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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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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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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그것은 '사랑이라는 지식'에 관한 가장 고통스러운 순교였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갈망하던 영혼이 겪어야 했던 순교였다.</i>

<i>인간의 사랑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마음. 오직 사랑하고 사랑받기만을 원했던 그 마음은</i>

<i>굳건하면서도 광적인 폭발로 사랑을 거부하는 모든 것에 맞섰다.</i>

<i>이것은 사랑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한 가련한 자의 이야기다.</i>

<i>그는 지옥을 만들어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자들을 모두 그곳으로 보내야만 했다.</i>

<i>그는 인간적인 사랑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모든 사랑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화신인 신을 만들어 내야만 했다.</i>

<i>인간의 사랑은 너무나 가련하고, 너무나 무식했기에, 그는 인간의 사랑을 가엾게 여겼다.</i>

<i>이런 감정을 품고, 사랑을 이토록 깊이 이해한 자는... 죽음을 갈망하게 된다.</i>

<i>하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게 아니라면, 왜 이런 고통에 매달려야 하는가?"</i>

날이 밝고, 톱니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이스마엘의 "인도"의 힘으로 만들어진 세계는 소중한 "두 번째 날"을 맞이했다.

인간은 스스로 잠에서 깨어났다. 햇살이 커튼 틈새로 들어와, 공기 중의 먼지를 반짝이게 비췄다.

침대는 여전히 포근했고, 침대 머리맡의 책들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단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인간은 손을 뻗어 옆 베개를 더듬었다. 천의 감촉을 따라 아래로 쓸어내렸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이스마엘은 역시나 없었다.

라헤일, 지하실에서 이스마엘 못 봤어요?

이사의 당황한 목소리가 아래층에서부터 들려왔다. 곧이어 "쿵, 쿵, 쿵"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소리와 함께 다락 입구에 이사가 불쑥 나타나 목소리를 높였다.

위층에도 없네... 큰일이야, 이스마엘이 진짜 사라졌어!

짐까지 챙겨서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인간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옷깃을 여미는 순간, 차가운 무언가가 빗장뼈를 타고 흘러내려 침대 위로 툭 떨어졌다.

숫자 "1"에 핏자국이 묻은 주사위였다. 인간은 그 주사위를 집어 드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뭐라고?

세상에, 이스마엘이 사라진 것도 모자라서, 이제 너까지 미친 거야? 왜 다들 하나같이 이 모양이냐고!

바로 그때, 라헤일이 다락으로 올라와 의아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네가 이스마엘이 데려온 그 인간이구나. 말해 봐.

인간은 이스마엘이 남긴 주사위를 쥔 채, 이사와 라헤일이 모두 알고 있는 그 말을 반복하는 대신,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확 젖혔다.

너무 오래 방관했던 탓일까, 아니면 너무 조급했던 탓일까... 해와 달이 놀랍게도 본래의 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오늘의 태양은 흰색이었다.

인간은 창백한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인간은 손안의 주사위를 쥐고, 마치 이스마엘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눈부신 시선이 손에 쥔 주사위에 단단히 고정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기이한 웃음소리를 내는 듯하더니, 주사위를 던졌다. 그러고는 던져진 결과를 손으로 확 덮었다.

햇빛이 순간 흔들렸다.

인간은 운명의 결과를 손으로 가린 채, 자신도 보지 않고 그대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태양을 향해, 마치 이스마엘처럼 가볍게 눈을 깜빡였다.

7일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고, 어느새 신임 교황의 취임식이 다가왔다.

그날, 도심의 유리 탑 아래는 검은 인파로 뒤덮였다. 끝없이 늘어선 군중은 숨 막히는 먹구름이 되어 광장 전체를 짓눌렀다.

사람들은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같은 공기를 나눠 마셔야 했고, 숨 막히는 열기가 광장을 짓눌렀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들이 마차, 자동차, 기차, 배를 타고 광장으로 몰려들어 먹구름의 두께를 더해갔다.

그들의 손에서 뻗어 나온 붉은 "촉수"들이 허공에서 얽히고설켜, 가히 압도적인 취임식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하얀 태양의 감시 아래, 의식이 시작되었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모두 신의 백성이며, 신의 뜻이 우리를 이곳으로 모았습니다!

스피커에서 찢어질 듯한 소음이 퍼지는 가운데, 신임 교황이 두 팔을 들어 올리자, 실타래처럼 얽힌 "촉수"들이 그의 손가락 위에서 요동쳤다.

새까만 인파가 일제히 기도하자, 감응을 받은 촉수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의식의 이름은 "취임식"이었지만, 진짜 목적은 "취임 선포"가 아니었다.

