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7 악몽이 깃든 늪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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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8 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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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의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은 이합 생물의 날카로운 발톱이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이 찾아온 후, 의식이 육체에서 세차게 빠져나갔다.

그러더니 시야가 갑자기 상승했고, 이 너무나도 긴 "꿈"은 지휘관의 "혼수상태"로 끝나지 않았다.

하늘 한쪽이 조용히 갈라지면서 하얀 새가 폭풍을 물고 날아갔다. 혼란스러운 구름 속에서, 리브의 기억 조각들이 반짝였다.

지휘관은 리브의 "기억"을 기묘한 시점으로 읽게 되었다.

리브는 새로운 데이터에 적응해야 했기에, 이 기체로 교체한 후 긴 적응 기간을 거쳤다.

적응 기간, 지휘관과 리브는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면서, 그럭저럭 수월하게 임무들을 완수했다. 그렇게 둘은 보기 드물게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적응 기간이 끝나기까지는 단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제출할 기체 데이터 중 뒤에서 두 번째 것을 든 리브는 이 새 기체의 상세 데이터를 꼼꼼히 읽었다.

적응성에 이상은 없어요. 새로운 데이터 프레임워크는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의식의 바다 종합 성능은 약 5.47% 향상됐어요. 지난번보다는 0.68% 올랐네요.

새로운 데이터를 사용한 후, 의식의 바다에서 여러 차례 가벼운 파동을 감지했고, 최고치는 약 1.46%였어요.

잠시만요, 확인해 볼게요... 없네요.

하지만 여기에서도 강조했어요. "새 기체이기에 가벼운 의식의 바다 파동은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문제"라고요.

네. 그때 백야 기체로 변경할 때도 같은 문제가 있었어요.

백야 기체의 초기 개발 단계에서는 매우 극단적인 방안을 사용했지만, 이번 기체는...

더 오래... 요?

미래... 요?

단말기를 보던 리브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구름 위의 지휘관은 리브의 동공 속에서 자신을 보았다.

스러져가는 별 무리 속 한 줄기 빛처럼, 봄날 새싹을 틔우는 한 줄기 바람처럼, 리브는 미소 지으며 지휘관의 어깨 위 주름을 부드럽게 펴주었다.

지휘관님은 더 먼...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지휘관님이 상상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그럼, 지금 생각해 보는 건 어떠세요? 언젠가 전쟁이 정말로 끝난다면, 지휘관님은 뭘 하고 싶으세요?

지휘관은 "전쟁 종식"을 위해 계속 노력해 왔지만, 갑자기 이 질문을 받으니, 머릿속에는 오직...

지휘관님의 목표는 항상 "퇴직 연금을 받을 때까지 살아남기"였죠.

그것도 아주 좋네요. 그때가 되면, 저도 지휘관님과 함께 은퇴해서 가능하다면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볼 수도 있겠죠.

그러고 보니... 구조체에게도 "은퇴"라는 게 있을까요?

지상에 가서 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그것도 참 좋겠네요. 그때가 되면, 저도 지휘관님과 함께 지상으로 갈 수 있겠네요.

돈을 벌게 되면, 집도 한 채 짓고, 그때는 다 같이 거기서 사는 거예요.

어... 별다른 생각이 없으세요?

저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지휘관님과 함께 있고 싶어요.

리브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이 대답을 여러 번 생각해 본 모양이다.

그 후의 일들도... 생각해 봤어요.

리브는 드물게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원래는 정말 전쟁이 끝나면, 공중 정원이 집행 부대를 해산하지 않고, 재건 작업을 하는 쪽으로 전환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되면, 좀 더 수월한 재건 임무를 선택할 수 있겠죠. 예를 들면... 식물을 키우는 걸 돕는다거나? 전쟁이 이렇게 오래 지속됐으니, 생태 환경에 영향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아니면, 예술 협회에 가입해서 고고학 소대를 돕는 건 어떠세요? 황금시대의 유적을 발굴하는 것도, 어쩌면 아주 재미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은퇴"할 수 있다면...

