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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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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2-08 죽음을 향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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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저 녀석 또 죽상인 얼굴로 돌아왔어.

열차 칸으로 돌아와서도, 지붕으로 쏟아지는 폭우가 소년의 결심을 물어보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잡음에 섞여서, 영혼을 난도질 한 뒤, 무겁고 습한 공기를 뿜어냈다.

???

레이첼은 왜 굳이 노안에게 이 고생을 시키는 거야? 식량 조금 쥐여주고, 엄마 대신 장부 받아오라고 하면 되잖아.

노안의 엄마가 얼마나 많은 물자를 몰래 가져갔는데, 레이첼도 장부를 노안에게 계속 맡기지 않을 거야. 예전의 친분 때문에 지금 당장은 이럴 수밖에 없는 거지.

신경 쓰지 마. 노안은 괴팍하고 고집이 세서, 건드리기만 해도 손이 찔린다고. 예전에 줄리가 노안을 집에만 있게 해서 이렇게 커버린 거야. 레이첼한테 맡겨 어쩔 수 없잖아.

노안은 고개를 숙인 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런 잡담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

지금 생각해 보면, 바로 그날 밤이었다.

노안은 하층 칸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생물을 봤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그는 두 다리에 심각하고 오래된 흉터가 있었고, 몸에도 새로운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금방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책을 품에 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폭행을 가하는 상층 초병은 그 소년의 상태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누구도 감히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이렇게 가다간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을 판이었다.

초병과 정면충돌하는 것은 결코 이성적인 일이 아니었다.

특히 상층 초병들도 행운의 박스 때문에 "관계자"들이 많이 섞여 버린 상황에서 혼란스러운 질서로 인해 불만과 분노를 터뜨렸다. 그렇게 양측 사이에서는 매일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소년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흐느낌을 무시하려 했지만, 옆을 지나갈 때, 하얗게 얼어붙은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셀럼호는 얼음 계곡으로 변한 지 오래고, 우린 그 속에 감금된 채 죽어가는 불씨일 뿐이야.

다 태워버릴 수 없다면, 혹한 속에서 얼어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 추위로 꺼진 불이 어떻게 얼음 계곡을 녹일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어.

어머니...

계급과 무력이 최고인 아딜레 상업 연맹에서 법률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많은 폭행과 악의는 더 이상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정의롭거나 상냥함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독살이 발생했을 때, 이런 일이 무고한 사람에게 발생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용히 얼어붙거나, 강렬하게 타오른다...

추억 속의 말을 떠올리며, 소년은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어떤 결과가 닥칠지 뻔히 알면서도, 노안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서, 가해자를 향해 무기를 들었다.

노안

멈추세요! 더 이상 그를 때리지 마세요!

상층 초병

하? 이 자식이 감히 길 한가운데 서서 내 길을 막아? 이놈을 때리는 게 어때서?

노안

다리가 불편한 게 안 보이나요?!

상층 초병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초병은 별거 아니라는 듯, 옆에 있는 지팡이를 힐끗 봤다.

상층 초병

레이첼이 수송팀의 뒤를 봐준다고 해서, 상층 초병에게 대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초병은 자신의 신분을 강조하고는 힘없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봤다. 하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홧김에 두 아이를 "징벌"할 준비는 안 된 것 같았다.

노안

레이첼 대장님과는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곳에 있지도 않아요.

상층 초병

레이첼이 없으면,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겠지?

초병이 거칠게 노안의 멱살을 잡으려 하자, 노안이 들고 있던 무기에서 화염이 분출했다. 그리고 총알이 상대방의 보호 마스크를 명중되면서, 위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

노안

죄송해요. 제 사격 솜씨가 별로인데. 방금은 초병님을 놀라게만 하려고 한 건데, 맞힐 줄은 몰랐어요.

상층 초병

이런 망할 괴물 같으니!

노안

또 맞아보실래요?!

소년은 낮은 목소리로 포효했다.

