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2 고후위등 / Story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지.
방금 노안에게 일어난 일을 들은 펠드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너는?
난 이곳에 있으면 돼. 내가 좋아하는 책도 많고, 너도 돌아와서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 주니 좋은데.
…………
그런 슬픈 표정 짓지 마. 사정이 변하기 전까지 여기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건, 내게 큰 행운인걸.
어쨌든 우리 아버지 일은...
밴크로프트를 말하는 건가?
난 밴의 아들에게까지 화를 내고 싶지 않지만, 그 사람... 분명히 문제가 있어.
레이첼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노안이 역겨울 정도로 익숙해진 그 말을 꺼냈다. 그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안과 노안의 어머니를 가리켰다.
최근에 협력할 무기 상인을 찾고 있는데. 소식을 조금이라도 입수할 때마다, 이상하게 밴이 알게 되더라고.
무기 상인이요?
그래. 평소 수송팀의 무기는 대부분이 상층 초병이 오랫동안 썼던 것들이나 버린 것들이잖아.
그것만으로는 수송 도중에 마주치는 침식체와 강도를 대항하기도 힘들어, 상층 초병과 싸우는 건 더 말할 필요 없지.
폭력에 대항할 수단이 없다면, 이들의 폭행은 제멋대로 계속될 거야.
오직 폭력만이 폭력을 다스릴 수 있는 건가요?
맞아. 지금의 황족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나머지 귀족들은 대부분 오슬란의 라인에 붙었어. 오슬란은 이익만 따지는 사람이고 사람의 목숨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그래서 오슬란과 담판을 하는 건 소용없는 짓이지.
바깥의 상황은 항상 심각하니, 다른 세력에게 도움을 청해 아딜레 상업 연맹을 간섭하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그래서 우린 충분한 화력을 확보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그래서 늦어지면 우리에게만 불리해지니, 무기를 빨리 마련해야 해. 하지만 밴크로프트는...
아, 맞다. 노안, 네가 지난번에 구한 아이있잖아, 그가 밴의 아들이지?
네.
너... 아니다, 됐어.
너희 둘은 이미 친구가 됐으니, 난 네 우정에 간섭하고 싶지 않아. 단, 내가 한 말을 그에게 알려주면 안 돼.
네, 알겠어요.
앞으로 한동안은 내가 자리를 비울 예정인데, 그동안 넌 계속 훈련을 받아.
네, 레이첼 대장님.
칸막이를 성큼성큼 떠나는 레이첼의 모습을 지켜보던 노안은 갑자기 묻지 못한 질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해야 무기를 추가로 살 수 있지?
퍼니싱이 퍼진 땅에는 모든 사람이 겨우 살 수 있을 정도로만 물자를 가지고 있는데, 상층 초병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무기는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아직 가동 중인 제조 공장이나 보육 구역 뒷골목의 중고 시장에 있다 하더라도, 레이첼은 어떻게 무기로 교환할 수 있는 물자를 모을 수 있었을까?
소년은 친구 옆에 앉아서 혼자 답을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지원할 물자가 어떻게 생겼냐고? 난 별도의 보수가 있기 때문이지.
그는 레이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추가 보수?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더 많은 사람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면, 난 기꺼이 범죄자가 될 것이고, 그 대가를 치를 거야.
…………
설마 이게... 그 이유일까?
어머니도 그녀를 도와주시는 거예요?
그래. 내가 도와주고 있어. 레이첼의 수단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난 뭐라고 할 자격이 없어.
…………
기억 속의 말들이 최근에 얻은 정보와 합쳐지면서, 모호한 답으로 변했다.
레이첼에게 무기로 교환할 물자를 만들어 주기 위해, 어머니는 그 길로 들어섰다.
정말... 다른 선택은 없었던 걸까?
이것이 진실이라면, 어머니는 왜 독살당했던 걸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레이첼은 무슨 방법으로 이렇게 많은 추가 물자를 얻을 수 있었던 걸까?