빵집을 차려볼까... 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제가 디저트를 만들고, 루시아가 계산을 맡고, 리가 음료를 만드는 거죠.

지휘관님은 당연히 시식만 담당하시면 돼요.

당연하죠.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휘관님은 너무 오랫동안 고생하셨으니까, 그때가 되면 당연히 푹 쉬셔야죠.

아니면, 경치 좋은 보육 구역을 찾는 건 어떠세요? 아, 그때쯤이면 다시 "도시"라고 부르겠죠?

경치 좋은 도시를 찾아서 그곳에 정착한 뒤, 동물들도 키우는 거예요.

같이 쇼핑도 가고, 같이 산책도 하는 거예요. 밖에 큰비가 내리면, 방에 머물면서 같이 디저트를 만들고, 황금시대 영화 한 편을 보는 거예요.

리브의 동공 속에서 별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장면을 세세하게 구상해 놓았다.

그리고 모든 장면 속에는 지휘관이 있었다.

하지만 구름 아래의 리브는 자신의 지휘관을 잃어가고 있었다.

저... 다녀왔어요.

"집"으로 돌아온 리브는 습관적으로 인사를 건넸지만, 맞이해주던 인간은...

지휘관님, 너무 오래 주무시고 계세요.

리브는 익숙하다는 듯 병상에 누워 있는 지휘관의 생기 없는 얼굴을 바라본 뒤, 물 한 대야를 가져와 지휘관의 뺨을 정성껏 닦아주었다.

오늘... 의무실에 생명 유지용 영양제를 받으러 갔었는데, 지휘관님의 이름을 말하니까 멜리노에가 잠시 멈칫했어요.

멜리노에는... 지휘관님이 왜 아직 "살아서 계시는지" 의아해하는 것 같았어요.

영양액을 기기에 주입한 리브는 잠시 침묵했다.

리브는 손을 들어, 지휘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제 머리도 조금씩 혼란스러워지고 있어요. 오늘이... 지휘관님께서 혼수상태에 빠진 지 며칠째인가요?

입술을 다문 리브는 눈을 깜빡이며 떨어질 듯 말 듯한 눈물방울을 억누른 채, 지휘관의 두 손을 힘껏 쥐었다.

저는 제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지휘관님이...

제가 어떻게 해야...

리브는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흐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지휘관님을 되찾을 수 있죠?

리브의 눈물이 마침내 지휘관의 손목 위로 떨어졌다.

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나자, 리브는 재빨리 눈물을 훔쳤다. 가벼운 발소리가 문 쪽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게 들렸다.

저 왔어요.

아이슬링이 진지한 표정으로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왔어? 아이슬링.

리브는 몸을 낮춰, 아이슬링의 긴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밖에 나가 놀지 않은 거야? 멜리노에 의사 선생님께도 가지 않았고?

오늘은 밖에 나가 놀지 않았어요. 대신 아이슬링이 뒤쪽에 가서 야생 과일을 찾았어요.

아이슬링이 등 뒤에 숨겼던 작은 손을 들어 보이자, 붉은 야생 과일 하나가 손에 들려 있었다.

아이슬링은 작은 양을 만들어서 먹고 싶어요.

그럼, 아이슬링이 먼저 과일 씻는 것 좀 도와줄래?

네!

병실 밖으로 나간 아이슬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머니?

?

아버지어머니는... 죽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 그냥 쉬고 있는 거야.

하지만, 아버지어머니가 곧 죽을 것처럼 보여요.

한쪽에 있는 생명 유지기가 지휘관의 생명 징후 데이터가 0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의무실에서 이런 기계를 본 적 있어요.

그리고 이런 숫자가 표시되면, 멜리노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가망이 없다고 말했어요.

