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이 환상을 산산조각 냄과 동시에, 거미줄 속에 숨어 환상을 엮어내던 멜리노에를 타격했다.
으윽!
멜리노에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고통스러워했고, 그 충격으로 모든 실이 일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환상이 낡은 종이처럼 조각조각 부서졌다. 구름 위에서 리브의 삶을 "지켜보던" 지휘관 역시 부서지는 환상에 떠밀려 튕겨 나왔다.
지휘관은 추락하는 감각은 신경 쓸 틈도 없이 환상이 부서지는 틈을 타 리브의 의식의 바다를 재빨리 붙잡았다.
지휘관님!
의식의 바다에서 구름이 걷히고 해가 드러나자, 씨앗이 서서히 싹을 틔웠다.
샛별이 강렬한 빛을 터뜨리자, 리브는 인간 지휘관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환상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세찬 바람이 거꾸로 불어닥쳤고, 둘은 아수라장 속에서 서로를 꼭 껴안은 채 끝없이 추락했다.
왜... 이렇게 된 거죠?
아이를... "아이슬링"이라고 계속 불러도 될까? 아이슬링은 추락하는 지휘관 일행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화를 냈다.
절 사랑한다면서요?
왜 리브는 저한테 모든 걸 바치지 않는 거죠? 마치...
마치
아이슬링... 이쪽으로 와.
아이슬링, 나한테서 너무 멀리 떨어지면 위험해.
아이슬링, 내가 너에게 집을... 위험이 없는 집을 줄게.
아이슬링,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내가 줄 수만 있다면...
어째서...
적조가 날카로운 발톱처럼 모여들어, 추락하는 지휘관 일행을 힘껏 움켜쥐려 했다.
저를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제가 안으려고 하는데, 왜 거부하시는 거죠?
그 그림자는 리브가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은 것처럼 너무나도 손쉽게 그녀의 의식의 바다를 침식했다.
분명... 분명히 제가 원한다고 말했잖아요.
당신의 의식의 바다... 맛을 좀 볼게요.
어머니.
아이슬링은 리브의 의식의 바다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산과 들에 꽃이 만발하고 캔버스에 흩뿌려진 유화 물감처럼 찬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슬링은 리브의 의식의 바다가 어떤 맛일 지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분명 진한 메이플시럽 같을 거라고... 예전에 리브가 맛보게 해줬던 것처럼, 가을의 따스한 햇살을 듬뿍 머금은 맛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곳은 분명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슬링은 리브의 의식의 바다에 닿았다. 점점 커지는 그녀의 눈동자에 빛줄기가 스쳐 지나갔고, 아이슬링은 곧 장난감을 받게 될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그리고...
아이슬링이 눈을 뜨자, 핏빛 파도가 시야를 온통 붉게 물들였다.
어떻게...
세계가 끊임없이 진동했고, 어지럽게 흩날리는 날카로운 파편들이 하늘과 해를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이 윙윙거리는 비탄과 절규와 뒤섞여 한순간도 쉬지 않고 몰아쳤다.
가시덤불이 진흙 속에서 울부짖고, 탁한 흙탕물이 핏빛 바다와 뒤섞여 흉측하고 절망적인 인간의 형상으로 굳어져 있었다.
어... 머... 니?
이게... 뭐죠?
아이슬링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슬링은 수많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흡수했던 멜리노에의 의식 속에서도 이렇게 끔찍한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리브의 의식의 바다는 평온한 거울 바다여야 하고, 달콤한 꿈나라여야 해요. 이런 모습일 리가 없어요!
이건 분명 가짜예요. 분명 가짜라고요!
아이슬링은 광적으로 이 핏빛 바다를 헤집고 다니며, 손에 쥔 힘을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자 원래도 복잡했던 환경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하늘에서 맑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면서 피에 젖은 날개를 한 하얀 새 한 마리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눈으로, 이 끔찍한 지옥 속을 가로질러 천천히 내려왔다.
어머니... 어머니?!
진짜 의식의 바다는 숨겨 놓으셨네요?
제가 갖고 싶어요, 저한테 갖다 주시면 안 돼요?
이게 바로 제 의식의 바다예요.
하얀 새가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자, 은발의 여인이 바다 위에 평온하게 서 있었다.
그럴 리 없어요... 이건 분명 가짜예요!
그럼, 왜 제가 집에 있을 때... 이걸 전혀 느끼지 못한 거죠?
이런 것들은 가족에게 보여줘선 안 되는 거니까요.
저는... 가족이잖아요? 어머니?
그것은 언제나 그랬듯 가면을 쓰고, 눈물을 글썽였다.
"가족"이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골라내는" 게 아니에요.
그건 진짜 가족이라 할 수 없어요.
어머니...
당신은 그저 당신이 원하는 걸 얻고 싶을 뿐이에요. 그래서 멜리노에를 골랐고, 저를 골랐고, 심지어 지휘관님까지 골랐어요.
