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도 깊은 곳
갱도 깊은 곳
기억의 파편을 털어내며, 인간 지휘관은 아이슬링을 데리고 광산 동굴 속을 달렸다.
쨍...
갑자기 멈추면서 이상한 느낌이 머릿속을 덮쳤다. 의식을 향한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이번 목표는 마인드 표식이 아니었다.
차가운 물줄기가 척추로 타고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미세한 작열감이 신경 말단에서부터 퍼져나가더니 점차 망막으로 번졌다.
그와 동시에 지휘관의 주위 공간에 알 수 없는 것들이 빠르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쾅...
도망치려고 발을 떼기도 전에, 눈앞의 길이 갑자기 낭떠러지로 변했다.
망설이며 내디뎠던 발을 걷었다. 하지만 기억으로는 눈앞이 분명 갱도였고...
앞의 낭떠러지는 너무나 현실 같았다. 지휘관은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며 돌멩이라도 던져보려던 순간, 여자아이가 겁에 질려 옷자락을 꽉 쥐었다.
무슨 일이에요?
쾅!!
아이를 안심시키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위가 다시 지축을 울리며 흔들렸다. 그러면서 조명 시설이 심하게 흔들렸지만, 폭발의 근원지는 찾을 수 없었다.
설마 리브 쪽인가?!
경계를 위해 총을 들어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다른 이상은 발견하지 못했다.
지휘관님!
리브의 목소리가 오른쪽 갱도에서 희미하게 들렸다.
지휘관은 결단을 내려 앞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슬링의 손을 잡고 오른쪽 갱도로 향했다.
갱도는 어둡고 길었는데, 그들이 걸음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바위 뒤에서 이합 생물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탕...
총소리가 갱도 안에 울려 퍼지자, 이합 생물이 그 순간 흩어졌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지휘관의 인지 능력을 조종하여 환각에 빠뜨리려 하고 있었다.
지휘관이 방금 떠났던 갱도로 돌아가 보니, 눈앞의 낭떠러지는 그대로였다.
지휘관은 조금 전까지 자신과 통신했던 리브가 오른쪽 갱도에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바닥의 돌멩이를 주워 앞으로 던졌다.
그러자 돌멩이가 크림처럼 낭떠러지의 빈 곳에서 녹더니,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시신경이 교란되어 생긴 착각이었다.
누가 이런 환상을 만들어냈고, 그 목적은 무엇일까?
부츠로 낭떠러지 가장자리를 밟아보자, 예상대로 앞발에 단단한 바닥이 느껴졌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지휘관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휘관은 절벽 꼭대기에 서 있었다.
지휘관은 마인드 표식이 안정적임을 확인하고는 곧장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음 순간, 둘은 햇살이 내리쬐는 보육 구역에 나타났다.
어머,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오셨어요?
멜리노에가 두 분을 찾으러 갔는데, 혹시 마주치지 못하셨나요?
총알이 보육 구역 담당자 뒤의 벽에 박혔다. 그러자 벽의 균열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더니, 이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갔다.
주변은 여전히 갱도의 풍경이었다.
상대의 "환상"은 지휘관의 시신경만 교란할 뿐, 진정한 의미의 환각에 빠뜨리지는 못했다.
지휘관은 더는 생각하지 않고 단말기의 지도를 꺼내 빠르게 훑어본 뒤, 바닥에 있던 아이슬링을 들어 등에 업었다.
!!
리브의 통신 화면을 단말기에 고정한 뒤, 아이슬링에게 커다란 녹색 아이콘을 보여주었다.
이걸 누르면, 통신 화면으로 넘어가요.
아이슬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라 말했다.
반대편에서 누가 말하면... 지휘관님께 말해요.
아이슬링이 통신 버튼을 누르자, 수십 번의 신호음이 들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연결은 되지 않았다.
네... 알겠어요.
아이슬링이 조용해지자, 등 뒤에서 신호음이 들렸다. 여자아이는 지시를 잘 따랐다.
우리...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요?
물자를 다시 점검한 지휘관은 오른쪽 벽을 더듬었다.
지휘관은 자신과 리브가 갱도에 들어왔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계속 전진하다 두 번째 갈림길에서 우회전하면 로던트 소대가 남긴 두 번째 안전 구역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곳에 있는 낡은 크레인이 눈에 띄는 표식이 될 수 있어서, 이 귀신에 홀리는 듯한 갱도 안에서는 합류하기 좋은 장소일 것 같았다.
주위의 모든 것이 낡은 벽지처럼 계속 벗겨져 나갔다. 그러자 각종 장면이 황금시대 영화의 세트장처럼 둘 주위에서 반복적으로 펼쳐졌다.
지휘관님, 앞은 낭떠러지라 더 이상 가시면 안 돼요.
지휘관님, 수송기가 추락해요!
[player name] 님, 저녁 먹으러 집에 오실 거죠?
지휘관이 발을 내딛는 순간, 소리와 주변 환경이 함께 유리처럼 산산조각 났다.
모퉁이 하나만 더 지나면...
저... 저기 괴물들이 나타났어요.
등에 업힌 아이슬링이 갑자기 옷을 꽉 움켜쥐었다.
퍼니싱 농도가 급격히 치솟으면서 감시기의 붉은 빛이 깜빡였다.
이합 생물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은 환각이 아니었다.
