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구역의 장례는 매우 간소했다.
이른 아침, 얇은 관과 묘비를 준비하여 경작지가 아닌 땅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주었다.
이곳에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몇몇 사람만이 찾아와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묘비 옆에는 천 조각을 이어 만든 흰 꽃 몇 송이가 새벽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광산에는 들꽃이 드물어서, 멜리노에가 밤새 낡은 담요 한 장으로 이 애도의 물품들을 만들어 주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리브.
멜리노에는 손에 든 흰 꽃을 묘비 아래에 놓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리브는 눈을 내리깔고 있어서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멜리노에는 리브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됐어요. 리브가 여기서 지휘관님과 잠시 단둘이 있게 해 드리죠.
보육 구역 담당자는 수많은 이별을 겪어왔기에 이런 상황에 익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외로운 아내, 고통받는 어머니, 슬픔에 잠긴 친구... 이런 비슷한 이야기는 이 행성에서 항상 반복되며, 저마다 다른 상처를 새기고 있었다.
배웅하러 온 이들은 새벽안개와 함께 하나둘 흩어졌다. 그리고 리브는 허름한 비석 앞에 서서, 머리칼 끝에 이슬이 맺히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브...
보육 구역 담당자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하는 멜리노에와, 상황도 모른 채 야생 과일이나 딸 생각만 하는 아이슬링을 데리고 갔다. 리브에게 묘비 앞에서 혼자 있을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른 아침의 광산에는 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단 같은 천막이 옅은 청록색을 띠었고, 아름다운 아침노을이 드넓은 산들을 뒤덮었다. 이제 곧 해가 떠오를 참이었다.
리브는 조용히 지휘관의 "묘비" 옆에 기대앉았다.
왜... 항상 이런 식일까요?
왜 항상... 지휘관님을 대가로 치러야만 잠시 숨 돌릴 틈을 얻는 걸까요?
리브는 수만 번의 이별과 죽음을 겪었고,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비극을 목격했다.
리브는 한때, 자신보다 "재앙에 맞서는 법"이라는 과제에 능통한 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미 충분한 눈물과 가시로 완벽한 갑옷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째서... 조금씩 식어가는 지휘관의 몸을 마주했을 때, 리브의 의식의 바다는 여전히 산산조각 나 먼지가 될 듯 고통스러웠을까?
그들이 묘사해 준 미래든, 지금이든,
제가 충분히 짊어지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한때는 순진하게 믿었어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player name]...
리브는 자기 손으로 직접 새긴 묘비명을 천천히 더듬으며, 소리 없이 그 이름을 되뇌었다.
리브는
그리고
이번에는... 직접
하지만... 앞으로의 여정에 지휘관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저는 안개 속의 등대를 어떻게 찾아야 하죠?
지휘관님 그리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원들 말고는... 제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눈물 한 방울이 리브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더니, 바닥에 작은 물꽃을 피웠다.
괜찮아요. 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리브는 눈물 자국을 가볍게 닦아냈다.
아직 울 때가 아니에요. 지휘관님.
그리고 지휘관님을 위해 애도하지 않겠어요. 이건 잠깐의 이별일 뿐이니까요.
묘비 앞에 무릎 꿇은 리브는 자신이 직접 새긴 이름에 경건하게 입을 맞췄다.
우리는... 꼭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어떤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묘지" 한편에서 멜리노에가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리브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본 멜리노에는 서둘러 다가갔다.
리... 리브? 괜찮으세요?
멜리노에가 손수건 한 장을 건넸다.
저는 괜찮아요.
리브는 창백한 미소로 답했다.
...
둘은 말없이 작은 길을 걸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막 떠오른 아침 해가 기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리브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 말은...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다른 보육 구역에 가서 지원군을 요청하실 건가요? 아니면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당분간 368 보육 구역에 머물 생각이에요.
당분간 머무신다고요?
멜리노에는 리브의 대답에 조금 기쁘면서도 놀란 듯했다.
네. 당분간 머물 생각이에요.
리브는 멜리노에와 살짝 거리를 두었다.
지휘관님... 이 임무의 결말을 봐야 해요.