광장에 모인 모두는 이 취임식의 목적은 전임 교황 이스마엘을 심판하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신임 교황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거의 환호성을 지르며, 조급하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전임 교황 이스마엘에 대한 수많은 고발을 접수했습니다!

신임 교황이 내뱉은 "우리"라는 한마디는, 교권과 사법권의 결합을 공표하는 것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스마엘에 대한 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스마엘! 그대는 신의 대리인을 사칭하여 교황의 자리를 탐했다. 죄를 인정하는가?

신임 교황은 시선을 저 아래로 향했다. 계단 맨 아래, 인파가 가장 빽빽한 곳에 좁은 죄수 호송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심판받는 자는 죄수 호송차 안에 서 있었다. 손발이 묶여 있었지만, 그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옷차림은 단정했고, 여전히 빛이 났다. 그 누구도 그녀의 영광을 벗겨낼 수 없었다. 감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조심해, 앞으로 밀지 마.

"추종"이란 게 다 이렇지. 영원히 앞사람과 보폭을 맞춰야 해. 어느 발을 내디딜지까지 따라 하지 않으면, 신발이나 밟히게 될 테니까.

이스마엘은 신임 교황의 외침을 무시했다. 죄를 인정할 마음도, 죄명에 신경 쓸 마음도 없어 보였다. 그저 주위를 둘러싼 양 떼를 슬픈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스마엘! 그대는 외부 세력과 결탁해 코린토스와 내통하고, 코린토스 첩자와 공모해 암살을 꾸며 내분을 일으키고, 자신의 도주까지 도모했다! 이 죄를 인정하는가?

반역자! 매국노! 네 죄를 인정해라!

분노한 젊은이가 돌멩이를 던지는 순간, 그의 손끝에 있던 "촉수"가 어떤 힘에 이끌리듯 뽑혀 나와 이스마엘의 가슴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래. 너희를 조종하는 그 실들을 끊어내. 전부 나에게 넘겨.

높은 단상 위에서 신임 교황이 이스마엘의 죄목을 계속해서 읊어댔다.

이스마엘! 그대는 재임 기간 여러 주교를 멋대로 통제하고...

이리 와. 내게 더 가까이 와서 손을 내밀어 봐. 다치지 않을 거야.

직권을 남용하여 뇌물을 수수하였고...

이리 와. 모두 이 우리 밖으로 나와, 너희의 분노를 그 손에 담아 들어 올려.

선홍색 "촉수"들이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스마엘. 그대는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

배경음악처럼 들리던 우스꽝스러운 심판은 금세 끝났다. 명백하게도, 전임 교황 이스마엘에게 씌워진 모든 죄는 전부 성립되었다.

그제야 이스마엘은 "촉수"를 거두는 손길을 멈췄다. 그녀는 조금 지쳐 보였다.

난 이의 없어. 아니, 내 이의는 아무 의미 없겠지.

새장이 새를 찾고, 제단이 희생양을 원하고 있을 뿐.

심판받고 제물로 바쳐지는 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세상이 이스마엘을 어떻게 평가하든, 당사자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인도와 추종이 세계 질서의 초석이라니. 참으로 비참하군.

이스마엘, 이의 없음이 확인되었다.

신임 교황은 이스마엘의 말을 제멋대로 요약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새장과 제단을 준비해 둔 사람처럼, 높은 단상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교회의 뜻, 백성의 뜻, 그리고 죄인 본인의 뜻에 따라... 이스마엘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신의 이름으로, 즉시 형을 집행한다!

신께선, 이의가 없으신가?

형제자매들이여, 다 함께 <자비송>을 부릅시다.

신임 교황은 이스마엘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모두에게 기도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청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226|153|170}

노래가 끝나자, 신임 교황과 군중은 일제히 손을 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한없이 고요했고, 새 한 마리 날지 않았다.

신임 교황은 손을 내리고, 마지막으로 경건하게 신의 뜻을 전했다.

신께서는, 이의가 없으십니다.

후...

신의 묵인 아래, 희생양을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된 장작더미에 마침내 불이 붙었다.

흥. 너희 몸의 "인도"는 내가 이미 거두었으니, 의식이 끝나면 정신을 차리겠지.

"인간"이란 늘 이런 식이야. 어느 세계, 어느 문명에서든, 제대로 보려 하지도 않고 낯선 주장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내줘 버리지.

하지만 적어도, 난 여기서 많은 긍정적인 감정을 얻었어.

고마워.

불길이 죄인의 옷자락에 닿으며,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웃기지 마! 내가 이의 있다!!!

