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상관없어요. 그 아이는... 이미 이곳을 떠났을 겁니다.
멜리노에는 탄식하듯 웃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왜 이런 일을...
왜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이슬링에게 빚을 갚기 위해서였을지도, "인간"에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였을지도, 혹은 갈 곳 없는 사랑을 주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왜였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모든 게...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
어쩌면 이것 또한 해방인지도 모르겠네요.
멜리노에는 금속 관절이 삐걱거렸고, 전에 말했듯이 전투에 능숙하지 않아 목숨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리브, 당신은 저보다 더 멀리 나아가고 더 많은 것을 보았으니... 저에게 알려줄 수 있겠죠?
기계체에게도... 영혼이 있을까요?
멜리노에?!
저지할 틈도 없이 멜리노에는 처연하게 미소 지으며 자폭 버튼을 눌렀다.
안녕. 아이슬링.
쾅!
격렬한 폭발이 갱도를 뒤흔들었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잠잠해졌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멜리노에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었네요.
리브는 무너진 돌무더기 속에서 데이터 저장 장치를 집어 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가 멜리노에를 이용한 것이었다.
멜리노에의 사랑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다.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 수 없는 작은 괴물이 멜리노에 아이의 묘비 옆에 나타났다.
멜리노에는 그것을 데려가서 자신의 모든 사랑을 주었다.
그 아이는 사랑받고 싶었고, "양육 받기"를 원했고, 안전한 집을 원했다. 그리고...
멜리노에는 그 아이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다.
멜리노에는 거대하고 촘촘한 그물을 짜서 아이를 감쌌고... 그 안에 자기 자신도 함께 가두었다.
주변을 한참 동안 찾아봤지만, 둘은 "아이슬링"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리브는 멜리노에가 남긴 금속 부품들을 모아 깨끗이 닦은 뒤, 진짜 아이슬링의 묘비 옆에 묻어주었다.
이렇게 하면, 아이슬링이 조금 더 편히 잠들 수 있겠죠.
이제 이 꿈속엔 물자를 탐내 입양했던 부모는 존재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해 준 엄마만이 함께할 것이다.
멜리노에가 사라지자, 리브의 의식의 바다와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에 대한 공격도 멈추었다.
지휘관님이 맞았어요. 역시 배후 조종자는 그 아이였어요.
멜리노에가 엮어낸 환상도... 그 아이의 힘을 빌린 거겠죠.
그 아이가 남기고 간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마인드 표식 너머로, 리브의 의식의 바다가 천천히 일렁였다.
그 아이는 너무 성급했어요. 제 의식의 바다를 얻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외층까지 들어왔죠.
하지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고, 오히려... 제가 흔적을 좀 남겨뒀어요.
지휘관님, 전 괜찮아요.
리브는 지휘관의 걱정을 알아챈 듯,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보세요. 저 이렇게 멀쩡히 있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휘관님.
지휘관을 바라보는 리브의 눈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전 제 목숨을 희망의 담보로 삼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지휘관님도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 주실 수 있죠?
자, 이제 저쪽 실험실로 가보시죠.
조금 전에는 쫓느라 정신없어서 거기 쓸 만한 자료가 남아있는지 확인하지 못했잖아요.
리브는 아무렇지 않은 듯 화제를 돌렸지만...
지휘관은 그 악몽 속에서 유령처럼 절망하던 리브의 표정이 떠올랐다.
지휘관은 자신이 정말 어딘가에서 "죽는다."라면, 리브도 이렇게 고통스러워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휘관의 머릿속에 30년 후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정해진 결말을 지휘관의 죽음으로만 깨뜨릴 수 있다면...
지휘관님?
앞서가던 리브가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칠흑같이 어두운 갱도를 따라 둘은 계속 전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