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살아남은 부상자를 데리고, 세 사람은 재빨리 09호 의료 구역으로 향했다.
뭔 상황인데? 얘는 또 누구야?
이동 중에 습격당한 소대를 만났어.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어.
현장에 있는 한가한 난민들은 이곳의 인기척을 발견하자 다가와 주위를 둘러쌌다.
저도 도울게요.
네가? 난민은 그냥 얌전히 앉아있어.
저 사람은 의료 구역에 오기 전에 보육 구역의 기술자였어. 어서 그녀에게 길을 비켜줘.
탤버트보다 백배는 더 프로거든!
음...
하하, 그 정도는 아니에요.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죠. 그녀의 상황은 어떤가요? 의식의 바다에 문제가 있나요?
손상 부위가 많아요. 일부는 오래된 상처로 보이고, 나머지는 아직 검사 중이에요.
네, 제가 이 부분을 검사할게요. 나머지는 당신께 맡길게요.
네!
릴리안은 몸을 돌려, 의료 정비대를 끌고 온 뒤, 이름 모를 기술자와 함께 바쁘게 움직였다.
왜? 의료 구역이 예전과 다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나 봐?
그래. 예전보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낯선 얼굴도 많아졌어. 그런데 전처럼 혼란스럽지는 않네.
열차 붕괴 후, 탈출한 사람이 아주 많았어. 당분간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각 거점을 조직해 인력을 재배치했어.
열차.
이 두 글자를 듣자, 탤버트의 말투가 무거워졌다.
당시 사고가 너무 갑작스러웠어. 부상자도 많았고, 보급도 되지 않아서 난장판이었어.
이제 대부분 인간의 상처도 다 회복됐고, 모두와 함께 어울리면서 일을 분담할 수 있게 됐어. 환경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지만, 함께 서로 돕다 보면 좀 더 나아질 거야.
참, 너희들은 왜 이곳에 온 거야?
나랑 릴리안이 와서 주둔할 차례가 됐거든.
그래. 너희들과 같이 온 그 녀석은?
탤버트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은 어느새 의료 구역의 의료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청년은 다친 어린 남자아이 옆에서 붕대를 다시 감아주는 걸 도와줬다. 탤버트랑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너희 소대의 새로운 리더야? 아니면 대원인가? 인간과 쉽게 어울리는 것 같네.
나도 모르는 사람이야. 길에서 만났는데 릴리안의 말로는 기억상실에 걸려서, 자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드디어 리더 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은 줄 알았는데.
…………
지금 위에서 편성에 신경 써줄 겨를이 어디 있겠어. 인력은 그냥 잡히는 데로 일단 쓰고 보는 거지. 차라리 이쪽 인력들이 더 융통성이 있다니까.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무기를 닦았다.
그래.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 사건이 끝난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위에선 아직도 원상 복귀가 안 되는 모양이야.
어쩔 수 없지. 이재민을 너무 많이 데려가서, 그들이 생활하게끔 안치하는 것도만으로 아주 머리가 아플텐데.
그래도 전보다는 좀 나아졌어요, 공중과 지상의 왕복 수송이 회복되서 물자와 무기를 보충할 수 있게 됐어요.
끝났어요. 기본 검사와 치료를 좀 했는데, 의식의 바다가 여전히 혼란스러워요. 깨어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에요.
…………
이름이 뭐예요?
전...
전에 어느 소대 소속이야?
소대... 모두...
이름 모를 소녀는 횡설수설하며,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일단 그런 질문은 자제해 주세요. 그녀가 가진 의식의 바다는 불안정하고, 여기에 지휘관님도 없으니, 좀 더 쉬게 해주세요.
자, 다음으로 검사받을 분은요?
저에요.
청년은 들고 있던 의료용품을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진료대로 가서, 소녀의 옆에 앉았다.
…………
요즘 의식의 바다가 불안정한 사람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동료의 사지가 찢기는 걸 목격했는데, 의식의 바다가 퍽이나 안정적이겠어.
이런 환경이 계속된다면, 배신자가 몇 명 더 생긴다 해도 이상하지 않아. Ω 무기에 대한 새로운 소식도 없고, 버틴다고 해서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럼 배신하면 희망은 있고? 도망갈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해? 안전한 데가 있기는 해?