노안

제가 정상적인 실력을 발휘한다면, 그건 단순 협박이겠죠!

하지만 실수로 방호구가 없는 곳을 맞춰버린다면요.

상층 초병

미쳤구나?! 감히 상층 초병에게 총을 쏴??

초병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을 멸시하는 아이에게 마지막 경고를 했다.

노안

초병님이 이미 다리를 다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건 "정상"이고, 범죄를 말리다 부주의로 상처를 입히는 건 "미치광이"라고 하는 거라면, 전 차라리 미치광이가 되겠어요!

소년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인 억압이 날카롭고 연약한 창끝으로 변해서 초병의 오만한 눈을 찔렀다.

노안

어때요? 한번 맞아보실래요?

이건 용감하지만 무모한 것이었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행위라 하더라도, 이때 막아선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상층 초병

짐승같은 놈!

초병은 화를 내며 침을 뱉었다. 그리고 죽여도 책임질 필요 없는 생명을 향해, 손에 쥔 무기를 들었다.

저기, 그만하시죠!

무기를 휘두르던 초병의 손이 다른 사람에게 잡히더니, 공중에서 멈췄다. 초병이 고개를 돌리자, 덩치 큰 수송 대원 한 명이 십여 명을 거느린 채 나섰다.

할 짓이 없어서 오지랖을 부리는 건가? 최근 이런 하찮은 일 때문에 사상자가 적지 않을 텐데?

무슨 말씀을요. 저희도 한목숨이라도 더 남겨서, 어르신들께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짐승들도 새끼를 낳아야 계속 고기를 먹을 수 있잖아요.

이곳이 주인의 구역인 줄 알면서도 이런 짓을 하다니!

뭘 하려는 건가요?!

흥분하지 마세요. 처지는 다르지만, 초병님도 저희와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잖아요?

"주인"에게 있어서, 저희는 초병님과 달라요. 초병님은 좀 비싸고, 저희는 좀 싸서 모두 대체할 수 있죠. 그러니 말이죠~

세나는 시시덕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초병님, 왜 오늘 혼자 여기 계신 거죠? 제가 방금 저쪽 열차 칸에서 초병님이 다른 분들과 싸우는 것을 봤는데, 그들이 초병님을 기다리지 않고 간 건가요?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혼자 남은 초병을 바라봤다. 그리고 초병은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상층 초병"이라는 신분은 저항 세력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곳을 떠나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초병은 지금 높은 가능성으로 이곳을 안전하게 떠날 수 없었다.

세나가 말한 것과 같이, "주인"은 그들이 생산할 수 있는 가치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가치 뒤에 있는 생명, 생활 그리고 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 사람들이 이번 일로 어떤 처벌을 받든 간에, 그것이 초병의 기분을 좋게 하든 그렇지 않든, 이곳에서 한 결정의 대가는 초병 자신이 감당해야 했다.

………………

우애로운 척하고 있네.

땅 위의 이 녀석 아버지를 누가 소개해 준 건지 알기나 해? 오슬란 쪽 사람이라고.

…………

사람들의 침울한 얼굴을 보고는 초병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저 녀석의 아버지도 원래 나처럼 초병이 돼야 했는데, 더 많은 "거래" 때문에 일부러 이곳에 머물게 된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첩자를 도왔는데도 의기양양해하는 거야?

아이고, 저희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네요. 말씀하신 내용은 바로 반성하고, 돌아가서 바로 이 두 녀석을 열차에서 던져버릴게요.

이제야 말귀를 잘 알아듣네.

상대방은 침을 뱉고는 욕을 하며 떠났다.

초병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신야가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노안의 뺨을 갈겼다.

죽고 싶은 거야! 우리가 나서지 못하는 거 못 봤어? 수송팀에 가입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사고 치고 있어!

최근에 초병들이 다 미쳤어. 저들을 막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설마 못 본 건 아니겠지?! 이번 달에는 한 사람만 죽었지만, 초병의 동작이 조금만 더 빨랐으면, 너와 뒤에 있는 저 녀석 모두 죽었을 거야!