이미 공중 정원에 여기서 발생했던 일을 전부 보고했어요.
공중 정원에서 지원을 보내줄 거예요. 그러니 새로운 집행 소대가 도착할 때까지 저는 368 보육 구역에 머물 거예요.
그것도 좋겠네요.
멜리노에는 입술을 다물었고, 깊이 눌러쓴 모자챙이 그녀의 표정을 가렸다.
이 길은 무척 짧아서 단 몇 분의 대화로 보육 구역에 도착했다.
멜리노에는 리브를 그레이 레이븐이 머물렀던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니, 원래 생기가 넘치던 방이 이제는 텅 비어 보였다.
멜리노에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리브... 혼자 있어도... 괜찮으시겠어요?
...
리브는 침묵으로 그 질문에 답했다.
그럼, 리브가 떠나기 전까지 아이슬링이 여기서 머무는 건 어떠세요?
멜리노에는 무척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원래는 제가 직접 키우고, 다시는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으려고 했지만...
리브 혼자서는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요.
아이슬링을요?
그것도 좋겠네요.
아이슬링은 그 일에 놀라서, 지금은 의무실에 있어요. 나중에... 제가 데려올게요.
리브가 무슨 말을 더하기도 전에, 멜리노에는 서둘러 떠났다.
그게... 아이슬링인가요?
리브는 고개를 들어, 물처럼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너머로, 얽히고설킨 거미줄이 하늘을 뒤덮으며 이 작은 세계를 속박하고 있었다.
깊고 먼 틈새 너머에 숨은 그 눈이 에코스피어와 같은 구역을 몰래 엿보고 있었다.
그 인간이 죽은 후, 리브... 그것이 선택한 이는 알 수 없는 분주함에 빠졌다.
리브는 "단말기"라는 작은 기계 위에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데이터와 문자를 입력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이 작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공중 정원"으로 그것들을 보내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의무실에 가서 멜리노에에게 상처 처리법을 가르치고 환자를 치료하느라 분주했다.
한가할 때면, 리브는 "아이슬링"과 함께 놀아주며 글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리브는 진짜 다정한 어머니 같았다.
그쪽 일도... 준비를 해야 하나요?
물론 필요하지.
그럼... 이쪽은요?
때가 됐을까요?
깊은 우주에서 잠꼬대 같은 속삭임이 나지막이 퍼져나갔다.
아니... 아직 그때가 아니었기에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두꺼운 구름 너머로, 그것은 따뜻한 파동을 탐욕스럽게 느꼈다.
그녀는 제 것이 될 거예요. 그녀는 저에게 복종하며, 저의 것이 될 거라고요.
리브는 제 무릎 아래 굴복할 거예요.
리브는 여느 때와 같이 보육 구역에서 생활했지만, 더 이상 그 인간의 존재는 그녀의 삶에 없었다.
석양이 건물의 그림자를 비튼 뒤 길게 늘어뜨렸고, 구름안개가 지평선의 윤곽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또 하루가 지났다.
그들은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었으며, 해와 달은 평소처럼 뜨고 졌고, 사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다만...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듯, 세상 만물이 혼란스럽게 이 투명한 호박석 안에 굳어 있었다.
아무도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기억하지 못했고, 아무도 지휘관이 죽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리브는 기억하고 있었다.
문가에 앉은 리브가 그 총알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렸다.
의식의 바다 안, 핏빛 안개가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웠고, 폭풍과 천둥이 하늘 위에서 울부짖었으며, 대지는 갈라져 온통 폐허가 되어 있었다.
리브는 가시덤불이 가득한 땅 위를 걸으며, 절망과 사랑으로 깊고 긴 흔적을 새겨, 세월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었다.
리브?
방문객의 나지막하게 부르는 소리가 리브를 의식의 바다에서 깨웠다.
멜리노에, 오셨어요.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일어나 맞이하지는 않았다.
아이슬링을 보러 왔는데, 어디 갔나요?
중앙광장에 놀러 갔어요.