2달 후.
펠드의 아버지는 기나긴 연속 수송 임무를 마침내 완수한 뒤, 자신의 아이와 노안을 만날 시간이 생겼다.
펠드를 돌봐달라고, 후방 지원 부대의 바바리라는 요리사에게 약간의 물자를 줬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줄이야.
요리사 바바리요?
그래. 그 아사와 친한 요리사 말이야.
같이 다니는 걸 자주 봤는데, 아마 곧 결혼할 거 같아.
내가 사람을 잘못 믿었네. 어쨌든, 내 아들을 구해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자기소개를 깜빡했네. 난 밴크로프트다. 우린 원래 보육 구역 근처의 제약 공장에서 일했는데, 그곳이 침식체의 습격을 받았어. 그래서 내 부인은...
아버지, 제가 이미 다 말해줬어요.
그래? 네가 정말 마음에 드는 친구를 만났나 보네.
네.
아저씨, 아저씨가 상층 칸의 오슬란과 아는 사이라고 다들 그러던데요?
그래. 오슬란의 부하를 알고 있긴 한데, 모두 거래를 위한 관계일 뿐이야. 철수할 때 파손된 제약 공장에서 미완성품을 조금 가져왔거든.
그럼, 어서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해요. 이곳의 대부분 사람은 귀족에 대한 인상이 별로라서요. 만약 오해라도 생긴다면...
그래. 고맙다.
밴크로프트는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있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아저씨?
별거 아니야. 조심할게.
오슬란을 도와서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돼요.
노안은 레이첼의 말을 떠올리며 걱정했다.
그래, 그래.
중년의 남자는 귀찮다는 듯한 태도로 변했다.
아, 맞다. 난 앞으로 41호 수송팀을 따라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나 대신 펠드를 며칠 더 돌봐줄 수 있을까?
내가 고정 자리를 배정받으면, 바로 펠드를 데려갈게.
괜찮아요. 우린 좋은 친구인걸요.
맞아요.
아버지, 최근 수송 임무는 잘 완료하셨어요?
…………
펠드의 질문에 밴크로프트는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러시죠? 아버지?
별거 아니야.
아버지는 여전히 거짓말을 잘 못하네요.
제가 도움을 드리지는 못해도, 조언을 줄 수는 있어요. 아버지가 전에 말씀하셨듯이, 역사상 많은 발명품과 어려운 문제는 아이들의 의견에서 단서를 찾았다고 하셨잖아요.
…………
네 말이 맞긴 하네.
이번 임무는 순조롭지 않았어. 수송 컨테이너가 너무 낡기도 하고, 밤중에 습격을 당했는데 그중 일부가 폭발로 파손됐어.
침식체를 제거한 뒤에 가보니, 많은 물건이 없어졌어.
물건을 잃어버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노안은 왠지 모르게 오래전 어머니가 레이첼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궁지에 몰린 스캐빈저가 그런 것 같은데,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어.
아버지, 기록 장치는 확인해 보셨나요?
여기엔 그런 게 없단다. 펠드. 내가 듣기론 귀중한 물자를 수송할 때만 사용한다고 했어.
제작 비용이 비싼가요?
나도 그런 의심이 들었어.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방랑하는 스캐빈저라서 일반 수송 노선에 도둑의 모습이 기록되더라도, 큰 힘을 들여서 처리하기는 어려울 거야.
이곳은 제약 공장의 보안 규칙과 달라. 제약 공장은 교대로 보초 서는 구조체가 있어서, 예전과 같은 사고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
혹시 요리사 바바리를 본 적 있니? 그녀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요리사에게 보고를 하나요?
응. 아사가 보증을 서서, 그녀가 줄리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고 들었어. 지금 수송팀의 일부 임무를 바바리에게 알려줘야 하거든.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그녀를 요리사라고 불러서, 나도 그렇게 부르고 있어.
…………
아사랑 같이 있을 거예요.
그럼, 나중에 다시 올게.
