 짬뽕처럼 섞었잖아!
펠드는 보기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하지라고 불러줘. 축복의 힘은 이걸로도 충분해.
그래. 그럼 하지라고 부를게.
부탁이야!
진짜 다른 걸로 추가 안 해도 괜찮겠어?
정말로 괜찮다고!
시간은 또 그렇게 바쁘게 흘러 2개월이 지났다.
밴크로프트는 물건을 잃어버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밴이 맡은 수송팀이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했다.
상층의 인맥 때문에, 레이첼의 수송팀에서 쫓겨나진 않았지만, 계속 수송팀에 있어도 바뀌는 건 없기에, 밴의 처지는 더 나빠질 뿐이었다.
노안은 레이첼이 사람들 속에서 종종 밴에게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을 봤다.
펠드는 가지고 있는 약을 다 먹고야 말았다. 하층 칸의 혼잡하고 더러운 환경이 펠드의 몸을 찢었고, 계속해서 미열에 시달리게 했다. 하지만 펠드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바쁜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노안이 훈련할 때, 펠드는 대부분의 시간을 책 저장 창고에 남아서 혼자 책을 보거나, 구석에 웅크려 잠 자곤 했다.
하지, 다녀왔어.
응, 혹시 저녁에 우리 아버지 못 봤어? 오늘은 한번 돌아오실 것 같아서 말이야.
만났어. 네 상황만 여쭤보시고 가셨어.
…………
잃어버린 물건은 찾았어?
아직.
레이첼 대장님은 뭐라 하셨어?
대장님은...
예전에도 목숨 아까운지 모르는 놈들이 함부로 물건에 손댔다가 모두 나에게 잡혔어! 너도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한 번 시도해 봐!
믿어주세요!
귀족의 앞잡이를 믿으라고?
그때는 제 아들이 중상을 입어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방법이 없었으면, 지금도 방법이 없는 거 아냐?
여전히 그런 말을 했지.
다른 사람들은? 누가 훔쳤는지 다들 모르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밴크로프트? 도둑놈, 귀족 앞잡이, 못된 짓은 다 하는 놈, 하루빨리 침식체가 그놈을 죽였으면 좋겠어.
노안, 밴과 그의 아들을 멀리하는 게 좋을 거야! 굶어서 미쳐버리면 너까지 잡아서 구워 먹을 수 있다니까!
어쩌면 도움을 주기 싫은 거겠지.
…………
이제 두 달 후면, 내 훈련 기간이 끝나니까. 그때가 되면 꼭 밴크로프트 아저씨를 도우러 갈게.
아니... 노안. 난 아버지가 뭘 하러 가셨는지 대충 알겠는데 아버지를 막을 수가 없어.
아버지는 수송팀의 대장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어. 수송 대원으로 일을 할 수 있지만, 대장으로는 적합하지 않지.
내가 다쳤기 때문에 아버지는 지원을 구해야만 했어. 그래서 과거에 쌓은 관계를 통해서 열차로 올 수 있었고, 귀족과 거래한 물건은 물자가 아니라... 정보였어.
교환할 수 있는 물자가 많이 있었다면, 아버지도 분명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셨을 거야. 미안해. 또 나 때문이야. 그때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골칫거리는 없었겠지?
네가 원해서 맞은 건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널 구하지 않았다면, 나도 네 적극적인 명의 영향을 받지 못했을 거야.
사람은 모두 변해. 특히 아이는 더 하지. 앞으로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점점 더 온화해질 거야.
환경이 중요하지.
그런 영향을 받고,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
그리고 아무리 작은 반딧불이라도 자신만의 역할이 있다고, 펠드 네가 말했잖아.
그런 말을 하긴 했지. 하지만 아버지가 누설한 "정보"를 얻은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게 된 이후, 이건 더 이상 "사소한" 문제가 아니야.
열차에 오른 지 벌써 6개월이 됐어. 그동안 내가 먹은 약... 그리고 아버지가 화물을 잃어버린 후 배상한 물자... 모두 이런 방식으로 바꾼 거였어.
이런 일이 계속 된다면, 다음 피해자는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될 수도 있어. 심지어 너도...
이 녀석아,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연루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 넌 레이첼이랑 가깝고, 레이첼은 너에게 많은 걸 말해줬어. 게다가 펠드의 아버지는 굶주리면 아무나 물어뜯는 미친개라고.
네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굴어!