더없이 평범한 보육 구역 주민처럼, 리브와 멜리노에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오늘 저녁노을이 있는 걸 보니, 내일도 날씨가 좋겠어요.
내일도 의무실에 오셔서 도와주실 건가요? 그러고 보니 아직 고맙다는 말도 못 했네요. 지난번에 가르쳐 주신 지혈법의 효과가 정말 좋았어요.
내일이요? 내일도 의무실에 가서 도와드릴게요.
정말 고마워요.
멜리노에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쉬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멜리노에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본 리브는 조용히 의식의 바다에 다시 한번 흔적을 새겼다.
지휘관이 떠난 지 7일째 되는 날이었다.
리브는 여전히 이곳을 떠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시간"을 질문으로 삼아 시도해 보았지만, 알 수 없는 표정과 터무니없이 이해할 수 없는 숫자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돕는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멜리노에의 곁을 따라다녀 보기도 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감사의 인사뿐, 어떤 허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리브는 다시 의식의 바다를 휘저어 보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을 찾을 수도 상대와 연락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이미 리브가 그 허름한 묘비 아래에 묻지 않았던가?
리브는 어딘가 혼란스러운 듯 생각에 잠겼다.
땡그랑...
바닥에 떨어진 총알의 맑은소리가 조금씩 마비되어 가던 리브의 의식의 바다를 일깨우자,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종이처럼 창백해졌다.
총알을 집어 든 리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작은 금속 물체를 코팅에 세게 누르며 자신의 통각을 자극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지휘관님은 죽지 않았어. 지휘관님은 분명... 아직 날 찾고 있을 거야"라고 되뇌었다.
리브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억지로 자신의 감각을 손에 쥐고 있는 차가운 총알에 집중시켰다.
그것은 발사되지 않은 총알이었다.
그것은... 지휘관의 "시체" 옆에 있어서는 안 될 총알이었다.
갱도 깊은 곳
갱도 깊은 곳
얼마 전... 혹은 "아주 오래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리브의 의식의 바다 혼란은 역으로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귓가의 윙윙거림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모를 정도였고, 마인드 표식 저편에서 계속되는 고통이 전해져 왔다. 어떤 외부의 힘이... 리브의 의식의 바다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리브 쪽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가랑비가 내리고 안개가 걷히지 않은 채, 리브의 의식의 바다를 가리던 두꺼운 구름층에 틈이 생겼다.
지휘관님! 정확한 위치가...
"의식의 바다"라는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구름이 모든 것을 다시 막아버렸다.
하지만 적어도 합류 위치를 리브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합류 위치를 리브에게 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지휘관의 착각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이슬링이 어리둥절하며 지휘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일단 안전 구역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양쪽에서 이합 생물 몇 마리가 튀어나와 얼마 남지 않은 총알이 또 소모되었다.
안전 구역에 도착했다.
여기도 안전 구역이네요.
아이슬링은 호기심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 리브 언니와 합류할 수 있을까요?
그럼,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가요?
지휘관은 아이슬링의 질문에 답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전 구역의 물자를 점검했다.
총알이 좀 있었지만, 자신의 총 모델과 맞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
탄창에서 총알을 빼서 세어 보니, 두 발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이 근처의 이합 생물은 좀 정리가 되어 있어서 리브가 도착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발밑 암석층에서 희미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저쪽이... 무너졌어요!
아이슬링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멀리 떨어진 갈림길의 입구, 기괴한 바위들이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렸다.
낮고 둔탁한 굉음이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면서, 강렬한 진동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흙이 거대한 틈을 벌리며, 갱도 전체를 집어삼킬 듯했다.
총알 한 발을 겨우 탄창에 넣자, 균열은 이미 발밑까지 퍼져 있었다. 이에 총과 미처 넣지 못한 총알이 함께 바닥에 떨어졌고, 총알이 데굴데굴 굴러 멀리 있는 물자 상자 옆으로 갔다.
정말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총알이 두 발밖에 없는데...
지휘관은 완전히 의식을 잃기 전, 머릿속에 이런 체념 섞인 생각만이 남았다.
뚝뚝...
가장 먼저 회복된 것은 촉각이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지휘관의 피부에 떨어져,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뚝뚝...