밴은 몸을 숙여, 펠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어때? 열이 나진 않았고?
열은 없는데, 약이 다 떨어졌어요.
괜찮아. 내가 바로 가서 바꿔 줄게. 가자
바꾼다고요?
응, 내가 먹는 약은 상층 칸에 있는 의사들만 가지고 있어서, 그들을 찾아 교환해야만 해.
약을 바꿀 물자가 남았나요?
펠드의 할머니가 남긴 팔찌가 아직 남아 있어. 3개월 후에 다시 약물과 교환할 물자를 저축해야 해.
아버지.
걱정하지 마. 너까지 없으면, 아버진 혼자서 무슨 재미로 사니.
오늘은 언제까지 머무르실 건가요?
곧 갈 거야. 저녁에 새로운 임무가 있거든.
밴크로프트는 펠드를 끌어안고, 노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 그럼 우린 먼저 갈게. 안녕.
나중에 보자. 노안.
나중에 봐.
넌 펠드와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거야.
노안이 사람들과 함께 밥을 다 먹고, 세나가 맡긴 "잡일"을 하려고 하자, 신야가 의자를 끌고 와, 노안 앞에 앉았다.
펠드의 아버지는 많은 일을 저질렀고, 지금 두 사람은 모두 골칫거리야.
물건을 잃어서 그런 건가요?
그것뿐만 아니라, 밴은 상층과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로 이어져 있어.
…………
신야, 너도 여기 앉아서 말만 하지 말고, 우리랑 같이 털실을 푸는 것 좀 도와.
세나는 노안과 함께, 멀쩡한 털실을 풀어서 다시 매듭을 지은 뒤, 털 뭉치를 만들라고 했다. 그러면서 찢어진 니트를 신야에게 던져줬다.
…………
신야는 뭔가를 반박하려고 했지만, 결국 니트를 받아 들고는 노안과 함께 털실을 풀었다.
그 녀석은 분명 문제가 있을 거야. 밴이 왔을 때부터 우리 쪽에서 여러 명이 잡혔어.
중대한 위반 사항이 발견됐다고 했어. 하지만 누구인지 레이첼에게 말하지도 않고, 위에다 몰래 알려줬다고?
몰래 알려준 건 밴크로프트뿐만이 아니야. 상층의 귀족들이 수송팀이 무엇을 하려는지 어느 정도는 눈치챈 거 같아. 지금은 우리끼리 먼저 싸우게 하려고, 특별히 작은 "보상"을 몰래 마련했더라고.
어? 그냥 일반적으로 규정 위반을 고발한 거겠지.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아.
세나가 눈짓으로 열차 칸 안의 깊숙한 곳을 가리키자, 초병 한 명이 평민의 머리채를 잡은 채, 공업 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초병은 그가 비축한 모든 물자를 몰수했다.
뭔가를 얻으려면, 누군간 모험을 해야겠지.
…………
잠깐, 표정을 보아하니, 또 나서려는 건 아니지? 이 녀석 봐라.
이젠 이런 일이 너무 빈번해져서 전혀 놀랍지 않다고 해도, 노안은 아무런 감정 없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레이첼 대장님이 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노안은 화가 난 채, 고개를 숙이고는 계속 손에 들고 있던 니트를 풀었다.
가면 안 돼. 저 상황은 물건을 잃어버렸거나, 공업 칸에서 일을 망쳐서 잡힌 걸 거야.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지. 그렇지 않았으면 일벌 부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하루치 보수는 맨날 받아 갔잖아.
지금이야 좋다고 하겠지만, 며칠 후에 당신을 찾게 되면, 좋다고 하지 못할걸요.
옆 테이블의 위란이 이쪽의 토론을 듣고는, 밥그릇을 들고 돌아섰다.
난 잘못한 거 없어. 난 당당해.
레이첼 대장님을 도와 무기를 옮겨준 적이 없나요? 수송 부대의 핵심 멤버가 하는 일은 명백히 금지된 일이에요! 더군다나, 우리 쪽에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많은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몰래 하고 있어요.