………
이건 우리가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정식으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수단만 있다면, 보수로 해결할 수 있어. 그리고 앞으로 화물을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아버지가 계속 물건을 잃어버리시면서, 변상해야 할 것도 많아졌어. 그리고 외상값도 있어서 보수를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야.
누가 화물을 가져갔는지만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 훈련 기간이 곧 끝나거든, 레이첼 대장님께 수송팀에 배치해 달라고 신청해 볼게. 그럼, 아저씨를 도와서 물건을 지킬 수 있을 거야.
아니야. 노안.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더 이상 네가 연루되게 할 순 없어.
펠드는 그렇게 말한 뒤, 다음 날 밤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텅 빈 도서 보관창고에는 반쯤 조립된 반딧불이와 펠드의 노트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노트에는 반쯤 조립한 반딧불이의 조립 설계도가 끼워져 있었고, 다른 페이지에는 펠드가 책에서 베낀 구절과 단락 그리고 약간의 기록과 감상이 적혀 있었다.
전반부의 글씨 상태는 깔끔했고, 베껴 쓴 내용도 사계절이나 자연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펠드의 상태가 좋았음을 알 수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글자와 내용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어떤 페이지에는 핏자국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두 페이지의 글자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노안은 세 번을 반복해서 읽어본 후에야, 펠드가 무엇을 썼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친구여, 때가 가까워졌네.
난 어둠 속에 빠져 방황할 것이네.
아직 내 선물을 바라는가? 네게 줄 수 있는 게 남아 있을까? 그런 건 없으며, 어둠과 허공만이 남았네.
하지만 난 너의 낮에서 어둠이 사라지는 것을 바랄 뿐이네. 또한, 허공이 네 마음을 차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난 이렇게 되기를 바라네. 친구여.
난 홀로 먼 길을 떠나네. 네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림자도 없는 어둠 속으로.
나만이 어둠 속으로 빠져들 뿐이고, 그 세계는 오로지 나의 것이네."
…………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내려놓은 뒤, 노안은 주위의 구석구석을 뒤졌음에도, 펠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붐비고 좁아 보이던 하층 칸이 그 순간에는 엄청 넓게 보였다.
보이는 곳에서 펠드를 찾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소년은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 속에서 상대방의 이름을 작은 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 펠드!
시끄러워 이 녀석아, 지금 몇 신지도 몰라? 왜 소리를 지르는 거야!
노안이 예상한 것과 같이, 이 외침은 곧바로 분노로 가득 찬 꾸짖음을 불러일으켰다.
죄송해요. 제 친구가 없어져서 찾고 있어요!
없어졌다고? 근거리 수송팀을 따라 나간 거 아니야? 수송팀이 오늘 저녁에 074호 도시에 물건을 건네주고 이른 아침에 돌아올 거야.
상대방은 하품하며 더러운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펠드는 저와 나이가 비슷한 데다, 건강까지 좋지 않아서, 수송팀을 따라 나갈 수 없어요.
건강이 좋지 않다고? 설마 밴크로프트 집의 펠드를 말하는 건 아니지?
맞아요. 펠드요. 혹시 보신 적 있나요?
봤다고 해도 말하지는 않을 거야. 밴크로프트는 하루라도 빨리 열차에서 쫓겨나야 해. 수송할 때마다 그의 소대에서 항상 사고가 난다고.
맞아. 왜 항상 밴의 소대에서 사고가 나는 거야?
밴은 대장이 될 자격이 없는 데다, 부하 대원도 말을 따르지 않으니, 화물 운반하면서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게 이상한 거지.
의심하지 않게, 어서 쫓겨났으면 좋겠어.
그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가요?
뭐?
상층 초병이 오셀럼호에서 이런 규정을 시행하고 있는 한, 밴크로프트 아저씨가 사라져도 또 다른 밴크로프트 아저씨가 나타날 거예요!
우린 지금 펠드의 아버지라서 그렇게 돼도 상관없다고 수수방관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음은 누가 될까요?
그는 당해도 싼 놈이야.
하지만 밴 아저씨는 한 사람을 구하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지금은 정보를 누설하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만 잘못으로 치는데, 나중에는요? 나중에는 규정이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요?
공업 칸에 새로 도입된 "한 사람이 잘못하면 전원이 무급" 같은 규정이 전에는 있었나요?