혼란스럽던 의식이 조금씩 맑아지면서 지휘관이 눈을 뜨자 주변에는 소수의 광물만이 차가운 빛을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에서 머리로 모여들었다. 지휘관이 살짝 움직여 보려 하자, 뼈와 관절이 마찰하며 탁한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심각한 골절은 없었다.
상처를 확인하고, 허리 쪽 비상 주머니에서 약품과 붕대를 꺼내 상처 부위를 간단히 처리했다. 그리고 길을 확인하려고 단말기를 꺼내려던 순간...
순간, 기억이 났다. 단말기는... 아직 아이슬링의 손에 있을 것이다. 그럼, 총은...
총을 넣었던 주머니가 텅 비어 있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총도 그 "안전 구역"에 떨어뜨린 것 같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지휘관은 신체 상태를 체크한 뒤, 암벽을 짚고 일어섰다.
갱도 지형은 복잡했지만, 굴러떨어진 범위를 고려했을 때, 이곳은 "안전 구역"의 왼쪽 아래에 위치하는 것으로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암벽을 따라 기어 올라가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었고, 다행히 근처 갈림길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 걸어가다가 첫 번째 갈림길 입구에서 자신이 예전에 남겼던 표식을 발견했다.
지휘관은 조금 날카로운 돌멩이를 주워 "무기"로 삼은 뒤, 벽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 알 수 없는 "환상"만 없다면, 그 안전 구역으로 확실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길은 내내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뒤에 숨어있던 "적"은 이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안전 구역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어떤 생물도 보이지 않았고, 이전에 나타났던 환영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적이 떠난 걸까? 아니면 상대가 목표를 리브로 변경한 걸까?
세 번째 "표식"에 도착했을 때, 바닥에서 이합 생물의 신체 일부를 발견했다.
지휘관은 고농도 퍼니싱이 가져오는 현기증을 참으며, 돌멩이로 이합 생물의 잘린 팔다리를 뒤집었다.
상처가 가로세로로 뻗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건 지휘관의 총알에 죽은 이합 생물이 아니었다. 갱도 안에서 이런 상처를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퍼니싱 농도가 아직 높았기 때문에 이 이합 생물이 죽은 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리브가... 바로 앞에?
곧장 앞으로 걸어가자, 앞쪽에 다시 이합 생물의 잘린 팔다리 몇 조각이 나타났다. 이것은 분명 자신의 총알이 낼 수 있는 살상력이 아니었다.
그리고 상처가 가로세로로 뻗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갱도 안에서 이런 상처를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퍼니싱 농도가 아직 높았기 때문에 이 이합 생물이 죽은 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리브가... 바로 앞에?
암벽에 날카로운 칼날이 스친 흔적과 이합 생물 몸의 날카로운 상처...
리브가 지휘관을 위해 일부러 남긴 "흔적"인 것 같았고, 이 흔적들을 따라 이동하자 곧 갈림길 앞에 다다랐다.
갈림길은 바위와 흙으로 빽빽하게 막혀 있었다.
주변에 다른 흔적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리브는 이 길을 따라 들어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돌무더기와 흙으로 막혀 있다니... "지진"으로 인한 자연적인 붕괴일까?
손에 든 "도구"로는 빽빽하게 막힌 길을 열 수는 없었다.
바위와 흙 사이에 틈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애썼지만, 머리만 한 크기의 돌 두 개만 겨우 떼어낼 수 있었다.
가벼운 상처를 입은 지휘관의 몸은 이런 동작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위와 흙으로 이루어진 문을 차서 열기도 전에, 자기 다리뼈가 먼저 불길하게 삐걱 소리를 냈다.
애써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근처에... 로던트 소대의 "안전 구역"이 하나 있었던 거 같았다.
남겨진 표식을 따라 빠르게 찾아가자, 아니나 다를까, 예전에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동굴 안에 지휘관과 리브가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쳤던 "안전 구역"이 있었다.
그곳에 두 개의 물자 상자가 안전하게 놓여 있었다.