먹구름 같은 인파의 한구석에서, 장작 타는 소리를 집어삼킬 듯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몸집이 작은 소녀가 나무통 위에 올라서 있었다. 파란 머리가 검은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교황 암살" 그날과 똑같은 복장이었다. 머리를 묶고, 가죽신을 신은 채, 그때처럼 자신이 믿는 "진실"을 위해 칼을 휘둘렀다.

너희들! 저 위에 계신 높으신 분들까지 전부! 다 나처럼 눈이 멀었잖아!

이사! 시간 다 됐죠! 저 멍청이들한테 냅다 들이박아요!

수많은 군중 앞에서, 나무통 위의 라스티는 손을 입가에 모으고 우렁찬 휘파람을 불었다.

먹구름의 가장자리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이내 거친 말발굽 소리에 묻혀버렸다.

마차 한 대가 인파를 뚫고 광장으로 난입해, 먹구름 같던 군중을 흩어놓았다.

내가 진짜 마부 노릇을 하고 있네, 세상에... "주스", 죽을힘을 다해 들이박아! 졸지 마!

"주스"라는 이름의 말은 혼란 속을 거칠게 내달렸고, 마부는 등자를 밟고 말 등 위에서 놀랍도록 굳건히 몸을 세웠다.

이사는 총을 들어, 죄수 호송차의 커다란 자물쇠를 정조준했다.

이 순간, 그녀는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탕! 첫 번째 총성이 울렸다.

이스마엘, 넌 자유로워야 해! 이건 내 의지야!

이스마엘을 가두던 문이 열리고, 화형대는 더 이상 그녀를 가둘 수 없었다.

하늘의 태양이 미세하게 떨리자, 죄수 호송차 주변의 인파가 갑자기 이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손끝부터 변이하며, 세포 분열과 분화 과정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손가락은 완족동물로, 사지는 절지동물로 변했다.

더는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은 의지를 완전히 박탈당했다. 인도의 "실"이 사라진 "세계"는 오직 이런 원시적인 방식으로만 그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울부짖으며 이스마엘과 형 집행 반대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녀석 말대로네... 역시 초조해졌어.

이사는 다시 총을 들었다.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이번 목표는 단상 위의 꼭두각시 교황이었다.

작전 전에, 다락방의 그 미친 자가 쏴도 좋다고 말했었다.

이사는 줄곧 이스마엘을 따랐고, 최근 며칠간 인간을 지켜봤다. 그녀는 이스마엘을 이해했고, 이스마엘이 왜 인간을 그토록 신뢰하는지도 깨달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이사는 자주 꿈꿨고,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 듯했다. "원래의 자신"이 연구하던 시공간 문제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것들을 이해하게 됐다.

복잡한 이야기를 간단히 하자면... 그녀와 라헤일, 이사,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이... "모두 이스마엘이 있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녀 또한, 이스마엘이 믿는 것을 믿기로 했다.

사익백아의 보우가 함께 하길.

이사는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신임 교황"을 정확히 명중했고, 괴물이 쓰러지며 본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차례야, "그레이 레이븐". 우린 이 괴물들을 감당 못 해. 이게 내가 널 위해 쏴주는 마지막 총알이야.

이사는 고개를 들어, 마치 과거 마부로 위장해, 묘지 입구에서 잠든 손님을 깨우던 그때처럼 괴물들 너머의 유리 탑을 향해 외쳤다.

어이! 이스마엘이 "그레이 레이븐"이라고 부르는 친구! 네 목적을 잊은 건 아니겠지?!

다음 순간, 탑의 중앙이 폭발하며 무수한 유리 파편이 쏟아져 내렸다. 방탄이든 아니든, 모든 유리 조각이 하나의 거대한 형체를 비췄다.

회색 로봇이 공중에서 뛰어내려, 광장 바닥을 부수며 착지했다.

어서! 이스마엘을 데리고 가! 그녀가 어떤 자유를 원하든, 스스로 선택하게 해!

조종사는 이 장비에 너무나 익숙했다. 로봇의 동력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은 마치 자신의 두 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로봇은 라스티와 이사가 뚫어놓은 길을 따라, 태양 아래 활활 타오르는 죄수 호송차를 향해 질주했다. 달려드는 괴물들은 모조리 쓰러졌고, 아무것도 그 앞을 막지 못했다.

크아아!

마침내 로봇은 죄수 호송차 앞에 멈춰 서서, 손발이 묶인 죄인 이스마엘을 품에 안았다.

덜컥, 덜컥... 마스크 구조가 차례로 열리고, 인간은 강철과 증기 속에서 벗어나 몸을 숙였다.

그리고 자비롭게 이스마엘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