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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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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2-03 길 잃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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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어야 했다.

소년은 레이첼이나 그녀의 대원이 보낸 "귀대 암호"를 듣지 못한 채, 밤늦게까지 도서 창고에 혼자 남아 있었다.

단말기에 표시된 시간이 새벽 4시를 넘어서자, 소년은 결국 불안감을 억누르지 못하고, 통풍 파이프를 타고 살금살금 소년과 어머니의 거처로 돌아갔다.

문을 아주 살짝 열어보니, 어머니의 칸막이 방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늘 듬직했던 레이첼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눈살을 찌푸리며 어머니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수송 부대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건 처음이 아니야.

이번엔 내가 그런게 아니야.

예전에는 그랬다는 거야?

그럴 리 없잖아.

예전에 몇몇 정신 나간 놈들이 물건에 손을 대려고 했지만, 모두 내게 잡혔지. 넌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거야.

알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이 네가 그 물건들을 가져갔다고 지목했어.

넌 날 믿어?

…………

날 못 믿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지금 더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을 테니까.

???

……?

방금 한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소년은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넌 후회해?

후회하지 않아. 그 폭동은 있을 수밖에 없었어.

…………

하지만... 너한테는 미안해.

그는 네가 죽인 게 아니라, 범인이 그 폭동을 이용했을 뿐이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린 모두 오슬란에게 이용당했어.

…………

이용... 하...

나도 오슬란과 그 쓸모없는 황족들을 이용하고 있어.

레이첼은 이를 악물며 말을 내뱉었다.

오슬란에게 "반기"를 들 준비가 덜 됐어, 아직까진 그를 통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

…………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난 절대 귀족의 앞잡이가 되지 않을 테니까!

…………

소년은 어머니와 레이첼의 대화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들이 싫어하는 사람과 계속 협력을 하는 것 같았고, 수송팀에 화물을 슬그머니 훔치는 도둑놈이 숨어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다.

이런 화약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화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으며, 소년은 이런 대화의 의미를 물어보려 할 때마다, 틀에 박힌 말만 돌아왔다.

어머니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넌 이제 11살 어른이다."라는 말을 했지만, 대답하기 싫은 문제가 생겼을 땐, 여전히 "넌 아직 어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라는 말을 내뱉었다.

아사는 어떻게 됐어?

어머니는 방금 그 화제를 이어가지 않았고 레이첼의 친구에 대해 물었다.

소년은 아사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레이첼과 아주 친했고, 일을 하든 술을 마시든 항상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면 하층 칸 일꾼들은 장난치기 일쑤였다.

둘이 언제 애 낳을 건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사는 웃음을 터뜨리며 반박했다.

됐어. 난 상냥한 여자가 좋아.

아사도 다쳐서 쉬러 갔어.

두 사람은 흔들리는 열차 소리 속에서,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오늘은... 고마웠어.

앞으로 조심할게.

그래.

레이첼은 몸을 일으켜, 칸막이 방의 커튼을 열고 나서야, 뒤에 숨어 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

다녀왔어요.

…………

[--], 방금 우리가 한 말은 어디 가서 말하지 마.

네.

…………

말하지 않을게요.

…………

줄리, 너도 애한테 뭐라고 하지 마.

들어가. [--], 잘 시간이야.

…………

어머니.

예전에 레이첼 이모가 어머니에게 잘못한 일이 있는 건가요?

그는 방금 들었던 대화 내용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모가 언급했던 그 폭동... 혹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의 일인가요?

너는 아직 어리니, 알 필요...

저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그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반항했다.

전 혼자서 수리 부대에서 일할 수 있어요!

그것이 거짓말일지라도, 절실히 진실을 알고 싶은 소년은 무모하게 그것을 자신의 카드로 삼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일?

네가 대체 어디에 가 있었는지 내가 모를 것 같니?

레이첼이 9살짜리 애가 수송팀에 가는 건 위험하다고 했고, 게다가 책은 독학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어. 그리고 그곳에 있으면 초병과 마주치는 걸 피할 수 있다고 해서, 레이첼의 제안을 묵인한 거야.

…………

들어가서 자.

하지만...

들어가서 자.

…………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사소한 억압이 결국 이 달래는 듯한 '명령'에 와르르 무너졌다.

어머니.

왜?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절대 이런 곳에 머물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머니가 마녀라는 말을 듣게 하지도 않았을 거고, 또 어머니가...

어머니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겠죠?

들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난 바빠서 그런 헛소문에 아랑곳하지 않아.

하지만... 그말을 들었을 때, 어머니는 괴롭지 않으세요?

괴로운 게 무슨 도움이 되니? 괴로우면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있어?