백번 양보해서, 상층 초병들에게 몰래 알려주면, 초병이 몰수한 비축 물품 일부를 누설자에게 나눠줘요.
당신이 깨끗하더라도,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면, 그 보수를 위해 당신을 모함할 거예요.
…………
그릇이나 내려놔. 거기에 밥 없잖아? 우리랑 같이 털실이나 풀어.
세나는 위란에게도 회수된 허름한 니트 한 벌을 던졌다.
이 털실을 풀기 싫어서 그릇을 들고 있었던 거예요.
위란은 투덜거리며 그릇을 내려놓은 뒤, 신야 그리고 노안과 함께 털실을 푸는 것에 동참했다.
이 사람들이 계속 상층에 몰래 알려주는 게 무엇을 위함인 걸까?
눈앞의 이익을 좇는 거죠. 긴 항쟁보다는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현실적이니까요.
밴크로프트 같은 사람이 정말 많아요.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고, 아들의 친아버지가 아닌 것처럼 변하게 되죠.
전에 밴의 아들을 본 적이 있는데, 영리하고 얌전했어요. 성가신 정도라 해도 얼마 되지 않았죠.
？？
노안도 처음 왔을 때보다 많이 좋아졌어. 하하하. 지금은 엄청 착하지.
세나는 노안의 어깨를 때리며, 몸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사람은 다 변해가는 거야. 특히 아이는 더 하지.
쳇, 환경이 중요하지.
그럼, 지금 그가 당신을 따라다니고 있다는 건가요?
여기저기 다 다니는데. 요즘은 나랑 같이 밥 먹고 있어.
빌어먹는 밥도 나쁘지 않아.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식견도 넓어지니,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있는 것보다는 좋지.
그러게요. 방금 어디까지 얘기했죠?
밴크로프트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잖아.
맞아요. 그 말대로 밴은 궁지에 빠졌어요. 몰래 알려주는 걸로 자신의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어요.
그들은 뒷일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아요. 하층 칸은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간, 일이 생겼을 때 아무도 도망갈 수 없게 될 거예요.
세나 대장님이 보시기엔 지금의 문제가 상층 귀족, 사람의 마음, 사람을 굶어 죽게 만다는 환경 중에 어떤 게 가장 크다고 생각하세요?
세 가지 다 어느 정도 있지.
…………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노안, 넌 펠드 가족과 거리를 멀리 둬야 해. 그의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
당신들도 예전에 어머니와 절 그렇게 말했었죠.
얘 봐라! 그건 다 널 위해서야!
절 위해서요?
노안은 펠드를 도와줬던 것을 계기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됐고, 임시 안식처도 생겼다.
노안은 인제 와서 그 "안식처" 때문에, 펠드를 떠난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방금 펠드와 펠드의 아버지는 다르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밴과 함께 펠드까지 멀리하라고 하시네요.
왜 펠드를 감싸는지 이해가 안 돼.
왜냐하면 펠드는 제 친구고, 저도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에요.
의심과 증오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했다가, 같은 상황에 부닥쳐진다면, 어떤 태도와 어떤 표정을 지으며 도움을 청해야 하나요?
그 말에 동의해. 어린 나이에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는걸. 역시 책을 많이 읽는 게 도움이 되긴 하네.
왜 노안 편을 드세요?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노안이 연루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요. 노안은 레이첼이랑 가깝고, 펠드의 아버지는 굶주리면 아무나 물어뜯는 미친개라고요.
여러분들이 줄리의 일을 모르시는 건 아니시잖아요?
네?
내 말 잘 들어. 네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굴어!
위란 아저씨는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세요?
어?
결론에 대한 대략의 추측을 했었던 노안이지만, 정확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었고, 범인의 동기는 더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난... 난 잘 몰라.
위란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반쯤 풀린 니트를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그릇을 들고 쏜살같이 도망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