본 적 있어요. 그래서 초병이 사람을 또 죽이는 걸 보고 싶지 않았어요.

네가 이 초병을 이길 수 있다고 해도, 뒤에는 많은 무리가 있을 텐데, 다 맞설 수 있겠어?

줄리와 레이첼이 널 키운 건, 이렇게 죽으라는 게 아니야!

됐어.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막상 노안이 나서지 않으면, 네가 참지 않을 거잖아.

조용히 해.

나도 못 참았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최근 이런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초병과 충돌할 때마다 더 심한 복수를 불러와서 그래. 이렇게 싸워선 안 돼.

보복은 둘째치고, 이번엔 살아남았지만, 다음엔 어쩔 거야?!

넌 생각이라는 것 좀 해야겠다! 용감해지는 것도, 자기 능력을 보면서 해야 할 거 아니야?

넌 신야 오빠를 놀라게 했어. 그런데 신야 오빠는 복수보다 네가 사고당하는 걸 더 무서워해. 하하하.

죄송해요. 신야 형.

세나, 말을 좀 아껴! 그리고 너 아저씨나 대장님이라고 불러!

신야는 미간을 찡그리며, 성큼성큼 떠나갔다.

오늘 널 다시 본 것 같아. 예전에 레이첼한테 네가 9살 때 초병과 싸우려 했다고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거든.

세나는 소년의 가냘픈 어깨를 때리며, 크게 웃었다.

어떻게 수년 동안 참을 수 있었대? 줄리가 없으니, 막을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어렸을 때의 그 억지를 다시 부리는 거야?

전...

괜찮아. 기껏해야 레이첼이 돌아오면 욕 좀 하겠지. 난 네가 마음의 준비를 했을 거라고 믿어.

…………

신야가 한 말은 신경 쓰지 마. 솔직하지 못해서 그래. 하하하. 아직 일이 남아서, 나 먼저 갈게.

사람들이 흩어졌을 때, 열차 칸에 그늘진 곳에서 노부인이 빠른 걸음으로 휘청거리며 나왔다. 자세히 보니 힐이었다.

노안, 정말 간도 크지. 다친 곳은 없고?

힐은 슬퍼하면서, 노안의 얼굴을 치켜세운 뒤, 계속 살펴봤다.

전 괜찮아요. 힐 아주머니.

미안하구나. 내가 겁이 많아서, 너희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나서질 못했어.

힐은 허리를 굽혀서, 두 다리가 불편한 소년을 일으켜 세웠다.

이 아이도 맞아서 어깨를 다쳤네.

괜찮아요. 아주머니, 심각하지 않아요.

소년은 고개를 돌려 노안에게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괜찮아. 난 노안이라고 해? 너는?

펠드라고 해. 정말 고마워. 노안.

천만에. 다리는 걸을 수 없는 거야?

걸을 때 조금 불편할 뿐이야. 얼마 전에 원예 로봇 때문에 다리를 크게 다쳤거든.

의사 선생님께서 꿰매주시긴 했는데, 그곳의 의료 조건이 워낙 뒤떨어져서... 결국 장애를 남겼어.

후우.

펠드의 설명을 들은 힐은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네 엄마 아빠는 어디 계시니?

아버지는 수송팀을 따라 화물을 운반하러 가셨고, 어머니는 절 이렇게 만든 원예 로봇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

괜찮아요.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럼,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거야?

응.

그럼 내 말 잘 들으렴. 더 이상 상층 사람들이랑 엮이지 마. 상층 사람들이 우릴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고, 이곳 사람들 모두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단다.

오늘 수송팀이 널 도와줬고, 여기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으니, 다음엔 어떻게 될지 몰라.

네, 감사해요. 아주머니.

…………

평소 어디서 휴식하는 거야? 내가 데려다줄게.