레이첼 대장님이 자주 말씀하셨죠.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을 따돌리고 있는 한, 상층의 귀족들은 기쁜 마음으로 다음 "부족한" 사람을 들여보낼 거라고 말이죠.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이유는 세계에 "부족한"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인가요?
"정보"로 물자를 바꿀 수 있는 한, 밴크로프트 아저씨가 사라진다 해도, 계속해서 다음 밴크로프트 아저씨가 나타날 거예요.
규정이 불합리한 것인데, 우린 이 규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어요!
저도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싫지만, 이런 규정과 환경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받는 게 더 싫어요.
펠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계속 변화를 만들려 했어요! 왜 펠드까지 연루되어야 하는 거죠?! 우린 줄곧 상층 귀족이 평민에 대한 차별을 증오했지만, 오히려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있었어요!
이 어린놈의 자식이 여기서 무슨 연설을 하는 거야?
연설이 별로야? 내가 가르친 거야.
세나 대장님?!
이쪽이 시끄러워서 보러 왔어. 신경 쓰지 마. 오늘은 레이첼 대장님도 안 계시고, 나도 레이첼 대장님께 아무 말 하지 않을게.
세나 대장님, 펠드가 사라졌어요.
확실해? 다 찾아봤어?
네, 펠드가 자주 가던 곳은 다 찾아봤지만, 그의 노트 말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
노안은 세나에게 펠드의 노트를 건네줬다. 그러자 세나는 노트를 받아 들고 빨리 훑어봤다.
…………
모두 찾아봐. 펠드가 아직 어디에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밴크로프트는 이곳에 있어선 안 돼요!
이곳에 있으면 안 될 사람이 한두 명이야. 몸이 좋지 않은 네 아내, 안 씨의 두 아이, 황 씨의 어머니, 이런 식으로 내일까지 한 번 읊어볼까.
난 너희들이 몰래 뭘 하는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
…………!!
너희들이 밴크로프트를 미워하는 건, 밴이 너희들이 저지른 일을 빌미로 더러운 일을 해서 그런 거잖아?
하지만 너희들은 왜 그런 일들을 한 거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
밴은 더러운 일을 많이 저질렀고, 그에 따른 벌도 받았어. 그런데 너희들은? 너희들은 또 왜 악당의 졸개 짓을 하는 거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야? 밴크로프트 혼자라면 물건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를 돕지 않은 거지!
…………
내가 오늘에서야 이 일을 들은 게 아니었다면, 레이첼 대장님께 예전에 보고했을 거야.
레이첼 대장님이 모르실 수도 있나요?
당연히 아실 리가 없지!
대장님은 이런 환경 속에서 모두가 고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우린 여기서 질투와 증오를 가지고 상층 사람을 돕고 있어.
밴이 물건을 잃어버리게 내버려 두는 것이 너희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지? 너희들의 처지가 좋아지는 건가?
밴이 물건을 잃어버려서 "몰래 알려줄" 때마다,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사라지니?
세나는 미소를 지은 채, 열차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하나만 묻지. 너희들, 밴의 아들을 찾는 걸 도울 거야, 말 거야?
사람들은 한동안 쥐 죽은 듯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수리 부대의 대원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제가 창고에 있는 감시 카메라를 확인하고, 사람 몇 명을 통풍 파이프로 보낼게요. 가끔 아이들이 기어들어 갔다가, 길을 잃어서 나오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고마워요!
너도 한가하게 있지 말고, 우리와 함께 통풍 파이프에 들어가서 찾아보자.
네!
노안은 빠른 걸음으로 수리 대원을 따라, 열차 칸을 떠났다.
다른 사람은?
저도 근처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저도 찾아볼게요.
아니면 레이첼 대장님께 연락해 볼까요? 혹시 근거리 수송팀을 따라 나간 것일 수도 있잖아요?
알았어. 나한테 단말기가 있으니, 내가 물어볼게.
칫!
가기 싫으면 됐어. 가고 싶은 사람은 날 따라와.
……
루루, 너희 아이들은 평소에 숨바꼭질하는 곳을 찾아봐 줘.
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임시 수색 소대를 편성했다. 행동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나 신체적인 이유로 거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노안 혼자서 찾는 것에 비하면 훨씬 빨랐다.
편견과 갈등이 이번 행동으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소년은 두꺼운 얼음층에 살짝 금이 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서 돌아와요. 펠드.
노안은 여명을 향한 길에서 어둠에 잠긴 그림자를 향해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