아이슬링은 까치발을 들고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곧... 죽는 거 맞죠?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그럼 만약 아버지어머니가 죽으면, 어머니는 어떻게 돼요?

나?

잘 모르겠지만

리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죽은 세상을 겪어본 적도 없고, 내 눈앞에서 그녀가 사라지는 걸 보지도 않을 거야.

만약...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리브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 미래로 가는 비전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절대로 지휘관을 그 대가로 삼을 수는 없었다.

깊은 밤, 보육 구역은 고요했고, 순찰대의 불빛이 산 너머로 숨었다.

리브는 몽유병 환자처럼, 식탁 옆에 서 있었다.

예전에 지휘관이 집으로 돌아오던 광경이 마치 1초 전의 일처럼 생생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도 관리하지 않은 하얀 커튼이 깊은 밤의 유령처럼, 밤바람에 실려 온 비가를 흐느꼈다.

리브

[player name]... 지휘관님...

리브는 지휘관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기적을 기대하는 것 같기도, 지휘관의 영혼에 돌아오라고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세상은 인간 하나 때문에 멈추지 않았다. 태양은 평소처럼 떠올랐고, 리브도 평소처럼 이 보육 구역에서 생활했다.

리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업무를 처리하고, 연구를 진행한 뒤, 집으로 돌아와 아이슬링과 혼수상태의 지휘관을 돌보았다.

리브?

네. 이번 달 영양액을 받으러 왔어요.

이번 달... 아, 영양액, 기억나요.

기존에 받으시던 양만큼 드리면 될까요?

네.

멜리노에는 능숙하게 서류를 작성하다가 리브에게 건네주려는 순간 갑자기 멈칫했다.

아... 여기 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오랫동안 혼수상태이잖아요.

제가 지난번에 찾아갔을 때, 생체 징후가 거의 없던데, 정말로...

정말 계속 이렇게 환자를 돌보실 건가요?

그 질문은 멜리노에 선생님의 업무 범위와는 관계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다만... 집에 이렇게 장기간... "환자"가 있으면...

멜리노에는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아이슬링에게도... 분명 영향을 줄 것 같아서요.

힘드시겠지만, 아이슬링을 위해서라도... 기운을 내셔야죠.

그건 선생님의 업무 범위와는 관계없는 것 같네요, 멜리노에 의사 선생님.

생명 유지용 영양액은 합리적으로 배급된 양이에요. 서류에 적힌 양만큼 주시면 돼요. 조언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고개를 저은 멜리노에는 몸을 돌려 뒤쪽 창고로 가서 영양액을 꺼내 왔다.

리브는 무거운 영양액을 혼자 들더니 감사 인사를 한 후, 몸을 돌려 의무실을 떠났다.

...

리브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던 멜리노에는 눈에 띄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리브가... 아직 그 인간을 기억하고 있나요?

리브의 의식의 바다는 여전히 매우 혼란스러워. 정상적이라면, 이미 잊어야 하는데...

그것의 힘으로 만들어진 환상에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었다.

나도 왜 리브가 아직 그 인간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어.

괜찮아요.

그래야... 제 어머니가 될 자격이 있죠.

...

결정했니?

물론이죠.

깊은 우주 속의 목소리가 가볍게 잠꼬대했다.

전 이미 그 인간... 그 아버지어머니의 의식 조각을 얻었어요.

리브도 얻게 될 거예요.

저는 진정으로 리브를... 그리고 그녀의 의식의 바다를 얻을 거예요.

안개 뒤, 그녀의 눈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의식의 바다...

리브의 의식의 바다로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몰라요. 하지만 전 저걸 원해요.

다른 건... 안 되는 거니? 예를 들면 내...

안 돼요.

금빛 동공 속에서 탐욕이 피어올랐다.

오직 리브... 리브여야만 해요.

...

멜리노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열 손가락이 춤추자, 이 공간은 허상 속에서 겹겹이 해체되었다. 그러자 천막의 배후, 거대한 거미줄이 뒤쪽을 뒤덮고 있었다.

