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도 깊은 곳
갱도 깊은 곳
옷자락을 붙잡은 아이슬링이 지휘관의 발걸음을 바싹 뒤따랐다. 갱도는 구불구불했고, 지반이 흔들리면서 무너진 탓에 지형이 많이 변해 있었다. 그래서 들어올 때 남겼던 일부 표식들을 찾기 어려웠다.
남겨진 표식을 따라, 지나왔던 안전 구역을 임시로 찾아낸 지휘관은 자리에 앉아 단말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건... 뭐예요?
짧은 여정 동안, 아이슬링은 더 이상 지휘관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고, 호기심이 생긴 나머지 옆에서 고개를 기웃거리며 지휘관의 손동작을 보려고 했다.
연락이요?
와...
아이슬링은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았다.
말씀하신 것처럼, 리브 언니와 연락하시는 거예요?
음... 신호요?
아이슬링이 타다닥 한쪽으로 달려가더니, 그럴듯하게 위로 두 손을 흔들었다.
신호 나와라!
지휘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퍼니싱 농도 감시기의 수치가 급격히 치솟았다.
지휘관이 몸을 날려 아슬아슬하게 아이슬링을 구해내려는 순간, 이합 생물 한 마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쪽 갈림길에서 튀어나와 덮쳐왔다.
！！！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슬링은 얼어붙어 버렸다.
둔탁한 총성이 갱도 안에 울려 퍼졌고, 이합 생물의 발톱이 지휘관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긁힌 상처를 남겼다.
여긴 이합 생물이 나타날 곳이 아닌데, 어떻게...
지휘관은 연결하던 통신을 내팽개치고 아이슬링을 안은 채 아직 수색하지 않은 다른 통로로 달렸다.
달리는 도중, 뜻밖에 통신이 연결되었다.
지휘관님?!
리브의 목소리가 단말기에서 들려왔다. 백색 소음은 여전히 심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휘관님! 지금... 위치가 어떻게 되세요?
이합... 생물이요?
단말기 너머, 리브의 뒤편에 여자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건 멜리노에였다. 그녀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위치를 동기화해주실 수 있으세요?!
리브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이슬링을 한 팔로 안고, 이합 생물과 교전하는 상황에서 단말기로 위치를 동기화하는 것은 지휘관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휘관의 상황을 전달받지 못한 리브는 귀를 단말기에 바싹 붙여 지휘관 쪽 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이합 생물을 잠시 격퇴하자, 주위 환경이 안전해진 것처럼 보였다.
지휘관님... 괜찮... 으세요?
리브의 다급함이 스크린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지휘관님... 걱정... 마세요
...
저희가 금방 합류...
통신이 갑자기 끊기면서 이합 생물이 덮쳐왔다.
지휘관은 반대편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총을 뽑아 들며 몸을 돌려 적과 교전을 시작했다.
축축한 공기가 사방에 가득했고, 리브와 멜리노에는 갱도 깊은 곳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조심하세요!
지면이 심하게 흔들리자, 리브가 번개처럼 손을 뻗어 멜리노에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날카로운 돌덩이 하나가 멜리노에 옆으로 세게 떨어졌다.
！
고... 고마워요.
멜리노에는 넋이 나간 채, 리브의 뒤를 따랐다.
갱도가 간헐적으로 흔들렸고, 리브는 진원지를 파악하려 했지만,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흔들리네요. 응력 집중으로 인한 유발 지진일 수도 있겠어요.
그... 그럼 어떡하죠? 아이슬링이 아직 안에 있는데...
유발 지진은 진원이 얕아서 큰 진동을 일으키지는 않을 테니, 계속 앞으로 가죠.
리브는 조금 전 지휘관의 위치를 보았다. 비록 한순간 반짝였을 뿐이지만, 대략적인 방향은 확인할 수 있었다.
앞에서 우회전하면, 안전 구역이 있는데
입술을 굳게 다문 리브가 걸음을 재촉했다.
세 번째 갈림길을 지나면 첫 번째 안전 구역이 나오는데, 지휘관 일행은 그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리... 리브! 저쪽에... 저게 뭐예요?
전투의 직감이 시각 모듈보다 먼저 공기 중의 이합 생물 기척을 포착해 냈다. 리브의 원형 칼날이 칼집에서 순식간에 나와, 기어 오던 이합 생물 한 마리를 베어버렸다.
이합 생물이 여긴 또 어떻게 나타난 거죠?