승격자를 찾으러 가는 거지.
야! 그런 말 하지 마!
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의회는 정작 카무 같은 수격자까지 받아들였잖아!
승격자가 된 누군가가 침식체를 제어할 수만 있으면, 쉽게 많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잖아!
네 생각은 이해하지만, 그 배신자 중에 돌아와서 모두를 도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정말로 돌아오지 못한 걸 수도 있잖아? 자료에 따르면, 극소수만이 그들이 말한 "선별"을 통과했어.
…………
정말로 누군가가 통과했다면, 그 힘으로 모두를 도왔을 거야.
승격자는 우리의 적일 뿐이에요.
그건 네 편협한 생각일 뿐이지. 승격자가 될 수만 있다면, 그 힘을 제어하는 건 자신이고, 어떻게 사용할지도 내 자유거든.
이 길이 여전히 위험하고, 내가 수격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해도 상관없어. 이 재난에 변화를 줄 수만 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거야.
마치 계획을 다 짠 것처럼 말하네?
…………
너 설마... 야, 정신 차려. 그곳에 가더라도 침식체가 될 뿐이야. 결국 처리하는 건 우리라고.
침식체가 되지 않는다면?
요행을 바라지 말아요. 젊은이.
당신들이 말한 그 승격자가 대체 얼마나 좋은 능력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퍼니싱이 가져온 재난이 몇 년 동안 계속된 마당에 이런 방법이 통했다면, 진작에 구세주가 나타났겠죠.
차근차근 착실하게 이뤄나가야 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해요!
탤버트는 화를 내며, 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격렬한 충돌 소리는 주변의 주의를 끌게 되었고 사람들은 점차 조용해졌다.
차근차근? 1초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차근차근 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탤버트...
차근차근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데요? 우리가 뭘 막을 수 있는 건데요? 눈에 보일 정도로 침식체가 줄어들었는데 또 이합 생물과 적조가 나타났잖아요. 퍼니싱은 영영 제거되지 않는다고요!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요!
탤버트. 주인! 그녀는 죽었어! 주인은 죽었어!
열차가 완전히 붕괴될 줄 알았으면 난 안나가 엘리트 소대와 함께, 열차에 올라 망각자들을 호송하는 것을 막았을 텐데...
하지만 결국 안나를 막지 못했고, 지키지도 못했어요!
열차?
탤버트! 그만해!
방금 네가 한 말만으로도, 정화 부대에 보낼 수 있어! 저 어르신도 나쁜 마음 품고 한 얘기도 아니고, 사실은 맞는 말씀이잖아.
하늘이 내린 재능만으로 승격자가 될 수 있었다면, 진작에 구세주가 나타났을 거야.
그건 정답이라 할 수 없어, 수격자가 할 수 있는 일도 매우 한정적이니가. 우린 다른 길을 찾아야만,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
…………
어르신께 사과드려. 너희 둘의 그 유치하고 무모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또 이러면, 정화 부대에 보고하겠어!
너!
죄송해요.
고개를 숙인 탤버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의 수군거림을 큰 걸음으로 가로질러, 의료 구역의 칸막이 방을 떠났다.
탤버트!
탤버트가 떠나는 걸 본 릴리안도 급히 뒤를 쫓았다.
어디를 가시려는 건가요?
청년도 두 사람을 따라 나가려 했지만, 청년의 검사 담당한 기술자가 말렸다.
일단 검사부터 마치고 따라가봐요!
우리도 따라가자!
가자!
탤버트.
후...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최근에 구조체 대원들이 반복해서 이런 일들을 토론하는 게, 제가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때 그 수법이랑 같지 않아요?
거절할 수 없는 호재를 가지고 와서, 거짓말을 하는 거죠. 한몫 챙길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돈 뜯어내려고 하는 거죠.
하하, 폰지 사기같네. 지금 "행운의 박스" 그 일을 말하는 거지?
행운의 박스?
그건 폰지 사기일 뿐만이 아니라, 도박까지 있어서, 네 부모님까지도 속일 수 있을걸.
그건 뭣 같은 귀족이 팔라고 한 거 아니야? 오슬란의 생각이라고 들었는데, 그들이 말하는 승격자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관련이 없어. 다만 방법이 비슷할 뿐이야. 사람을 잡아먹지.