저희는 당신이 고른 인형일 뿐, 진짜 가족이 아니에요.
...
기억나요? 함부로 조르면 안 돼요. 아이슬링.
착한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조절할 줄 알아야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요.
하지만 어머니... 어머니도 저를 속이고 있잖아요?
아무래도... 아이슬링은 나쁜 아이가 되어야겠네요.
전 반드시... 제가 원하는 걸 손에 넣고 말 거니까요.
그림자가 조용히 리브의 의식의 바다를 뒤덮었다.
한편, 끝없던 추락은 부드러운 무언가가 받쳐주면서 멈췄다.
뺨을 스치던 허리케인은 보슬비로 변했고, 추락으로 인한 숨 막힘이 조금씩 사라졌다.
푹신한 구름 속으로 떨어진 것처럼, 인간의 의식은 가볍게 떠오르더니 평평한 땅 위에 안착했다.
다시 눈을 뜨자, 눈앞에는 고요한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주홍빛 저녁노을이 녹아내린 비단처럼 하늘에 번져 있었고, 한 무리의 새들이 가볍게 선회하며 지저귀고 있었다.
지휘관님? 저 여기 있어요.
멀지 않은 호수 위에 서 있던 리브가 지휘관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지휘관이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서 순간 환상 속에 아직 있는 건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
리브는 무심코 손으로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며 시선을 피했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로던트 소대가 했던 것처럼, 의식의 바다 안에 만들어 둔 안전 구역이에요.
아시모프 님이 거짓말하지 않으신 게 맞아요. 이 작은 공간이 생긴 것도 다 그 데이터 덕분이니까요.
이 보육 구역에 온 뒤부터였는지 아니면 갱도에 들어갔을 때부터였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아요.
아무튼 무언가가 계속 제 의식의 바다를 엿보고 영향을 주고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 광물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의심해 본 적은 있어요. 그녀가 관여했을 수도 있지만, 그녀 혼자서... 이 정도까지 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걸 확실히 인지하기 전까지, 전 일부러 그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었어요.
멜리노에가 더 눈에 띄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슬링은 항상 그녀의 존재 뒤에 숨어 있었죠.
아이슬링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그 존재가 안개처럼 희미했다. 그리고 무해해 보였지만, 동시에 모든 장면에 멜리노에와 함께 나타났다.
게다가 퍼니싱의 흔적도 없어요. 그래도 퍼니싱을 자유자재로 다룰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녀들이 환상 속에서 그럴싸한 가짜 지휘관님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한 적은 있었어요. 하지만 너무 티가 나서...
지휘관님? 아직 일하고 계신 거예요?
광산 임무 기록이라면... 광산 이합 생물 소탕 임무 말씀이세요?
그 "지휘관님"은 보육 구역 안에서의 기억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멜리노에와 아이슬링은 제 의식과 기억을 읽을 수 없었던 걸까요?
같은 조건에서 그녀들이 리브의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면, 왜 지휘관의 기억은 읽지 못해서 진짜 같은 지휘관을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것일까?
선의로 그런 건 아닐 테고, 장난기 있는 성격으로 보이지도 않았어요.
안 돼요.
지휘관의 계획은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거절당했다.
다시는 지휘관님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는... 제 눈앞에서 사라지게 두지 않을 거예요.
리브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리브는 깊은 밤 홀로 헤맬 때 들려오던 속삭임이나, 지휘관이 적조 속으로 떨어질 때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던 비통함을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의식의 바다의 은통보다 더 끔찍했고, 수만 번의 죽음을 겪는 것보다 더 절망적인 고통이었다.
당시... 리브가 백야 기체로 변경하고 죽으러 가려 했을 때, 지휘관도... 이렇게 고통스러웠을까?
아주 오래전의 메아리가 현재 의식의 바다에 울려 퍼졌다.
계획을 위해 헤어질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추측대로라면, 지휘관은 리브가 환상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도울 수 있었다. 게다가...
지휘관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 무언가를 감지한 듯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허공에서 거미줄이 흩날리며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꽃처럼 고요하던 칼날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멜리노에의 열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렇게 엮고, 뒤집고, 감아 돌리면서, 무수한 거미줄이 갱도의 한구석을 감쌌다.
멜리노에는 최고의 연주자처럼, 이 고요하고 성대한 연주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칼날은 거미줄에 겹겹이 싸였고, 겹겹의 악몽이 연달아 닥쳐왔다.
지휘관님!
둘은 암묵적으로 서로의 등을 맡겼다. 하지만 침식체를 모두 처리하기도 전에, 발밑에서 흐르는 모래가 거대한 입을 벌렸다.
대량의 이합 생물이 바닷속에서 튀어나왔다.
파도가 휩쓸려오자,
안 돼요. 그래선 안 돼요.
멜리노에는 거미줄의 중심에 자리 잡고는 폭설 속에서 힘겹게 나아가는 둘을 지켜봤다.