첫 번째 물자 상자에는 대구경 총알 몇 개와 압축 식량 몇 봉지가 들어 있었다.
비아! 압축 식량은 뭐 하러 이렇게 많이 챙겼어! 구조체는 식량 같은 거 먹지 않는다고... "만일을 대비해서"라니! 몇 번을 대비한들 넌 식량을 먹을 필요가 없어!
두 번째 물자 상자에는 소형 폭탄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이미르...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폭탄은 이렇게 많이 필요 없다고. 여긴 갱도라서 잘못 터뜨리면 우린 다 묻히게 될 거라고! 제발 내 말 좀 들어. 일단 이쪽에 일부 놔두...
지휘관이 서둘러 압축 식량 몇 입을 삼키자, 지친 몸이 잠시 보충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물자 상자 안의 소형 폭탄을 싹쓸이한 뒤, 몸을 돌려 조금 전 갈림길 입구로 향했다.
쾅!!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면서 소형 폭탄이 좁은 갱도 안에서 폭발하자, 거침없이 나아갈 기세가 만들어졌다.
리브가 남긴 흔적은 역시나 이 갈림길에서 다시 나타났다.
마인드 표식이 충분히 안정적이고, 혼란이나 환각이 없음을 확인한 지휘관은 이 유일한 길로 곧장 돌진했다.
지휘관의 직감이 리브가 바로 앞에 있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뜻밖에" 무너진 갱도에 다시 가로막혔을 때, 지휘관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조금 전의 폭발이 어떤 시선의 주의를 끌었는지, 무언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떤 "생물"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등 뒤의 적일 수도, 이 갱도 안의 다른 생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지휘관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쾅!!
찬란한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로던트 소대의 소형 폭탄은 알 수 없는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환각 속에서 반복적으로 농락당했던 울분이 폭발과 함께 파괴되는 것 같았다. 지휘관은 손에 든 바위가 공중 정원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처럼, 망설이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쾅!!!
위장된 암벽이 폭파되면서 시커먼 구멍이 뚫렸다.
지휘관은 폭탄이 다 떨어지기 전에, 마침내
리브는 그곳에 누워 수많은 기이한 광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합 생물의 울부짖음이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면서, 배후에 있는 적의 목표가 명백히 드러났다.
쾅!!
지휘관이 설치해 둔 폭탄이 밖을 막고 있던 이합 생물을 산산조각 냈다. 그리고 두 번째 이합 생물 무리가 나타나기 전, 지휘관은 리브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기어 올라갔다.
마인드 표식이 강렬한 빛을 발했다. 이 거리라면, 리브와 심층 연결하기에 충분했다.
지휘관이 떠난 지 19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휘관님이... 떠나셨다고요? 지휘관님은... 어디로 가셨나요?
의식의 바다가 둔하게 움직였다. 광물이 자라난 곳은 지휘관과 관련된 모든 것을 리브의 머릿속에서 지우려 했다.
창가의 세면대 앞에 선 리브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난...
의식의 바다에서 윙윙거리는 진동이 울리자, 리브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난...
나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나는... 368 보육 구역의...
난...
맑은 물이 수도관에서 쏟아져 나오며, 차가운 물줄기가 리브의 두 손을 자극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세면대에서 손을 급히 뺐다.
그리고 주머니 속 총알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리브는 억제할 수 없이 떨며, 그 뜨거운 금속 총알을 꽉 쥐었다.
의식의 바다 안에 폭우가 쏟아져 핏빛 안개를 흩어버렸고, 뼈가 보일 듯 땅에 깊게 새겨진 흔적들이 호우에 씻겨 내려갔다.
세면대 앞, 거울 면 저편에서 리브의 뼛속 깊이 새겨진 그 얼굴이 나타났다.
지휘...
너무 오랫동안, 그 세 글자를 부르지 않았던 리브는 혀가 꼬일 뻔했다. 그러면서 의식의 톱니바퀴는 녹이 벗겨진 것처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휘관님!
아무런 망설임 없이 리브는 주먹을 꽉 쥐고 눈앞의 거울을 부숴버렸다.
그러자 허리케인이 공간 전체를 휩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