거미줄이 겹겹이 수축하면서, 거세게 몰아치는 적조를 만들어냈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될 거야. 아이슬링.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그것으로 그 기약 없는 유감을 메울 것이다.

적조는 예상대로 찾아와, 깊은 산속에 위치한 이 보육 구역을 단단히 감쌌다.

속수무책이었던 순찰대는 순식간에 절반이 삼켜졌고, 368 보육 구역은 눈보라에 휩싸인 외로운 산장처럼 고립무원이 되었다.

주위에 연락할 수 있는 보육 구역이 하나도 없어요!

보육 구역 담당자는 초조하게 중앙광장을 서성였다.

그... 그러면 어떡합니까! 혈청은 이미 완전히 바닥났고, 저희에겐 방호복 비축분도 없는데...

어머니, 어머니! 무서워요.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 속에 선 리브는 무표정하게 주변의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정형화된 연극처럼, 모든 사람이 광적으로 "초조함"이라는 감정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마치 리브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

파란 머리의 아이슬링이 리브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이슬링? 왜 나왔어? 방에 있으라고 말했잖아?

리브는 몸을 낮춰 달려오느라 조금 헝클어진 아이슬링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방에 있는... 아버지어머니가 깨어났어요.

아이슬링이 귓속말처럼 조용히 리브에게 말했다.

깨어났다고? 지금 어디 있는데?

아버지어머니가 눈을 뜬 걸 보고, 바로 어머니께 알려드리려 온 거예요.

리브는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집은 보육 구역 가장자리와 가까워, 적조가 퍼지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지휘관님!

두 거리를 사이에 두고, 리브는 그 마른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나오는 것을 보았다.

안 돼요!

그 그림자가 잠시 멈칫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리브가 불러도 그림자는 멈추지 않았다.

적조가 갑자기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믿을 수 없는 곡선으로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지휘관님!

리브, 안 돼요!

리브가 급하게 앞으로 달려들었지만, 지휘관의 옷자락 한 조각만 겨우 만질 수 있었다.

그렇게 지휘관은 거세게 몰아치는 적조에 순식간에 잠겨버렸다.

지휘관님...

거대한 슬픔이 리브의 의식의 바다를 꽉 움켜쥐었다. 수많은 긴 바늘에 꿰뚫린 것처럼, 리브의 손가락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리브가 목이 터져라 적조를 향해 소리쳤지만, 파도는 침묵하며 언덕을 때릴 뿐이었다.

안 돼요. 이렇게 돼서는 안 돼요.

리브. 진정해요. 진정하세요.

당신에겐 아직 아이슬링이 있잖아요.

멜리노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가장 단순한 이유로 리브를 붙잡으려 했다.

아이슬링...

리브의 두 눈은 텅 비어 있었고, 방금 옆으로 돌아선 아이는...

...

아버지어머니가... 저기 있어요!

아버지어머니!

아이슬링은 아직 적조의 허상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몇몇 어른들 사이를 날렵하게 빠져나갔다.

아이슬링이 적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

리브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그 순간 보육 구역의 모든 것이 더없이 고요해졌다.

멜리노에가 허무하게 손을 뻗자, 그녀의 동작에 따라, 공기 중의 먼지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시간은 끝없이 늘어난 듯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보육 구역 안에 있는 모든 이가 기계처럼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벌떼처럼 윙윙거리는 소음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멈췄다.

적조 속에서 고무찰흙 덩어리처럼 순식간에 분해된 뒤, "아이슬링"은 다시 적조로 재구성되었다.

어... 어머니?

적조의 잠꼬대가 공기 중에 떠돌았고, 또 다른 인간형이 아이슬링 곁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진흙 인형 같은 인간형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 형체는 놀랍게도 리브에게 더없이 익숙한 그 모습이었다.

지휘관님...?

리...

리... 브...

...

어머니...

작은... 양... 먹어도... 돼요?