만 명 중 한 명이 귀족의 개가 되면, 남은 9999명은 예외 없이 모조리 잡아먹히는 거지.
귀족?
적어도 배신한 구조체는 운이 걸린 "승차권" 뽑기는 할 필요가 없잖아.
하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어야 하잖아.
그럼, 네가 말해봐. 이길 수 있겠어?
이대로는 절대 이길 수 없어. 그때도 마찬가지였잖아? 결국엔 싸움판이 돼서,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지.
열차가 기억났어.
사람들의 토론을 들으며, 천천히 두 눈을 감은 청년에게 과거의 기억이 조수처럼 쏟아졌다.
그 "행운의 박스"가...
하층 칸을 부패하게 한 원인 중 하나였어.
처음 "행운의 박스"라는 단어를 들었던 게, 9살 전이었던 거 같아.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너무 오래돼서, 생각이 나질 않아.
당시 상층과 하층 칸의 충돌은 극소수의 사람들 사이에만 있었고, 하층 칸은 그다지 혼잡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층 초병은 예의 바른 편이었다.
어머니는 이전의 아딜레 상업 연맹이 "혼란의 경계에 있고, 아직도 이를 넘지 못했다"라고 말했었다.
이곳이 오늘의 작업실이야. 물건들을 모두 쌓아두고 정리해 놓았어. 예전과 같이, 작업한 만큼만 결산할 거야. 수고해.
초병은 선택된 10명을 데리고 물품 칸으로 진입했다. 그 안에는 대량의 잡화와 회수한 정교한 종이 박스가 있었다.
좋았어. 오늘도 "행운의 박스"를 만드는 간단한 작업이네. 편하겠어!
맞아. 일이 비교적 심플하고 양에 따라 결산 되니까, 대장님이 괜찮은 아이들을 배치해서, 용돈이라도 벌라고 하셨어.
문제없어요. 후방 지원 부대의 간단한 일 말고는 수입이 없으니, 노인분들 모셔 와도 되겠어요.
알겠어. 확실히 그게 좋겠군. 내가 대장님에게 의견을 전달해 보도록 하지.
상층 초병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무리를 떠났다.
"행운의 박스"를 만들 때,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박스에 넣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맞아. 이 회수된 종이 박스를 다시 접어야 해. 더러운 곳은 닦아내고, 잡화상자 안의 물건을 하나씩 넣어서 밀봉하면 돼. 무엇이 됐든, 하나만 담아야 한다는 거 잊지 마.
알겠어요. 고마워요.
진짜 이렇게 어린 아이를 데려와서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문제 될 것 없어. 일도 간단하고, 보급을 받을 수 있어서 좋잖아.
어린 소년이 종이 박스를 들어,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박스 안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허름한 부품, 포장돼 있지 않은 약물 그리고 오래된 일용품들이 꽤 들어 있었다.
이런 쓸모없는 것들 말고도, 반짝반짝 빛나는 카드 한 무더기가 금속 박스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것은 유난히도 아름다웠다.
아저씨, 이 카드는 뭔가요?
그건 "행운 카드"야.
행운 카드요?
그래. 행운 카드는 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운이 좋아야 구매한 박스에서 찾을 수 있지. 그래서 행운 카드라고 해.
앞으로 누군가가 산 "행운의 박스"에서 "행운 카드"를 찾으면, 그는 이걸 가지고 열차에 올라타, 모두와 함께 살 수 있어.
왜 행운 카드가 있어야지, 모두와 함께 살 수 있는 건가요?
하하, 열차 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행복하겠구나. 나가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야.
알아요. 어머니한테 바깥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길 들었어요. 왜 카드가 있어야 열차에 탈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열차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승차권"을 사야 탈 수 있어. 넌 승차권을 아니?
소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는 말이야.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난민 거점, 의료 구역, 보육 구역과 같은 곳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적당한 나이에 일할 수 있는 사람만 받거든.
어려운 사람을 구한다 해도, 오래 버틸 수 없어. 물자가 한정돼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식량만 축내는 사람을 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안전하고 안정적인 곳일수록, 직원을 채용할 때, 기술에 대한 심사가 더 엄격하지.
심사에 통과한 사람들은 가족을 데리고 살 수 있어. 하지만, 아직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거나, 가족이 심사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아.
