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7 악몽이 깃든 늪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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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4 ‘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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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리브"가 있던 갱도를 떠난 셋은 말없이 작은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아이슬링은 지휘관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는 한 발짝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쉿...

리브는 지휘관에게 조용히 하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거의 다 왔어요.

지휘관 일행은 갈림길 두 개를 더 지나갔다. 지휘관의 기억 속 대략적인 갱도 지도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리브와 합류하기로 했던 지점의 반대 방향인 것 같았다.

당연히 두 분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려는 거죠.

리브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서둘러 모퉁이를 돌았다. 그러자 퍼니싱 검사기가 붉은빛을 번쩍였고, 아니나 다를까, 이합 생물 두 마리가 정면에서 덮쳐왔다.

그러자 장전이 되어 있던 총알이 차갑게 사라져 가는 "리브"를 꿰뚫고, 그녀 뒤의 이합 생물을 직격했다.

사라졌어요!

지휘관은 상대와 마주친 순간, "그녀"가 리브가 아님을 확신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굳게 찌푸린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지휘관은 지금의 이 상황이 너무나 기이했다. 습격자의 시각적 영향은 진짜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배우의 연기는 바로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서툴렀다.

겉과 속이 이토록 부조화한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목적은 무엇일까?

지휘관이 발을 떼기도 전에, 리브의 목소리가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보다 먼저 들려왔다.

지휘관님... 조심하세요!

갈림길 뒤에서 경륜의 칼날이 어둠 속에서 은빛을 반사하며 날아왔다. 그리고 지휘관의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등 뒤의 이합 생물에 명중했다.

다... 다행히 제때 왔네요.

리브는 살짝 숨을 헐떡였고, 기체에는 방금 어딘가를 탈출한 듯한 상처 자국이 남아있었다.

또 다른 가짜 리브가 나타난 것일까?

지휘관님... 그리고 아이슬링, 다들 괜찮으세요?

리브는 지휘관의 다리 뒤에 숨어 있는 아이슬링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네, 이 아이의 이름이에요, 멜리노에가 이름을 알려줬어요.

리브는 몸을 낮춰 아이슬링을 안으려 했지만, 아이는 몸을 비틀며 그녀의 품을 거부했다.

많이 놀랐나 보네요.

리브는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괜찮아요. 곧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네. 멜리노에는 저쪽에 남겨두었고, 두 분의 목소리를 따라 여기까지 찾아온 거예요.

리브는 가볍게 화제를 돌리며, 몸을 일으켰다.

가시죠. 지휘관님. 일단 여기서 벗어나요.

리브가 지휘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휘관님!

리브의 표정은 "미소"에서 멈춘 채, 전환을 마치지 못한 인형처럼 굳어버렸다.

총알이 소리 없이 허공을 가르며, 리브 뒤의 이합 생물을 꿰뚫었다.

리브

가시죠. 지휘관님...

지휘관의 손이 리브에게 닿기 직전, 잡으려던 리브의 손을 낚아채자, 그림자는 놀란 듯 펄쩍 뛰며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갈림길 뒤의 이합 생물이 사각지대를 이용해 갑자기 튀어나왔다.

이미 대비하고 있던 지휘관의 다른 손은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고, 몸을 돌려 공격을 피한 후 망설임 없이 "리브" 뒤의 이합 생물을 처리했다.

또 가짜였다.

아이는 가볍게 코를 훌쩍이며, 지휘관의 바지에 얼굴을 묻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텅 빈 갱도에는 둘의 발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이내 시각과 청각을 교란하는 장애물이 뼈에 달라붙은 종기처럼 다시 덮쳐왔다.

??

지휘... 지휘관님...

익숙한 리브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리브

지휘관님, 살려주세요.

길모퉁이를 돌았다. 그러자 식암 기체의 리브가 무릎을 꿇고 한쪽에 앉아 있었는데, 상처투성이에 표정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리브

지휘관님...

리브는 고통스럽게 지휘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에는 광산 가장자리의 심연이 있었다.

리브

지휘관님! 이쪽으로 오세요! 거긴 위험해요...

리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리브"가 갈림길 입구에서 외치기 시작했다.

리브

지휘관님, 이쪽으로 오세요. 저와 함께 이곳을 탈출해요...

리브

지휘관님...

허무가 리브의 환영으로 변하더니, 어둠 속 곳곳에 나타났다.

허무들은 귀신처럼 형체가 없었고, 가볍고 아득했다. 치맛자락이 어둠 속에서 물결처럼 퍼져나가자, 반짝이는 도깨비불이 피어올랐다.

리브

지휘관님... 기다릴게요.

리브

지휘관님, 살려주세요.

리브

지휘관님...

형체 없는 바람이 갱도를 스쳐 가며, 사방에서 리브들의 목소리를 실어 날랐다.