소용없다고 해도 괴로움은 부정할 수 없잖아요?

…………

그렇다 해도 뭘 어쩌겠어... 이런 감정들에 얽매이면 살아남기 힘들기만 하겠지.

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다... 난 더 이상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도, 심지어 슬퍼할 권리도 없어.

소년의 굳은 표정을 보며, 어머니는 처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현재 상황을 설명해 줬다.

오셀럼호는 전부터 계속 혼란에 처해있었다. 지옥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린 각자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어.

어떤 사람은 폭력을 택했고, 어떤 사람은 계책을 세웠지.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

사람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모두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고 또 그 길이 무너진 이후에 따르는 대가를 치러야 했지.

어머니는 떨리는 손끝으로 가면의 가장자리를 매만졌다.

레이첼은 이 상태를 타파하고 싶어 했어. 그리고 그때, 네 아버지는 상층 칸의 귀족으로서 부패 근원 중의 일원이라고 볼 수 있었지.

나도 네 아버지에게 생각을 바꿔보라고 권장했지만, 계획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어. 레이첼이 죽이지 않았어, 다만 범인은 그녀가 일으킨 혼란을 이용했지.

…………

상층 칸에 네 아버지와 같거나, 그보다 더한 사람들이 많아.

그는 자신의 변화를 증명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 내가 슬퍼한다 해도, 하층 칸에서는 아무도 내 감정을 인정해 주지 않을 거야.

모두가 보기에 난 귀족의 "졸개"이니, 그들이 날 대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있어.

어머니...

내가 밉니? [--].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하층 칸에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미움 받지는 않겠지.

…………

우린 여기를 떠날 수는 없는 건가요?

밖에는 더 잔혹한 세계일 뿐이야. 퍼니싱은 인간이 생존할 땅을 빼앗아서, 안전한 곳이라곤 여과탑 근처밖에 없어.

내가 아직 이곳에서 일하고 있으니, 넌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거야. 만약 어느 날 내가 사라졌는데 넌 자신을 먹여살릴 능력이 없다면 넌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고 결국 스캐빈저가 되겠지.

그날이 오면 넌 음식도, 거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 침식될 수도 있어. 네가 쉬고 싶을 때마다, 침식체가 떠돌아다닐 것이고 강도까지 널 찾아올 거야.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레이첼을 믿어 봐. 그녀는 상층 칸 귀족들의 억압을 타파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레이첼 이모는 모두의 리더가 되려고 하는 건가요? 책 속의 영웅처럼요?

그래.

어머니의 한숨 속에는 많은 말들이 숨겨져 있었다.

어머니도 이모를 도와주시는 거예요?

그래. 내가 도와주고 있어. 레이첼의 수단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나에겐 뭐라고 할 자격이 없어.

난 인심을 사는 법조차 모르니까.

그녀는 자기 가면을 다시 한번 만지면서, 얼굴에 잘 씌워져 있는지 확인했다.

내가 너만 했을 때, 가장 큰 꿈은 사업가가 돼서, 다른 사람을 위해 부족한 것을 가져다주는 거였어.

결국...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건, 내 미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

미래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세월에 가라앉은 이야기를 가면 속에 파묻고, 어떤 구체적인 줄거리도 밝히려 하지 않았다.

왜 자신의 미래를 파는 건가요?

내가 가져서는 안 됐을 물건을 사기 위해서야.

속수무책인 일반 사람이 영웅이 되려면, 때때로 매우 쓰라린 대가를 치르게 되고, 심지어는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말려들게 하지.

그 말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찔렀다.

어머니...

[--], 최근 며칠을 통해 나도 깨달았어. 넌 천재도 아니고, 독학으로 기술을 배우기는 너무 어려우니, 선생님이 필요해.

네 13살 생일이 지나면, 레이첼은 널 그녀의 수송팀으로 데려갈 거야.

네가 아무리 싫다 해도,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해. 이제 늦었으니 자라.

싫어요. 방금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신 거죠? 미래를 판다는 건 무슨 의미죠? 어디에 가는 건가요?

자라.

그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낡은 이불을 끌어당겨, 소년의 몸에 덮어줬다.

안 돼요. 아직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어서 자.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었고, 말투는 경고하는 듯한 엄격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는요? 오늘은 이곳에 남을 건가요?

어머니는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는 가면을 넘어,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기침을 했다.