멜리노에가 열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다시 "아이슬링"의 힘을 빌리자, 환상이 갑자기 펼쳐졌고, 거미줄은 환상적인 빛깔로 물들었다.
이른 아침, 휴대폰 알람이 평소처럼 울렸다.
온몸의 뼈마디에서부터 피로가 몰려왔다. 어제는 분명...
어제?
뜬금없이 나타난 "기억"이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터져 나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체 언제 있었던 일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의식 속에 밖으로 이어진 실오라기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휘관을 어딘가로 이끌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가 우산 위로 떨어지는 가운데, 기이한 실을 따라 계속 나아가자, 뇌리에 다시금 은발 소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 실의 다른 쪽 끝에 있는 사람일까?
지휘관님!
은발의 기묘한 소녀가 비를 맞으며 길 건너편에서 똑바로 달려왔다. 그 순간, 마인드 표식이 갑자기 환하게 빛났다.
그녀를 본 순간, 수많은 기억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지휘관님을 찾아냈어요!
둘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 갑자기 바닥이 블랙홀처럼 열렸다.
멜리노에가 또 그 신비한 힘을 빌렸나 봐요.
칠흑 같은 "틈" 속에서 리브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상관없어요. 지휘관님. 우리도... 이제 그물을 거둘 때가 됐으니까요.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환상이 연이어 닥쳐왔다.
"아이슬링"의 힘을 빌린 멜리노에는 점점 더 과감해졌고, 둘의 의식을 분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어떻게 이럴 수...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나요? 하지만... 이건 제가 제일 원하는 건데...
뭐든지 다 주신다고 했잖아요.
...
아이슬링의 재촉에 멜리노에는 초조해졌다.
멜리노에는 아이슬링이 힘들게 되찾은 아이였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아이슬링의 기대에 찬 눈빛 속에서 멜리노에는 그녀의 힘을 빌려 쉴 새 없이 거미줄을 엮었다.
마침내, 환상이 다시 성공적으로 구축되었다는 정보가 거미줄의 진동을 타고 돌아왔다. 그러자 멜리노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랜만에 흥분되는 감정을 느꼈다.
이 흥분은 그날... 멜리노에가 발견했던...
잠깐...
시야 끝에 작은 형체가 스쳐 지나가자, 멜리노에는 거미줄을 엮던 손가락을 황급히 멈췄다.
저건...
멜리노에는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다가가 바닥에 있는 아기를 안아 들었다.
그건... 아이슬링이었다.
멜리노에는 "깨어난" 후, 갱도를 오랫동안 헤맸다.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와 연구원의 부정적인 감정을 잠식해 왔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갈 목표를 찾지 못해 스스로 소멸하기 직전... 멜리노에는 그 아기를 보게 됐다.
멜리노에는 그 작은 아기를 길렀다.
그것은 하나의 소망이자, 꿈이었고, 구원이었다.
멜리노에는 직접 그 아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아이슬링... 아이슬링이 왜 이런 건지 모르겠어요. 계속 울고, 몸이 뜨거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 제가 하마터면 아이슬링을 해칠 뻔했군요.
사흘 전에, 그 집 애가 지난번 이합 생물 습격 때문에 죽었어. 이제 겨우 여덟 살이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부부는 꼬박 하루를 집에서 울다 나왔지.
멜리노에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슬링을 보육 구역 문 앞에 둔 뒤...
어머니...
어머니... 저를 버리시는 거예요?
멜리노에는 아이슬링이 울면서 갱도를 달리는 것을 보았고, 아이는 몇 번이나 넘어졌지만, 다시 필사적으로 일어났다.
안 돼. 아이슬링, 안 돼!
멜리노에는 눈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아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런 뒤...
그런 뒤, 멜리노에는 홀로 갱도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멜리노에는 아이슬링의 초라한 묘비를 보며, 더는 들을 수 없는 아이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이슬링, 네가 돌아와 준다면...
네가 원하는 거라면,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줄게.
그러니, 제발 다시 내 아이가 되어 줘.
내가... 내 모든 사랑을 너에게 쏟을게.
갱도 안에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고, 멜리노에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그리고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기이한 그 "아기"가 묘비 옆에 나타날 때까지 기억하지 못했다.
아이슬링...
멜리노에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순간, 거미줄 위로 거울의 반사광이 스쳐 지나갔다.
아... 아니야.
거미줄이 실타래처럼 엉켜 멜리노에 곁에 어지럽게 쌓였다.
멜리노에는 경악하며 분노했고, 모든 것을 뒤덮을 수 있는 그물을 다시 엮으려 황급히 시도했다.
하지만 헛수고나 다름없었다.
날카로운 거울 조각이 차가운 빛을 번뜩이며, 저편에서 멜리노에가 조종하는 거미줄을 계속해서 잠식해 들어왔다.
툭.
거미줄이 끊기자, 거대한 그물도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