모든 "리브"들이 일제히 멈칫하는 것 같았다.

백로 소대에서 그레이 레이븐으로 오기 전에 창문 너머로 지휘관님을 본 적이 있어요.

이 소대를 알게 된 후, 너무 궁금해서 회의실을 지나갈 때면, 지휘관님을 몰래 훔쳐봤어요.

지휘관님은 그렇게 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오셨어요.

이 몇 마디가 나오자, 지휘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전의 말투와는 달리, 리브 본인과 흡사했다. 그리고 이것은...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로 온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여러분과 보낸 모든 순간이 의미 있었어요.

제 욕심이었어요. 항상 이런 시간이 조금 더... 조금 더 길었으면 하고 바랐어요.

지휘관님...

이 모든 게 끝난다면, 우리가 기적처럼 다른 세계에서 만날 수 있다면...

우리만의... 집에서...

우리...

남아있던 그 리브가 지휘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휘관님?!

리브의 목소리는 애절했다.

말이 땅에 떨어지자, 환영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익숙한 시나리오와 클리셰로 한 무리의 이합 생물들이 진짜와 가짜를 섞어 리브가 사라진 길목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물량 공세"였다.

상대의 전투력은 형편없는 듯, 오직 이합 생물을 부려서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갱도 안에 이렇게 많은 이합 생물이 존재했던가?

퍼니싱 검사기로 이합 생물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어서, 총알을 계속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빈 탄창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지휘관이 보급팩에 손을 뻗어, 탄창 주머니에 닿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지휘관은 아이슬링을 데리고 싸우면서 후퇴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광구의 안전 구역 배치를 떠올렸다.

로던트 소대의 창설 방식은 엄격한 매뉴얼 기준을 따랐기에, 어떤 위치에 있든지 최소 하나의 안전 구역에 반드시 쉽게 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깍...

지휘관은 화력 선을 뚫고 들어온 놈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한편, 시각적 영향으로 왜곡되어 보이지 않는 돌출된 암석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지휘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인드 표식이 경종처럼 윙윙 울렸다. 그러면서 마인드 표식 저편, 리브의 의식의 바다에 소리 없는 거대한 파도가 일면서 날카로운 고통이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리브가 일부러 자신의 의식의 바다를 휘젓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를 건드리려 하고 있었다.

의식의 바닷속 모든 것이 조금씩 정체되면서, 감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라나고 있었다.

가랑비가 내리고 안개가 걷히지 않은 채, 리브의 의식의 바다를 가리던 두꺼운 구름층에 틈이 생겼다.

그러면서 눈 앞을 가리던 환각도 갈라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맑아지고, 구불구불한 길 앞, 어둠 속에서 크레인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지휘관님! 정확한 위치가...

"의식의 바다"라는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구름이 모든 것을 다시 막아버렸다.

하지만 적어도 합류 위치를 리브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단말기에서는 여전히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통신은 연결되지 않았다. 멜리노에는 초조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방안을 서성였다.

그들그녀들은 지금 어떤가요? 아이슬링은...

단말기가 갑자기 울리면서 멜리노에의 말을 끊었다.

소음이 섞인 낮은 신음이 들렸다.

피가... 너무...

지휘관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반대편의 이합 생물을 놀라게 할까 봐 리브는 소리를 낮춰 조용히 말했다.

반대편의 지휘관 역시 통신이 연결될 줄은 몰랐는지, 살짝 숨을 헐떡였다.

지휘관님, 다치셨어요?

허리 쪽 비상 주머니에 약품이 있어요. 소독한 뒤, 붕대도 그쪽에...

리브는 끊기는 신호 때문에 상대가 정보를 듣지 못할까 봐 최대한 반복해서 말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대편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지휘관이 아이슬링을 데리고 어딘가에 급히 숨어, 아이의 입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거친 백색 소음에는 통신 너머의 급한 숨소리만 들렸다.

그들그녀들은 지금 무언가를 피하고 있었다.

...

어떻게...

리브는 단말기의 마이크를 가리며, 멜리노에에게 말하지 말라고 신호했다.

한 세기처럼 길고 긴 몇 분이 지나고, 희미한 발소리가 다시 단말기에서 들렸다.

지휘관의 말이 소음에 잘려 조각났고, 리브는 단말기에 바싹 붙어 서야 겨우 몇 글자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두 분을 쫓는 게 있나요?

갑자기 발소리가 다시 멈추더니, 얕은 숨소리 끝에 총성이 정적을 깼다.

어지러운 발소리가 텅 빈 갱도에 울려 퍼졌는데 귓가에서 들리는 것처럼 가까운 것 같았다. 그리고 통신이 또다시 끊겼는데 실수로 건드린 건지, 아니면 신호가 약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창백한 얼굴의 멜리노에가 겁에 질려 손에 든 쇠막대기를 꽉 쥐었다.