이합 생물을 가까이서 보게 된 탓인지, 아이슬링은 겁에 질려 나지막이 흐느꼈다.
이합 생물 몇 마리가 다른 쪽 좁은 길에서 튀어나왔고, 연이은 사격에 총구가 살짝 달아올랐다.
후방의 공격은 피했지만, 측면의 이합 생물은 피하지 못했다.
전방의 괴물은 물리쳤지만, 후방의 공격은 피하지 못했다.
이합 생물의 날카로운 발톱이 지휘관의 군화를 찢었다.
다... 다쳤어요!
지휘관이 가지고 있던 보급 탄약은 많지 않아 아껴 써야 했다. 다행히 방금 달려든 이합 생물의 수가 적어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었다.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달리던 지휘관은 등 뒤에서 들리던 연결 신호음이 갑자기 백색 소음으로 바뀌는 것을 들었다. 통신이 연결된 건가?
백색 소음이 거칠게 울렸지만, 통신 상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놈들이... 놈들이 따라왔어요.
지휘관은 다시 사격을 개시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남은 총알 수를 계산한 뒤 두 번째 탄창으로 교체했다.
빈 탄창이 바닥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지휘관은 숨돌릴 틈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이합 생물의 추격을 피했다.
왼쪽 갈림길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조명 장치가 겨우 발밑만 비출 정도였다.
오른쪽 갈림길은 험준해 보였다. 그리고 지반이 흔들려 떨어진 돌과 흙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이합 생물의 사체가 갈림길 입구에 널브러져 있었다. 총과 죽음이 두려웠는지, 나머지 이합 생물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피가 너무 많이 나요.
아이슬링이 코를 훌쩍이며 지휘관의 종아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미처 치료하지 못한 상처에서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지휘관이 옷자락을 찢어 임시 지혈을 하려던 순간, 옆에서 여전히 "통신 중"으로 표시된 단말기가 시선을 끌었다.
지휘관님?
리브의 일부러 낮춘 목소리가 단말기 너머로 들려왔다.
통신이 자꾸 끊겼다 연결됐다 했다.
지휘관님... 다치... 셨나요?
허리 쪽... 비상 주머니... 약품...
리브는 하나의 정보라도 놓칠세라 이 말을 반복했다.
지휘관이 허리의 비상 주머니를 찾으려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흐려졌다. 그때 갈림길 입구에서 이합 생물 몇 마리가 고개를 내미는 희미한 모습이 보였다.
괴물...
둘은 숨을 죽이고 암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조명 장치를 껐다. 남은 탄약이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전투를 피해야만 했다.
다행히 이합 생물은 들어오지 않았다.
뭐가... 쫓아... 온다고요?
조금 전까지 갈림길 입구에 쓰러져 있던 이합 생물이 눈에 띄게 꿈틀거렸다. 지휘관은 이것이 자신의 환각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둔탁한 총성과 함께, 이합 생물이 울부짖으며 벌떡 일어섰다.
지휘관은 아이슬링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는 칠흑 같은 갱도 깊숙한 곳으로 달려갔다.
단말기에 연결돼 있던 통신은 다시 끊겼다.
이합 생물은 쥐를 잡는 고양이처럼, 항상 예상할 수 없는 위치에서 나타났다.
그중에서 어떤 것은 환각이었고, 어떤 것은 진짜 이합 생물이었다.
퍼니싱 검사기로 겨우 진짜 이합 생물인지 판단해 냈지만, 계속되는 전투의 피로감이 머릿속에 억제할 수 없이 밀려들었다.
갱도 지형은 구불구불했고, 대충 그린 지도에 의지해 올바른 방향을 찾으며 걸었는데, 얼마나 걸었는지는 이미 기억도 나지 않는 상태였다.
탕...
세 번째 탄창으로 교체한 지휘관은 마음속으로 남은 보급 탄약이 얼마나 되는지 세며, 갈림길을 돌아서려던 순간, 뜻밖에 전투 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환각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이 갱도로 들어서자, 앞쪽의 이합 생물이 울부짖으며 쓰러졌고, 한 그림자가 힘겹게 무기를 조종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리브였다.
심하게 부상을 입은 리브는 암벽 모퉁이에 기대앉아 있었고,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지휘관님! 저 여기 있어요!
리브 역시 이쪽으로 걸어오는 둘을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다행이에요. 드디어 찾았네요. 윽!
리브는 순환액을 계속 흘리며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지휘관님... 저 좀 부축해 주실 수 있으세요? 일어설 수가 없네요.
지휘관님? 왜 그러세요? 저예요. 리브예요.
이건 리브가 아니었다.
지휘관은 리브의 이름을 부르기도 귀찮다는 듯,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지휘관님! 쉿...
지휘관이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익숙한 그림자가 다가와 다소 강압적으로 지휘관의 어깨를 붙잡고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지휘관님, 저건 진짜가 아니에요. 제가 진짜 리브예요.
리브는 걱정과 긴장이 뒤섞인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여긴... 왠지 수상해요. 인간의 머리와 구조체의 의식의 바다를 교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환각"을 많이 봤거든요. 그 안에 지휘관님도 있었고, 다른 분들도 계셨어요.
여기 광물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에 문제가 있는 건지 확실하지 않아요.
일단 피하시죠. 저를 따라오세요.
리브는 지휘관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