미안. 아버지께서 아직 침대 자리를 배정받지 못하셔서, 평소엔 그냥 이곳에 앉아있어.

내가 있는 그쪽도 자리가 없긴 한데, 괜찮다면, 나랑 같이 의자를 사용하도록 하자.

괜찮아요. 힐 아주머니. 제가 펠드를 데리고 다른 곳에 가볼게요.

알았다. 자리가 없으면 다시 날 찾아오렴.

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이 있던 구석으로 돌아갔다.

어디로 가는 거야?

비밀 아지트.

비밀 아지트?

그래, 내가 데려다줄게.

노안은 펠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구체적인 상황을 다 들었어.

수송 임무에서 돌아온 레이첼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 표정을 보니, 사과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군.

아니에요. 죄송해요.

레이첼 대장님, 제가 폐를 끼쳤어요.

하지만 이 사과는 레이첼 대장님에게 한 것이지, 그 초병에게는 아니에요.

레이첼은 노안의 대답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넌 정말 줄리랑 똑같다니까.

우리 어머니요?

어머니도 이런 일을 벌인 적이 있었나요?

그것 뿐이겠어? 적어도 그중에 2할은 차지했다고 본다.

레이첼은 멈칫했다.

그러니까 줄리가 자꾸 남에게 미움을 사는 이유 중, 이런 일이 2할을 차지한다는 뜻이야.

하지만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어요.

뭘? 현실을 직면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자신의 무능함에 타협해야 한다고?

네.

그녀의 말이 맞지.

다시는 이곳에서 사소한 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 좋을 거야.

이건 사소한 일이 아니에요. 펠드는 당시 몸이 불편한 상태였고, 제가 나서지 않았다면, 초병에게 맞아 죽었을 거예요.

그럼, 넌 그 결과를 생각해 본 적 있니? 그 초병들이 순순히 화를 참을 것 같아? 초병은 공적인 일로 화풀이나 하면서, 모든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겠지.

미안해요.

이번만큼은 더 뭐라고 안 할게. 왜냐하면 그 초병은 짝퉁이니까.

짝퉁이요?

지금 열차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복잡해, 사람들끼리 미처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거든. 초병 쪽에도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게 처음은 아니야.

초병 방호복을 입으면 알아보기 힘들다는 걸 알아차린 일부 사람들은 초병 방호복을 구한 뒤, 혼란스런 틈을 타서 상층 초병인 척하며 한몫 챙기려고 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괜찮아. 내가 상층 귀족들에게 가서, 이 일을 철저하게 조사해달라고 요청할 거니까.

대장님은 상층 귀족과... 연락이 되나요?

수송팀의 주요 임무를 그들에게 보고해야 하거든, 넌 이런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어.

하나만 명심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다음에 운이 없어서 진짜 초병을 만나게 된다면 넌 그냥 죽는 거야.

운이요...

그 녀석의 행실이 다른 초병과 같았더라면, 저같은 아이를 때리지 않았겠죠.

그러니까 네 말은 운이 좋아서 그런게 아니라, 생각하고 움직였다는 건가?

네, 레이첼 대장님. 전 충동적으로 행동한 게 아니고, 예전처럼 초병의 도발을 참지 못한 건 더더욱 아니에요.

뭐라고? 본인은 심사숙고했으니, 다음에 이런 일에 또 맞닥뜨려도 막아서겠다는 거니?

레이첼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을 똑바로 봐. 노안. 본인의 능력을 똑바로 파악해야 돼. 줄리의 말대로, 타협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안전을 지켜. 알겠니?

…………

타협하게 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머니처럼 죽을까요? 어머니가 정말 나쁜 일을 했더라도, 근위대가 말한 "법률"대로 처벌을 받았어야 했어요.

아무도 모르게 독살당하고 여태 살인범조차 잡을 수 없는 게 아니고요.

살인을 해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펠드 같은 무고한 사람도 결국 불행을 피할 수 없어요. 다음 차례에 우리가 죽을 수도 있어요.