저쪽에... 더 위험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이합 생물들의 조종자일까? 아니면 더 위험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리브는 단말기를 집어넣고 지휘관의 마지막 위치를 머릿속에 단단히 새긴 채, 시각 모듈을 다시 보정하려 했다. 하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의식의 바다 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시각 모듈이 흐릿해진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리브는 조명 장치를 조금 더 밝게 설정한 뒤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지휘관이 보유하고 있는 총알의 양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휘관은 언제나 주어진 자원을 잘 활용했다.

갱도의 갈림길이 많은 것은 나쁜 일이지만, 좋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휘관은 분명...

의식의 바다가 관통하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전해졌다. 리브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는 지휘관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이, 반드시 지휘관과 합류해야 했다.

생각을 의식의 바다로 잠입시킨 후, 그녀는 이전에 완료하지 못한 “계획”을 계속 이어갔다... 의식의 바다를 교란시켜, 숨겨진 고통으로 자신과 지휘관을 가로막고 있는 구름을 찢어버리려 했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판단할 수 없었고, 통증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육중한 천둥소리가 먼 하늘에서 울렸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억과 상념들이 희미한 빛을 발하며 땅에 씨앗을 뿌렸다.

가랑비가 내리면서 안개가 살짝 걷히자, 두꺼운 구름 너머로 하얀 새가 날갯짓했다.

리브는 저 샛별이 아직 하늘에 높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지휘관님을 찾았어요.

리브는 지휘관이 부르는 소리를 희미하게 들었다.

지휘관님! 정확한 위치가...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을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는 더없이 선명했다.

어떤 걸 조심하라는 것일까? 갱도? 이합 생물? 멜리노에? 아니면... 다른 무언가?

이런 행동으로 유지되는 마인드 연결은 확실히 불안정했고, 지휘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마인드 연결이 차단되고 말았다.

리브가 의식의 바다에서 힘겹게 깨어났다. 비록 의식의 바다에 고주파 파동이 일었지만, 적어도 지휘관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냈다.

아직... 그들그녀들의 위치를 찾지 못했나요?

대략 위치를 파악했어요.

단말기에서 다시 대략적인 지도를 꺼낸 리브는 눈을 가늘게 뜨고, 조금 전에 지휘관이 말한 지표명과 대조하며 그곳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았다.

단말기의 녹색 점과 의식의 바다에서 지휘관이 준 정보가 조금씩 일치했다.

이것만으로 단말기를 든 지휘관이 진짜 지휘관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지만, 리브는 그곳에 가봐야만 했다.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은 복제할 수 없으며, 리브의 의식의 바다도 그녀를 속이지 않을 것이었다.

멀지 않아요. 바로 앞이에요.

멜리노에가 다가와 제대로 보기도 전에, 리브는 지도를 접고 방향을 정한 뒤, 빠른 걸음으로 갱도의 갈림길로 들어섰다.

주변의 퍼니싱 농도가 급변하자, 멜리노에가 갑자기 멈춰 섰다.

저 괴물들이... 저 괴물들이 또 왔어요!

멜리노에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힘껏 쇠막대기를 휘둘러 리브의 등 뒤를 덮치던 이합 생물 한 마리를 맞혔다.

...

이합 생물들이 리브의 일행이 가는 길을 막으려는 듯, 사방에서 몰려와 앞쪽 갈림길에 모여들었다.

이젠 그만... 비켜주시죠!

무기가 갑자기 개방되자, 날카로운 칼날이 길을 열었다. 동족의 사체를 두려워한 탓인지, 빽빽하게 모여 있던 이합 생물들이 걸음을 늦췄다.

어서 가요!

리브는 그 틈을 타서 멜리노에를 데리고 재빨리 앞으로 달려갔다.

탕...

총성이 텅 빈 갱도에 울려 퍼졌는데, 귓가에 들리는 것처럼 가까웠다.

지휘관님!

그녀는 망설임 없이 지휘관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갱도 안의 길은 칠흑같이 어두우면서 길었고, 메아리가 겹겹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총소리만 들릴 뿐 앞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리브, 조... 조심해요.

멜리노에는 긴 치마 때문에 비틀거리며 달렸다.

지휘관님은 다치셨고 짧은 지시조차 내리지 못하셨어요. 분명 위급한 상황일 거예요.

지반이 흔들리면서 갱도 안의 지형이 또 조금씩 바뀌었다.

리브는 자신이 얼마나 달렸는지 이미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 저 멀리 갈림길에서 크레인이 나타나는 것을 본 순간, 리브의 코어가 목을 통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단말기...

리브는 허둥지둥 단말기를 꺼냈다. 이전에 동기화된 위치 정보에 따르면 지휘관의 단말기는 바로 이곳에서 동기화를 진행했었다.

그들그녀들이 아직 여기에 있네요. 다행이에요.