그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적당한 장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야. 그리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험하고 먼 길을 여행하는 것도 너무 위험하지.
그래서 그들은 열차를 통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건가요?
그래. 그리고 열차도 기술 심사를 해야 하긴 하지만, 계속 사람을 모집하긴 해.
수송 부대든, 수리 부대든, 후방 지원 부대 아니면 상층 칸의 초병과 근무자 할 것 없이, 모두 기술과 신체 소질이 합격한 인원만 받아들여.
어디를 가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럼, 기술이 필요 없는 육체노동만 해야지. 지금도 그런 사람들은 아주 부족해.
하지만 대부분은 일시적으로 부족한 거라, 다 쓰고 나면 필요가 없게 돼. 그래서 그들은 평소에 밥만 먹는 사람들을 수용해서 일시적인 필요에 대비하는 것을 싫어해.
우리가 이렇게 박스에 승차권을 넣으면, 운이 좋은 사람은 그걸 사서, 심사받지 않고 열차에 탈 수 있어. 그럼, 그들이 주거할 수 있는 지역에 데려다 주거나, 유동적으로 여러 곳을 지원하는 새로운 소대를 편성해, 모두와 함께 일할 수 있어.
상층은 일부 물자를 더 받을 수 있고, 하층도 추가로 조력자를 더 받을 수 있어. 그리고 여기저기 지원해야 할 곳도 해결할 수 있지. 박스를 만드는 일도 노인과 아이들에게 분배하면, 모두가 물자를 챙길 수 있게 돼.
음.
내 생각에는 매우 괜찮은 것 같아!
그들은 앞으로의 일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 후.
행운의 박스가 인기를 끌면서, 하층 칸 안에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다른 거점에서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고, 이들이 열차에 오르기 전에 했던 일도, 열차에 필요한 인재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 직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한 상층 칸에 거주하는 귀족들은 모든 고정 직업이 없는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일벌"이라는 부대를 편성했다.
"일벌 부대"는 각종 잡무의 하청을 받기 위한 부대였다. 어떨 때는 보육 구역을 재건하는데 보내지기도 했고, 어떨 때는 밭을 갈구는 것을 도왔다. 폐허로 막힌 도로를 청소해, 수송팀의 업무도 지원하곤 했다. 심지어 어떨 때는 임시 용병까지 맡았다.
하지만 대부분 시간을 공업 칸에 남아있거나, 각종 공장으로 이동해, 안전하게 작동하지 않는 로봇을 대신해 허드렛일했다.
여기까지 일의 진행 상황은 모두가 예상한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허드렛일"이라 하더라도,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일벌 부대는 아무런 평가도, 조금의 기술 심사도 없이 인원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대에 협조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들어가게 됐다.
난 어제 보육 구역에서 조롱당했어.
"일벌" 때문에?
글쎄 그게 말이야. 다들 함께 거점에서 황무지를 개간한 다음 보수를 받았는데, 그중 누군가 먹고 나서 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힘들다고 울부짖었거든.
하하, 이젠 놀랍지도 않아. 이 지경에 행운의 박스를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봐.
어린애들은 태어날 때 이미 학교가 없어진 뒤라서, 거의 기술도 배우지 못했고.
나이가 많은 사람 중 일부는 과거에 예술 창작, 공연, 게임 디자인 같은 직업에 종사했어, 말하자면 평화로운 시대에서 먹고 살 수 있는 직장이지.
내가 막 직업 차별을 하는 건 아니고. 보육 구역에도 그 업종들로부터 넘어온 사람이 많이 있거든.
난 아직까지 취직도 못 하고, 스캐빈저도 하기 싫은 그놈들을 말하는 거야.
그런 놈들 막노동시켰었는데, 지금까지 큰 사고가 안 난 게 기적이지. 견디지 못해서 뭐라고 한 사람이 몇몇 있긴 했는데, 그 정도면 정상이라고 생각해.
정상? 헐... 확실히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게 적절한 걸까? 아딜레 상업 연맹의 신용도에 먹칠하는 거잖아.
이런 구질구질한 일이 많아지면, 우리 수송 부대도 힘들어질 거야. 지금 보육 구역의 일부 사람들은 아딜레 상업 연맹이라고만 하면 네가 어느 부대 소속이든 안 좋게 보고 있어.