…………

고개를 든 레이첼은 조금 여려 보이는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레이첼은 노안이 행동하게 된 이유가 어린 나이의 충동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말처럼 심사숙고해서 행동한 것임을 알게 됐다.

미안.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네. 난 너더러 타협하라고 한 거지, 포기하라고 한 게 아니야.

우린 영웅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원활한 처리 방식이 필요해.

네 분노는 이해하지만, 우린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 그런 순간 말이야.

알겠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노안.

그 짐승들을 향한 내 원한도 너 못지않거든.

…………

왔어? 대장님이 뭐라고 했어?

…………

설마 네게 벌을 주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알고보니 그 초병은 가짜였다고 하셨어.

가짜라고?

펠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밖에는 이런 일이 없니?

응, 적어도 내가 머물렀던 보육 구역에는 이런 일이 단 한번도 없었어.

보육 구역은 적합한 기술자만 수용하고 어려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고 들었어.

맞아. 확실히 그렇긴 해. 보육 구역에 거주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으니까.

펠드는 고개를 들어, 비취색 두 눈으로 위쪽의 어두컴컴한 등불을 바라봤다.

3년 전, 심사에 통과하기 위해, 동기 수험생을 다치게 한 사건도 있었어.

보육 구역을 지키는 구조체가 붙잡았는데, 퍼니싱에 침식돼서 이미 온몸에 궤양이 퍼졌어. 보육 구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퍼니싱 때문에 며칠 뒤에 죽을게 뻔했지.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을 다치게 했기 때문에 보육 구역에서 아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어떤 구조체가 너무 안쓰러웠는지, 그에게 혈청 한 개를 줬어.

그 다음날... 그는 혈청을 돌려주고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어.

어째서?

그 혈청이 있어도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이겠지,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어.

이게 바로... 바깥 세상인가?

맞아. 엄격한 심사가 보육 구역의 질서를 지켜줬지만, 동시에 구조가 필요한 많은 사람도 포기해 버렸어.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까지 매우 기대했었어. 아딜레 상업 연맹에선 그렇게 엄격한 심사 받을 필요가 없고, 열차는 이동하는 낙원이라고 들었어. 그래서 퍼니싱에게 영원히 침식당하지 않으며,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자와 웃음을 가져다준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거든.

낙원이라고?

응. 근데 지금 보니 매우 무식하고, 어리석은 단어였네.

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처음부터 이런 거야?

이곳은...

바깥과 마찬가지야.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에 상처를 입힌다 해도, 모든 힘을 다해 발버둥 치는 사람이 많아.

우리를 그런 태도로 대하는 것도 이것 때문인 거니?

그래.

펠드와 상층 칸 귀족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 사람들은 펠드에게도 익숙한 소외와 악의를 가지게 됐다.

펠드의 원래부터 신체가 허약했다. 거동이 불편한 것 외에도, 자주 미열이 나는 펠드를 노안은 사고를 피하고자, 최대한 도서 보관창고에 남아있게 했다.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아이들은 비밀 기지에서 서로를 도우며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무모한 항쟁이 있던 후, 노안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유쾌한 성격으로 태어난 세나는 구석을 배회하던 소년을 보게 됐다.

어쭈~ 꼬마 영웅, 우리랑 같이 밥 먹지 않을래?

네?

초대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던 소년은 다짜고짜 평민 칸의 칸막이로 된 식당에 끌려왔다.

엥? 방금 전까지 노안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걸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데려왔어요?

내가 데려온 거야!

무슨 일이죠?

노안, 너도 수송팀의 일원이고, 곧 모두와 함께 화물을 운반해야 하는데, 아직도 혼자 구석에서 숨어있으면 어떡해.

아니에요.

뭐가 아니야. 혹시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은 거 아냐? 아직도 줄리의 일 때문에 늙은이들과는 있어도, 수송팀 사람들과는 같이 밥 먹고, 대화를 나누고 싶지는 않은 거니?