지휘관을 나타내는 녹색 점이 여전히 앞에서 깜빡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휘관과 아이슬링은 이곳 뒤에 있을 것이다.

이합 생물의 사체 몇 구가 작은 길 양옆에 흩어져 있었다. 리브는 길을 치운 뒤 곧장 뒤쪽 안전 구역으로 달려갔다.

탕...

총구에서 나온 총알이 공기를 가르며 리브의 뺨을 향해 날아왔다.

지휘관님, 저예요. 리브예요. 상처 좀 볼게요.

리브는 지휘관의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전 구역의 엄폐물 뒤로 초조하게 달려들었다.

남은 말은 안에서 굳어버렸다. 리브는 메마른 입을 벌려봤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이슬링? 어떻게 네가...

엄폐물 뒤에서는 아이슬링이 양손을 덜덜 떨며 총을 쥐고 지키려는 듯한 자세로 지휘관 앞에 서 있었다.

총의 반동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아이슬링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이슬링의 등 뒤에는... 지휘관이 엄폐물에 기댄 채 앉아 있었고, 피투성이 상처가 그녀의 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퍼니싱 검사기가 계속 붉은 경고등을 깜빡였지만, 지휘관은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보일 수 없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지휘... 관님?

잠시 멈칫하던 리브는 즉시 달려들어 지휘관의 혈관에 혈청을 주입했다.

아직 늦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아직 늦지 않았을 것이다.

의식의 바다에 거대한 파도가 일면서, 은통이 긴 바늘처럼 리브의 몸을 관통했다.

리브의 두 손은 아직 온기가 남은 지휘관의 피로 물들었다.

분명... 아직 늦지 않았을 것이다.

주머니에서 소독액을 꺼내 지휘관의 문드러진 상처에 전부 쏟아부은 다음, 리브는 능숙하게 상처를 하나하나 붕대로 감았다.

분명... 분명 아직 늦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심폐소생술 기준을 되뇐 리브는 지휘관의 가슴을 반복해서 압박했다.

하지만 리브가 아무리 노력해도 손바닥에 닿는 부위에서 느껴지는 지휘관의 체온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리브는 침착해야 한다고, 어쩌면 이것도 환상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 짜일까? 어쩌면 클론일지도...

리브는 입술을 깨물며 지휘관 옆에 있는 보급팩을 떨리는 두 손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무... 무서워요.

아이슬링!

옆에 있던 아이슬링은 얼이 빠진 듯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멜리노에가 달려와 귀중한 보물을 찾은 듯 아이슬링을 꼭 껴안았다.

아이슬링의 손에 있던 총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총...

총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것이었고 탄창에는 총알이 한 발도 없었다. 총자루에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만의 고유한 휘장이 새겨져 있었다.

리브는 예전에 수없이 이 총을 닦고 정비했기에 모든 세부 사항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총은 어디서 가져온 거예요?

아이슬링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어눌하게 말했다.

이... 이건 지휘관님지휘관님 건데, 저한테 주신 거예요.

...

그리고... 이 단말기, 이건 분명 가짜일 것 같았다.

의식의 바다가 끓는 물에 잠긴 것처럼 혼돈에 빠진 리브는 지휘관 옆에서 공중 정원에서 받은 단말기를 찾아냈다.

그것 또한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것이었다.

슬픔이 극에 달하면 아무런 소리를 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리브는 그 말처럼 망연자실한 채 지휘관의 가슴을 압박하며 불가능한 기적을 기도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리브의 손에서 지휘관의 체온이 사라지고, 따뜻했던 몸이 차가워져 갔다.

지휘관은 이미 죽었다.

그녀의 조금씩 차가워지는 시신과 끔찍한 상처가 그녀가 겪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죽었다.

리브는 멍한 표정으로 지휘관의 얼굴에 남은 핏자국을 닦아주었다.

그러다 리브의 손이 살짝 움찔거리더니 바닥에 떨어진 총알 하나를 조심스럽게 주웠다.

이 총알은... 조금 전 아이슬링이 쏜 것이 아니었다. 총알의 무게도 맞지 않았고, 발사된 적도 없었다.

구조체의 예리한 직감으로 리브는 즉시 이 문제를 자각했다.

하지만 지휘관이 정말 여기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그렇다면, 왜 이 자리에 "전혀 발사된 적이 없는" 총알이 있는 걸까?

눈을 내리깐 리브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총알을 손에 꽉 쥐었다.

그녀는...

가시죠.

일단... 일단 여기를 벗어나시죠.

리브는 지휘관의 시신을 등에 업었다. 인간의 몸무게는 구조체의 기능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리브는 무척 힘겨워했다.

리브, 저희는...

일단... 여기를 벗어나시죠.

리브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고, 그녀는 어떨 때는 무거운, 또 어떨 때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