아이슬링의 순진한 말투는 적조 속에서 기괴한 대사로 질척거렸다.

어머니... 왜 이쪽으로 오지 않아요?

아이슬링이 의아해하며 "입을 열자", 그녀 옆의 인간형이 어떤 결말을 암시하듯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

어머니를 얻지 못한 아이슬링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이는 리브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닫자,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 왜 이쪽으로 오지 않는 거예요? 저와 같이 있어 줘요.

저를 안아주세요. 와서 함께 있어요.

어머니...

아이슬링의 울음소리가 적조를 흔들었고, 적조는 천천히 차올랐다.

아이슬링.

눈을 내리깐 리브는 동공 깊은 곳의 슬픔을 감췄다. 그리고 적조가 흙을 때리더니 그녀의 발목에 닿을 뻔했다.

아이슬링이었잖아요.

리브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

적조의 허상이 중얼거리며, 리브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제가 여기 있고, 아버지어머니도 여기 있으니, 우린 영원히 함께할 수 있어요.

아이슬링... 이었잖아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부 아이슬링이 한 짓이죠.

발치의 적조가 부스럭거리며 새로운 폭풍을 예고하는 듯했다.

리브는 여느 때처럼 몸을 낮춰, 적조 속의 "허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표정에는 놀라움이 없었고, 오히려 슬픔이 더 많았다.

...

이것은 그것이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가족과 아이를 잃었는데, 공포에 떨고, 분노하고, 비통해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어머니...

사탕을 얻지 못했던 아이가 조금씩 진정되듯이, 아이슬링의 울음소리는 점차 작아졌고, 적조의 허상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멜리노에의 의식에서 읽어낸 다른 인간들처럼 가족이 적조 속에서 죽었다는 걸 알았다면, 당장 뒤쫓아 뛰어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절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아버지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당연히 지휘관님을 사랑하고, 아이슬링도 사랑하지.

한동안은 당신들이 만들어낸 이 다정함에 정말로 빠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리브

고생했어요. 먼저 뭐 좀 드실래요?

아이슬링

다녀오셨어요!

아이슬링이 오늘도 야생 과일을 많이 따왔어요!

자, 어서 와서 손부터 씻어. 식사할 준비해야지.

환상은 허망한 것이었으나, 함께한 추억은 거짓이 될 수 없었다.

저를... 사랑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왜...

왜 인제 와서야 이 모든 걸 밝히는 거냐고요?

당연히...

하늘이 조각조각 부서지자 끔찍한 밑바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파도보다 높이 솟은 붉은 파도가 하늘에서부터 쏟아져 내렸다.

당신들을 붙잡아야 했으니까요.

리브는 조용히 아이슬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누가 이곳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또 누가...

저와 지휘관님의 목숨을 노리는지 알아내야 했어요.

천둥이 울렸다.

이 순간 세계가 멈춰버렸다. 적조의 허상이 와르르 무너지고, 거짓된 천막이 붉은 파도에 휩쓸려 땅으로 떨어졌다.

리브가 손을 뻗어 적조에 담그자, "침식 증상"이 손끝에서부터 퍼져나갔다.

그동안, 저는 여러 사람을 추측했고, 여러 결말을 추측했어요.

정말로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당신이었다니...

"적조"가 탐욕스럽게 리브의 팔 위로 퍼져나가며, 그녀의 혼란스러운 의식의 바다에 침입하려 했다.

이게 당신이 원하는 거겠죠?

그럼... 어디 한번 해보세요.

거짓된 환상이 "적조"에 완전히 삼켜졌고, 리브는 적조 속에서 무언가를 힘껏 쥐고 있었다.

그것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옷끈였고, 예전에 리브의 손에 묶여 있던 것이었다.

어디 한번 해보세요. 당신이 원하는 게, 대체 뭔지 보여주세요.

경륜이 맹렬하게 은빛 궤적을 그리며, 적조의 중앙을 직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