여러분들이 절 신경 쓰고 있는 거잖아요.

사람은 바위가 아니야. 줄리한테 불만이 있다 해도,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걸 봤어. 그리고 레이첼이 이렇게 널 보호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게 될 거야.

예전에는 레이첼 대장님 빼고는 우릴 도와주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하시면...

제가 노안은 뒤끝 있고, 고집이 엄청날 거라고 말했잖아요.

왜 도와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몇 년이나 살았다고. 과거 네 어머니의 칸막이 방을 제외하고, 집 안 칸막이 침대 근처에만 있어서 그런가, 우물 안 개구리 같네.

그땐 네가 곤경에 휩쓸려 헛되이 목숨을 잃을까 봐, 줄리가 나오지 못하게 한 거겠지.

지금은? 지금은 숨으려고 해도 곤경이 찾아가잖아.

자신을 그렇게 가두고만 있으면, 누구도 널 도울 수 없어.

이 말은 마치 네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

닥쳐!

…………

신야의 말이 맞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노안은 주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였다.

그때의 소년은 온갖 종류의 책과 취미에 빠져 있어서, 사람들의 선의나 악의를 일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원인은 전혀 알지 못했다.

현재의 생활 환경은 행운의 박스 판매와 함께 점차 악화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사람들을 계속 외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노안은 계속 집에 방치되는 것을 거부했었다.

갑작스러운 선의에 적응하기 힘들다 한들 지금은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노안은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감사해요. 모두와 같이 행동할게요.

흔들리는 물방울이 조심스럽게 개울로 합류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뭐야, 설득된 거야? 그럼, 우리가 뭣 하러 그렇게 고민했던 거야?

고민이요?

하하, 가끔 그들과 식사 중에 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거든.

그들이요?

맞아. 신야, 위란하고.... 여튼 수송팀 핵심 멤버 몇 명 말이야.

왜 제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13살이 되기도 전에 수송팀에 들어왔고, 레이첼의 주변 사람이기도 하면서, 줄리 그 사건도 있었으니, 네 얘기를 하는 게 정상 아닐까?

…………

인상 쓰지 마. 그들이 널 욕하진 않았어. 지금은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또 레이첼 대장님이 사람 보는데 워낙 정확하니까. 그렇게 편견을 갖는 건 더 이상 아닌 것 같다고 말한 거야.

레이첼 대장님이 줄리와 친해서 널 혼자 두고 싶지 않은 줄 알았어. 하지만 전에 그 일을 통해... 다들 봤겠지만, 엄마와 아들은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겠더라. 괜히 뭐하고 더하면, 우리가 아이보다도 못한 것처럼 보였어.

엄마와 아들이 다르다고요?

누군가가 입만 열면 계속 줄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않았어도, 세나가 오늘 널 끌고 오지는 않았겠지.

넌 마치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구네.

내 말은 줄리가 평소에 얘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으니, 지금 당장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만들려면 좀 어렵다는 거지!

태어나자마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애가 어디 있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가뒀고 또 그런 자신을 받아들인 것뿐이겠지.

너 엄청 잘 아네?

세나의 농담에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노안은 계속 어리둥절해하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해?

아니요. 제가 뭘 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래요.

뭘 특별히 할 필요는 없고. 사람들이 너에게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고. 너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는 거야. 번거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양심의 가책도 필요 없어, 사람들은 서로 베풀면서 점점 돈독해지는 거야.

그러면 되나요?

당연히 아니지! 사람과 사람이 지내는 데에는 번거로우면서도 암묵적인 규칙이 엄청 많다고! 귀찮아 죽어!

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알기 전에는 솔직하게 사람들과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세나는 웃으며 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할 거 같으면, 내가 도와줄게.

우린 단결해야 해. 그날 네가 펠드 도와주러 간 것처럼 말이야. 서로를 도와야만 미래의 난관을 넘을 수 있어.

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사람들 속에서, 다소 어색한 자세로 테이블에 앉았다.

모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