네가 좀 참아줘. 적어도 일하러 나간다는 게 어디니, 열차 칸에 틀어박혀서 네 베개 밑에 숨겨둔 빵을 훔치려 하는 놈도 있는데.
할 줄 아는 게 없는 놈들인데, 바깥의 거점들도 참나... 어떻게 '일벌' 출신인 사람들을 고용하는지 몰라.
귀찮은 막노동도 누군가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 또 매일 그런 수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데리고 있으면 귀찮아질 뿐이잖아. 어차피 열차는 이곳저곳을 도니까, 그들을 데리고 여기저기에 도움을 주는 셈이지.
그럼 상층 칸 사람들이 그놈들을 좀 키워주던가! 지금 하층에 사람이 계속 많아지고, 생활 공간도 점점 더 좁아지고 있어. 행운의 박스로 벌어들인 물자는 아예 보이지 않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시켜서 박스나 만들라고 하는 건지!
…………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접고 있던 박스를 무의식적으로 내려놨다.
[--], 우린 계속하자. 오늘 이 일을 끝내지 못하면, 초병들이 우리 보수를 차감할 거야.
하지만, 힐 아주머니, 이 박스는...
모두 불평은 그만. 이번 행운의 박스를 다 팔면, 그 뒤로는 박스에 "승차권"을 많이 넣지 않을 거라고 위에서 말했어. 그러면 열차에 올라타는 사람이 적어질 테니, 점차 좋아질 거야.
쯧쯧, 입만 열면 구라네요.
우리는 뭐 좋아서 하루 종일 이런 번거로운 일을 처리하고 있는 줄 알아?! 젠장, 우린 일벌의 도우미 아줌마처럼 살고 있다고!!
하층 칸의 후방 지원 부대는 일이 많아서 죽을 것 같고, 또 귀족 어르신들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날 찾아서 욕을 하시고! 나만 위아래로 욕먹는다고!
그럼, 귀족 어르신한테 가서 돈에 미친 마음을 거두라고 하세요!
그는 화를 내며 침을 뱉고는 돌아서서 붐비는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
뭘 봐!! 빨리 박스나 접어!! 효율이 미달인 사람은 보수를 받지 못할 거야!!
하지만 이건 너무 많은데요.
하? 고작 박스 접는 걸 가지고 불평하는 거야? 너희들은 하루 종일 불평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야? 이렇게 손쉬운 일을 맡겨준 걸 복이라고 생각해. 원하지 않는다면, 용병이 돼서 목숨을 걸던가.
…………
[--], 저쪽 구경은 그만하고. 우리도 빨리 박스나 접자.
네.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논쟁, 근무 중 쌓인 불만,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
소년은 사람들 사이에서 쌓여가는 갈등이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조용히 커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소년이 11살이 되던 해까지, 이런 갈등은 쌓여 큰 눈덩이가 됐다. 그리고 과거에 빈둥거리는 사람들을 수용했던 하층의 음식 칸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어른들은 어떡해야 할지 모를 불안과 공황을 억누르기 위해, 몇 안 되는 음식에서 절반을 나눠 양조주와 궐련을 교환하는 데 썼다.
어쩔 수 없었던 아이들은 담배와 술 냄새가 풍기는 환경 속에서 삼키기 힘든 점심을 먹어야 했다.
또 비지로 만든 수프예요? 맛없어요. [--] 오빠, 손에 든 게 뭐예요?
너랑 같은 건데. 우리 어머니께서 사탕 한 개를 더 주셨을 뿐이야.
부럽네요.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인 여자아이는 콧물을 훌쩍였다. 그리고 소년을 본 뒤, 옆에 있는 남성을 바라봤다.
마이크 아저씨.
왜? 날 부르면 무슨 소용이 있니? 쟤 엄마가 따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데, 조금 슬쩍 하는 것도 쉽지 않겠어?
이 말은 내가 차마 못 들은 척할 수 없겠는데, 줄리는 아무 문제 없다고!
없다고? 몰래 초병에게 얼마나 찔러줬는지 모르지, 아들래미는 늘 행운의 박스 같은 좋은 일만 하잖아.
아니에요. 몇 년 동안 총 3번만 갔었어요!