감기 걸리셨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년 옆에 같이 눕고는 살짝 손을 들어 옆에 있는 아이를 쓰다듬으면서, 아주 오래전에 했던 것처럼, 다정한 자장가를 불러줬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아이야. 어서 자자~]

[반딧불이 반짝반짝 빛을 내네~]

[달빛이 세상을 뒤덮고, 수많은 별이 너와 함께 하길~]

[한여름 밤의 꿈처럼 편하길~]

[희망이 영원히 네 곁에 있길~]

[반딧불은 마치 대지에서 춤추는 유광과도 같고~]

[그리움을 장식하네~]

[걱정마렴~ 외로운 아이야~]

[그들이 너와 긴 밤을 함께 할 거야~]

[날이 밝은 뒤, 좋은 아침이라 인사하고~]

[그리고 안녕이란 말을 전하겠지~]

청년A

…………

긴 추억에서 깨어난 청년은 어젯밤의 구조체 소대와 지휘관이 모두 떠난 것을 발견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구조체 소녀가 노래를 부르며, 손 안에 부품으로 만든 장난감을 수리하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깨운 건가요?

아, 내가 펜을 든 채 잠이 든 건가?

네, 날이 밝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임무 수행하러 갔어요.

전 릴리안이에요. 다른 분들한테서 들었는데 기억상실이라면서요? 잠시 후 저와 함께 09호 의료 구역으로 가요.

09호 의료 구역? 어제는 더 나은 곳에 가서 추가 검사와 치료를 받으라고 권유받았어. 하지만, 09호 의료 구역으로 가라고 하지는 않았어.

근처에 더 좋은 곳은 그곳밖에 없어요. 수송차가 오면, 바로 갈 수 있어요.

지금 떠올린 게 있나요? 예를 들면 자기 이름 같은 거요.

사실 여러 가지가 생각났는데, 유독 이름만은...

기억상실 전에 자기 이름을 싫어했나 보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우리 멘토님이 그러셨는데, 부상을 입었을 때, 회피하고 싶은 기억 데이터는 흔히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어쩌면 당신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정말 릴리안이 말한 대로라면, 왜 가장 기억하기 싫은 것이 자신의 이름이었을까?

제가 괜한 말을 한 걸까요?

아니. 그냥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그래.

근데 방금 여러 가지 떠올렸다고 하지 않았나요?

응. 하지만 모두 12살 이전의 일이고, 가족과 선배 그리고...

본적이 있는 그림책과 만화책이었다.

(어째서 책의 모든 내용을 떠올린 거지?)

그리고 뭐가 더 있나요?

언급할 가치가 없는 자질구레한 일들이야.

당신이 악당이라는 부분에 대한 건가요?

아쉽지만, 그것도 아니야.

바꿀 수 없는 처지, 유지할 수 없는 취미 생활, 가끔 도움을 주러 오는 이모 그리고 거의 아무 말도 안 해주는 어머니에 대한 건데.

정말 평범하네요. 게임에 넣으면, 분명히 캐릭터 이미지가 없는 행인A가 되겠네요.

그렇게 말하니 맞는 것 같기도 해. 그럼 평범한 사람도 악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

오히려 평범하고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없기에, 무력감에 떠밀려 나쁜 길로 가기 쉬울 것 같아요.

속수무책인 일반 사람이 영웅이 되려면, 때때로 매우 쓰라린 대가를 치르게 되고, 심지어는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말려들게 하지.

청년A는 다시 한번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남은 기억 속에서 청년A는 죽음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 낯선 몸으로 멀쩡히 서 있는 기적의 대가는 과연 무엇일까?

…………

수송차가 도착한 것 같아요. 그들은 당신의 무기를 이곳에 남겨뒀으니, 챙기세요. 이제 같이 가요.

릴리안은 반쯤 수리한 장난감을 움켜쥐고,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청년은 그것이 부품으로 만든 반딧불이인 것을 알아차렸다.

잠깐만. 손에 있는 그건... 어디서 구한 거야?

이 반딧불이 장난감 말인가요?

오다가 밖에 떨어져 있길래 주웠어요.

한번 봐도 될까? 낯이 익은 것 같아서 말이야.

릴리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며, 손에 든 망가진 반딧불이를 청년의 손에 올려놓았다.

…………

이 장난감은 톱니바퀴와 폐전구로 구성됐는데 머리를 돌리면 반딧불이의 날개가 펄럭였다.

하지만 지금은 날개가 연결돼 있던 신체는 무엇에 명중당한 듯, 부자연스럽게 휘어져 있었다.

이 흔적은...

상처 또한 기억의 일부야.

?!

그 순간, 가슴의 극심한 고통은 말할 수 없는 어떤 악의와 함께 퍼져나갔다.

청년이 처음 깨어났을 때, 느꼈던 강렬함과 비슷했다.

어떤 일은... 처음부터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