소년은 손에 쥔 사탕을 여자아이 앞에 놓았다.
이 사탕도 오늘 제 생일이라서...
아...
받아. 어차피 얘네 집에는 사탕 많으니까.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네? 네 조카딸한테 이런 모범을 보일 거야?
…………
식탁 위의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았고, 대원과 한 테이블에 모여 식사하던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줄리는? 아직도 너와 같이 밥을 먹지 않니? 네가 아직 밖에 있는데 걱정도 안 된대?
근데 그거 들었어? 이번 달에 또 몇 명이 죽었대.
옆 식탁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목소리가 들리자, 노인은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더 이상 그 화제를 이어가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L 열차 칸 쪽에서 여자아이 한 명이 저혈당으로 급사했대.
저혈당? 그렇다면 산 채로 굶어 죽었다는 거잖아?
그리고 다른 두 명은 재건하러 갔을 때, 폐허 구역의 벽이 쓰러졌는데, 그 밑에 있었다나 봐.
그들이 배상은 했어?
했어. 하지만 한 명은 가족이 없어서, 배상을 초병이 가져갔고, 또 한 명은 아이밖에 없는데도 가져갔어. 말하기로는 달마다 아이에게 준다는데,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
짐승 같은 초병들. 법률로 처벌할 수 없다고, 사람이 죽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어!
어떨 때 보면, 난 저자들이 고의로 저러는 것 같아! 사람이 죽으면, 그들이 돈을 받으니 몇 명 더 죽길 바라는 거겠지!
무서우면, 수송팀처럼 상층 초병에게 뭘 좀 찔러줘 봐. 그들이 이익을 얻으면, 널 위험한 곳에 보내지는 않을 거야.
일벌 대원들은 곁눈질로 옆 테이블의 수송팀을 봤다. 그러자 수송팀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 수송팀은 왜 이렇게 좋은 걸 먹는 거야.
저건 좋은 게 아니야. 내가 막 열차에 탔을 때, 수송팀은 더 좋은 것들을 먹었어.
처음에는 열차에 타면, 음식과 숙박 조건은 수송팀과 똑같이 대우로 해준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어?
이 거짓말쟁이들! 조만간 모두 죽여버릴 거야!
어? 뭐라고? 행운의 박스를 팔자고 한 건 우리가 아니잖아. 무슨 문제가 있으면 위로 반영하던가!
너희들이 얻는 게 없다고? 때려죽여도 안 믿어!!
모두 그만!!
이곳에 기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레이첼의 보살핌을 받았기에, 하층 칸에 있는 한, 수송 부대든 일벌 부대든 레이첼에게는 대들지 않았다.
레이첼은 모두의 영웅이며, 가장 확고한 리더이자, 끊임없는 물자 창고였다. 일시적으로 부족할 수 있지만, 며칠 후엔 어떻게든 도움을 줬다.
레이첼은 도대체 어떤 마법을 썼길래, 물자가 이렇게 빠듯할 때도 보급을 찾을 수 있었던 걸까?
소년은 이 문제를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년이 레이첼에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전 추가적인 보수가 있어요."와 같은 소년의 나이에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대답뿐이었다.
이대로는 방법이 없어요. 레이첼 대장님
나도 알아. 하지만 여러 번 말했듯이, 행운의 박스를 거절하면, 상층 칸에서 다른 협력사를 찾을 것이고, 우리의 처지는 조금도 변하지 않을 거야.
그동안 파업과 항의를 했었지만, 열차는 결국 그들의 것이었지. 귀족을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어.
그럼, 대장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들 날 믿는다면, 좀 더 기다려 줘.
…………
여기 앉아 있는 사람마다 비슷한 불행이 있었다. 행운의 박스를 구매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물자를 다 써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안식처를 위해 행운의 박스를 판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안전하게 보급받기 위해서 박스를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행운의 박스"는 사람들의 몸 위에 있는 거대한 바위처럼, 만지는 사람을 심연으로 끌어내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더 나은 탈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열차를 떠나면, 황량한 대지, 끝없는 방랑, 약탈과 수집만 남는데, 그때 그들은 누구를 증오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침묵하는 사람들은 "믿는다" 혹은 "안 믿는다"라는 답을 얻지 못한 채, 개체나 집단이 폭발하는 그날까지 계속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